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박스 크랙이 쏘아올린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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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바리
그림/삽화
샘바리
작품등록일 :
2021.05.19 23:46
최근연재일 :
2021.06.20 23:41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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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18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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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가브리엘 포페스쿠 (1)

DUMMY

이제 U20 월드컵 우승을 위해서는 단 2승이 남았다.


한국, 포르투갈, 일본, 파라과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 개최국의 이점을 살린 일본. 남미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파라과이, 남아있는 4팀 중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인 포르투갈.


4개국의 유망주, 아직 스타가 되지 않은 원석을 캐기 위해 온갖 명문 구단의 스카우터들이 모두 경기장을 찾았다. 당연히 K리그 팀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감독, 코치, 스카우터가 쪼르르 앉아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현제대 출신이잖아, 강 코치. 전화 좀 넣어보라고. 어떻게든! 무조건 데려와야 해. 지금 한국에서 난리인 거 알지? 멀티플레이어 권정훈, 스트라이커 이호종. 세트로 데려오면 대박이다.”

“감독님 예전에 이호종 연령별 대표팀 때 지도하시지 않았어요? 그때 추억을 좀 어필해서 한번···”


K리그1 12개팀, K리그2 10개팀. 심지어 군인 팀인 홍천 상무도 이들을 노렸다.


“아니, 군복무 빨리 해결하면 해외 진출 일사천리라고 말해줘. 응? 군대는 무조건 빨리 오는 놈이 승자라니깐.”


아직 대학생 신분이라 모두의 영입 리스트 1순위는 이호종과 권정훈이었다. 아시아 무대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 증명한 이호종, 혜성처럼 등장해 전국구 스타가 된 권정훈. 특히 에이전트 사이에서 핫한 매물은 권정훈이었다.


“아니, 왜 지금까지 저런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거야?”

“리스트에 있어? 없어? 아니 맨날 대회 보러 다니면서 저런 애를 왜 못찾았냐고!”

“아직 소속 에이전트 없는 거 확실하지?”


하지만 문제는 국내팀들뿐 아니라 세계 명문 구단도 이미 영입 경쟁에 뛰어들었다는 것이었다. 특히 득점력만큼은 확실하다고 인정받은 이호종에 대한 러브콜이 쏟아졌다. J리그2 입단 확정 기사가 무색할 정도로 빅클럽들의 러브콜이 쏟아졌다.


독일,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흔히 말하는 4대 리그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팀들은 정식 제의를 남겼다. 몇몇 기자들은 이호종의 행선지를 추측하는 기사를 써내려갔지만, 에이전트의 공식 답변은 늘 똑같았다.


“다양한 해외 진출을 논의 중에 있으며, 확정된 바 없습니다.”


***


경기 전날 늘 그렇듯 훈련을 마치고 음료수를 나눠마셨다. 호종이와 나란히 앉아 그냥 옛날 생각이 문득 떠올라 질문을 던졌다.


“호종아. 넌 어디서 뛰고 싶어?”

“나? 당연히 독일. 차붐의 나라 분데스리가지. 손흥민도 그랬고, 전설의 시작은 독일 아니겠냐? 아시아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을 거야.”

“잘 어울린다 분데스리가. 호종이 너 정도 파워면 충분히 통할거야. 그나저나 이렇게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는 모습 보기 좋다.”

“임마. 민망하게 뭘 그러냐. 후회된다. 그냥 지난 시간들이.”


호종이는 늘 시대표, 도대표, 국가대표를 넘어 중고교 랭킹 1위를 한번도 놓친 적이 없는 천재 그 자체였다. 하지만 늘 수식어처럼 따라 붙은 단어는 하나였다. ‘게으른’ 천재.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항상 쉽게 쉽게 득점을 했고, 어렵지 않게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점점 흥미를 잃어간 건 지독한 부상 때문이었다.


“씨팔! 그냥 담궈!”

“재수없는 놈, 이것도 피해봐라!”


