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렙 히로인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9.16 14:10
연재수 :
274 회
조회수 :
34,082
추천수 :
315
글자수 :
3,873,671

작성
22.06.16 08:20
조회
99
추천
2
글자
33쪽

41

DUMMY

어스름하니 구름이 낀 하늘 아래, 에이브안의 집인 요새의 성벽 위에서 리카드는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좋은 마을입니다.”


오늘은 굉장히 농밀한 시간을 보낸 하루였다.


결혼식 시작 전에 도착하기 위해 바삐 길을 서둘러왔고, 쉴 틈도 없이 하객으로 참여하기까지 했다. 거기에 더해 작은 오해까지 참으로 다난하였다.


이스피리아의 오해만은 진땀을 뺏었지만······ 그래도 정말 괜찮은 하루였다.



“이렇게 거짓 웃음과 미소를 짓지 않아도 됐던 적이 정말 얼마 만인지요······.”


그저 이스피리아를 데려오기 위해 긴장하고 마을로 왔건만,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것만 같다.


걱정이었던 마을 주민들도 차츰 날이 죽어 제법 친근하게 대해줘 같이 술도 마시게 됐다. 여전히 몇 명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지만.


‘제가 한 일을 생각하면 당연하겠지요.’


오히려 경계를 푼 사람들이 안이하다고 할 수 있었다.


어떤 속내를 숨기고 행동할지 모르는 일이건만······


원수라도 모르는 척 웃는 얼굴로 함께 지내다 방심한 틈에 뒤에서 칼로 찌를 수 있는 게 사람이었다.


적어도 자신이 보아온 세상은 그랬다. 그렇게 함부로 믿는 게 아니라며 경고하고 싶었을 정도였다. 그것도 가족, 형제라 할 수 있는 자를 공격했는데 말이다.


그래도 덕분에 좋은 추억이 생겼으니 감사한 일이었다.


‘이것도 이스피리아 양 덕분일까요.’


슬쩍 웃은 리카드는 그녀, 이스피리아를 떠올려봤다.


나이에 비해 성장이 더딘 듯 보였지만, 밭일하는 평민으로는 전혀 보이질 않을 만큼 굳은살 하나 없는 곱디고운 손과 반반한 생김새. 찰랑거리는 머릿결과 반들거리는 부드러운 피부는 어지간한 귀족들보다도 나았다. 그런데다가 고급스러운 의복까지.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절대 그녀를 평민이라 감히 생각 못하겠지.


결혼식 때는 요정이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줄 알았다. 무심코 요정이라 말할 정도로 눈을 사로잡았었다.


그런 이스피리아는 사랑받고 있다고 해야 할까.


굴강해 보이는 마족들은 아가씨라 부르며 고이 모시고 있었고, 인간 주민들도 어여삐 여겨주고 있었다. 주민들의 경계심이 많이 누그러진 계기 중 하나가, 그녀가 친근하게 대해준 덕분이기도 했으니.


그리고······ 어리긴 하나 그녀는 마을 내에서 제법 높은 위치에 있는 존재로 보였다.


촌장의 손녀라는 것도 있겠지만, 그녀의 발언력은 이상할 정도로 강했다.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른 자신이 오늘 초대받을 수 있던 것도 이스피리아의 말 한마디로 이루어졌던 거니까.


‘그때 얼마나 놀랐던지.’


설마 초대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본인의 성스러운 결혼식에 외부인을―― 그것도 대놓고 꿍꿍이속을 보이며 학원으로 입학시키려 하는 자신을 말이다.


같이 있던 그녀의 가족들에게선 의아할 정도로 반대의 말이 없었지만······ 이해는 갔다.


평소엔 맹한,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여자아이처럼 보이지만, 순간 발하는 이체의 반짝임은 그녀의 말을 가벼이 여기기 어렵게 했다. 그렇기에 주민들도 그녀의 발언을 가볍게 넘기지 않는 거겠지.



“내 동생을······ 이스피리아양을 얕보지 말라고요? 후후······”


그녀를 얕보다니. 그럴 일은 없다.


그날――


금빛으로 하늘이 물들어있던 그 날, 곱게 빛나는 은발을 흩날리며 내려다보던 분홍 눈동자가 뇌리에 선명했으니······



“정말 흥미로운 분입니다. 이스피리아 양은.”

“――남의 아내를 탐내는 건가?”

“읏?!”


자신의 바로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리카드는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검정색과 흰색으로 조합된, 고풍스러운 복장인―― 목소리의 주인인 찬크에르를 바라봤다.


‘전혀······ 몰랐습니다.’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이토록 가까이 접근했건만.


팔짱을 끼고 있는 찬크에르의 위치는 콧바람이 닿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가까웠다. 만약 그가 나쁜 마음이라도 먹었으면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그러한 상황에 리카드는 살짝 식은땀이 났다.


‘최근에는 겪어보지 못한 일들을 이 마을에 와서는 잔뜩 경험하는군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랬다.



