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박스 크랙이 쏘아올린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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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바리
그림/삽화
샘바리
작품등록일 :
2021.05.19 23:46
최근연재일 :
2021.06.20 23:41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11,992
추천수 :
380
글자수 :
185,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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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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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9
추천
15
글자
10쪽

파비오 칸나바로 (3)

DUMMY

이호종이 투입되며 경기장은 한층 더 뜨거워졌다. 1골이 터진 것 이상으로 그라운드, 벤치, 관중석 모두가 숨죽여 25분밖에 남지 않은 경기에 몰입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 사람에게.


휘슬 소리와 함께 공은 센터백인 나에게 전달됐다. 하지만 전반전처럼 내려앉아 공을 돌리기 위한 패스가 아니었다. 호종이를 중심으로 공격진이 빠르게 의정부FC 진영으로 올라갔고, 나는 자신 있게 최전방을 향해 롱패스를 시도했다.


[아! U20 월드컵에서 가장 기대되는 스트라이커 이호종 선수가 그라운드에 들어왔습니다. 첫 번째 터치는 바로 가슴이네요.]


호종이는 정확히 낙하지점을 미리 알아채고 자리잡아 몸으로 버티며 점프를 뛰지도 않았다. 단단한 피지컬은 K3리그에서도 최상급이었고, 가슴으로 정확하게 공을 잡아냈다.


“뭐해! 밀어내. 못 돌아서게!”

“헬프 갈게! 잡고만 있어!”


순식간에 의정부FC 볼란치가 대치하고 있는 이호종을 향해 왼쪽 대각선에서 달려들었다. 공격형 미드필더나 측면 윙어는 이미 다른 선수들이 공간을 틀어막은 상태였다. 무리해서 태클을 하기 보다는 더욱 고립시키기 위한 지능적인 수비였고, 완벽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두 명이면 더 쉽지. 왠지 알아? 100% 서로를 못 믿는 게 사람이거든.”


바짝 붙은 수비수를 밀어내며 이호종은 뒤로 물러서며 공간을 확보했다. 오히려 뒤에서 다급하게 달려들던 볼란치에 가깝게 다가가더니 전방을 향해 몸을 틀었다. 그리고 오른발로 바깥 쪽으로 공을 모는 척 페인트 모션을 주고 곧바로 발 안쪽 방향으로 공을 끌어와 빈 공간으로 빠르게 치고 나갔다.


‘내껀가? 태클을 하기엔 약간 먼데.’

‘내쪽이 아니라 저쪽인가?


단 한 뼘의 공간이었지만 공과 이호종이 지나기엔 충분한 공간이었다. 조직적인 플레이를 70분 내내 펼친 의정부FC 수비수들이 약간 삐걱거리는 틈을 놓치지 않고 치고 나갔다. 용수철처럼 튀어나가는 탄력, 발 끝으로 공을 세밀하게 끌어오는 컨트롤, 상대 수비수의 타이밍을 뺏는 영리함. 3박자가 정확히 맞아떨어진 완벽한 플립플랩(Flip Flap)이었다.


[아! 지금까지 슈팅 하나 없었던 현제대에게 처음으로 기회가 왔습니다. 엄청난 몸놀림인데요? 2명을 아주 허수아비로 만드는 대단한 개인기입니다. 마지막 한 명만 제치면 1대1 찬스입니다!]


순식간에 2명을 제친 이호종 앞에는 최후방 수비수 1명과 골키퍼 단 2명이었다. 하지만 베테랑 센터백은 달려들지 않고 침착하게 이호중의 발끝, 구르는 공만 바라보며 시간을 끌었다. 동점골이 간절한 연제대 선수들은 힘을 쥐어짜내 공격에 가담했다. 그리고 가속도가 붙은 이호종은 이미 페널티 에어리어 코앞까지 다가왔다.


오른발 헛다리 페이크 한번. 툭 툭. 슛!


아무도 예상 못한 타이밍에 반 박자, 아니 두세박자는 빠른 토킥 슈팅이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수비수 가랑이 사이로 슈팅 코스를 택한 점이었다. 수비수에 가려진 골키퍼는 슈팅 모션을 보지도 못해 코스나 구질은커녕 갑자기 튀어나온 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됐다. 이건 들어갔다.’


