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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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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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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다른 드라마잖아!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수요일 오전 10시 30분.

G.O.M 강남점.

다솜미디어 고위급 임원들, 취재기자들, 방송 카메라, 특별 초청객 등 320석 극장 좌석이 꽉 들어찼다.

상영관 입구에 <不汗黨> 입간판이 여러 개 세워져 있고, 실내에는 현수막도 걸려 있다.

이곳에서 DCN 특별기획 드라마 <불한당(不汗黨)> 제작 발표회가 열렸다.

드라마 제작발표회는 드라마 방송 시작에 앞서 작품에 대해 언론과 대중에 공식적으로 소개하는 자리다.

방영 일주일 전에 열린다.

보통 서울 시내 호텔 콘퍼러스룸을 애용하는 편이다.

<불한당>의 경우는 이색적인 발표회를 준비했다.

바로 극장을 빌려 이벤트를 벌이기로 한 것.

보통은 배우뿐만 아니라 각 방송사 드라마국장과 책임프로듀서, PD를 비롯해 제작사대표, 제작관계자, 홍보담당자 등 드라마 제작에 관련된 스태프들과 취재진도 제작발표회에 함께한다.

진행은 방송사 아나운서가 담당하는 편이다.


- 안녕하십니까. 박중환입니다. 이렇게 뵈니 무지하게 반가우면서 왠지 어색합니다. 그쵸.


박중환이 드라마 제작발표회 사회를 볼 레벨의 배우가 아니다.

그럼에도 류지호의 요청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 제가 사회를 보니까 되게 낯설지요? 저도 이런 건 처음입니다만. 오늘 <불한당>의 제작발표회가 끝나면 <박중환 쇼> 녹화가 있습니다. 우리 류지호 감독님이 워낙에 공사다망하셔야지요. 공사가 다 망한 게 아니라 너무너무 바빠서 스케줄을 막 짬뽕으로 하세요.


박중환이 한참 동안 너스레를 떨었다.

모두가 망하리라 예상했던 <박중환 쇼>는 여전히 방영되고 있다.

승승장구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시청률이 나오는 편이다.

특히 방한하는 해외스타들이 반드시 출연해야 할 토크쇼로 자리매김했다.

방송 내내 웃음이 빵빵 터지고, 지루할 틈 없이 몰입되는 쇼는 아니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주제와 내용이 없는 담백한 토크쇼다.

제작진과 박중환은 초대 손님을 자극해 웃음을 유발하거나 억지 눈물을 유도하지 않았다.

그저 조미료 없는 질문과 그에 대한 초대 손님의 진솔한 이야기가 있을 뿐.

시청률이 그렇게 잘 나오진 않는다.

해외스타가 출연했을 때마다 시청률이 한 번씩 폭발하는 것으로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누구도 프로그램 폐지를 입에 담지 않는다.

프로그램 자체는 경쟁 토크쇼보다 담담하고 다소 심심하지만, 초대 손님의 면면은 타사의 유사 포맷 프로그램을 압도하니까.

방송에서 쉽게 모실 수 없는 이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고유현 전 대통령이 출연했다.

류지호가 제안했던 한국 E-스포츠협회장은 거절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보수언론에서 난리를 쳐댔기 때문이다.

대신 비상임 고문을 맡기로 했다.

그를 통해 협회와 게임업계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박중환쇼>에 출연해서는 권좌에서 내려왔음에도 온갖 정치보복에 시달리고 있는 것에 대한 소회를 담담하게 털어놔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격려를 받았다.

그리고 TV쇼에 출연하게 된 이유를 자신을 더 이상 ‘정치‘에 이용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 중에는 진보적 정치진영도 포함된다고 못을 박았다.

일각에서는 조용히 살아도 모자란데 TV에 나와 동정여론을 얻으려는 모습 안쓰럽다고 조롱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전 삶에서 고유현이 죽고 나서 비하하고 조롱하는 것에 본진이었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주로 그런 기류가 흘렀다.