“깜짝 놀랐습니다, 찬크에르레이 씨.”

“찬크에르면 된다.”

“······알겠습니다, 찬크에르.”


만년설보다도 차가울 것만 같은 음성이다.


말투와 표정도 그렇지만 분위기 자체가 완전 딴판이었다. 이스피리아와 있을 때의 부드럽고, 어딘가 나긋나긋한 분위기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어둑한 하늘과 동화되어 보이는 칠흑의 눈은 마주 보고 있자니 살이 떨리는 공포심을 유발했다.


어딘가의 유서 깊은 귀족처럼 기품 있는 모습은 여전했지만, 지금 찬크에르의 분위기로는 더욱 오싹하게 할 뿐이었다.


마치 두렵기만 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와 대치하는 듯하다.


떨리는 심정을 감추며 리카드는 애써 태연하게 말을 걸었다.



“조금 전 발언은 다른 뜻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오해 살만한 말을 하여 죄송하군요.”

“그러겠지. 네놈은 치유마법의 연구를 위해 리아에게 접근한 거니.”

“루데릭에게······는 아니겠죠. 그가 말했을 거라 생각되진 않는군요.”

“그렇지. 보기와는 다르게 입은 무겁고, 하는 말은 지키는 남자니까. 루데릭은. 우연찮게 들었을 뿐이다.”

“우연찮게······ 입니까······”


절대 아니다.


리카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절박하게 아내를 학원으로 데려가려 하는, 정체 모를 자를 경계하지 않을 남편이 어디 있겠는가.


분명 주시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서, 어떻게 들었는가.


그것을 모르겠다.


지금처럼 등 뒤로 와도 전혀 모르게 할 정도로 은밀 능력이 뛰어나다면 근처에서 들었다고 생각해도 되겠지만······ 왠지 그렇진 않을 거 같다.



“혹시. 이 마을 전체에 걸친, 광범위하게 펼쳐진 마법으로 들으신 게······ 아닙니까?”


찬크에르의 기분을 해칠 수도 있는 질문이었다.


걸고넘어지지 않아도 됐다. 그냥 수긍하는 척하고 넘어갔어도 됐었다. 자진해서 의심을 살 필요는 없었다.


특히나, 이스피리아를 꼭 데려가고 싶은 자신의 입장에서는.


그럼에도 리카드는 알고 싶었다.


――이 찬크에르레이라는 남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종종 자신의 노림수가 밝혀지면, 이성을 잃고 판단이 흐려지는 자들을 상당수 봐왔기에 리카드는 조금 긴장했다. 물론 찬크에르는 그러한 자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당장이라도 마주 본 눈을 피하고 싶을 정도의 압박감을 견디며 리카드는 버텼다.


그런 리카드를 무미건조하게 보던 찬크에르의 입이 열렸다.



“제법이군. 알아볼 수 있었나.”

“아뇨. 너무 정교한 ‘술식’인지라 무슨 마법인지 도통 알 수 없었습니다. 단지 마법이 발동되고 있다 정도만 알 수 있었죠.”

“흠. 술식이라······ 마력의 흐름을 말하는 건가.”

“맞습니다. 마법은 사용자에 따라 같은 결과라도 구현되는 방법은 제각각이지만, 마력의 흐름만큼은 어느 정도 비슷합니다. 그 마력의 흐름을 저희들은 술식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반대로 마력의 흐름을 바꾸더라도 같은 결과를 내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런데 술식이라며 틀을 정하다니······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그렇긴 합니다. 오히려 고정관념이 생겨 더 높은 경지에 오르는 데 큰 걸림돌이 될 뿐이긴 하죠.”


보통 사람은 자신이 배워온 것을 부정하면 싫어하기 마련이건만. 오히려 긍정하는 자신을 찬크에르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봤다.


그에 조금 안심한 리카드는 이어 말했다.



“하지만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법이 본직이 아닌 사람들―― 예를 들어, 평범한 시민들이나 몸을 위주로 쓰는 분들도 쉽게 마법을 사용 가능케 합니다. 정해진 흐름대로 마력만 조절하면 되니까요. 마력조작은 어느 정도 괜찮으나 이미지를 잘 잡지 못하는 사람들은 더욱 쉽게 할 수 있죠.”

“마법을 널리 보급하려는 방편인가······ 발동어 같은 걸 외치는 것도 부족한 이미지를 확고히 하려는 거군. 조금이라도 성공률을 높이려고 말이야.”

“정확하십니다. 간단한 마법이라도 사용할 수 있으면 편해지는 일은 제법 많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로 인해 앞날의 성장을 방해받는 건 뼈아프지만요.”

“흠······”


뭔가 생각하는 듯 보이던 찬크에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무엇이 그의 마음에 들었는지는 모르겠다만, 몸을 짓누르는 압박감이 약해진 걸 느낀 리카드는 남몰래 숨을 토해냈다.



