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박스 크랙이 쏘아올린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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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바리
그림/삽화
샘바리
작품등록일 :
2021.05.19 23:46
최근연재일 :
2021.06.20 23:41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11,993
추천수 :
380
글자수 :
185,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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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5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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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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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자
12쪽

파비오 칸나바로 (4)

DUMMY

“이야, 저기 딱 서있다니! 행운이 따르네요. 이러면 의정부FC 당황하겠는데요?”

“행운? 아냐. 저건 집중력이 좋다고 해야지. 혼전 상황에서 갑자기 기회가 와도 못 넣는 놈들이 한 트럭이야. 순간 몸에 힘이 들어가거든.”

“하긴. 내가 차도 넣겠다 싶은 기회도 날려먹는 프로 선수들 보면 그렇긴 하네요.”

“이제 승부처야. 딱 한 골 승부다. 이기든 지든 난 9번, 20번 테스트 해볼테니깐 명단 올려둬.”

“네? 20번? 권정훈도요?”


삑!


1대 1. 경기 종료를 10분 앞두고 다시 승부의 추는 균형을 이뤘다. 짧은 패스 플레이로 점유율을 높여 조금씩 전진하던 의정부FC가 아예 다른 분위기를 뿜어냈다. 최후방 센터백이 길게 길게 공을 최전방으로 넘겨줬고, 공은 어김없이 유병주의 머리를 향했다. 무승부로 경기가 끝나면 손해인 의정부FC는 공격 시간을 아끼며 빠르게 현제대 진영으로 넘어왔다.


‘보인다. 타이밍과 위치가.’


수백번 돌려본 비디오 영상. 이를 바탕으로 그라운드에서 몸으로 부딪힌 유병주의 움직임이 80분이 넘어가자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낙하 지점을 빠르게 파고들어 조금 더 뒤에서 점프할 공간을 마련한다. 1옵션은 아예 몸싸움으로버티며 안전하게 트래핑하는 것. 점프를 뛰지도 않고 곧바로 돌아서 달려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내쪽을 향해 날아오는 공에 역시나 유병주는 슬금슬금 몸을 부대끼며 나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재빨리 아예 공간을 내주고 유병주의 앞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반대로 내가 유병주를 골문 쪽으로 몰아 섰다. 자칫 공이 나를 지나쳐가면 곧바로 위험한 순간이 펼쳐지는 선택이었지만, 1옵션은 틀어막았다.


‘여기서만 버티면 된다. 위험하긴 해도 어쨌든 나는 자신 있다. 공은 내 앞에서 멈춘다.’


[아, 유병주의 머리를 향한 롱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확률 높고, 빠른 공격을 택한 거죠. 의정부FC. 웬만한 타겟 스트라이커보다 유병주가 피지컬이 좋고 키핑이 되거든요.]

[권정훈 아예 유병주 앞으로 위치를 바꿔버렸는데요. 농구로 치면 리바운드를 노리는 센터들의 골밑 싸움 같아요. 저건 좀 위험한 선택 같은데요?]


‘유병주의 제2옵션. 왼발을 크게 구르며 도약을 한다. 양팔을 크게 벌리며 추진력을 얻는다. 왼쪽을 향해 공을 떨어뜨려줄 확률이 70% 이상이다.’


당황한 유병주가 다시 자리를 잡으려 어깨를 잡아 끌었지만, 몸을 틀며 뿌리쳤다. 왼쪽 방향으로 공을 떨어뜨리지 못하게 일부러 위치도 비스듬히 잡았다. 헤딩 클리어링 성공! 하지만 다시 공은 의정부FC의 진영에서 돌기 시작했다. 현제대는 일단 최대한 멀리 공을 걷어내는 게 목표였다. 어떻게든 공을 최전방을 뿌려주면 골로 마무리 지어줄 해결사가 있다는 믿음 덕분이었다.


“측면이다. 뚫리면 안돼! 현빈! 끝까지 잡아!”

“헉.. 헉··· 휴··· 하···후........”


끈질기게 측면 수비를 하면서도 중앙의 빈 자리까지 커버하느라 잔뜩 지친 풀백 최현빈 역시 최고의 집중력을 보여줬다. 화려하지 않지만 든든하고 꾸준한 경기력. 팀을 이끄는 주장답게 경기 내내 소리를 지르며 공격과 수비 위치를 잡아줬다. 하지만 폭발적인 스피드로 밀고 들어오는 의정부FC 윙어를 막기엔 발이 너무 무거워졌다. 뒷공간을 내주자 유니폼을 잡아 끌었고, 경고와 함께 파울이 선언됐다.


“됐다. 올라가. 세트피스 7번! 알겠지? 7번!”

“7번이래. 위치 잡아!”


