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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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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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0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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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108화. 힘이 있어야 평화도 이룬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딸 미루 걱정에 친정 엄마가 와서 같이 지내면서 죽을 쑤어서 아무리 먹이려고 해도 먹지 않으니 속만 태웠다.


“애야! 쥬서방은 살아올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한 숟갈이라도 먹자. 우선은 네가 살아야지.”


“흑흑흑! 먹고 싶어도 넘어가지를 않아요. 그이가 오면 먹을게요.”


잠도 거의 자지 않으니 두 눈은 실핏줄이 모두 터져서 피눈물이 흘렀다.


울다가 지쳐서 이제는 목이 메어 울음도 안 나오고, 날마다 집 앞에 앉아서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느라 목이 빠질 지경이다.


미루에겐 첫사랑이고, 몇 년을 참고 기다려 노처녀가 되어서야 겨우 얻은 내 사랑이 어린 자식들과 자신만을 남겨 두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 버렸다.


처음에는 살아오길 바랬으나 점점 희망이 없어지자 이제는 시신만이라도 곁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니······.


시신만이라도 찾아서 산속에 살았던 곳에 묻어 주면 원이 없을 것 같았다. 먼저 죽은 미루 곁에 묻은들 어떠하리.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은 옛사랑을 따지지 않았다. 그것이 그 사람을 위하는 길이라면 말이다.


제발 시신만이라도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며 오늘도 기다리는데······.


야속한 해는 거인이 눈을 감듯이 서산으로 저무니, 붉은 노을빛을 따라서 끝없는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또다시 가슴은 미어터지고······.



쥬맥 일행은 말을 타고 나흘을 달려서 겨우 주거지에 다다랐다. 쥬맥은 절대 자신이 살아서 돌아왔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도록 당부했다.


수르가 당분간 업무를 대행하며 직속 상관인 탕타로 부족장과 비율신 대족장에게만 보고하고, 몸이 불편하여 며칠 쉰다고 전하도록 하였다.


물고기를 말린 것은 모두 똑같이 나누어 갖고, 가죽은 백호대에 가져다 놓으라고 말과 함께 보냈다.


자신은 검과 내단을 챙겨 들고 어포를 어깨에 걸친 채 터덜터덜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집 앞에 이르니 아내 미루가 대문 앞에 멍하니 서 있다.


아마도 자신을 기다리나 보다.


바짝 말라서 망부석처럼 먼 산만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 걱정이 많았구나 싶어서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안고 달래 주려고 가까이 다가섰는데······.


“여보! 나 왔어. 걱정 많았지?”


부드럽게 말을 건네는데, 미루가 귀신을 본 것처럼 놀라서 뒤로 넘어졌다.


“으어어······어어어?”


그러면서 손가락질만 하는데 벌건 두 눈에서는 아직도 붉은 눈물이 흐른다.


미루는 지금 남편의 혼백이 집을 찾아온 줄 알고 놀란 것이다. 머리털에 눈썹까지 하나도 없으니 귀신이라고 착각할 만도 했다. 피부까지 한 겹 벗겨져서 희멀겋게 변했으니······.


쥬맥이 걱정시켜 미안한 마음으로 옆에 앉아 끌어안아 주면서 토닥토닥 달랬다.


“걱정시켜서 미안해. 잘 돌아왔으니까 됐잖아. 이제 아무 걱정하지 마.”


“끄억~ 꺽꺽꺽~~”


그제야 미루가 남편의 몸을 만져 보고 머리털이 없는 민머리도 만져 보더니, 귀신이 아니라 정말로 살아서 돌아온 것임을 알았다. 그러자······,


감정이 복받쳐 가슴에 쓰러져서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꺼이꺼이 울었다.


쥬맥이 가만히 등을 두드려 주고 안아서 드는데, 그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굶어서 마른 장작처럼 가벼웠다. 아내에게 미안하고 모습이 너무 가여워서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자신마저 울면 안 되니까.