대중적으로 호응을 얻지 못했다.

암튼 고유현은 <박중환쇼>를 시작으로 간간이 대외활동에 나섰다.

가온그룹 직원을 상대로 한 사내강연도 하고, JHO Foundation의 초청으로 미국의 싱크탱크 기조연설도 했다.

내년에는 해외행사 초청만 네 군데를 받을 정도로 바쁠 예정이다.

그를 두고 보수언론뿐만 아니라, 자칭 진보언론에서도 고유현의 대외활동을 비판했다.

죄인이 팔자 좋게 해외여행이나 다닌다면서.


“전임 대통령이 폐위된 왕도 아니고. 여생을 유배지에서 보내야 하는 겁니까? 대통령은 무려 국가를 운영해 본 사람입니다. 임기 중에 다양한 이들을 만나고 어떤 대기업 회장 못지않은 경험을 하셨을 것 아닙니까. 그런 경험을 청년들과 나누면 안 되는 겁니까?”


자칭 보수단체라는 곳에서 가온그룹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며 협박을 벌이기도 했다.

당연히 가온그룹은 눈 하나 끔뻑하지 않았다.


"JHO Company는 정파와 상관없이 클린턴과 조디 워커를 초청해 사내강연을 열었습니다. 그 동영상이 NeTube에도 올라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왜 안 되는데요?“


가온그룹은 WHO와 UN 한국인 사무총장도 초청해 사내강연을 열기도 했다.

정파와 상관없이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 출신들도 자주 초대하고 있다.

김태평 대통령도 모시려고 했다.

안타깝지만 건강 문제로 강연을 못했다.

생존해 있는 전임 대통령 중에서 양질의 강연을 해 줄 인물은 고유현 정도 뿐.

대본 없이 청중과 질의응답을 할 실력이 있는 정의국 대통령 역시 임기를 마친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초대할 계획이다.


“퇴임 후를 돌봐주는 것으로 뇌물을 퉁 치는 거야?”


고유현이 초대 손님으로 확정되었을 때 박중환이 물었던 말이다.


“고유현과 정의국 대통령의 퇴임 후 기조연설이나 강연을 몽땅 NeTube에 올릴 거야. 두 사람 정도의 연설과 즉석 질의응답이 안 되면 아예 대통령 꿈도 꾸지 말라는 기준점 같은 것이랄까. 국회의원 중에서 보좌관이 연설 준비 안 해주면 입도 벙긋 못하는 작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정치인의 말은 그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류지호는 김태평, 고유현, 정의국과 차기 대권후보들이 끊임없이 비교되길 바랐다.

연설과 지적인 수준에서 그 세 명이 차기 대통령들의 최소한의 기준이 되길 기대했다.

민주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 공산주의조차 제대로 설명 못하는 모지리 대통령이 한국에서 탄생하지 않길 바라기에.

암튼 <박중환쇼>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필수코스가 되었다.

톰 메이포더 같은 단골 방한 스타는 박중환과 죽이 맞아서 신나게 류지호 흉을 보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제작자도 겸업하면서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를 오늘날의 위치로 키워낸 류지호의 업적(?)을 칭송하기도 했다.


- 오늘 기자분들이 참 많이 오셨는데... 잠시 제작발표회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좀 드리자면.... <박중환 쇼>가 평균시청률이 0.8%에요. 이게 케이블에서는 결코 낮은 수치는 아닌데.... 좀 그래요. 누가 그러더라구요. 박중환이 이름 걸고 하는 프로가 너무 인기가 없는 거 아니냐고.


참고로 다솜미디어와 함께 케이블TV산업을 견인하고 있는 BS미디어의 간판 버라이어티채널의 평균시청률은 0.5%이다.

다솜미디어의 모든 채널의 평균 시청률은 <박중환쇼>와 비슷하다.

올미디어를 인수하기 전에는 형편없었다.