[의정부FC 준비한 세트피스 같은데요? 오른발잡이 키커가 준비하고 있고요, 아 특이합니다. 정중앙에 선수들이 아예 뭉쳐있습니다. 이러면 마킹할 선수들이 헷갈리거든요.]

[마찬가지로 공격하는 입장에서도 자리 잡기 쉽지 않거든요. 상당한 연습을 바탕으로 서로 합이 잘 맞아야 가능한 세트피스 같습니다.]


“내가 유병주! 동찬아, 11번 잡아. 돌아 뛴다! 벽은 두명!! 현빈! 한 명 더 서! 각도 줄여야지!”


나도 한데 뭉쳐서 우두커니 서있는 상대 공격진의 준비 단계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저 크게 소리를 치며 마킹을 일깨워주고, 나는 무조건 유병주의 헤더를 막아낼 준비에 잔뜩 긴장했다.


챡!


아! 허를 찔렸다. 모두가 날카롭게 휘어들어오는 크로스를 예상하고 뛰어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의정부FC의 선택은 전혀 달랐다. 공은 골문을 향해 달려드는 의정부FC 공격수들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지 않았다. 일반적인 크로스가 아니라 공의 목적지는 텅빈 페널티 에어리어 중앙이었다.


“중거리다! 막아!!!!!”


뒤로 갑자기 빠져드는 유병주를 다급하게 따라 가려는데, 내 앞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덩치 큰 센터백이 골문으로 달려드는 척 경로를 막고 절묘하게 어깨를 부딪혔다. 약속된 플레이, 유병주의 강력한 오른발을 믿는 세트피스였다. 다른 공격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형으로 있다가 뒤엉키며 각자의 위치로 뛰어들어갔고 당황한 현제대 선수들은 일단 보이는대로 눈앞의 선수를 따라갔다.


반 박자가 늦었다. 어깨를 부딪히며 주춤거리는 순간 유병주는 눈 앞에서 두세걸음은 달아나 있었다. 기다리고 있던 선수 한명이 유병주가 터닝 슈팅하기 좋게 공을 잡아줬다. 양쪽으로 퍼진 의정부FC의 움직임의 의문도 풀렸다. 현제대 선수들이 다급하게 눈 앞의 선수들을 따라가자 슈팅 코스가 뻥 뚫렸다.


[유병주! 이쯤 되는 거리에 수비수까지 없다면 100% 골입니다! 그대로 돌아서서 슛!!!!!!!!!!!!]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다.


어깨를 부딪히고 휘청한 순간 이미 정상적인 태클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공을 끝까지 바라보며 눈을 감지 않았다. 머리를 들이밀면서도 막아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어차피 공이 골문을 향해 갈 수 있는 코스는 하나였다. 우측 하단 구석. 닿을듯 말듯한 거리에 과감하게 머리부터 슬라이딩했고, 공은 강하게 내 머리를 강타했다.


“오! 나이스 커버. 방금 저건 그냥 지나갔으면 골이였다. 정확하고 강력했거든.”

“아니, 저기서 어떻게 머리부터 들어갈 수 있죠? 엄청난데요? 감독님. 20번 뽑을만 합니다! 진짜!”


순간 머리는 하얗게 2~3초간 먹먹해졌다. 시끄러운 응원 소리로 가득하던 그라운드에서 내 터질듯한 심장소리만 크게 울려 퍼졌다.


“와!!!!!”

‘뭐지? 막아야해. 아니, 먹힌건가? 방금 막은 거 같은데. 뭐지?’


정신을 차려보니 내 뺨을 때리며 팀닥터가 찬물을 얼굴에 뿌리고 있었다.


“괜찮아? 정훈아! 숨 크게 쉬어! 손가락 보고. 왼쪽. 오른쪽. 정신 들어? 숨!! 끄덕여봐.”

“아··· 네. 보여요. 네네 괜찮아요!”

"아니 무슨 자신감이야! 머리로 저 슈팅을 막겠다고! 으이구! 잘했다!"


[방금 수비는 말그대로 골을 내주지 않겠다는 투지의 결정체입니다. 걸레수비라고 하죠? 앞뒤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공을 막아내려는 의지. 오늘의 진정한 명장면입니다.]

[권정훈. 아 다시 일어났습니다. 경기 계속 뛸 수 있나 본데요? 팀닥터가 벤치를 향해 원을 크게 그립니다. 방금 수비가 결정적인 전환점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경기는 이제 90분을 넘어섰습니다!]


이제 마지막 공격 한 두 차례면 그대로 정규 시간은 끝난다. 끝까지 집중하자는 생각만 가득했고, 언제 튀어나갈지 모르는 유병주를 계속 체크하고 있었다. 측면에서 시작한 의정부FC의 공격은 역시 유병주를 향한 스루패스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머리를 들이밀 필요가 없었다. 정확히 코스를 읽었고 깔끔한 태클로 공을 커트했다.