미루를 안고 집으로 들어가자 장모가 달라진 사위의 모습을 보고 또 귀신을 본 것처럼 놀라더니, 다가와서 만져 보고 그제야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이 사람아! 이게 무슨 일인가? 그래도 이렇게 살아왔으니 천만다행이네 천만다행이야. 아이고 으흐흑!”


그때 방에 있던 쥬온과 쥬미가 어른들이 우는 소리에 놀라서 무슨 소린가 하고 밖으로 나오더니, 금방 아빠를 알아보고 달려와서 품에 안겼다.


“아빠! 왜 이제야 왔어요? 엄마가 아빠 죽었다고 얼마나 울었는데요.”


“아빠! 나 보고 싶었쪄? 싸랑해!”


쥬미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얼굴을 비비고 뽀뽀를 해 대니 이제야 겨우 살아서 집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미루를 편하게 눕혀 주려고 하는데 손을 놓으면 행여 사라질까 봐 목에 두른 손을 풀려고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쥬맥이 그대로 품에 안고 거실에 주저앉았다.


“장모님! 이 사람이 제대로 먹지도 못한 것 같은데 혹시 뭐라도 먹일 것이 없을까요?”


“이 사람아! 자네가 죽었다고 닷새째 곡기를 끊고 있다네. 죽을 좀 데워 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게.”


장모가 주방으로 들어가 죽을 데워서 수저와 같이 쟁반에 들고 왔다. 쥬맥이 안은 채로 떠서 먹이니 그동안 끊었던 곡기를 그제야 먹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혹시 쥬맥이 어디로 사라질까 봐 계속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다.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되는지 간혹 볼을 꼬집기도 하면서······.


죽을 먹이고 따뜻한 물에 깨끗이 씻겨서 잠자리에 뉘였다. 전에 불로초로 만든 영단(靈丹)도 한 알 먹여서 말이다.


장모님도 밤이 늦었으니 주무시고 가라고 권하고 아이들도 재운 뒤에 돌아와 보니, 그동안 못 잔 잠을 자려는 듯이 미루는 코까지 크게 골아가며 깊은 잠에 빠졌다.


옆에 누워서 수척한 아내의 얼굴을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깜박 잠이 들었는데 깨어 보니 벌써 아침이었다.


“응? 이 사람이 어디 갔지?”


옆을 보니 아내가 보이지 않아서 놀라 방문을 열고 나오니, 그새 언제 아팠냐는 듯이 주방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쥬맥이 다가가니 핏줄이 터져서 아직도 붉은 눈으로 바라보며 웃는다.


“더 자지 왜 나왔어요. 아침 식사 준비할 테니까 더 자고 나오세요.”


“몸도 안 좋으면서 뭐하러 나왔어? 내가 할 테니까 당신은 어서 들어가.”


그 말에 아내가 햇살이 가득한 얼굴로 기분 좋게 피식 웃었다.


“저한테는 당신이 보약이에요. 이제는 괜찮으니까 힘들게 돌아온 당신이나 쉬세요. 저는 하나도 안 힘들어요.”


영단이 효과가 있긴 있나 보다 하는데, 그때 장모님이 문을 열고 나왔다.


“그래, 더 쉬게. 죽었다가 겨우 살아왔는데 얼마나 힘들었겠어.”


둘이서 억지로 등을 떠밀었다. 어쩔 수 없이 방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서, 어제 들고 온 물고기 말린 것을 찾으니 거실 한쪽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것을 절반으로 나누어 하나는 보자기에 싸고 하나는 들고 주방으로 갔다.


“이건 내가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를 말린 것인데 아침에 한번 구워 봐. 장모님도 가실 때 거실에 싸 놓은 것 가지고 가세요. 맛이 제법 괜찮아요.”


“그래, 고맙네. 참, 자네 장인한테는 살아왔다고 연락도 하지 못했네. 걱정이 태산이더니 이제야 한시름 놓겠어.”