만화영화전문채널 같은 채널이 합류하면서 평균시청률을 상당히 끌어올렸다.

암튼 <박중환 쇼>는 골수 시청자를 확보한 상황에서 큰 논란 없이 매주 시청자를 찾아가고 있다.


애애애앵~


오전 11시 정각에 상영관에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 자, 본격적으로 <불한당>의 제작발표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예고편부터 보시고 말씀 나누도록 하죠.


극장 불이 꺼졌다.

대형 스크린에서 10분 분량의 드라마 <불한당> 압축판이 상영되었다.

드라마 실제 영상 사이사이 한국의 폭력조직의 역사와 공권력의 대응 그리고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유착관계를 설명하는 자료화면도 들어가 있는 영상이었다.


“영화처럼 찍었다고 하더니, 화면 떼깔이나 미장센이 류지호 다워.”


제작발표회 영상이라 엄선한 영상들일 테지만, 심상치 않은 포스를 풍겼다.

단순히 <야인시대> 같은 폭력 미화나 낭만주의 폭력 세계 판타지를 담은 드라마가 아님을 처음부터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극장 불이 들어오고.


찰칵찰칵!


사진 기자들이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나 일제히 셔터를 눌렀다.

배우들이 먼저 입장하고, 연출자인 류지호와 최영웅이 마지막으로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극장 좌석의 앞쪽은 사진 기자석, 뒤는 취재 기자석으로 분리됐다.

사진 기자석과 취재 기자석은 남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찼다.

좌석 통로마다 쭈그리고 앉은 기자들까지 있을 정도다.

외신기자들도 상당수 자리를 했다.

외신기자들은 <불한당> 제작발표회보다는 류지호 개인을 취재하는 목적이 더 컸다.


- 외신기자분들을 위한 미니 인터뷰는 따로 마련되어 있다고 하네요.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드라마 제작발표회 진행순서는 대동소이했다.

제일 먼저 새로운 작품의 영상 시사로 포문을 연다.

제작진은 약 5~7분가량 되는 영상을 제작해 드라마 전반적인 스토리와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소개한다.

이후 포토타임이 이어진다.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단독사진 촬영과 커플촬영, 단체촬영이 진행된다.

잠깐의 휴식을 가진 뒤 공동인터뷰가 이어진다.

공동인터뷰는 제작PD와 발표회 현장에 온 배우들을 상대로 취재진의 질문에 대해 답변하는 시간이다.

담당 PD에게는 주로 작품 기획 의도와 장르, 배우 캐스팅 등 제작과 관련된 질문이 주어진다.

배우들은 각자 맡은 캐릭터에 대한 소개와 작품을 선택하게 된 계기, 촬영 소감, 촬영장 분위기와 에피소드, 포부, 시청률 공약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공동인터뷰는 한 시간을 넘지 않는다.

보통은 30분 정도 진행된다.

공동인터뷰가 끝나면, 배우와 취재진의 밀착인터뷰 시간이 주어진다.

두 그룹으로 나뉘어 25~30분 정도씩 진행한다.

공동인터뷰에서 시간 관계상 하지 못했던 질문이나 추가적으로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부분에 대한 심층인터뷰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드라마 <불한당>의 제작발표회는 일반적인 영화·드라마 제작발표회와 달랐다.

일단 오프닝부터 영화 뺨치는 완성도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이후부터 마치 하나의 방송 프로그램을 보는 것처럼 잘 짜인 코너들을 배치했다.

토크쇼 진행자 박중환이 사회를 봄으로써 약간의 품격까지 갖추었다.

제작발표회가 진행되는 동안 티저 영상, 캐릭터 소개 영상, 드라마 흥행 포인트 소개 영상, 다양한 촬영기법 관련 영상, 특수영상 장비 소개 영상, 메이킹 필름 등을 대형 스크린을 통해 취재진에게 소개했다.

