던전 밥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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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
작품등록일 :
2021.05.12 12:03
최근연재일 :
2021.08.0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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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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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6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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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2. 갈망(2)

DUMMY

"2시 12분.."


힐끔, 손목 시계를 내려본 다음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향했다.


몇시간을 침대 위에서 뒤척인 뒤 결국 다시 찾은 던전 7계층.


천장에서 내려오는 어스름한 인광이 통로를 밝혔고, 붉은 흙바닥 위에서 자세를 바로 잡았다.


「크르르릉!」


코 끝으로 누린내가 진동했다. 이족보행형 개과 몬스터 놀(Gnoll).


무미건조한 눈동자로 창 끝을 놀에게 향했다.


「「그르르-!」」


낮은 목울림 소리를 내며 세마리의 놀이 조금씩 조금씩 거리를 좁혀왔다.


키는 150cm, 덩치는 나와 비슷한 이 놀들은 눈알을 데룩데룩 굴리며 내 빈틈을 엿봤다.


살짝 걸음을 옆으로 옮기면서 놈들의 주의를 발쪽으로 이끌었다.


참고로 놀을 상대할 때는 여타 다른 하급 몬스터보다 훨씬 높은 철저한 주의가 요구됐다.


이유는, 놈들의 오른손에 쥐어진 저 뭉툭한 나무 몽둥이.. 일명 '클럽'의 존재 때문. 단순한 나무 몽둥이라고 무시했다간 눈 깜짝할 사이 골로 가버릴 위험이 있는 매서운 물건이다.


평소와 같았더라면 놀을.. 게다가 세마리를 동시에 상대하는 모험은 절대로 사양했겠지. 하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은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한 발자국 걸음을 앞으로 내딛었다.


지금 발을 돌리면, 나는 영원히 패배자, 떨거지로 낙인이 찍힐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플로아 에머리 씨라면.. 만약 니나 에델린 씨라면.. 겨우 이정도에서 발을 돌리지 않겠지.


그래, 멋진 그녀들이라면 분명 용기있게 호기롭게 맞서 싸우고 앞으로 나아갈게 분명했다.


그녀들과 나의 차이. 그것은.


"앞으로 나아갈 의지가 있느냐의 차이..!!"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생각은 거기까지. 창날을 앞세우고 거칠게 지면을 박찼다.


땅을 밟는 걸음 걸음마다 흙먼지가 솟구쳤고, 그 먼지를 가르며 한자루의 화살이 된 것처럼 나 자신을 적에게 쏘아날렸다.


공기를 찢고, 망설임을 찢고, 기습적으로 창대를 앞으로 내뻗었다.


푸우우욱!


「케엥!」


확실한 손맛이 창대를 타고 팔로 전해졌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차지에 눈을 동그랗게 뜬채 딱딱히 굳어져있는 놀들. 놈들에게 시간을 줄 이유가 없었다. 우선, 심장이 꿰뚫린 정면의 놀을 힘껏 걷어찼다.


바로 창날이 뽑히고 붉은 혈액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쏟아지는 그것을 그대로 뒤집어 쓰며 몸을 크게 한바퀴 회전했다.


후우웅. 빙그르르 도는 몸을 따라 창날이 번뜩였다.


촤아악! 창 끝에 걸린 놈은 한놈. 나머지 한놈은 벌써 훌쩍 뒤로 물러서서 내 공격을 회피한 뒤였다.


「께게엥...」

「컹! 커엉!」


가슴의 상처를 감싸쥐며 뒤로 물러서는 한놈을 멀쩡한 놈이 막아선다. 상처를 입은 놈도 잠깐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보더니, 이내 클럽을 고쳐잡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는 이대일의 전투. 기습으로 적어도 두마리를 처리할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놀들의 움직임이 상당히 민첩했다. 만만치가 않았다.


[솔로 플레이를 꼭 그만두라는 건 아니야. 그래도 솔로 플레이를 할 때는 상대를 잘 봐가면서 도전하도록 해.]


예전에 아리아 누나가 했던 말이다.


던전은 각 계층마다 출현 몬스터가 달라지는 특징이 있다. 또 그 각 계층마다 유달리 전투능력이 뛰어난 몇몇 종들이 있기 마련인데. 눈 앞에 있는 저 놀들이 바로 이에 해당하는 놈들이었다.


아리아 누나의 말을 참고서 삼아 여지껏 피해만 왔던 놈들. 그런 놈들 중 하나를 막상 눈앞에 마주하니, 내가 여지껏 얼마나 쉬운 길만을 골라 걷고 있었는지를 이제야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기습공격에 당황했던 놀들이 금세 전의를 불 태우기 시작한다.


울끈불끈한 근육 위에 핏줄이 꿈틀댔고, 노란 눈동자가 살기를 가득 머금고 있다.


스윽. 눈동자가 마주친 순간 드디어 시작됐다. 놀들의 대쉬가.


「카아아아아앙!」


"!"


오른쪽, 왼쪽 양방향에서 동시에 거리가 좁혀졌다. 피글린 따위와는 비교가 안되는 민첩한 몸놀림!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뒤로 피해?