물고기를 노릇하게 구워서 아침을 먹는데, 아내와 장모님은 물론 아이들도 맛있다고 잘 먹으니 금방 바닥이 났다.



점심때가 지나서 비 대족장이 수르에게 말을 전해 듣고 바로 집으로 찾아왔다.


“아니, 이 사람아! 얼마나 걱정을 했다고. 하여간 살아와 줘서 고맙네.”


“괜히 걱정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이렇게 살아와서 천만다행이라며 앞으로는 몸조심 좀 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러면서 며칠 푹 쉬라고 하며 돌아갔고.


왜 물에 빠졌는지 물었지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면 비 대족장까지 휘말려서 문제가 커질까 봐 들으신 대로라고 일단 말을 삼갔다.


잘못하면 벌집을 쑤시게 된다.


조용히 집에서 쉬면서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여러 가지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럴 때 감정을 앞세우면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칼자루를 쥐었다고 잘못 놀리면 오히려 자신이 다친다. 상대는 바로 권력이 막강한 대족장이 아닌가?


이번 일 뒤에는 분명히 보돈타 대족장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서른 명에 가까운 무사들이 집단으로 짜고서 일을 벌이기는 힘들다.


그런데 그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보 대족장은 그 자리에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저 심증만 있을 뿐이지.


그 일은 자신도 보고를 받지 못했고 시킨 적도 없다고 아랫사람에게 미루며 시치미를 뗄 것이 뻔한 일!


어느 시대든 야심 많은 윗사람이나 효웅들은 그렇게 아랫사람을 제물 삼아서 나쁜 일을 저지르지 않던가?


마음 같아서는 백호제마검을 들고 쳐들어가, 보 대족장과 이번에 3조에 들어왔던 휘하 무사들을 모두 도륙을 내고 싶지만 그런다고 풀릴 일이 아니다.


대족장을 죽이고 자신이 무사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두면 이런 일이 또다시 일어날 것이니 가만둘 수도 없고···, 생각할수록 가슴이 답답했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나? 모두 죽여?'


고민을 거듭하다가 사흘째 되는 날 경장차림에 백호제마검을 등에 메고 집을 나섰다. 힘에는 힘으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보 대족장 집무실(執務室) 근처에 다다르니 그 앞을 몇 명의 무사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그래서 들키지 않게 허공답보(虛空踏步)로 높이 떠올랐다. 경비 무사들을 지나서 문 앞에 내려서는데 그제야 무사들이 그 사실을 알고 뒤쫓아왔다.


“게 누구냐? 거기 서라!”


그들이 오기 전에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넓은 사무실 안에 회의실 등이 보이고, 한쪽에 대족장 집무실이라고 쓰인 간판이 보였다.


쥬맥은 마치 업무를 보고하러 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누군가? 들어와.”


안에서 낮게 대답하는 보 대족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서류를 보고 있던 보 대족장이 얼굴을 들어서 바라보는데, 머리가 마치 민둥산같이 변한 쥬맥을 알아보지 못했다.


“아니, 자네는 누군가?”


“쥬맥입니다. 못 알아보시겠습니까?”


그제야 자세히 보더니 귀신을 본 듯이 깜짝 놀라며 주춤거리고 일어섰다.


“어어? 자네는 분명히 호수에 빠져서 죽었는데 어떻게 여기에 있어?”


“호수에 그냥 빠졌을 뿐인데 누가 제가 죽었다고 했습니까?”


그때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경비를 서던 무사들이 문을 열고 뒤쫓아 들어와서 큰 소리로 외쳤다.


“누구냐? 감히 어떤 놈이 경비대의 허락도 없이 침입했느냐?”


쥬맥이 날카로운 눈으로 뒤돌아보며 살기가 서린 위압감을 발산했다.


“나? 쥬맥이다. 왜?”


그러자 그들도 놀라서 입을 제대로 다물지 못하다가 보 대족장의 눈치를 살피며 불호령이 떨어지기 전에 끌어내려고 슬금슬금 다가왔다.