거친 태클과 악의적인 반칙은 점점 강도가 심해졌다. 할리우드 액션따윈 모르는 다혈질 호종이는 태클과 몸싸움에 정면 대결을 펼치며 더 강하게 눌러버렸다. 그러나 호종이도 인간인지라 대놓고 부상을 입히려고 들어오는 공격을 피할 길이 없었다. 1~2주짜리 부상은 테이핑을 칭칭 감고 그냥 뛰었다.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호종이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재활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누적된 피로와 잔부상은 더 큰 부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부상. 재활. 혹사. 부상. 재활. 혹사. 끝나지 않는 악순환에 호종이가 축구에서 마음이 떠난 건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 호종이가 축구를 나처럼 재밌어 하고, 목표가 생겨 땀을 흘리고 있었다.


“다 네 덕분이다 정훈아.”

“내가? 뭘 했다고 내 덕분이냐. 치.”

“너 아니었으면 축구 애초에 포기했을 거다. 너랑 같이 초등학교때 축구 처음 시작했을 때 기억하냐? 난 그날 뺑뺑이 돌던 날 아직도 생생하다.”

“야, 우리가 얼마나 무식하게 많이 돌았는데.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에휴.”


빠따로 맞는 것보다 무서웠던 건 기약없는 뺑뺑이 지옥이었다. 정확히 몇 바퀴를 뛰란 이야기도 없이 그냥 달리고, 달리고, 처지면 맞고 달리고. 반복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그만 어린아이들을 왜그렇게 괴롭혔나 이유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선생이 그냥 그날 기분이 나빠서? 우리가 훈련에서 자꾸 집중을 못해서? 하지만 한 가지 명확한 건 그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그런 무식한 체벌은 답이 아니란 것이었다.


“그 날 나 쓰러졌을 때, 정훈이 니가 부축해서 갔잖아. 그때 1분 안에 못들어오는 사람은 빠따 때린다고 난리였는데.”

“아! 기억난다. 그냥 나는 죽어라 뛰는데, 네가 힘들어 보여서 그랬지.”

“하긴 그래서 우리 둘다 못 들어가고 맞았잖냐. 미친 놈이지 그때 그 감독도. 난 그때 니 눈빛을 아직도 못 잊어. 그래서 나도 더 열심히 하는 거라고 지금까지.”


잔디도 아닌 흙바닥에 구른 까까머리 꼬마 호종이가 기억 났다. 우린 동료니깐, 가까운 친구니깐. 나는 당연히 넘어진 친구를 일으켜세우고 함께 하키채를 들고 잔뜩 화가난 감독을 향해 절뚝거리며 뛰었다. 악바리 정신, 내가 어릴 때부터 남들보다 유독 강했던 그 끈기가 호종이 축구 인생의 버팀목이 되었는지는 미처 몰랐었다.


“넌 어디서 뛰고 싶냐 정훈아?”

“나? 나야 어디든 불러주면 가는거지. 하핫. 나야 대학도 그렇고 막차 전문이잖냐.”

“같이 독일 가자. 프로 가서도 호흡 맞춰야지!”

“야! 독일은 무슨. 아무나 가냐 분데스리가를? 일단 어디든 가고 싶다. 그냥 계속 축구하고 싶어.”

“내가 장담하는데, 너 이번 월드컵 끝나고 무조건 유럽 갈 수 있어. 너는 특별하다고 확실히.”


말은 씨가 되었고, 그 씨가 결실을 맺었다는 걸 본인은 몰랐다. 그럴싸한 에이전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체계적인 케어는 받아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

[주니오르! 경기 사작과 동시에 강하게 상대를 몰아 붙입니다. 확실히 피지컬이 좋아서 그런지 거침이 없네요!]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이 나란히 퇴장으로 출장 정지죠. 척추 라인이 그대로 날아간 한국이 어떻게 버틸지도 관심 요소입니다.]

[권정훈이 이번 대회 처음으로 선발 출전했는데요.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 서있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거친 태클이 깔끔하게 들어갑니다!!!]