아니. 물러서지 말고 맞서야 돼!


머리속으로 짧은 시간 고민한 뒤,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오른쪽 다리, 왼쪽 상단으로 동시에 클럽이 날아들고 있었다.


"흐읍!"


서둘러 상체를 뒤로 젖히고, 창대를 밑으로 내질렀다.


후웅! 아찔한 풍압이 머리카락을 스쳤고, 타아앙! 클럽을 막아낸 창대가 부르르 떨렸다.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아마, 정타를 허용했다면 지금쯤 나는 몸이 접혀 공중을 날고 있겠지.


"하압!"


일단, 다리를 공격하느라 상체를 숙이고 있던 오른쪽 놈의 머리를 냅다 걷어찼다.


퍽! 곧장 둔탁한 소리가 울렸고, 놈의 입가에서 핏물이 터졌다.


즉시 창대를 짧게 고쳐 잡고 이번에는 왼쪽놈에게 창대를 내질렀다.


「께에엥..!」


날카로운 비명 소리와 함께 왼쪽놈이 비틀댔다. 날이 틀어박힌 곳은 어깨부근.


'좋았어! 이대로 더 깊숙히 쑤셔박으면...!'


텁!


"!?"


이 순간, 시간이 멈춘 줄 알았다. 고통에 울부짖고 있던 놀이 우뚝 비명을 멈추고 갑자기 창대를 턱 붙잡았기 때문이었다. 꽈악! 내 창대를 붙잡고 있는 털복숭이 손.


아차. 기습적인 놈의 움직임에 깜짝 놀라 순간 판단이 늦어지고 말았다. 이렇게 힘겨루기나 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재빨리 창대를 잡고 있던 양손 중 오른손을 들어 놈의 안면을 힘껏 가격했다.


퍼억!


코피를 터뜨리며 창대를 붙잡고 있던 놈이 힘 없이 나가 떨어졌다.


그리고 오른쪽 놈은....


「크아앙!」


.....왼쪽 놈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사이, 이미 클럽을 높이 치켜들고 있었다.


퍼어어억--!


"커흐흑!?"


아찔한 충격이 온몸을 내달렸다.


시야가 흔들렸고, 오른쪽 어깨가 덜컥 내려앉는 것처럼 상체가 옆으로 기울어졌다. 무릎이 덜덜덜 떨렸고, 오른쪽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다시 한 번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내 오른쪽 어깨를 내리쳤던 클럽이 다시 우뚝 눈앞에 솟아 올라있었다.


시간이 느려지는 감각을 느끼며, 등줄기로 주르륵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본능이 울부짖었다.


저것을 맞으면 이번에야말로 진짜 죽는다고.


이안 에스더. 너란 놈은 여기서 아무도 알아주지 못한 채 싸늘히 식어갈 것이라고.


그리고 오늘 나를 비웃었던 사람들은 또 다시 내 이 최후를 비웃겠지.


"으아악!"


눈을 부릅떴다.


온 힘을 다해 아직 기능하는 왼팔을 움직여 놀의 옆구리에 필살의 창을 쑤셔박았다.


「께엥?!」


솟아올랐던 클럽이 휘둘러지고,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쳤다.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저 클럽은 분명 내 머리를 후려쳤겠지.


"아아아아악!!"


두 번. 세 번. 네 번. 그대로 창을 쥔 왼팔을 정신 없이 움직였다.


푸욱. 푸욱. 푸욱.


피가 튀고, 또 튀고. 그래도 계속 움직였다.


「........」


그렇게 얼마나 정신 없이 팔을 움직였을까.. 이미 움직이지 않는 오른쪽 어깨 위로 곧 놀의 몸이 터억 포개졌고, 놀의 몸에서 힘이 축 빠지는 게 느껴졌다.


뜨끈미지근한 액체가 이윽고 오른쪽 다리를 적셨다. 지금도 검붉은 핏물을 쏟아내는 놀의 몸을 살짝 옆으로 밀쳐냈다.


쿠웅! 작은 흙먼지가 일었다. 그 속에서 몸을 돌려 세웠다.


줄줄 코피가 흐르는 얼굴로 나를 응시하고 있는 마지막 놀. 그놈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뗐다. 이 전투의 마지막 종지부를 찍기 위해.


그 순간, 놈이 머리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목청을 울렸다.


「아우우우우우우---!!」


짐승의 하울이 긍방 통로 가득 메아리쳤다.


그리고 이때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한가지 조언!


[특정 몬스터들은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흩어져 있는 동족들을 부르기도 해. 던전에서 오래 살아남고 싶다면 이 점, 절대 잊으면 안돼.]


"!?"


본능이 시키는 대로 급하게 왼팔을 움직여 되는대로 창을 투척했다.


다행히도 창은 빗나가지 않았고, 목표했던 대로 놀의 목에 정확히 틀어박혔다.


놀의 목을 관통한 창대가 부르르 떨렸다. 놀은 부릅뜬 눈을 그대로 까뒤집었다.


