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밥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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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
작품등록일 :
2021.05.12 12:03
최근연재일 :
2021.08.04 15:21
연재수 :
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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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7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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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차려진 무대(4)

DUMMY

초록색 바람.


옆으로 구르는 내 눈앞으로 초록색 바람이 폭발했다.


레이피어의 날 끝에서 뿜어진 이 초록색 바람은 일직선으로 좁은 실내를 관통, 문자 그대로 광인들을 저멀리 날려버렸다.


멍하니 벽면 전체가 뜯겨나간 뻥 뚫린 벽을 쳐다봤다. 바람으로 시멘트 벽을 통째로 날려버리다니 직접 보고도 믿지 못할 놀라운 광경이었다.


찢어진 종이들이 팔랑팔랑 바람을 타고 춤췄다.


"그렇게 멍때리고 계실 여유가 없습니다! 어서 일어나십시오!"


"아. 네?!"


바로 따끔한 질책이 날아들었다.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책더미 위에서 비틀 몸을 일으켰다.


이와중에 에머리 씨는 뒤따라온 광인 다섯을 상대로 바삐 레이피어를 휘두르고 있는 중. 그러면서도 에머리 씨는 푸른 눈동자로 급하게 창밖을 가르켰다.


"일단, 저쪽으로 서둘러 뛰어내리십시오. 그리고 곧장 골목을 따라 쭉 달리십시오. 저도 금방 따라가겠습니다."


에머리 씨가 바깥을 가르키며 말했다.


이곳은 시가지. 아직 피난 중인 시민들이 전투에 휘말릴 위험이 너무 크다. 그리고 방금 전과 같은 상황이 또 벌어지면 우리한테도 너무 불리하다. 이것이 에머리 씨의 주장이었다.


에머리 씨의 말에 따라, 바닥을 박차고 '와장창' 팔을 교차시켜 창문을 깨고 밖으로 뛰어내렸다.


쿵하는 착지음이 울렸고. 이어서 바로 옆으로 탁. 하는 가벼운 착지음이 뒤이어 들렸다. 말했던대로 바로 내 뒤를 따라 곧장 2층에서 뛰어내린 에머리 씨였다.


"저를 따라 오십시오. 상가가 밀집된 이런 곳에서 계속 전투를 이어나갔다간 또 갈라질 위험이 있습니다. 공터, 공터부터 찾겠습니다."


회색 케이프 자락을 펄럭이며 에머리 씨는 굽혔던 무릎 펴고 내 옆을 스쳐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이에 맞춰...


투확. 투확.


마침 멀리서 볼트가 날아들었다. 에머리 씨의 바람에 멀리 날려갔던 토비 밀하흐 쪽에서 쏘아보낸 저격이었다. 설마 설마했는데 그 강력한 마법을 맞고도 여전히 건재한 광인들이었다.


창대를 휘둘러 일단 날아드는 볼트를 쳐내고, 나도 급히 에머리 씨의 등을 쫓았다.


"죄송합니다. 적을 붙잡아 두는데 주력하다보니 부끄럽게도 한명밖에 컷트하지 못했습니다."


아까 계단을 뒤따라 올라왔던 다섯명의 광인들을 가르키는 말이었다.


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급히 창문을 뛰어내려 지금 우리의 뒤를 바짝 뒤쫓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토비 밀하흐와 도끼 광인 등이 줄지어 골목을 달리고 있었고 말이다.


"놈들의 움직임이 상당히 이상했습니다. 저는 보이지도 않는지, 계속 저를 통과해 에스더 씨를 노리려 들었습니다."


그 움직임을 막느라 급급해 제대로 된 공격을 펼치지 못했다, 에머리 씨는 이렇게 말했다.


스핏 스핏.


바람을 가르고 계속 볼트가 날아왔다.


스테이터스에 의존해 반사적으로 이를 회피하며 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이따금씩 등 뒤를 노리는 검격은 에머리 씨와 협동해 레이피어와 창대로 반격하며 거리를 벌리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카아앙-!!


에머리 씨의 레이피어가 불똥을 튀기며 등 뒤를 노리던 광인을 멀찍이 밀어냈다. 광인은 두어 바퀴 바닥을 구르고 다시 벌떡 일어나 우리를 뒤쫓았다.


그 모습에 에머리 씨는 예쁜 입술을 움직여 짧게 혀를 찼다. 그리고.


"에스더 씨, 에스더 씨도 느끼셨겠지만 놈들은 이미 노멀 등급의 전투력이 아닙니다. 이점에 각별히 유의하십시오."


..라고 내게 충고했다.


나도 혹시나 하면서 계속 느끼고 있던 의문점이었다. 에머리 씨가 이 의문점에 확신을 내려줬다.


"역시 그런거죠..?"


"네,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나, 어쨌거나 레벨 10에서 랭크업 용혈을 들이킨 자들입니다. 부작용으로 이성은 날아간듯 보이나, 스테이터스 자체는 저희보다 한수 위에 있겠지요."