주니오르, 더 올라가서 호날두의 하이라이트까지 줄줄 꿰고 있는 나에게 그의 드리블이 보이기 시작했다. 현란한 발재간에 속지 않고, 그저 우직하게 공의 진행 방향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역시나 오른쪽 대각선. 폭발적인 스피드를 활용한 뻔한 드리블을 거친 태클로 막아섰다.


‘할만한데? 하도 영상을 봤더니, 이미 상대해본 느낌이야. 이게 바로 포페스쿠 감독의 능력인가?’


부딪히고, 또 부딪혔다. 거친 몸싸움에 상대가 신경질을 냈지만, 나는 절대 물러서지 않고 가슴팍을 강하게 밀어제꼈다. 내가 무너지면 중원이 무너지고, 수비라인도 균열이 일어날 거란 생각에 더욱 거세게 물러서지 않았다.


[멀티 플레이어로 유명한 권정훈, 오늘은 위치나 플레이를 보니 볼란치네요. 끈질기게 주니오르를 따라다니면서 드리블을 아예 못치게 꽁꽁 묶고 있어요.]

[저 정도 밀착 마크면 오늘 주니오르 꿈에도 나오겠는데요?]


볼란치. 미드필더 최후방에서 전통적인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하고, 적극적인 볼 커팅, 영리한 존 디펜스, 에이스를 맨투맨 마크를 하는 자리에 섰다. 가브리엘 포페스쿠 감독의 현역 시절 강인한 체력과 포기하지 않는 강인함이 랜덤박스로 찾아온 만큼 더 거칠게 플레이했다.


“패스가 느리잖아! 앞을 보고 주라고 앞을!”

“젠장할. 그게 지금 드리블이냐고. 그냥 나한테 몰아줘! 알아서 할테니깐!”


모기처럼 따라다니는 나의 맨마킹에 주니오르는 슬슬 짜증을 내며 동료를 다그쳤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짜증에 반항할 수 없었다. 팀의 왕 주니오르의 기분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간간히 강준의 스루 패스, 이호종의 다이렉트 슈팅으로 골문을 노렸지만 골은 터지지 않았다. 지루한 0대 0 경기가 계속되었지만 나의 집중력은 늘 그렇듯 최상이었다.


***

“저기 22번. 확실히 영입할 거라고 보드진에 전화 해둬.”

“경력이 아직 파악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U20 월드컵 대회 이전에는 아예 국가대표 경험도 전무하고요.”

“내 말에 토 다는 거야 토니? 쟤는 임대생이 아니라 그냥 즉시전력감이라고. 안 보여?”

“준수하네요. 그런데 엄청 특별해 보이지 않는데요? 너무 투박해요.”


FC바르셀로나 감독은 확실히 권정훈을 콕 찝어서 이야기했다. 데려오겠다고. 유니폼 판매를 위한 마케팅도 아니고, 그저 유망주를 키워볼까 하는 투자 개념이 아니었다. 실제 경기를 뛰게 하며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위한 한 조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지금 봐봐. 공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강인함, 일단 동료에게 자기한테 공을 달라고 말하는 대담성. 집중력이야 아까부터 말할 것도 없고.”

“확실히 경기 읽는 능력은 체크 포인트입니다.”

“저기 몸으로만 부딪히는 주니오르 봐봐. 저런 스타일이야 비슷한 나이 또래에선 깡패겠지. 다 피지컬로 찍어 내리고, 패버리고 다니고. 그런데 프로무대 오면 저건 그리 엄청난 메리트가 아니라고.”


확실히 그라운드에서 부딪혀본 주니오르의 몸은 돌덩이 그 자체였다. 절대 밀리지 않았고, 유니폼을 잡아 끌어도 속도가 줄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졸졸 쫓아다니면서 신경을 긁고, 공을 최대한 못 만지도록 괴롭혔다.


“그런데 저기 22번 정훈 건? 저 선수 경기 분석 능력은 지금 우리팀에서도 최상위 레벨일걸? 저런 센스는 키울 수 있는 게 아니야. 타고 나는 거지.”