“그런데······ 상당히 자세하게 아십니다. 혹, 좋은 스승이라도 계셨는지요?”

“그런 건 없다.”

“대단하시군요. 마을에 이만한 마법을 걸 수 있는 사람이 독학이라니. 마력량도 굉장하실 테지만, 지식 쪽으로도 훌륭하시군요. 이스피리아양의 옷에 걸려있던 마법도 직접 하신 겁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정말 굉장하군요······ 마을에 펼쳐진 마법과 마찬가지로 몇 가지의 마법이 걸린 건지, 무슨 효과가 있는 건지도 전혀 모를 정도로 치밀하게 짜인 술식이었는데 말입니다.”


음음 거리며 리카드는 끄덕끄덕 고개를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보던 찬크에르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아뇨. 그리 경계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다른 꿍꿍이를 꾸미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이스피리아 양뿐만 아니라, 이 마을도 굉장히 흥미로워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찬크에르레이, 당신도요.”


찬크에르는 말해보라는 듯 눈짓했다.


그 뜻에 따라 리카드는 이어 말하였다.



“인간인 주민들은 분명 평범한 농민일 텐데 어째서인지 다들 체내의 마력조작이 수준급으로 뛰어나더군요. 마치 마력조작만을 특수하게 훈련받은 암살자처럼 말이죠. 그리고 루데릭, 그는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베르다드 학원에 오면 수석의 자리를 차지할 만큼 굉장한 실력을 갖추고 있더군요. 선수를 뺏기긴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루데릭은 나름대로 열심히 했으니. 하지만 그 정도로 수석이라······ 대륙의 유수라 요란 떤 것 치곤 별거 없지 않나?”

“하하. 가차 없으십니다.”

“그래도 네놈을 보면 아예 무가치한 것도 아니겠지.”

“오호······ 절 상당히 높게 평가해주시네요.”

“그리 높게 평가하는 건 아니다만······”


찬크에르가 씨익 웃었다.


도발하는 듯 진한 미소였다.



“――마력레벨이 394나 되면 그 노력 정돈 인정해줘야겠지.”


리카드는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이내 납득했다.



“보는 것만으로 측정하실 수 있습니까? 역시······라고 해야 할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리카드는 앞에 있는 존재를 봤다.


보는 것만으로 마력레벨을 정확히 측정한다니,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다.


리카드 자신도 상대방의 마력레벨을 측정할 수는 있었다.


다만, 신체적 접촉을 한 후에 마법을 사용하는 절차가 필요했다.


그마저도 상당한 집중을 요해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장소여야만 했고, 상대방이 마법을 거절하면 불가능했다.


물론 압도적인 실력의 차이가 있다면 강제로 확인할 수 있긴 하다.


그렇다면······


신체적 접촉 따위 없이 보는 것만으로 강제로 측정이 가능한 존재는?


――이미 실력의 차이를 운운할 정도를 넘어섰다.


그뿐만 아니라, 마을에 펼쳐진 마법에 사용된 마력도 어마어마했다.


정말 몇 년을 꾸준히 준비한다고 해도 저만한 마력을 모을 수나 있을지 모를 양이었다. 마력을 축적해 놓을 마도구들의 비용만 따지더라도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다.


하물며 마력이 준비되었다 하더라도 저리 치밀한 술식을 만드는 데 얼마큼의 세월을 소모할지 감도 안 잡힌다.


마법을 눈치챈 것도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그만큼 위화감이 전혀 없었을뿐더러, 새어 나오는 마력도 대기 중에 있는 마력 정도로 적었다.


‘저만큼 광범위하게 펼쳐진 마법에서 말이죠······’


이 정도의 일을 혼자서 할 수 있는 존재가 얼마나 될까.


아티팩트 급 물건의 도움을 받거나, 상당히 뛰어나 보이는 에이브안이나 이스피리아가 도왔을 가능성도 있긴 했지만――


‘아니겠죠. 분명 어떤 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했겠지요. 이 분이라면.’



“그러고 보니, 용왕 분들에 대한 신화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별일 아닌 것처럼,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하려 했지만, 긴장감에 리카드는 침을 삼켰다.


이 한마디를 꺼내기 위해 여태 이야기를 끌어왔다고 해도 좋았다.


찬크에르는 어떻게 생각할지 알 수 없지만, 이미 몇 번이나 줄타기를 한 느낌이었다. 만약 찬크에르가 자신이 예상하는 존재가 맞는다면, 그의 심기가 조금이라도 틀어지는 그 순간이 죽은 목숨이기에······


저항?


저항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 존재는 인간이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전승대로라면, 천하에 죽일 놈만 아니라면 그는 함부로 생명을 해치진 않을 거다.


이 부분이 약간 위안이 됐다. 그래서 이야기를 꺼낼 용기도 났다.


다만······ 그의 아내를 이용하려는 자신은 어디에 속하는 걸까가 마음에 걸린다.