잘못하면 보초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경을 칠 판이다.


“모두 더 이상 다가오지 말고 거기 멈춰라! 아니면 모두 벨 것이다.”


쥬맥이 차갑게 말하며 검결지로 가리키니 백호제마검이 저절로 뽑혀 나와서 앞으로 날아가더니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면서 경비 무사들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도록 앞을 가로 막았다.


쥬맥이 이기어검으로 가로막자 이제 간신히 5단계 제신(諸神)의 경지에 이른 보 대족장이 보더니 깜짝 놀랐다.


자신보다 무려 2단계나 높은 전신(戰神)급이나 되어야 구현이 가능하다는 이기어검술이 아닌가?


오늘은 길함보다 흉함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혹시 자신을 비롯하여 이번에 음모에 가담한 모두를 죽이러 온 줄 알고 바짝 긴장했다.


이미 화경의 경지에 이른 전신급이면 암습(暗襲)이 아니고서는 모두 덤벼들어도 승산(勝算)이 없는 상황.


“모두 나가 있어라! 자네도 잠깐 검을 거두고 이리 와서 앉게.”


앞쪽에 놓인 회의용 탁자에 앉으면서 가능한 분위기를 돌리려고 애를 썼다.


쥬맥은 무사들이 모두 나가자 검을 거두고 그 앞에 앉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그시 보 대족장을 바라봤다.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목숨이 날아갈 판이니 바짝 긴장하는 보 대족장. 지금은 어떻게 해서든 여기서 몸을 빼내야 했다.


집무실 밖에는 근처의 모든 무사들을 불러서 진을 치고 있으니, 보 대족장은 가능하면 시간을 끌면서 몸을 빼낼 기회를 보려고 했다.


“이번 일은 참으로 유감일세. 자네가 죽은 줄 알았을 뿐이네.”


그래도 쥬맥은 일언반구도 없이 지그시 보 대족장을 바라보더니, 온몸에서 진기와 살기를 내뿜으며 화경(化境) 이상의 경지에 이른 고수만이 가능한 기(氣)의 영역(領域)을 구축했다.


이제 이 집무실 안에서는 그 누구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쥬맥이 마음을 먹는 순간에 온몸의 운신(運身)이 불가능하고 손짓 하나에 파리 목숨처럼 목이 날아갈 판이다.


긴장한 보 대족장의 얼굴과 목, 등줄기로 흥건하게 땀이 흘러내렸다.


진기에 억눌려서 몸이 사시나무가 떨리듯이 떨리고, 얼굴이 핏기를 잃어 하얘지면서 내상을 입었는지 비릿한 핏물이 목구멍으로 치고 올라온다.


그것을 억지로 다시 삼키는데······.


오늘 말 한마디 삐끗 잘못하면 정말로 죽을 판이다. 쥬맥은 아무 말없이 계속 노려보았다. 정말 죽일 것처럼!


집무실에는 살기가 유형화(有形化)되어 예리한 기운이 안개처럼 떠돌았다. 자칫 잘못하면 저 살기에 눌려 죽을 판이다! 억지로 버티던 보 대족장. 결국은 살아남는 길을 택했다.


자기를 죽이면 쥬맥도 처벌을 받든가 참형을 당하겠지만, 자신이 죽고 나면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중요한 것은 자신이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쥬맥이 이 정도 무위(武威)인 줄 알았다면 결코 건들지 않았을 텐데······.


“미안하네. 내가 잘못했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네.”


그래도 쥬맥은 노려만 볼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무심(無心)한 눈빛은 수많은 생명을 죽여서 감정이 죽은 자의 눈빛이었다.


생명 하나쯤은 파리 목숨처럼 죽일 수 있는, 그리고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고 기가 질리는 눈빛!


그러자 결국 그 자존심 강하다는 보 대족장이 살아남기 위해서 쥬맥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빌었다.


