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의 과거, 세계의 미래
한준의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한동안은 조용했어요. 중동에서 시도 때도 없이 터지던 테러조차도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운 시기가 잠깐 이어졌죠. 하지만 그건 폭풍 전야와도 같은 거였어요."
잠시 생각을 정리한 한준이 입을 열었다.
"2032년인가에. 전 대학원에 있었어요. 석사를 따고 천문학 박사 과정에 있었지요. 세상은 별 일 없이 진정된 듯 했고. 전 그냥 학교 다니고. 가끔 강사일 하고 하면서. 평범하게 지냈지요. 하지만 사실. 세상은 조용한 게 아니었어요.
지금도 이름이 기억 나요. 박천성이라는. 나이 먹은 요원 분이셨죠. 어느 날. 학교 끝마치고, 내가 사는 원룸으로 돌아가는데. 골목에서 승용차가 빠르게 달려와 절 치려고 했어요. 브레이크도 안 밟고 달려오는데. 그 천성씨가 저를 빼내줘서 간신히 살았지요. 저를 치려고 했던 차가 멈추더니 거기서 한국 사람과 외국 사람이 각각 내려서 저에게 총을 쐈어요."
혁수는 놀라 물었다.
"총을 쐈다고? 그렇다면 자네를 계획적으로 죽이려고 했다는 거야?"
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왜?"
한준은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과학도라서 그랬어요."
혁수와 미림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 되었다. 한준은 담담히 말했다.
"전세계적으로. 공학도 학살이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었어요. 쯔레스키 머신 도면이 공개된 이후. 중동이나 아프리카, 남미의 여러 후진국들이 무서운 속도로 기술 발전을 이루기 시작했거든요. 여러 나라들이 레이져 MD나 레일건 같은 무기를 갖추기 시작했고, 이란은 네오 조지 워싱턴보다는 훨씬 작지만 그래도 공중전함을 건조하기 시작했어요. 소말리아가 궤도폭격 위성을 발사했을 때는 세계인이 놀랐지요. 해적질이나 하고 사람들이 굶어죽는 조그만 나라에서 궤도폭격 위성이라니."
혁수는 혀를 찼다. 한 사람의 과학자로 인해 세상이 그토록 무섭게 바뀌다니.
"강대국들은 그런 약소국들이 위성을 발사하거나 공중전함을 등장시킬 때마다 엄청난 비난을 쏟아냈어요. 2030년에 네오 에이브러햄 링컨 호를 출항시킨 미국은 다시 네오 조지워싱턴을 아라비아 해쪽으로 움직였죠. 러시아는 계속해서 궤도 폭격 위성을 쏘아올렸구요.
좋은 일도 있었어요. 어쨌든 핵융합 무기 체계가 생겨서인지. 구식 핵무기와 생화학 무기 폐기는 이루어지는 듯 했어요. 오랫동안 건조한 날씨 때문에 고생했던 사우디나 중국은 마이크로웨이브를 이용한 기상조절 기술을 완성해 사막에 비를 내리게 해서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 황사 같은 것도 사라지게 되었죠. 그 즈음에 인간 - 기계 접목 기술이 완성되어 장애인들이 기계화 신체 덕분에 일반인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고. EM wave 치료술 덕에 백혈병이나 암, 에이즈가 정복되었지요.
하지만 그것은 기존의 강대국이나 세계 굴지의 식량 대기업, 제약 대기업, 군수 업체에겐 치명적인 흐름이었어요. 그래서 그들은 직접적인 군사대결은 못하고, 대신 특수요원을 이용한 각 나라들의 공학도 학살을 시작한 거에요."
잠시 씁쓸한 표정을 지은 한준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수만명이 죽었었나봐요. 보도가 되지 않았지만 거의 4,5년에 걸쳐 너무 많은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의문사하자 각 나라들도 눈치를 채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2032년엔가? 어느 CIA 요원이 폭로를 하게 되요. 오퍼레이션 코카서스 이글 이라고 하더군요. 참 오만한 작전명이에요."
혁수가 눈을 크게 떴다.