제발 죽일 놈만은 아니길 빌며, 리카드는 찬크에르를 힐끗 쳐다봤다. 의도를 들킨 듯했지만, 그의 반응을 살펴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 용왕이란 것이 어떻다는 거지?”


찬크에르는······ 무표정이었다.


언뜻 찔리는 구석이 있어 무표정으로 되돌아간 게 아닌가도 싶지만, 그건 아니다. 이스피리아나 마을 주민들이라면 또 모를까, 남에게 그는 원래 저 표정이 메인이었다. 방금 도발하는 듯한 미소가 예외였다.


‘모른 척할 셈입니까?’


하지만 이 반응으로 찬크에르가 죽일 마음이 없다는 건 파악했다.


그렇다면 거릴 낄 게 없었다.


압박감과 긴장감에 거무죽죽했던 리카드는 생기가 돌아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하기로 했다.


그래도 언제 그의 마음이 바뀔지 모르기에 주의하였다. 아직은 죽고 싶지 않았으니.



“심판자 혹은 구원자로 불리는, 드래곤들의 왕인 용왕들은 백룡왕, 적룡왕, 청룡왕, 암룡왕, 금룡왕 다섯이 존재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저는 옛 고대 신화에서 그들의 이름을 몇 알 수 있었죠.”

“······.”


여기까지 말했는데도 찬크에르는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그러나 조바심 내지 않고 리카드는 계속해서 떠보았다.



“제가 안 것은 세 분. 백룡왕, 볼사레이와 청룡왕, 아주르레이. 그리고 용왕들 사이에서도 경외하며 받들어진다는 금룡왕, 오올르오레이 이 세분입니다.”

“그 셋이 어떻다는 거냐?”

“나머지 두 분의 성함은 모르지만, 다들 공통적으로 ‘레이’라는 말이 들어가더군요. 그 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 수는 없었지만······ 찬크에르레이. 당신께서도 ‘레이’가 들어가시는군요.”

“내가 용왕이라도 된다고?”

“예. 전 그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겨우 이름 끝에 레이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그런 자는 세상을 둘러보면 수두룩할 텐데?”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말도 안 되는 마력량과 더불어, 이스피리아양의 옷과 마을 전체에 펼쳐진 마법은 평범한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후후. 재미있는 소리군. 그렇다면 확실히 해두지. 난 ‘용왕’이 아니다.”

“············넷?”


꽤나 확신에 가까운 예측을 하고 있던 리카드는 당황했다.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가 싶어 빠르게 찬크에르를 살펴봤지만······ 일관되게 무표정으로 있는 그의 얼굴에선 얻을 정보가 없었다.


리카드는 자신이 찾아본 수많은 고서와 전승, 그리고 실제로 만나 썼다는 전기들의 내용을 떠올려봤다.


그곳에 묘사된 용왕들은 신에게 부여받았다는 사명에 대해 큰 자부심을 품었다 일컬어지고 있었다.


같은 내용이 서술된 서적은 한두 권이 아니었다. 이렇게나 자료들이 많으니 상당히 신빙성이 높은 이야기라 생각한 것이다.


말을 돌리거나 답하지 않았으면 이해라도 했다.


용왕이 ‘나 용왕이요’라고 떠벌릴 순 없으니까.


하지만 용왕이라면 자신은 “용왕이 아니다.”라 말하는 장면은 생각할 수 없었다. 그 말은 곧 신에게 부여 받았다는 사명을 저버리겠다는 의미였으니.


그래서 리카드는 찬크에르가 대답하지 않을 거라 예상했고, 그것을 긍정이란 뜻으로 받아들이려 했다.


하지만 찬크에르는 아니라고 했다.


그럼, 찬크에르는 어떤 존재인가.


‘이 정도의 일을 할 수 있는 자가 용왕이 아니라고?’



“그, 그럼. 당신은 누······누굽니까?”


상당히 얼빠진 말이 나왔다.


그만큼 추측이 빗나간 리카드의 충격은 대단했다.



“이상한 걸 묻는군. 난 찬크에르레이다. 사랑스러운 내 아내, 이스피리아의 남편이지. 덤으로 조금 귀여운 아이리스의 아버지이기도 하지.”


그렇게 이야기한 찬크에르는 어딘가 기쁜 듯하다.



“아, 아뇨. 그런 걸 묻는 게 아니라······”

“마법? 저 정도의 마법은 용왕이 아니면 쓰면 안 된다는 규칙이라도 있나? 마력도 그렇다. 용왕이 아니면 네놈보다 까.마.득하게 많은 양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되는 건가?”

“그······그런 건 아닙니다만.”

“그러면 뭐가 이상해서 그런 애송이 같은 표정을 짓는 거냐?”


비꼬는 말에 리카드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닙니다. 아무것도······. 잠시 제가 착각한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 이상한 말을 해서.”


리카드는 넙죽 예를 갖춰 고개를 숙였다.