의정부FC 골키퍼는 판단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몸을 던지며 최대한 손을 뻗었다. 바짝 힘이 들어간 손가락, 정확히 중지에 공이 살짝 걸렸다. 195cm의 키보다 더 긴 2m에 가까운 윙스펜이 가장 큰 장점인 골키퍼라 가능한 일이었다.


깡!


무회전으로 골문 구석을 향해 굴러가던 공은 손가락에 맞아 살짝 궤도가 틀어졌다. 아슬아슬하게 휘어진 공은 골포스트를 맞고 골라인 바깥으로 나갔다.


“대박이네요 감독님. 퍼스트 터치도 놀라웠는데. 바로 동점골까지 넣었으면 대박인데! 진짜 생각지도 못한 슈팅이네요. 좀 무리한 거 같기도 하고. 제가 보내드린 선수 리포트 보셨죠?”

“응? 아니.”

“185cm 82kg. 양발잡이. 제공권에 특화된 장신 스트라이커는 아니지만, 센스있게 공간을 찾아가 정확하게 헤더를 꽂아 넣는 파워가 있다. 폭발적인 스피드를 자랑하는 침투형 원톱은 아니지만, 순간 가속도로 수비수를 벗겨내기에 충분히 빠른 발이 장점이다. 태성고 재학 당시 한 경기 8골을 기록하···”

“그만. 그만. 미스터 킴. 돈 두 댓. 하하 왜 이렇게 일을 너무 열심해 해. 난 그런 거 안봐. 편견만 생기고. 그나저나 재능은 재능이네. 난 저 고집, 본능이 마음에 드네.”

“고집이요?”

“아까 말한 골 넣은 의정부FC 선수라면 방금 어떻게 했을까?”

“유병주요? 음. 슈팅 각도를 수비수가 잘 틀어막았으니깐, 침투하던 저기 6번한테 딱 알맞게 밀어주지 않았을까요? 그럼 바로 일대일 찬스잖아요. 바로 때릴 수 있게 왼발로 절묘하게 밀어줬을 것 같아요.”

“그치. 그게 확률이 높은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지. 그런데 거기서 탑클래스와 꽤 괜찮은 스트라이커가 갈리는 거야.”

“네? 이호종은 탑클래스, 유병주는 준수한 스트라이커라는 거에요?”

“아니. 아직은 뭐. 탑클래스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 아직까진. 스트라이커는 본인이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본능이 있어야해. 그걸 탐욕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한 골만 넣으면 되는 게 공격수의 운명이거든.”

“그래도 패스가 분명 더 나은 선택이었잖아요. 안 그래도 지고 있는 상황인데.”

“더 좋은 동료에게 패스와 본인이 해결. 성공 확률이 50:50이라 쟤가 토킥으로 빠르게 처리했을까? 내가 보기엔 이호종은 본인이 해결할 확률이 1%라고 해도 자기가 찼을 거야. 자신있거든. 골을 넣고 싶거든.”


센터라인 근처에서 지켜본 호종이의 슈팅은 역시 어마어마했다. 모두가 패스를 예상하는 상황에서 가랑이를 노리고 정확하게 차다니. 동점골이 정말 들어가는 줄 알았다. 돌이켜보면 확실히 호종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달랐다. 팀이 이겨도 본인이 골을 넣지 못하면 분해서 씩씩거렸고, 모두가 부담스러워하는 중요한 PK는 제일 먼저 나서서 공을 찰 준비를 했다. 보다 나은 자리에 위치한 선배에게 패스를 내주지 않고 곧바로 슈팅을 시도해서 초반에는 욕을 많이 먹었다.


‘탐욕적인 새끼. 자기 골 기록 밖에 모르는 놈. 이기적이고 재수없는 인간.’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승리가 늘어날수록 누구도 호종이를 욕하지 못했다. 무리해서 각도가 없는 상황에서도 슈팅을 하든, 쉬운 패스를 주지 않고 과감하게 드리블을 치든, 어쨌든 팀을 승리로 이끄는 골을 넣었으니.


“정훈아! 너도 올라가! 한 명 남기고 다 올라가. 어쨌든 한 골이다!”


하 코치님의 우렁찬 공격 가담 지시가 넋 놓고 호종이의 슈팅을 바라본 내게도 전해졌다. 재빨리 페널티 에어리어를 향해 올라갔다. 코너킥커는 현빈 선배였고, 모두 뒤엉켜 초조하게 공을 차길 기다리고 있었다.