"코카서스라면. 산 이름 아닌가? 혹시...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전해주었다가 제우스에 의해 묶인 그 산 이름 아닌가?"
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아먹는 독수리. 코카서스 이글. 감히 자신이 제우스의 역할이라는 미국의 오만이죠. 미국은 적대국 뿐 아니라. 자신의 동맹국인 일본이나 우리 한국의 과학자까지도 암살했어요. 아무튼 그 CIA 요원은 너무나도 많은 암살을 자행했고, 심지어는 고교생까지 천재라는 이유로 죽였다가. 도저히 양심의 가책을 이길 수 없어 이란 쪽에 망명하고는 모든 사실을 실토하죠. 그 영상은 인터넷으로 전 세게에 공개되었고, 미국에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죠."
혁수는 허허 하고 실 없이 웃었다. 한준이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이야기가 조금 샜네요. 아무튼 그 박천성이라는 분은 그런 코카서스 이글 작전에 대한 단서를 잡고 외국에서 잠입한 첩보요원을 추적하던 분이셨나봐요. 그러다가 제가 당할 뻔 한 걸 구해주신 거죠. 하지만 그분은 저를 지키려다가 그만 가슴에 총을 맞고 돌아가셨어요."
미림이는 어느새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한준은 가만히 미림이의 손을 잡아주고는 말했다.
"그리고 2034년.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죠. 다른 나라도 아닌. 소말리아에서. 아라비아 해 상공에 떠있는 네오 조지워싱턴을 하이퍼 크루저 미사일로 격추시켜버렸어요."
혁수가 물었다.
"레이져 MD라는 것이 있어서 미사일을 다 막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의 미사일은 그랬죠. 하지만 하이퍼 크루저 미사일은 레이져 MD를 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어요. 바로 클로킹이지요."
혁수는 입을 벌렸다.
"하이퍼 크루저 미사일. 마하 15까지 가속하고, 사거리는 3만 킬로미터에 달하며, 비행중에도 자세를 바꿀 수 있고. 목표물에 도달했을 때 플라즈마로 몸을 뒤덮어 투명상태가 될 수 있는 기능까지 갖추었죠. 물론 투명 상태가 되었다고 해도. 그당시 미래에는 적외선과 위상배열 레이더 관착 같은 각종 탐지기술이 일반화되었을 때라 투명화한다고 해도 감지하는 건 문제가 안 됬어요. 그렇지만 아무리 감지가 가능하다고 해도. 마하 15로 날아오는 미사일을 막으려면 레이져 MD 밖에는 대안이 없는데. 투명화가 되어버리면 레이져는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미사일을 절단해야할 레이져가 그대로 굴절 관통해버리니까."
혁수는 탄성을 질렀다. 투명화가 되는 것은 빛이 관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레이져도 빛이다. 투명화 기술이 대 레이져 방어장치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한준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 하이퍼 크루저 미사일을 어디서 개발하게 되는 지 아세요? 북한이에요. 북한은 지금도 그들만의 독특한 미사일 노하우를 가지고 있지요. 그들은 쯔레스키 리액터와 그들의 미사일 기술을 접목해 하이퍼 크루저 미사일을 개발한 후. 그걸 제 3세계에 닥치는 데로 팔아버렸지요. 식량을 구하려고."
허. 하며 혁수는 깊이 탄식했다.
"어쨌든 네오 조지워싱턴은 격추되었고, 그 안에 타고있던 수천명의 승무원들은 전원 사망했어요. 그것이 하이퍼 크루저 미사일에 의한 거라는 걸 알게된 미국은 북한과 그 미사일을 사들인 모든 나라를 테러국가로 지정하고 복수하겠다고 나섰어요. 최신 병기와 재래식 병기 모두를 동원해 전시 체제를 갖추자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을 견제하고 나섰지요. 그동안 건조된 수십척의 공중전함들이 아라비아 해와 태평양 쪽. 그것도 제주도 남쪽에 대치했어요.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져갔고. 결국 네오 에이브러햄 링컨이 태평양 쪽으로 왔지요. 하지만..."
잠시 고개를 숙였던 한준은 빠르게 말했다.