“미스터 리. 공격적인 수비의 가장 큰 장점이 뭔지 알아?”

“아무래도.. 멋있···죠?”

“아니. 수비 성공과 동시에 공격 시작이라는 거지.”


완벽할 정도로 깔끔하게 태클을 성공하고 곧바로 일어나 몸을 틀었다. 뻥 걷어낼 필요가 없이 곧장 드리블을 시작했다. 결승골을 넣기 위해 모두 바쁘게 우리 골문으로 달리고 있었으니 역동작이 걸린 건 당연한 결과였다. 10m 정도 무작정 빠르게 달리다보니 수비형 미드필더가 내 앞을 막아 섰다.


“호종아!”

“넘겨!!!!!! 다시.”


어느덧 3선까지 내려온 호종이의 콜이 들렸고, 감각적으로 오른발로 툭 밀어줬다. 그리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직선으로 그대로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으며 달렸다. 그리고 무작정 달리던 내 시야에 다시 낮고 빠르게 공이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에이스 호종이를 향해 몸을 틀어 달려드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비웃기라도 하듯 가볍게 원터치로 다시 나에게 공을 주고 뛰었다.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본능적으로 공을 밀고 냅다 뛰다 보니 어느덧 하프라인이 보였고, 최종 수비수 두 명이 자리를 지키고 서있었다.


툭!


여기까지였다. 아까 무리해서 머리로 공을 막아서일까? 아니면 90분 내내 집중하며 수비를 해서일까? 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이 풀리며 조금씩 균형을 잃어갔다. 이대로 넘어지면 마지막 공격 기회는 무산되는 거였다. 넘어지면서 오른발 아웃사이드로 그저 빈 공간을 향해 툭 공을 찔러줬다. 공격수의 발밑으로 떨어지는 정확한 공? 달려가는 속도를 계산해 정확힌 밀어준 공? 아니었다. 그저 어떻게든 이 공이 닿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 힘을 모아 휘두른 패스였다.


“잘했어. 해결하고 올게.”


원터치 리턴 패스를 주고 골문을 향해 뛰기 시작한 호종이는 그라운드 위 22명 중 가장 빠르고, 체력도 가장 쌩쌩했다.


[아! 불도저같이 밀고 들어온 권정훈. 2대1 패스로 한 명 따돌리고, 쓰러지면서도 놓치지 않고 전방으로 찔러줬습니다! 아!!!! 이호종 속도 붙었어요. 못 막아요. 바로 일대일 상황입니다!! 골키퍼 뛰어나오는데요!!!!]


통. 통. 통···통통··· 떼구르르···.


골키퍼가 나오는 걸 예상이라도 한듯 이호종은 발끝으로 가볍게 로빙 슈팅을 시도했다. 당황한 골키퍼는 퇴장을 감수하고 팔을 최대한 뻗어보았지만 높게 솟아오른 공을 건드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름다운 포물선은 나홀로 춤을 추듯 사뿐하게 잔디로 다시 착지했고, 천천히 속도를 줄여가며 빈 골문을 향해 굴러갔다. 골망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저 깔끔하게 골라인과 골망 중간에 멈추었을 뿐.


삑. 삑. 삐이이익


“이겼다!!!!! 역전승이야!! 아!!!!!!!!!!!!”

“미쳤어! 아니 일부러 공 딱 저기다 멈춘거지. 미친놈아!”


FA컵 32강 2대 1. 현제대 승리. MOM 이호종.


2000년 프랑스 4부리그 팀 칼레가 FA컵에서 강호들을 연파하고 준우승을 차지해 생긴 단어 ‘칼레의 기적’. 고작 16강 진출이었지만 나에게는 이번 경기가 ‘현제대의 기적’ 그 자체였다. 비록 무실점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극적인 동점골을 넣고, 마지막 호종이의 아름다운 결승골까지 어시스트하다니. 내게 찾아온 이토록 든든한 레전드들의 도움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랜덤박스처럼 다음 선수는 누구일지 이제는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호종아, 정훈아. 잠깐만 이리 와봐라.”


감독님은 신나서 부등켜 안고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고 있는 우리를 불러 세웠다.


“안녕. 오늘 경기 잘 봤다. 아, 나는 통역관이고 공지 사항이 있어서. U20 월드컵 소집은 2주후니깐 그 전에 몸 관리 잘하고. 파주에서 보자.”


“호종아. 파주···라니?”

“병신아! 파주 트레이닝 센터! 국가대표 소집이라고!!!!”


내가? 시대표도 못해본 내가.. U20 월드컵에?


작가의말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참고로 파주는 딱 한번 구경가봤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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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호베르토 카를로스 (1) 21.05.20 922 2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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