의정부FC는 2~3명이 모두 호종이를 둘러싸고 제대로 견제를 하고 있었다. 키가 그리 크지 않은 나는 골키퍼 앞을 알짱거리며 시야를 방해하는 역할을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도움이 되는 플레이였다.


현빈 선배는 자신 있게 왼발로 코너킥을 올렸고, 높게 뜬 공은 니어포스트에 위치한 호종이, 알짱거리고 있는 나를 지나 멀리 넘어갔다.


[아, 너무 힘이 들어갔나요! 현제대에게 결정적 기회였는데요. 약팀이 득점할 기회는 사실 세트피스가 제일 가망있는데요. 이호종에게 너무 견제가 심하니 코너킥커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죠.]

[맞습니다. 아쉬운 킥이네요. 그래도 이호종이라면 일단 경합을 붙여볼만 한데요. 체력적인 부담이 컸나 봅니다.]


의정부 스타디움은 홈팬들이 내뿜는 안도의 한숨소리로 가득했다. 하지만 나가는 공을 동찬이가 몸을 날리며 헤딩 패스로 중앙으로 다시 연결했다. 높이 날아올라 바깥으로 나가던 공을 끝까지 따라붙어 다시 한번 경합을 하라고 띄워준 것이다. 순간 시선을 빼앗긴 의정부FC 선수들 사이로 호종이가 우뚝 뛰어올라 머리를 들이밀었다.


툭!


슈퍼세이브를 보여준 골키퍼는 이번에도 동물적인 반사신경으로 가까스로 호종이의 슈팅을 막아냈다. 다이빙을 뛸 겨를도 없이 길게 발을 뻗어 호종이가 높은 타점에서 내려꽂은 공을 쳐냈다. 그리고 공은 골키퍼 앞을 알짱거리던 나의 발을 향해 바운드되어 굴러왔다.


“때려! 권정훈!”


출렁.


어떻게 슈팅을 한지도 모르겠다. 순간 경기장에 나만 있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저 본능적으로 냅다 뛰어올라 몸을 날렸고, 들리는 건 동료들의 함성 소리뿐이었다.


[아! 20번 권정훈! 오늘 엄청난 일대일 수비를 보여주더니 결국 동점골까지 터뜨립니다! 이호종의 헤더가 튕겨 나오자 감각적으로 밀어넣었어요. 결정적인 골입니다! 승부는 이렇게 되면 아무도 모르죠!]


"악!!! 미쳤어! 2경기 연속골이라니! 잘했다 정훈아!"

"미친놈! 언제 공격 올라왔어!"

"고맙다. 호종아! 진짜! 가자!!!"


나가는 공을 살려낸 은인 동찬이를 껴안고 나도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네 덕분이다 동찬아! 그걸 어떻게 살려내냐! 어? 으악!!"


나의 축구 인생 두 번째 골이 터졌다. 그것도 엄청나게 중요한 순간에 동점골로 말이다. 더욱 놀라운 건 만년 땜빵, 그저 실수만 하지 말라고 지시를 받던 내가 모두의 영웅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내 가장 친한 친구. 내 골을 사실상 만들어준 헤더의 주인공 호종이는 웃지 않았다. 본인이 골을 넣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호들갑떨었나? 호종이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골망에 들어간 공을 꺼내 들고 하프라인으로 뛰고 있었다.


"뭐해! 빨리 올라와! 아직 동점이라고!"


그렇다. 스코어는 1대1. 내가 넣은 건 결승골이 아닌 동점골이었다. 체력적으로 지친 우리가 유리한 상황이 아닌데 너무 들떴다. 남은 시간은 10분. 과연 기적같은 골을 한번 더 넣을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유병주를 비롯해 조직적인 의정부FC를 막아낼 수 있을까? 칸나바로의 단단한 수비력이 90분 내내 이어지길 간절히 기도하며 다시 내 자리에 우뚝 섰다.


작가의말

해설진의 말을 [      ] 로 처리했습니다.

하나씩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많은 추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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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호베르토 카를로스 (1) 21.05.20 922 27 9쪽
1 프롤로그 +2 21.05.19 1,075 43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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