이어 박중환의 진행으로 <불한당> 홍보마케팅팀이 선정한 키워드와 기자들의 질문을 취합한 것들을 중심으로 드라마 소개를 심도 있게 이어갔다.

류지호와 배우들은 키워드에 맞게 영화 내용과 에피소드, 영화 속 캐릭터 이야기를 하는데 열중했다.

취재진들은 무대 위에서 펼쳐진 미니 <박중환쇼>를 통해 다양한 기삿거리를 얻었다.

심층적인 내용은 질의응답 시간에서 해결했다.


- 다솜방송은 지난 2005년부터 시즌제를 표방한 드라마를 방영해 오고 있습니다. 최초의 시즌제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25시>는 종영을 했고, 그 시간대에 검사가 주인공인 <검사전기>가 방영 중입니다. 시도는 좋았지만, 시청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무모했다는 세간의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기자의 말 그대로다.

다솜미디어는 일명 ‘인천 유니버스‘라는 프로젝트로 의학드라마 <25시>, 소방 드라마 <119>, 수사 드라마 <광역수사대>, 법원 드라마 <검사전기>를 차례로 선보였다.

처음 방영을 시작했던 <25시>는 시즌 4를 끝으로 종영했고, 시청률이 가장 잘 나오는 <119>는 현재 시즌 5시즌을 방영 중이다.

올해 3번째 시즌을 맞이한 <광역수사대>는 정통 한국식(?) 수사 드라마를 표방하고 옆집 아저씨, 삼촌 같은 형사 캐릭터들의 구수한 일상사가 일품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식 과학 수사나 정통 수사물을 기대한다면 다소 심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건해결과 함께 각 등장인물들이 처하게 되는 일상에서의 소소한 문제들이 해결되는 과정을 한국식으로 유쾌하고 따뜻하게 풀어냈다는 평이 주를 이루고 있다.

가장 마지막에 방영을 시작한 <검사전기>는 법정에서 벌어지는 공판과 실제 사건 케이스에 집중하는 드라마로 전문성이 두드러지는 드라마다.

에피소드마다 주인공이 해결해야 하는 각종 법률과 사건 케이스가 복잡하고 어렵게 다가오는 단점이 있어서 시청률은 다른 시리즈보다 좋지 못했다.

때문에 <검사전기>가 예정보다 일찍 종영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대본을 작업한 김윤희 팀도 실패를 순순히 인정하는 분위기고.


“억지로 밀어붙인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내 고집이 크게 작용했죠.”

- 왜 밀어붙이셨는지 대답해 주실 수 있습니까?

“시즌제 드라마를 국내 TV시장에 정착시켜보고 싶었습니다.- 첫 도전 이후로 5년 정도가 흘렀는데.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정착됐다고 보십니까?

“대체로.... 만족합니다.”

- 최근 들어 방송계 안팎에서 시즌제라는 말을 자주 언급합니다. 드라마는 물론 버라이어티, 심지어 리얼리티 프로그램에까지 '시즌제'로 기획되고 있습니다. 혹시 <불한당>도 시즌제로 기획하신 겁니까?

“일단 12회로 완결입니다. 현재로서는 다음 시즌 계획이 없습니다.”

- 다솜의 시즌제 드라마의 성공과 BS 미디어의 시즌제 시트콤 <막돼먹은 0자씨> 등으로 인해 요즘 드라마업계에선 시즌제가 빨리 정착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습니다. 외국과 달리 국내 시즌제 드라마들이 시청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으니까요. 할리우드에서 다수의 시즌제 드라마를 성공시킨 류지호 감독께서는 그 원인이 뭐라고 보십니까?


굳이 미국의 시즌제 드라마까지 가지 않더라고 가까운 일본에서도 성공한 드라마가 나오면 다음해 어김없이 시즌2가 나온다.

하지만 한국은 다솜미디어의 몇 개 시즌제 드라마를 제외하고 한결같이 맥을 못 추고 있다.