괜한 사람에게 갑자기 용왕이 아니냐고 물어보다니······


자신이었다면 물어본 상대에게 뭘 잘못 먹지 않았느냐고 반문했을 것이다.


안 그래도 지혜의 신의 축복을 받았다느니, 사실은 인류 최강이라 칭송받는―― 마력레벨 500에 달하는 건국왕 인비트 네우라 디안 벨루디스의 후손이 아니냐는 등의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듣던 자신이다.


그때마다 얼마나 어처구니없어 했는데, 이번엔 반대로 자신이 거의 확신하여 찬크에르의 의중을 떠본 것이다.


창피했다.


인생 최악의 기억 중 하나가 만들어지고 있는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멀리 도망치고 싶다.



“크큭. 알았으면 됐다. 용서하지.”

“예. 감사합니다······. 그런데······ 몇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염치없고 빨리 이야기를 끝내고 싶었지만, 리카드는 기왕 이렇게 된 거 남은 궁금증이나 해결하자며 자포자기했다.


얻어가는 것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심보였다.


어차피 잊고 싶어도 제법 좋은 이 머리는 분명 이날의 기억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물고 늘어질 거였다. 이렇게 일방적인 큰 손해만 받을 순 없는 것이다.


그런 뻔뻔함에 찬크에르는 어깨를 으쓱였다.



“상관없다. 물어보도록. 단 너무 길게 시간을 끌 순 없다. 내 귀엽고 아름다운, 사랑스러운 아내가 잠들기 전엔 돌아가야 한다.”


이스피리아가 잠들기 전이란 제약은 붙었으나 별 기대를 하지 않던 리카드에겐 희소식이었다. 애당초 신혼 첫날인 찬크에르를 오랫동안 붙잡을 맘은 없기도 했고.


재빨리 생각을 정리한 리카드는 물었다. 자랑하는 듯 보인, 찬크에르의 애처가 같은 발언은 신경 쓰지 않도록 했다.



“이스피리아 양의 옷―― 데자스 트루 아라나의 실로 만들어진 그 옷은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안 그래도 구하기 어려운 물건인데, 제가 볼 땐 그중에서도 특급의 질이 좋은 것으로 보입니다만.”


이스피리아의 옷은 벨루디스의 현 왕, 아크티알 네우라 디안 벨루디스가 가지고 있던 것보다도 확실히 뛰어난 물건이었다.


만져보진 못했지만 멀리서도 알 수 있을 만큼 빛깔과 탄성, 부드러움에서부터 차이가 났다. 분명 담기는 마력량에서도 엄청난 차이를 보일 터다. 모르는 사람은 알 수 없는 부분이지만.


‘마을에 펼쳐진 마법처럼 직접 술식을 더듬어가며 파악하고 싶었습니다만.’


마을에 있는 거야 땅을 짚으면 됐으니 문제없었지만, 이스피리아의 옷을 함부로 만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오늘 신부인 여성을?


그 생각을 하자마자 굴강한 마족들과 에이브안, 잭 그리고 루데릭과 찬크에르의 분노하는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지나 간다.


추방당하는 건 고사하고······ 내일 빛을 못 보겠지.


‘그래도 나중에 한 번 이스피리아양에게 빌려볼 수 있을까요. 촉감도 상당히 궁금하니.’


물론 찬크에르가 없을 때 살짝 말해볼 심산이었다.


그가 있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데자스 트루 아라나? 뭐지 그건?”

“······네에?!”


리카드는 자신이 잠시 딴생각을 하여 잘못들은 줄 알았다.



“그건 뭐냐고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말은 자신이 제대로 들었다는 답변이었다.



“······국가 재난급의 위험 종인 마물입니다. 이스피리아 양의 옷은 그 마물의 실로 만들어진 거고요. 정말 몰랐습니까?”

“몰랐다.”

“그, 그럼. 옷은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내가 만들었다만?”

“예?!! 당신이 만들었다고요?!”

“사랑스러운 아내를 위해 남편이 만들었다는 게······ 그리 이상한가?”

“아, 아뇨. 조금 놀란 것뿐입니다. 보기와는 다르시게 굉장히 섬세하―― 아, 아닙니다!”


찬크에르에게서 약간 마력이 새어 나오고, 갑자기 엄청난 공포감이 엄습한다.


깜짝 놀란 리카드는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당최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찬크에르의 기분이 나쁜 것만은 알겠다.


그렇게 빌빌대고 있으니 이윽고 공포감이 사라졌다.



“이, 이야. 훌륭한 솜씨입니다. 엄청나게 가공하기 어려운 소재인데 그렇게도 아름다운 옷을 만드시다니.”

“······더 물어볼 게 없다면 난 이만 돌아가지.”



싸늘하기만 했다. 역시나 어색한 변명 따윈 통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다시 찬크에르에게 물어볼 기회가 쉽게 오지 않을 것 같아 리카드는 용기를 내 빠르게 손을 들었다.



“더! 더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뭐지? 시간이 없다.”