“용서해 주게. 내가 잘못했어. 두 번 다시는 자네에게 해를 끼치지 않겠네. 부하들에게도 단단히 이르고 말이야. 내 천신(天神)께 맹세하지.”


그제야 쥬맥의 얼굴에 감정이 떠오르고···, 얼굴을 풀며 입을 열었다.


“그 맹세를 지킬 수 있습니까? 또다시 이런 일을 벌이면 그때는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그 누구도!”


“맹세하겠네. 정말 천신께 맹세하겠어. 이번 한 번만 살려 주게.”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믿고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쥬맥이 진기를 거두고 돌아서자 그제야 보 대족장이 숨을 편히 내쉬는데, 유형화된 살기에 내상을 입어서 입 한쪽으로는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쥬맥이 문을 열고 나서자 비무를 했던 야탄과 나머지 무사들을 포함하여 수십 명이 문 앞에 진을 치고 있는데, 그 누구도 감히 덤비지 못했다.


쥬맥이 한번 휙 둘러보고 발바닥의 용천혈에서 진기를 내뿜으며, 허공답보로 천천히 허공을 걸어 올랐다.


일부러 보란 듯이 무력을 과시한 것!


죽고 싶지 않으면 함부로 나를 건들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가 아니겠는가?


담을 넘어서 유유히 사라지자 모두 닭 쫓던 개 꼴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모두를 죽이지 않고 물러갔으니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이다. 정말 접전이 벌어지면 여기서 살아남을 사람이 하나도 없음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쥬맥이 돌아가고 나자 핼쑥한 얼굴로 문을 열고 나선 보 대족장이, 문 밖에 모여 있는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앞으로 별도의 지시가 있기 전에는 절대 쥬맥을 건들지 말고 시비거리도 피해라. 이를 어기는 사람은 내가 엄벌에 처하겠다.”


이 한마디 명을 내리고 하루 내내 집무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심한 내상을 입었으니 운기요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위선자와 효웅들은 언약 뒤집기를 손바닥 뒤집기보다 더 쉽게 하니, 과연 쥬맥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하는 것이 이것으로 끝날지는 더 두고 볼 일이었다.


평화는 꿈꾼다고 지켜지지 않는다. 때로는 과감하게 힘으로 지킬 수 있어야 비로소 평화가 찾아오는 법!


* * * * *


쥬맥의 머리와 눈썹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의 털들이 보기 싫지 않을 정도로 자라는 데는 거의 육 개월이 넘게 걸렸다.


그동안 쥬맥은 붉은 건을 머리에 쓰고 다녔다. 앞에서는 차마 웃지 못하고 지나간 뒤에 킥킥거리는 소리가 다 들리기 때문이었다. 누구는 독두라 하고, 누구는 민대머리라 하고······.


이번에 죽을 고비에서 살아나고 보니 새삼 주작 신수(神獸)에게 고마움이 느껴졌다.


신통이 깃든 깃털을 주어서 목숨을 살려 준 것도 그렇지만, 동굴에 살 때 찾아와서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며 일갈하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생사의 고비를 몇 번 넘기다 보니 이제야 어른들의 말씀이 틀린 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힘과 젊음을 너무 과신했던 자신의 부족함도 많이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좀더 언행에 조심하고 처신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호수에서 가져온 물고기를 함께 먹은 백호대원들이, 이십 년 이상 적공(積功)한 만큼의 내공이 올랐다며 좋아하자 다른 대원들이 매우 부러워하였다.


일만 년을 넘게 살아온 영물을 무슨 물고기인지도 모르고 먹었으니···, 만약에 알았다면 쥬맥이 바닥에 두고 온 물고기도 모두 건져 왔을 것이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내단(內丹)은 모두 챙겨 왔으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쥬맥은 지난 마수 토벌에서 가지고 온 마수들의 가죽과 호수 바닥에서 가지고 온 물고기 가죽을 이용하여 무엇을 만들까 고민했다.