역시 그랬던 거구나.. 이제서야 의문이 해소됐다.


어떻게 보면, 단순히 노멀 등급과 브론즈 등급. 이 한 계단 차이이기는 하나, 이 한 계단 차이에는 엄청난 격차가 있었다. 자고로 모험자의 랭크업이란 그런것이었다.


내가 토비 밀하흐에게 맥없이 밀렸던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날아드는 볼트를 피하고 또 따라붙는 광인들을 필사적으로 쳐내며, 우리는 좁은 골목을 돌고 돌아 시민들을 피해 계속 광인들에게 쫓겼다.


광인들은 우리의 예상대로 시민들은 아예 안중에도 없었고, 오로지 우리의 등만을 쫓았다. 여기서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아니라 콕 찝어 내 등이겠지만 말이다.


스핏-!


"윽..!"


그때, 골목을 돌기 전 볼트 한발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불에 데인 듯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고. 이에 앞서 가던 에머리 씨가 얼른 이쪽을 돌아봤다.


"괜찮으십니까!?"


"네..!"


이를 악 물고 고통을 참고 대답했다. 나를 바라보는 에머리 씨의 표정이 사뭇 심란해보였다.


그야 그렇겠지. 얼굴은 유리조각 투성이. 그리고 레더 아머는 불에 그슬려 시커멓고 처참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무리한 방어전을 연속했기에 창대에도 미세한 금이 잔뜩 가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내쪽에 머물러 있던 푸른 눈동자는 이윽고 '힐끔' 내 뒤를 흘겨봤다.


고운 눈썹이 '삐끗' 불편한 심기를 들어냈다.


"그런데 혹시나 해서 묻는 것입니다만, 에스더 씨는 「밀하흐 클랜」과 모종의 인연이 있으신지요?"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가 괜한 소리를 했군요..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내가 되묻자 마자 바로 질문을 철회하며 곧장 정면을 바라보는 에머리 씨다. 하지만 에머리 씨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이미 전달됐다.


「밀하흐 클랜」이 왜 저렇게까지 나한테 집착하는지 뭔가 집히는 게 있느냐는 뜻이겠지.


계속 달리고 있는 가녀린 등에 대고 대답했다.


"솔직히 말해서, 오늘 처음 본 사람들이에요! 인연은 커녕 저는 안면 조차 없었다구요!"


"역시 그렇습니까..."


"네..!"


"그렇다면, 저기에.. 저 건물 위에 있는 저들은 어떻습니까. 저들도 초면인 자들입니까?"


"예에..?"


다시 내쪽을 돌아본 에머리 씨는 이번에는 눈동자로 광인들의 위쪽을 가르켰다.


나도 에머리 씨를 따라 휙 뒤를 돌아봤다.


"!?"


보였다.


광인들의 머리 위 옥상. 가면을 쓰고 있는 정체불명의 이인조가.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뒤에는 햇살에 반짝이는 푸른 머리도 얼핏 얼핏 시야에 잡혔다.


아니, 저 사람들은 언제부터 저기에 서 있었던 거지? 그리고 왜 우리를 보고 있는 거지? 순간 소름이 쫘악 돋았다.


"처음부터였습니다. 줄곧 불 구경하듯 저희를 관찰하고 있더군요."


"저,정말인가요!?"


"예. 특별한 행동은 따로 없었지만, 이 일에 연관이 있는 건 분명하겠죠."


흑막. 에머리 씨는 저들이 흑막일지도 모른다고 바로 단정지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저들에게 참결할 수단은 전무했다.


쫓기고 있는 처지에 저멀리 있는 이들에게 우리가 무슨 수단을 강구한단 말인가.


우리는 그저 관찰당하고 있다는 찝찝한 기분을 안고, 달리고 또 달릴 수 밖에 없었다.


이윽고 우리의 눈 앞에 드디어 널찍한 폐공장 부지가 보였다. 주변에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에머리 씨는 주저 없이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저쪽. 저쪽에서 「밀하흐 클랜」을 상대하겠습니다."


"네.. 그런데, 어째.. 그게 조금 죄송하네요.."


"뭐가 말입니까."


결전을 눈앞에 두고 나도 모르게 갑자기 사과 비슷한 말이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에머리 씨는 이에 당연히 반문했고,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뒤쪽을 흘겨봤다.


설명은 이것만으로 충분했다. 눈치 빠른 에머리 씨는 '후' 하고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에스더 씨는 쓸 데 없는 일에 너무 마음을 쓰시는 군요. 이건 결코 에스더 씨의 잘못이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품고 있는 미안함.. 그건 나 때문에 괜히 에머리 씨가 이 일에 휘말린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었다. 그도 그럴게 이유는 전혀 모르지만, 어쨌거나 저들은 나를 노리고 있는 게 거의 확실했으니 말이다.


뒤따라 달리면서 우중충한 표정을 짓는 내게 에머리 씨는 쓴소리로 질책했다.