FC바르셀로나는 강준이 맹활약하는 레알마드리드에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었고, 그에 부합하는 사람이 랜덤박스에 빙의된 권정훈이었다.


“무조건 데려와. 무조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이 부족하면 말하고.”

“네. 바로 컨택하겠습니다. 결승···전에 못 가도 상관없으시죠?”

“갈거야 아마. 뭐 안가도 상관없어. 나는 충분히 어떤 선수인지 믿음이 갔으니깐.”

“알겠습니다. 연락 드리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바쁘게 울려퍼지는 전화벨 소리와 통화 목소리가 권정훈이 빚어낸 결과물이란 걸 스스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니, 눈치챌 수가 없었다.


***


“끝까지 따라가! 왼발 킥이니깐 위치 잡고! 센터백 라인 올려!!!!”


경기장 전체를 뛰어다니며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모두가 지친 4강전에서 결국 집중력 한끗 차이가 결승전 진출을 결정짓기 때문이었다. 내가 가진 모든 걸 100%, 120% 쏟아붓고 온다는 생각이었다.


‘빠르긴 하지만 못 따라갈 정도는 아니다. 차라리 패스가 없이 개인기로만 뚫으려고 하니깐, 나야 땡큐지. 주니오르 와라!’


“움직이라고! 움직여! 패스 줄 곳이 없잖아.”

“어차피 혼자 할 거면서 무슨···”

“미친! 뭐라고 했어 지금!”


경기가 안 풀리고 답답한 쪽은 포르투갈이었다. 누가봐도 포르투갈이 한국보다 객관적 전력에서도 앞서고, 주축 멤버가 빠져 1.5군인 한국을 상대로 골이 터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조급해진 주니오르는 무리해서 먼 거리에서 슈팅을 하거나, 패스를 주지 않는 동료의 얼굴 앞에서 욕을 날렸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저 주니오르를 괴롭히고, 귀찮게 하면서 경기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게 제1 미션이었다. 그리고 어느정도 성공을 거둔 것 같던 찰나에 역시 강준의 패스가 불을 뿜었다.


경합 과정에서 한 발 앞서 발을 뻗어 공을 따낸 강준은 귀신 같은 움직임을 보여줬다. 팬텀 드리블로 코앞의 수비수를 벗겨냈고, 뒤에서 따라오는 수비수의 몸싸움은 요리조리 잘 피하면서 돌진했다. 그리고 절묘한 로빙 스루 패스로 이호종이 마음껏 달릴 기회를 전해줬다.


“더 길게 줘! 어차피 얘네 수비도 다들 지쳐있다고. 경합 붙여줘!”


속절없이 시간을 흘러갔고, 한국은 정말 잘 버티고 있었다. 전반전이 치열한 탐색전 끝에 끝나고, 후반전 역시 비슷한 양상이었다. 주니오르의 화려한 개인기, 끈적끈적한 몸싸움으로 빼앗는 권정훈의 맨마킹. 사람은 지치면 없던 짜증도 2배가 되는 법인데, 주니오르의 예민함은 하늘을 찔렀다.


***

“나는 이번 경기에 지더라도 권정훈 데려간다.”

“아직 워크퍼밋이나 여러가지 절차상 바로는 힘들···”

“해.”

“네?”

“데려오라고 무조건. 내 눈앞에서 유니폼 입고 웃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란 말이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도 마찬가지였다. 위태로운 한국의 수비진을 온몸으로 버텨내고 있는 주인공 권정훈의 주가는 경기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욱 높이 올라갔다.


그리고 지루한 승부의 끝은 역시 짜릿한 결승골로 갈릴 시간이 다가왔다. 엄희성의 환상적인 돌파, 강준의 과감한 중거리 슈팅, 이호종의 센스있는 드리블도 결실을 맺지 못하고 계속 두드릴 뿐이었다.


결국 1골차 승부다.

모두가 지쳤다.

다같이 힘들다.