지상파에서 최초로 시즌제를 시도했던 <궁‘S>가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한국 최초의 시즌제 드라마는 시즌4까지 제작된 <학교>일 겁니다. 지금의 개념에는 맞지 않을 수 있지만.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즌제 드라마처럼 이어졌고 많은 스타들을 배출하기도 했죠.”


KBC 드라마 <학교>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사실적으로 접근하면서 만 3년 넘게 시즌 4까지 방송되었다.

이전 삶에서는 2012년 시즌 5를 이어갔다.

시즌별 방송 시기와 방송 횟수 등을 볼 때 일관된 규칙이나 원칙은 없었지만, 시즌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동일했다.


“다솜의 <인천 유니버스>와 BS의 <막돼먹은 0자씨> 정도를 빼고 지금까지 국내에서 제작된 드라마 가운데 진정한 시즌제는 없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시즌제 드라마는 시즌제라기 보다는 전편의 후광을 얻는 전략만을 구사합니다. 시즌제 드라마의 필수 요건인 사전 제작,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할 수 있는 작가군, 시즌제를 염두에 둔 캐스팅 작업 등을 배제한 채 타이틀과 비슷한 설정만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죠.”


류지호가 잠시 말을 끊고 머릿속으로 다음 말을 정리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미국의 경우 드라마 제작단계 때부터 시즌제를 염두에 두고 제작사와 배우 또 에이전트 사이에서 계약을 맺습니다. 드라마가 인기를 얻어 시리즈가 계속 제작되면 별 이변이 없는 한 배우들이 출연을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제작사 역시 서두르지 않고 배우가 출연할 시기를 충분히 기다렸다가 제작에 들어갑니다. 반면 한국의 풍토는 어떨까요?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일단 전편에서 히트한 배우는 시즌2에 출연하는 것을 꺼립니다. 전편만 못하다는 평가를 듣기 싫어하는데다 굳이 이 작품을 하지 않더라도 출연제의가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제작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편의 출연배우의 메리트를 알지만 높아진 몸값에 따른 제작비 상승을 감수하기 싫어하고 다른 원작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걸 선호합니다. 그러다보니 처음 계약할 때부터 시즌제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닌 단발에 그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류지호의 설명을 가만히 듣고 있던 박중환이 끼어들었다.


“배우의 고정된 이미지보다 변화를 좋아하는 한국 드라마 시청자들의 심리도 시즌제 드라마가 맥을 못 추게 하는 원인은 아닐까요?”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미국이나 일본은 일단 드라마 하나가 히트하면 출연하는 배우가 후속작품에 그대로 출연할 경우 어느 정도 시청률이 보장된다.

그만큼 배우나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크고 충성도도 높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누가 나온다고 해서 시청률이 보장되는 드라마는 극히 예외적이다.

배우, 감독, 작가가 3박자를 이뤄야 하는데, 그런 경우도 극히 드물고.

시즌이 계속될수록 꾸준히 인기를 끌려면 철저하게 숙성되어야 한다.

재미와 마케팅까지 더해져야 하고.

그중에서 하나만 삐끗해도 인기를 장담할 수 없다.

신규 아이템이나 시즌제나 똑같이 리스크가 있다면, 아예 새로운 드라마를 기획·제작 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한국 방송가에서는 일반적인 생각이다.


“지상파에서 최초로 시즌제 개념을 드라마에 도입했다고 해도 그들로서는 환경과 여건상 도전에 능동적이지 못합니다. 또 국내 소규모 케이블TV는 여력이 없지요.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시즌제 드라마의 성장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다솜이나 BS 미디어의 경우는 지상파와 달리 기획과 편성에 있어 탄력적인 운용이 가능합니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버라이어티까지 시즌제를 적용할 수가 있지요. 물론 최고경영진의 인내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 한국에서도 시즌제 드라마가 계속 성공할 수 있을 거라 보십니까?