“실! 실은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직접 만드셨다니 실은 얻으셨을 텐데. 데자스 트루 아라나에게서 직접 얻으셨다거나······”

“모른다고 했을 텐데? 동―― 형제에게서 받았을 뿐이다.”

“형제? 형제가 계십니까?”

“넷이 있지.”

“그분께 어디서 구했는지 들으셨습니까?”

“아니. 나도 억지로 주는 걸 받기만 했을 뿐. 출처는 모른다.”

“그렇습니까······”

“한데, 그게 그렇게나 대단한 물건인가?”

“대단하다마다요. 아무리 비싼 대금을 치른다고 하더라도 구하기 힘든 물건입니다. 특성은······ 직접 만드셨으니 더 잘 아시겠죠.”

“흠. 꽤 괜찮긴 했지.”

“꽤 라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은 찬크에르뿐일 겁니다. 아! 혹시 만들다 남은 자투리라도 없으십니까?!”

“그런 게 있을 리가. 전부 남김없이 리아의 옷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모처럼 형제가 준 것인데 허투루 쓸 수야 없지.”


리카드는 낙담했다.


‘하긴 그런 값비싼 물건이 남았을 리가 없죠. 아~ 연구해보고 싶었습니다만······ 아니, 여차하면 이스피리아 양의 옷을 조금 잘라―― 그만두죠. 저도 곱게 생을 마감하고 싶습니다. 그나저나 찬크에르는 보기와는 다른 부분이 많으시네요.’


시간이 없다면서도 묻는 말에 꾸준히 답해주는 성실함도 의외의 부분이었다. 지금 당장 무시하고 떠날 듯싶은데 말이다.


또 형제가 준 물건이라고 알뜰살뜰 전부 쓰는 모습으로 보면 상당히 다정다감한 게 아닌가도 싶다.


‘그건 그렇고 역시 아쉽네요. 그 순백의 드레스도 데자스 트루 아라나의 실로 만들어져 보이던데. 그렇담 상당히 많은 양을 가지고 계셨네요. 아쉬워라. 그 빛나던 후광 때문에 제대로 보질 못했는데······ 응?!’


리카드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 참. 그렇지. 찬크에르!”

“아직도 남은 건가?”

“예. 한 가지만 더!”

“후우······ 말해봐라.”

“감사합니다. 그 결혼식 때 이스피리아양의 뒤에 비치던 빛 말입니다만. 그건 어떤 술식······이라기보단, 마법이긴 합니까? 아무 마력도 안 느껴지던데요?”

“원리는 대강 알겠으나······ 정확히는 모르지. 마법은 사용자에 따라 천차만별이니. 아무리 술식이란 틀을 정해놓은 교육을 받는다지만, 네놈 정도 되면 알고 있지 않나.”

“네. 사실상 완전 똑같은 마법은 없는 거나 다름없죠. 술식을 진으로 그려놔도 사람에 따라 미묘하게 마력의 흐름이 다르니 따지자면 같은 마법이라 할 순 없죠. 효과는 별 차이 없겠지만요. 하지만 그렇다는 건······”

“내가 한 게 아니다.”

“그, 그럼 대체 어떤 분이 한 겁니까?!”


흥분한 리카드는 찬크에르의 어깨를 잡았다. 조금 전까지 잔뜩 쫄아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한 가지라 하지 않았나. 그 정도는 네놈이 알아봐라!”


빡!



“아고!”


리카드는 엄청난 고통에 주저앉아 머리를 매만졌다.


정말 엄청난 고통이었다. 단순히 머리를 가격한 것이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철저하게 계산되고, 수 만 번은 반복하고 단련한 숙련된 기술인 것만 같았다.


――단지 고통만을 주기 위해.


이 정도의 아픔이라면 차라리 베이는 게 덜 아프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리카드는 글썽거리는 눈으로 찬크에르를 바라봤다.



“너······너무 하십니다. 갑자기 때리시다니.”

“네놈이 달라붙은 게 잘못이다. 낮에 있었던 일을 벌써 잊은 건가? 난 루데릭과 네놈처럼 남색 같은 건 전혀 없다. 리아에게 무슨 오해를 당하게 하려는 거냐?”

“저도 오해입니다! 아시잖습니까?!”


찬크에르는 차갑게 쳐다봤다.



“전혀 모른다만. 내가 들은 건 네놈과 루데릭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임을 밝히자며 투덕댔다는 것밖에 없다.”

“이스피리아 양에게 들었습니까?! 그게 오해입니다! 다른 분들에게도 말씀드렸지만 전 평범하게 여성이 좋습니다!”

“질 나쁜 녀석의 말 같군. 그게 대놓고 할 소린가.”

“······저도 이젠 모르겠습니다. 마음대로 생각하십시오. 그보다 이 통증은 도대체 언제 사라지는 건가요?! 도대체 뭘 어떻게 때리면 이리되는 겁니까?”