「우우우......」


목에 박힌 창대를 움켜쥔 채, 스르륵 벽에 기대 무너져내리는 마지막 놀. 놈의 하울도 끊겼고, 통로에는 다시 적막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섣불리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통로에는 분명히 적막감이 감돌고 있었다. 주검이 된 놀 세마리가 바닥을 뒹굴고 있었고, 두다리를 딛고 서 있는 건 분명 나 혼자뿐이었다.


그럼에도 쉽게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두근대는 심장이 이렇게 가르쳐 주고 있었거든. 아직 끝이라고.


「「아우우우우우우우우---!!」」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통로 좌우에서 곧장 하울이 넘쳐흘렀다. 또 그 뒤를 이어 쿵쿵쿵쿵, 땅을 박차는 소리가 통로를 울렸다.


아마도 여기가 오늘의 클라이막스.


"........."


터벅. 터벅.


숨 쉬는 것도 잊은채 걸음을 옮겨 놀의 목에 박혀있던 창을 뽑아들었다.


창대를 역수로 쥐고, 그대로 창을 바닥에 꽂아 넣었다. 다음으로 벨트 포켓에서 꺼낸 포션의 코르크 마개를, 움직이지 않는 오른손을 대신해 이빨로 제거...


꿀꺽 꿀꺽 꿀꺽.


....그대로 거침 없이 들이켰다. 들이킨 포션의 내용물이 식도를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움직이지 않았던 오른쪽 상체에 감각이 되돌아오기 시작한다.


쿵쿵쿵쿵쿵. 이때에도 점점 더, 점점 더 발소리는 계속 가까워지고 있었다.


"후우..."


심호흡을 한 번.


"후우..."


심호흡을 두 번.


제기능이 돌아온 오른팔을 움직여 창대를 뽑아 들었다.


쿵쿵쿵쿵쿵.


「으르르르~!」

「크아앙!!」


좌우로 각각 두놈씩. 통로 양쪽에서 도합 네마리의 놀이 게거품을 입에 문채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나를 목표로 미친 듯이 땅을 박차고 있는 네마리의 몬스터. 충혈된 네쌍의 눈이 금방이라도 나를 찢어발길것 같았다.


피하지 않고 그 시선을 마주하며 잠깐 머리속에 떠올려봤다.


저 놀들을 향해 달려가는 플로아 에머리의 등을. 니나 에델린의 등을. 안드라라는 드워프의 등을.


머리속에 그려진 시뮬레이션 속에서 세명의 모험자가 각각 각자의 무위를 마음껏 뽐냈다. 내게는 아직 먼 그들의 등.


그렇게 한 번씩 그들의 뒷모습을 떠올려 본 뒤, 이번에는 내가 땅을 박찼다.


그들의 등을 쫒아서.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때 나는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혈관으로 새로운 피가 솟구치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입 사이로 하얀 냉기를 내뿜으며 그렇게 나는 땅을 박찼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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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1부. 에필로그 - 시작의 그날 21.06.02 81 1 9쪽
41 40. 차려진 무대(10) 21.06.01 77 1 10쪽
40 39. 차려진 무대(9) 21.05.31 80 1 9쪽
39 38. 차려진 무대(8) 21.05.30 83 1 8쪽
38 37. 차려진 무대(7) 21.05.29 87 2 8쪽
37 36. 차려진 무대(6) 21.05.29 86 2 10쪽
36 35. 차려진 무대(5) 21.05.28 90 2 9쪽
35 34. 차려진 무대(4) 21.05.27 95 2 11쪽
34 33. 차려진 무대(3) 21.05.26 95 2 10쪽
33 32. 차려진 무대(2) 21.05.26 96 3 10쪽
32 31. 차려진 무대. 21.05.25 102 3 11쪽
31 30. 증명(13) 21.05.25 99 3 7쪽
30 29. 증명(12) 21.05.24 103 3 9쪽
29 28. 증명(11) 21.05.24 116 3 11쪽
28 27. 증명(10) 21.05.23 120 2 10쪽
27 26. 증명(9) 21.05.23 138 4 10쪽
26 25. 증명(8) 21.05.22 148 4 13쪽
25 24. 증명(7) 21.05.22 151 4 11쪽
24 23. 증명(6) 21.05.21 161 5 12쪽
23 22. 증명(5) 21.05.21 169 5 12쪽
22 21. 증명(4) 21.05.20 179 5 11쪽
21 20. 증명(3) 21.05.20 177 5 12쪽
20 19. 증명(2) 21.05.19 188 4 9쪽
19 18. 증명. 21.05.19 197 4 10쪽
18 17. 혼자 가지마(5) 21.05.18 201 4 10쪽
17 16. 혼자 가지마(4) 21.05.18 210 5 10쪽
16 15. 혼자 가지마(3) 21.05.17 221 4 10쪽
15 14. 혼자 가지마(2) 21.05.17 230 8 9쪽
14 13. 혼자 가지마. 21.05.16 241 10 9쪽
» 12. 갈망(2) 21.05.16 259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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