하지만 나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전력으로 그라운드를 더 누빌 수 있다고 내 몸이 반응하고 있었다.


‘포페스쿠 감독님이 체력도 원래 타고난 사람이었나? 전혀 힘들지가 않은데?’


그라운드에서 가장 활발하고 컨디션이 제일 많이 남아있는 사람은 내가 보기에 딱 2명이었다. 자기관리의 끝판와 주니오르와 분석만으로는 월드클래스인 나. 그들의 선택 하나하나가 경기의 승패를 결정짓는 요소였다.


“어디 한번 뺏어보라고. 느려터져가지고, 운좋게 막은 걸로 으스대지마!”

“운좋게? 운도 실력인 거 모르냐 멍청아.”


고유한 스킬 중 하나인 플립플랫을 시도하는 주니오르는 불규칙한 잔디에 미끄러지며 휘청거렸다. 여전히 공은 주니오르의 시야 안에 있었지만, 나의 태클 범위에도 들어왔다는 게 달랐다. 곧장 두려워하지 않고 몸을 날렸고, 정확히 공만 건드린 나이스 태클은 관중들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커팅과 동시에 역습.

모두 다같이.


약속된 역습의 시간이 찾아왔다. 강준에게 패스를 안전하게 넘기고 나도 뛰기 시작했다. 전세계 스카우트들 앞에서 랜덤박스 레전드의 스킬들을 보여줄 생각에 가슴도 뛰고 있었다. 그저 힘들어서가 아니라 떨리는 설렘때문이었다.


강준은 어김없이 측면의 엄희성을 향해 정확한 롱패스를 날렸다. 그리고 엄희성 역시 당황하지 않고 직진하며 크로스를 올렸다. 그리고 이호종의 깔끔한 헤더!


‘걸렸다! 골인가?’


깡!!!


정확하게 이호종의 머리로 때린 슈팅은 골대를 맞고 튕겨 나왔다. 그리고 우스꽝스럽지만 가장 먼저 리바운드 볼에 닿은 건 나의 입술이었다. 패스 이후 나는 전력 질주로 골대를 향해 달렸다. 비록 초인의 단계에 있는 레전드 스트라이커들의 골 결정력을 빙의하지 못했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밀어넣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었다.


[아! 골키퍼 넘어져있고, 빈 골대에요! 뛰어!! 아!!! 아!! 달려!!!]

[누굽니까! 아! 권정훈이 빠릅니다. 뛰어요. 달랍니다. 아아아아! 넘어지면서! 골!!!!!!!!!!!!!]


씩씩거리며 빠르게 공격 가담하는 나를 쫓아온 주니오르의 반칙도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도움을 줬다. 내 뒤에서 주니오르가 가슴팍으로 미는 바람에 나는 중심을 잃고, 쓰러졌고 그 와중에도 골을 넣겠다는 집념 하나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정확히 입술에 맞은 공은 빈 골대를 향해 아름답게 굴러갔다.


한국 1대 0 포르투갈

이제 정말 결승전이 코앞에 다가온 느낌이었다.


넘어졌다. 부딪혔다. 미끄러졌다. 몸을 던졌다. 달려갔다. 밀어냈다. 걷어냈다.

경기가 종료 시점으로 다가갈수록 나의 움직임은 점점 단순해졌다.


‘버텼다.’


지친 몸을 이끌고 포페스쿠 감독의 말처럼 끝까지 몸을 밀어넣었다. 흔히 위험하다고 말하는 태클이나 몸싸움도 두렵지 않았다. 레전드 포페스쿠 감독의 꿀팁을 기억하는 내 몸은 다칠 일도 없고, 밀리지 않을테니깐.


삑. 삑. 삐이이이익!


[경기 종료! U20 월드컵 신드롬의 주인공 한국! 결승에 진출합니다. 이번 결승골의 주인공은 역시 원투펀치 이호종, 권정훈이죠. 환상의 짝꿍입니다.]