그래서 일단 사용하기 편하게 지방을 모두 제거하고, 가죽 전문 기술자에게 맡기어 무두질을 하게 했는데······.


그것으로 목이나 등, 가슴, 팔목 등 전투에서 생명을 위협하는 곳을 가리는 견갑(堅甲)을 만들게 하여 착용해 보니, 가볍고 도검이 파고들지 못해서 매우 좋았다.


물론 쥬맥 정도의 고수에게는 별로 소용이 없지만 다른 무사들에게는 목숨을 지켜 주는 방어구다.


“대장님! 최곱니다!”


모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래서 그것으로 견갑을 만들어 목과 가슴, 등 부위는 전투 시 백호대 전원이 착용하게 했다.


그리고 호수에서 가져온 물고기의 이빨은 하나의 길이가 한 자가 조금 넘는데, 어찌나 날카롭던지 쇠까지 뚫고 들어갈 정도였다.


일반 도검으로는 힘껏 내리쳐도 흠집이 나지 않을 정도로 강해서 백호제마검으로 겨우 자를 수 있었다.


“이것으로 송곳형 비수를 만들면?”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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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113화. 환시성을 건설하라 21.08.10 1,345 15 18쪽
112 112화. 환시(桓市)를 향하여 21.08.09 1,343 14 17쪽
111 111화. 부족장이 되다 21.08.08 1,329 17 18쪽
110 110화. 영천(靈泉)에 계신 아버지 21.08.07 1,350 17 18쪽
109 109화. 중계(中界) 수행 21.08.06 1,350 18 18쪽
» 108화. 힘이 있어야 평화도 이룬다 21.08.05 1,311 20 19쪽
107 107화. 생사의 기로에서 얻은 기연 21.08.04 1,321 21 18쪽
106 106화. 소리 없이 다가온 음모 21.08.03 1,308 22 18쪽
105 105화. 또 다른 재앙덩어리 천마수 21.08.02 1,337 24 18쪽
104 104화. 결혼 초야(初夜) 21.08.01 1,351 26 19쪽
103 103화. 꿈꾸던 가정을 꾸리다 +1 21.07.31 1,335 25 18쪽
102 102화. 호사다마(好事多魔) +1 21.07.30 1,323 27 18쪽
101 101화. 가정을 꿈꾸다 +1 21.07.29 1,322 28 18쪽
100 100화. 옛 상처를 지우다 +2 21.07.28 1,335 30 17쪽
99 99화. 우군(友軍)을 만들다 +1 21.07.27 1,323 28 18쪽
98 98화. 사랑은 다시 움트고 +1 21.07.26 1,337 30 20쪽
97 97화. 이기어검(以氣馭劍) +1 21.07.25 1,327 31 19쪽
96 96화. 인면(人面)의 오색요접 +1 21.07.24 1,350 31 18쪽
95 95화. 수련에 몰두하다 +1 21.07.23 1,342 33 19쪽
94 94화.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 +1 21.07.22 1,342 34 19쪽
93 93화. 천망과 천인족의 혈투(血鬪) +1 21.07.21 1,348 35 18쪽
92 92화. 천망! 그 대재앙의 시작 +1 21.07.20 1,347 35 20쪽
91 91화. 친구 수르의 결혼 +1 21.07.19 1,367 37 18쪽
90 90화. 동명이인(同名異人) +1 21.07.18 1,343 37 19쪽
89 89화. 수르의 애인(愛人) +1 21.07.17 1,344 38 17쪽
88 88화. 대재앙(大災殃)의 잉태 +1 21.07.16 1,354 39 18쪽
87 87화. 노무사들의 분노(忿怒) +1 21.07.15 1,343 42 19쪽
86 86화. 장기전의 묘수 +1 21.07.14 1,357 42 18쪽
85 85화. 혈전 또 혈전 +1 21.07.13 1,329 42 19쪽
84 84화. 운명을 건 전쟁 21.07.12 1,350 42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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