“한국형 시즌제 드라마가 붐을 이루기 위해서는 보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겁니다. 시즌제 드라마는 장르에 유리합니다.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가는 장르, 특히 수사물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맨스물보다 지극히 장르적인 이야기에서 문법과 캐릭터가 확실한 만큼 시즌을 이어가기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등장인물의 틀이 정해져 있어도 매번 사건이 달라지기 때문에 시즌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기 쉽습니다. 단 집단작가 시스템과 사전제작 시스템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쪽대본으로 프로덕션이 진행되는 현재의 상황에서 시즌제는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미국에서 시즌제 드라마가 어떻게 해서 나타나게 됐을까.

지극히 상업적인 판단에서 생겨났다.

광고주의 신상품 출시에 맞춘 기획 및 편성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미국의 지상파 방송사는 매 년 2~3월 사이에 연간 광고 계약을 일괄적으로 체결한다.

이 광고 수주 결과에 따라서 모든 방송 프로그램 편성이 수립된다.

방송사는 대형 광고주들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과거에는 미국의 자동차 기업들이 가을에 신차를 주로 발매했다.

그것에 맞춰 9월부터 방영하는 드라마 시즌제가 정착되었다는 설이 있을 정도다.

과거에는 주로 봄에 파일럿을 방영하고, 그 반응을 확인한 후 9월에 본 시즌을 정식으로 방영하고, 본 시즌이 방송되는 동안 다음 시즌을 제작하고, 다시 9월에 새로운 시즌을 시작하는 형태로 운영되었다.

지금에 와서는 지상파 외에도 수백 개의 케이블 채널에서 각종 프로그램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에 그에 맞대응하기 위해 9월 본 방송 외에도 봄 시즌에 시작하는 시즌제 드라마가 따로 런칭되고 있다.

가령 Tri-StellarTV의 경우 봄, 가을에 새로운 드라마 시즌이 시작되고, 매주 1회 방송하는 드라마와 2회 방영하는 드라마로 나눠 십여 편의 드라마가 일 년 내내 시즌제로 돌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미국 드라마가 전부 시즌제로 가는 것은 아니다.

기대했던 시청률이 나오지 않거나 광고매출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언제든지 시즌제가 폐기 되고 심할 경우 멀쩡한 드라마가 조기종영하기도 한다.

정규편성을 잡지 못하고 파일럿 단계에서 사라지는 드라마는 일일이 따질 수 없을 정도로 많다.

TST, TBO 같은 프리미엄 채널들은 월간 이용료가 주 수입원이다.

광고 압박이 없다.

때문에 편성에 있어서 부담이 덜한 편이다.

그로 인해 틀에 박힌 공식에 입각한 드라마에서 탈피할 수 있다.

특정 타깃 시청층을 겨냥한 과감한 기획과 소재를 시도할 수 있다.

암튼 미국에서 시즌제 드라마가 보편화 된 것은 작품 인지도를 확보했기에 홍보·마케팅 비용을 절약할 수가 있고, 그런 만큼 안정적인 시청률 결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 만들어진 세계관을 바탕으로 시즌을 거듭할수록 더욱 깊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작가들도 좋아한다.


“미드로 인해 젊은 시청자를 중심으로 시즌제 드라마가 익숙해졌습니다. 제작자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타이틀로 40회, 120회 장수 프로그램을 이어가기보다는 이야기의 빠른 변화를 주기 위해서 시즌으로 끊어가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리스크는 줄이면서 시청자들을 계속 잡아둘 수 있는 만큼 방송가에서는 앞으로 시즌제 드라마 제작이 더욱 활발해질 거라고 봅니다.”


기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 그런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었으니까.