“후우······ 겨우 그 정도로 죽는 소리를 내다니. 루데릭보다 엄살이 심하군. ――옜다. 됐나?”

“어?”


지독하게 끝나지 않던 통증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꿀밤은 어떤 마법이었던가······


잠시 생각하던 리카드 이내 눈을 부릅떴다.



“이, 이건 치유마법?! 찬크에르! [치유]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까?!”

“못한다고 한 적은 없었다. 애당초 나를 용왕이라 착각했는데 이런 것도 못 하리라 생각했나? 얼빠진 놈이군.”

“······”


매도하는 말에도 리카드는 입을 벌리고 멍하니 찬크에르를 올려다봤다.


‘이, 이스피리아 양처럼 손가락을 튕기는 동작도 전혀 없었어.’


물론 이스피리아도 충분히 대단했다. 환부에 손을 가져다 대긴커녕 별도의 영창이나 마도구도 없이 그저 까닥 손가락 튕기는 것만으로도 [치유]를 썼으니 말이다.


실로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저런 식의 [치유]는 상급 신관도 불가능하리라 여겨지기에 더더욱.


그렇기에 이스피리아를 학원으로 데려오려 애썼던 거다.


분명 그랬었는데······


찬크에르는 완전한 무영창이었다.


혹시 저 “옜다”가 발동어가 아닐까, 순간 그런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그건 분명히 아닐 거다.


그리고 찬크에르의 말대로 자신은 애초에 그를 용왕이라 의심했다.


치유마법은 드물긴 해도 쓸 수 있는 사람은 그래도 제법 있다.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다.


그에 비해 마을에 펼쳐진 마법이나 이스피리아의 옷에 걸린 마법은 몇 개나 되는 마법이, 무슨 효과가 있는지도 불명확할 정도의 심오한 마법이었다.


어느 쪽이 쉬운가를 생각해보면 당연히 전자였다. 압도적인 차이로. 감히 치유마법이 비견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사실 가장 큰 고민거리도 치유마법의 연구보단 루시아스교단의 횡포를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가 중점이었다. 치유마법은 협조를 구하지 못해 아무런 진척이 없었지만, 막상 시작하면 금세 파악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찬크에르도 이런 거라 딱 잘라 말할 정도라면 확실했다.


마을이나, 이스피리아의 옷에 걸린 마법이 훨씬 고난이도였다.


‘이 찬크에르에게 연구를 부탁하면······’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엄청난 능력을 지닌 그의 도움을 받으면 성과는 확실하게 낼 거다. 동시에 빠른 기간안에 끝낼 수도 있을 것이다.


교단에 대항하는 것도 이만한 능력을 지닌 그의 도움이 있으면······


‘내가 바라던 꿈이 더욱 빠르게 다가온다.’


달콤하면서도 질척거리는, 꺼림칙한 유혹이 속삭인다.


그리고――


뿌리치기 힘들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입을 열기만 하면 된다. 그게 안 되면 머리를 숙여서, 그것도 안 되면 무릎을 꿇고, 그것도 안 되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그것마저 안 되면 신발을 핥아서라도.


지금 그에게 부탁하면 된다. 그리하면······



“윽!”


쾅!



“저는―― 나는······ 내 학생을 믿습니다.”


후드드득.


머리를 성벽 바닥에 박은 리카드의 얼굴에서 안경이 산산이 부서져 돌 부스러기와 함께 떨어졌다.



“때린 곳의 위치가 조금 나빴나? 기껏 치료했건만 뭘 하는 건가.”


비꼬는 찬크에르의 말이 들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말은 차갑기만 했던 여태의 음성보다 조금은 부드럽게 느껴진다.


리카드는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미소를 짓고 일어섰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놀라게 해버렸군요. 잠시 눈이 흐려졌기에 정신을 차리려 했습니다. 용서해주시길.”

“훗. 이상한 놈이군. 서비스다.”


찬크에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리카드의 찢어졌던 이마가 치유됐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던 피도 말끔하게 사라졌다.



“감사합니다, 찬크에르.”

“별거 아니다. 이상해진 너의 머리도 같이 치유됐는진 모르겠다만.”

“그건 걱정하지 마시길. 확실히 정신을 차렸습니다.”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리카드는 감사를 전했다.



“응······? 죄송합니다만 찬크에르. 옷에 피가 없는데요? 바닥에도······”


리카드는 주위를 둘러봤지만, 바닥에 있는 피라고는 자신이 벽에 박은 곳 근처에 안경의 잔해와 함께 조금 있었다.


이상하다.


찬크에르가 치유하고 청결마법으로 깨끗하게 해줬다면 피는 땅에 떨어져 지금 자신이 서 있는 발밑에 있어야만 했다. 아니면 신발에 고였다든지. 지금처럼 아예 사라지진 않는다.


리카드는 의문 가득한 시선을 찬크에르에게 보냈다.



“청결마법이······ 아닙니까? 옷도 깨끗해진 듯싶은데 말입니다.”