"어쨌든 지금은 그런 나약한 생각은 접어두십시오. 지금은 어떻게 저들을 물리칠지 그것만 생각하십시오. 아시겠습니까?"


"네.."


"좋습니다. 이쯤이 적당할 것 같군요. 이제 준비하십시오."


폐공장 부지, 텅 비어 있는 정중앙쯤에서 우리는 정지했다.


돌아보자 마자 눈앞으로 볼트 세발이 날아들었고. 에머리 씨의 레이피어와 내 창대가 빛을 번쩍였다.


세발의 볼트가 간단히 튕겨져 나갔다.


남은 광인은 토비 밀하흐를 포함 이제 아홉명. 아홉명의 광인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빠르게 질주해 왔다.


"다수를 상대할 때는 보통 게릴라전이 기본 상식이지요. 하지만 지금은 상식이 통하는 경우가 아니지요."


흩어지면 우리가... 아니, 나만 불리해질 뿐이다.


에머리 씨는 이렇게 판단한 모양이다. 저들은 나만을 노리고 또 집요하게 에머리 씨를 떨쳐내려 할게 뻔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되면 또 아까와 같은 상황이 연속해 반복될 뿐이었다. 그럴바엔 오히려 정면에서 격파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몰랐다. 이렇게 하면 적어도 에머리 씨의 적극적인 참전이 가능했으니깐 말이다.


"에스더 씨, 지금 즉시 마법을 발동시키십시오. 딴 것은 생각치 말고, 일단은 토비 밀하흐만을 노리는 겁니다."


에스더 씨의 마법은 관통 특화. 지금이라면 토비 밀하흐한테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겁니다.. 라는 에머리 씨의 충고를 받아들여 호흡을 가다듬고 일단 창대를 살짝 뒤로 당겼다.


그리고 달려오고 있는 토비 밀하흐를 응시했다.


"하아아..."


"!?"


이때, 입술 사이로 하얀 한기가 흘러나왔다. 창대와 창날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드라이아이스를 발라놓은 것처럼 이렇게 하얀 한기가 피어올라 조금씩 주변을 잠식해 갔다. 몇일 전 놀들을 상대로 결사전을 벌일 때와 같은 감각. 같은 현상.


옆에 서 있던 에머리 씨는 이런 내 변화에 순간적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에머리 씨가 보기에도 지금의 내 모습은 흔치 않은 현상인 모양이었다.


나도 이것 때문에 몇일간 고민이 많았었지..


하지만 지금은 집중하고 오직 정면만을 응시했다.


그리고 한기가 피어오르는 입을 움직여 비장히 시동어를 읊었다.


"「내 뒤에 웅크린 똬리를 튼 용. 꿰찌르는 날카로운 이빨. 줄지어 선 그 송곳니를 하나 빌려 지금 내 적을 꿰뚫으리라..」"


당겼던 창대를.. 하얀 냉기를 뿜어내고 있는 창날을 온 힘을 다해 앞으로 내질렀다.


"글레이셜 랜스--!!"


작가의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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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1부. 에필로그 - 시작의 그날 21.06.02 81 1 9쪽
41 40. 차려진 무대(10) 21.06.01 77 1 10쪽
40 39. 차려진 무대(9) 21.05.31 80 1 9쪽
39 38. 차려진 무대(8) 21.05.30 83 1 8쪽
38 37. 차려진 무대(7) 21.05.29 87 2 8쪽
37 36. 차려진 무대(6) 21.05.29 86 2 10쪽
36 35. 차려진 무대(5) 21.05.28 90 2 9쪽
» 34. 차려진 무대(4) 21.05.27 95 2 11쪽
34 33. 차려진 무대(3) 21.05.26 95 2 10쪽
33 32. 차려진 무대(2) 21.05.26 96 3 10쪽
32 31. 차려진 무대. 21.05.25 102 3 11쪽
31 30. 증명(13) 21.05.25 99 3 7쪽
30 29. 증명(12) 21.05.24 103 3 9쪽
29 28. 증명(11) 21.05.24 115 3 11쪽
28 27. 증명(10) 21.05.23 120 2 10쪽
27 26. 증명(9) 21.05.23 138 4 10쪽
26 25. 증명(8) 21.05.22 148 4 13쪽
25 24. 증명(7) 21.05.22 151 4 11쪽
24 23. 증명(6) 21.05.21 161 5 12쪽
23 22. 증명(5) 21.05.21 169 5 12쪽
22 21. 증명(4) 21.05.20 179 5 11쪽
21 20. 증명(3) 21.05.20 177 5 12쪽
20 19. 증명(2) 21.05.19 188 4 9쪽
19 18. 증명. 21.05.19 197 4 10쪽
18 17. 혼자 가지마(5) 21.05.18 201 4 10쪽
17 16. 혼자 가지마(4) 21.05.18 210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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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3. 혼자 가지마. 21.05.16 241 10 9쪽
13 12. 갈망(2) 21.05.16 258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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