"네오 에이브러햄 링컨은 더욱 많은 무장을 갖추면서도 더욱 날씬하고 소형의 공중전함이었어요. 길이가 600미터 조금 넘는. 네오 조지 워싱턴보다 훨씬 작고. 그래서 훨씬 빨리 비행할 수 있었지요. 그런데... 누가 그랬는 지는 몰라요. 러시아가 그랬는지. 아니면 궤도 폭격 위성을 가진 다른 나라가 그랬는지. 플라즈마 궤도 폭격이 가해졌고. 네오 에이브러햄 링컨은 어떻게 회피 기동을 했지만. 결국 명중되고 말았나봐요. 그런데..."
한준은 얼굴을 사정없이 일그러뜨렸고, 그걸 본 미림과 혁수는 불안함을 느꼈다.
"네오 에이브러햄 링컨은 완파되지 않았지만 제어 계통이 망가졌는지. 한계 속도 이상으로 폭주했어요. 네오 에이브러햄 링컨은 불길에 휩싸인 채 마하 1이 넘는 속도로... 지구를 한 바퀴 반을 돌았어요. 거의 이틀에 걸쳐. 세계인의 3분의 1이 불탄 잔해와 불탄 시체를 땅에 떨구며 폭주하는 네오 에이브러햄 링컨의 모습을 육안으로 봐야 했어요. 나머지는 인터넷 영상으로 보았지요. 이틀동안 폭주하던 에이브러햄 링컨은 호주에 추락해 대폭발을 일으켰어요."
혁수는 질린 얼굴로 "맙소사."를 외쳤다. 한준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약간의 울먹임과 함께.
"며칠 뒤. 2035년 4월 11일. 최고 출력의 위성 궤도 플라즈마 폭격이... 뉴욕과... 워싱턴 DC에 가해져요. 거의 몇 시간 차이로... 모스크바와 러시아 서부 도시들에 미사일들과 위성 폭격이 날아들었어요. 그날 하루에만 수억 명이... 그냥 증발했어요... 저의 아버지도... 그때 돌아가셨죠."
결국 한 방울의 눈물이 한준의 볼에 떨구어졌다.
"상호 방위 조약? 복수? 혹은 남은 도시의 방어? 그런 명목들로 적대국의 도시나 군사시설에 대한 무차별 폭격이 이루어져요. 하이퍼 크루저 미사일. 레일건. 플라즈마 폭격. 각국이 자신이 가진 최고의 무기로 적대국이었거나 마음에 안 들었던 나라를 공격했지요. 공격받은 쪽은 또 공격하고. 그 시대의 무기들은 전부 위성궤도나 초장거리에서 사용이 가능했기에 숨길려고 하면 누가 공격했는지 알아내기가 어려웠어요. 그러니 일단 먼저 공격하고 보는 거였어요."
주먹을 부르르 떨던 한준은 눈물 젖은 얼굴로 말했다.
"전 그당시... 박사학위를 딴 후에... 나로 우주센터에 있었어요. 무차별 폭격이 시작되자... 정부는 미리 만들어두었던 우선 구출대상자의 목록에 따라... 나로 시가 폭격당할 때 겨우 구출되서 목숨을 건졌어요... 그리고 전주 쪽에 있던 지하 벙커에 들어가게 되었죠. 전주도 폭격을 받긴 했지만... 지하시설들이 약간 남아있었거든요."
잠시 헉헉 대던 한준은 기운 빠진 목소리를 토해냈다.
"3일 정도 지났을 때. 더 이상... 인터넷도 작동하지 않았고... 모든 방송은 끊겼어요... 지하 벙커 외부와 전혀 통신도 되지 않았고... 지하 벙커 안의 사람들 빼고는... 아무와도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우리는... 세상이 거의 괴멸되었다는 걸 알게되었죠..."
한준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흐느끼듯 그의 어깨는 들썩거렸고, 미림이가 다가와 그의 어깨를 감싸주었다. 혁수는 착잡한 심정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 작가의말
넵, 픽션입니다.
설정이 충분히 치밀하진 못합니다. 저도 좀 즉흥적으로 쓴 거라 . 으어어
너그러이 봐주시길.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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