[이호종의 헤더도 좋았고, 그걸 어떻게든 밀어넣는 권정훈의 쇄도 역시 훌륭했습니다.]

[주니오르는 뭘 했죠? 약속한대로 서울에 한번 와야할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밤입니다. 이제 1승만 더하면 대망의 월드컵을 한국이 들어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

“뭐하는 거야 아직도 영입 오피셜이 왜 안나냐고!”

“아니, 그게 갑자기 제안들이 쏟아져서···”

“오노. 내가 당신에게 주는 돈이 얼만지 곰곰이 생각해보라고.”

“네 죄송합니다 회장님.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거만한 웃음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오노도 거구의 사내 앞에서는 꼼짝 못하고 연거푸 고개를 숙였다. J리그2 파르노아 오카야마 구단주 앞에서는 그저 말 잘듣는 졸개 1에 불과한 오노를 앞에 두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조건 데려와. 내가 왜 그럴까?”

“승격···이겠죠 아무래도. 네 분명히 할 수 있습니다. 올 시즌에는 이호···”

“아니. 상관없어. 전혀. 나는 그저 한국 에이스란 놈들이 J리그2에서 골골되면서 썩어가는 걸 보고 싶다고. 알겠어? 명심해.”

“아···네 알겠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리고, 저기 22번. 정훈? 쟤도 같이 세트로.”


비열하게 웃으며 구단주 야마모토는 단숨에 위스키 한잔을 들이켰다. 애초에 선수 육성? 리그 우승?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그저 라이벌 한국의 유망주들의 싹을 도려내어,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게 유일한 취미였다. 상대를 철저히 뭉개뜨리고, 파괴하는 작전. 은은히 따돌리며 인격을 말살하는 언행. 그의 레전드급 선수 죽이기 레이더에 권정훈, 이호종이 나란히 올랐다.


***


한국 1 : 0 포르투갈

득점 : 80’ 권정훈


일본 0 : 0 파라과이

(PK 4 : 1 )


결승전 한국 VS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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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Epilogue (1부) +4 21.06.20 184 3 15쪽
30 포기하지 않는 노력도 재능이다. 21.06.20 160 4 16쪽
29 한국 대표팀 주장이 J리그2로 이적한다고? 21.06.19 185 5 16쪽
» 가브리엘 포페스쿠 (1) 21.06.18 156 4 19쪽
27 동상이몽 21.06.17 184 4 12쪽
26 카카 (4) 21.06.16 208 5 14쪽
25 카카 (3) 21.06.15 224 4 14쪽
24 카카 (2) 21.06.14 233 8 16쪽
23 카카 (1) 21.06.13 250 5 17쪽
22 왜 너만 특별하다고 생각하니? +4 21.06.12 301 13 14쪽
21 웨인 루니 (2) 21.06.11 299 12 14쪽
20 웨인 루니 (1) 21.06.10 303 10 15쪽
19 필리포 인자기 (2) +2 21.06.09 316 9 14쪽
18 필리포 인자기 (1) +2 21.06.08 345 12 15쪽
17 경우의 수 +2 21.06.06 343 13 14쪽
16 안드레아 피를로 (4) +2 21.06.06 357 12 15쪽
15 안드레아 피를로 (3) +2 21.06.05 358 13 16쪽
14 안드레아 피를로 (2) +2 21.06.03 387 12 14쪽
13 안드레아 피를로 (1) +2 21.06.02 390 17 11쪽
12 아르헨 로벤 (4) 21.06.01 390 15 13쪽
11 아르헨 로벤 (3) 21.05.30 384 13 14쪽
10 아르헨 로벤 (2) 21.05.29 367 12 13쪽
9 아르헨 로벤 (1) 21.05.27 417 14 10쪽
8 파주NFC, 그리고 U20 월드컵 +2 21.05.26 442 16 10쪽
7 파비오 칸나바로 (4) 21.05.25 440 13 12쪽
6 파비오 칸나바로 (3) +2 21.05.24 469 15 10쪽
5 파비오 칸나바로 (2) 21.05.23 504 1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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