“이게 청결마법으로 보이나? 어느 정도 되는 녀석인 줄 알았건만 한참 멀었군.”


찬크에르가 혀를 차고 있지만,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


리카드는 솔직히 말하기로 했다.



“하하······ 기대에 못 미쳐 죄송하군요. 처음 본 마법인지라. 무슨 마법입니까?”


어색하게 웃는 리카드를 잠시 보던 찬크에르가 조용히 말했다.



“[정화]다.”

“저, 정화?! 서······성자.”

“――아니다.”


경악하는 리카드의 말을 싹둑 끊은 찬크에르의 심기는 불편해 보였다.



“어처구니가 없군. 조금 사용하기 까다로운 마법일 뿐인데 성자라며 떠받들다니. 미리 말해두지만, 신과는 일절 관계없는 하나의 마법일 뿐이다. 치유마법처럼 말이지. 마을에서도 난리 쳐 얼마나 골머리가 썩었는지 원······ 물론 성녀는 리아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호칭이긴 했지만.”

“이, 이스피리아 양도?!”

“질문은 아까 끝나지 않았나?”

“······그 후광 같은 건 이스피리아 양의 마법이었습니까······”

“······.”


찬크에르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아마 맞을 거다.


‘이스피리아 양를 얕보는 일은 없다고 하였건만······ 상당히 저평가하고 있었나 보군요.’


그러고 보면 이스피리아에게는 아무런 마력을 감지할 수도 없었다. 마력의 흐름까진 볼 순 없다 하더라도 마력이 있다, 없다 정도는 알 수 있었을 텐데도 말이다.


리카드는 그러한 생각을 하며 찬크에르를 쳐다봤다.


‘이 분도······ 알 수 없군요.’


찬크에르 또한 아무것도 느껴지진 않았다. 바로 등 뒤로 나타났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하지만 엄청난 능력을 지니고 있을 거라 예상되는 그라면 이해는 갔지만, 이스피리아는 아무리 봐도 순진무구해 보이는 소녀였기에 잘 연상이 안 된다.


――무지막지한 실력을 지녔다고는.


그렇게 내심 경악하고 있으니 찬크에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난 이만 가보도록 하지.”

“아! 그렇군요. 늦게까지 말씀 감사했습니다.”


예를 표하는 리카드를 뒤로 하고 찬크에르는 살짝 날아올랐다.



“하나만······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


돌아가는 줄 알았던 찬크에르가 말을 걸자 리카드는 깜짝 놀라 쳐다봤다.



“예? 뭘 말입니까?”

“오올르오레이다.”


왜 갑자기 금룡왕이?


말하는 의도가 전혀 짐작되지 않았다. 리카드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기다렸다.



“그는 동포들에게 경외를 받는 건 맞다만, 떠받드는 건 아니다. 그들은 모두 대등한 존재이자, 나란히 신에게 생을 부여받고 사명을 받은 동지다. 결코 우위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어, 어찌 그런 걸 아십니까?”

“어째서일 거 같나?”

“당······신은 분명 용왕이 아니라고.”

“그렇다. 난 ‘용왕’이 아니다.”

“아······ 앗!!!”

“마지막으로······ 리아는 이미 잘 자고 있다.”

“············엥?”


그 말을 끝으로 찬크에르는 성벽 아래로 황망히 날아 사라졌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라스티아입니다


쭉쭉...


다음화도 아마 올라갈 거 같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만렙 히로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5 63 22.06.29 91 0 38쪽
64 62 22.06.29 89 2 39쪽
63 61 22.06.28 87 1 23쪽
62 60 22.06.27 89 1 33쪽
61 59 22.06.27 95 0 25쪽
60 58 22.06.27 96 0 26쪽
59 57 22.06.26 108 0 35쪽
58 56 22.06.25 101 1 12쪽
57 55 22.06.25 124 1 18쪽
56 54 22.06.25 111 1 33쪽
55 53 22.06.23 113 1 26쪽
54 52 22.06.23 120 0 42쪽
53 51 22.06.23 114 0 39쪽
52 50 22.06.21 121 2 22쪽
51 49 +2 22.06.21 112 2 21쪽
50 48 22.06.21 133 1 20쪽
49 47 22.06.21 107 1 21쪽
48 46 +2 22.06.19 121 2 39쪽
47 45 +2 22.06.18 107 1 24쪽
46 44 22.06.18 124 1 28쪽
45 43 22.06.17 117 2 23쪽
44 ?? +2 22.06.16 104 1 17쪽
43 42 22.06.16 97 2 19쪽
» 41 22.06.16 100 2 33쪽
41 40 22.06.16 104 1 30쪽
40 39 22.06.16 114 2 18쪽
39 38 +2 22.06.15 131 2 27쪽
38 37 22.06.13 95 1 28쪽
37 36 22.06.11 109 0 20쪽
36 35 22.06.11 100 1 2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