다솜미디어의 과감하고 밀어붙이기식 시즌제 드라마 시도와 성공이 한국의 방송지형에 자극을 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은 시즌제 드라마가 흥행 보증수표가 될 수는 없다는 것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류지호가 보기에 한국의 시즌제 드라마의 미래는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같은 배우와 제작진이 계속 시리즈를 이어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장 중요한 이야기의 통일성이 깨지면서 시청자를 배신하는 꼴이 됩니다. 드라마의 정체성과 시즌1에서 시청자들을 끌어들인 포인트를 유지하면서도 다음 시즌부터 새로워야 하는 것 또한 쉽지 않고, 전편의 파괴력을 후속 시즌에서 깨기 어렵다는 측면도 고려해야 합니다. 때문에 시즌2부터는 1보다 두세 배의 노력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쪽대본으로 생방송처럼 프로덕션을 진행했다가는 무조건 망합니다. 배우, 매니지먼트, 집단 작가 체제, 감독 역시 처음부터 시즌제에 동의한 채 계약을 체결해야 시리즈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가 있습니다.”


DCN 시즌제 의학드라마 <25시>가 4시즌을, 소방·응급 드라마 <119>가 무려 5시즌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제작비를 댄 류지호의 뚝심을 들 수 있다.

첫 시즌 방영 때 광고가 잘 붙지 않았음에도 백퍼센트 사전제작으로 최소 3시즌을 무조건 제작하기로 배우, 작가, 감독, 스태프들과 계약을 체결해 주었다.

두 번째는 무명의 배우들로 주요 배역을 채웠다는 점이다.

대형 매니지먼트 회사를 끼고 있지 않은 대학로 연극배우와 조단역급 공채탤런트들을 집중적으로 캐스팅함으로써 매니지먼트의 횡포와 스타배우의 갑질을 사전에 차단할 수가 있었다.

드라마에 캐스팅 된 배우들은 최소 3시즌 출연이 보장되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큰 보탬이 됐다.

백퍼센트 사전제작(실제로는 95%)을 했기 때문에 스케줄 관리도 용이했다.

류지호의 소꿉친구라 할 수 있는 공다연은 <인천 유니버스>에서 전방위적으로 활약을 펼쳤다.

그를 바탕으로 지상파와 영화를 넘나들면 개성파 조연배우로 맹활약 중이다.

Aram 프로덕션의 사장이자 프로듀서인 최준영도 드라마 PD로 진로를 성공적으로 전환했다.

그 외에도 <인천 유니버스>에 출연한 것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가 많았다.

많은 배우들의 몸값도 껑충 뛰었다.

약간 엉뚱한 이유가 마지막이다.

가온그룹은 백원일보와 판매부수 조작 및 명예훼손 관련 소송을 수년째 이어가고 있다.

그 때문에 백원일보에 집행하던 연간 수백억 원의 광고비를 절약할 수가 있었다.

그 광고비를 고스란히 <인천 유니버스> 드라마 앞뒤 광고에 몰아주었다.

어차피 써야할 매체 광고비다.

이에 대해 백원일보는 부당 내부거래 혹은 일감몰아주기 의혹을 제기했다.

계열사에 광고를 많이 준 것이 일종의 일감몰아주기에 해당한다나.

공정위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광고비 집행이 정상적인 거래보다 유리한 조건에 거래된 사실이 없고, 비계열 독립기업이 얻기 어려운 특혜성 거래기회 제공으로 볼 수도 없으며, 특히 오너에게 부당한 이득이 돌아가는 부당한 내부거래가 아니라는 점 등, 문제제기는 가능하지만 공정거래법 상에서 제재를 가할 사항이 아니라고 결론이 지어졌다.

백원일보의 내부거래 트집 잡기로 인해 가온그룹이 뜻하지 않게 덕을 봤다.


“가온그룹이 반도체도 만들고 농약과 종자 회사를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네!”

“아네모네 프랜차이즈만 해도 계열사가 도대체 몇 개야?”


백원일보의 트집잡기로 광고들이 화제가 되면서 대중들은 그 간 잘 몰랐던 가온그룹 계열사를 알게 되는 효과도 있었다.


- 마지막 질문 딱 하나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진짜 <불한당>은 12화로 끝입니까?


작가의말

한 주 마무리 잘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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