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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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9.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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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1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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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DUMMY

벨루디스 왕성.


자원이 풍부한 나라답게 내부가 호화롭게 꾸며진 벨루디스의 왕성은 왕이 거주하는 곳답게 어지간한 신분이 아닌 한 발을 디딜 수조차 없는 곳이었다.


그러한 곳에서도 더욱 출입이 어려운 왕의 집무실에 한 명의 손님이 와 있었다.


손님의 정체는 이 나라, 벨루디스가 자랑하는 대마법사, 리카드 디안 클로디아노로, 그는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에게 공손히 머리를 숙여 예를 취했다.



“이야기는 알았다. 한데, 정말 사실인가?”


리카드의 앞에 있던 자―― 이 나라 벨루디스의 군주, 아크티알 네우라 디안 벨루디스가 신중하게 물었다.



“예.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입니다.”

“음······. 알았다. 자네의 뜻대로 처리해주지. 그 외에 더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찾아와 말하라. 자네의 면회는 최우선으로 돌리도록 하지.”

“크나큰 배려,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옵니다, 폐하.”


아크티알은 고개를 끄덕였다.



“용건이 다 끝났으면 이만 물러나도 좋다.”

“예!”


무릎을 꿇고 예를 보인 리카드가 집무실을 나갔다.



“······”


잠시 리카드가 나간 문을 보던 아크티알은 조용히 말했다.



“어찌 생각하는가, 벨페르.”


아크티알의 말에 여태 한마디도 하지 않고 곁에 있던 벨루디스의 재상, 벨페르 페네리 파라디우스 공작은 집무실의 천장을 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믿긴 힘들지만······ 일부러 왕성까지 찾아와 거짓을 고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됩니다.”

“그럼 사실이라고?”

“리카드가 착각했을 경우가 있긴 합니다만, 아시다시피 그는······”

“그렇군. 그의 착각이라 하더라도, 그만한 수준의 능력을 지닌 자라 여기면 된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리카드 디안 클로디아노가 감히 대적할 수 없다 확신하는 거니, 정체는 둘째치더라도 심기를 거스르는 짓만은 피해야 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수많은 마도구를 개발해내는 학자 같은 면모가 강한 리카드는 국익에도 상당 부분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진가는 ‘리카드’라는 존재 자체에 있었다.


온갖 마법을 남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속도로 구사하며, 그 많은 마력을 앞세운 연사는 일개 사단 정돈 우습게 보일 정도로 월등히 강력하다.


현재는 세 개의 국가만 남았지만――성국, 세인트리안은 제외――, 나라가 우후죽순 세워지던 군웅할거의 시절이었으면 리카드는 혼자서 소국 정도는 어렵지 않게 점령했을 터.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리카드 혼자서 타국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있기에 최근 평화에 찌들어 심심찮게 걸어오는 타국의 압력도 이전처럼 무시할 수 있었던 거다.


그런데······


이 리카드조차도 대항은커녕, 적대한다면 그 순간이 끝이라고 한다.


아크티알은 뒷골이 땅겨오는 듯했다.



“후우······ 그만한 존재를 데려온 리카드를 원망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기회가 온 거라 여겨야 하는 걸까.”

“리카드가 왕가에 충성을 다한다는 건 의심의 여지도 없지만, 확실한 건 그들이 아군이 된다면―― 하다못해 우호적으로만 있어도 벨루디스에는 막대한 이득이 있을 거란 겁니다.”

“그렇겠지.”


아크티알은 의자에 몸을 깊게 묻었다.



“하. 그런 자가 결혼했다는 게 아쉽기만 할 뿐이군. 우리나라 백성과 결혼했다면 처를 위해서라도 이 나라에 힘을 빌려줬을 텐데 말이야.”

“리카드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내에겐 무척 헌신적인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말이죠.”


벨페르의 말에 아크티알은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그 아내라는, 이스피리아란 자는 어때 보였는가?”

“올라온 보고로는 11~12세 정도의 어린 소녀로 보인다고 하는데······ 나이를 속였거나, 성장에 문제가 있었지 않았을까 합니다. 덧붙여 보고한 자에 따르면 아름다운 은발과 외모, 복장으로 인해 평민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흠. 그건 다행이군. 나이는······ 속이지 않았겠지. 아들도 있다고 하니. ······아니군. 아들은 중등부에 들어간다지 않았나?”

“예. 중등부 일반반에 편입되어 있습니다. 그만한 존재의 아들인데 일반반으로 빠진 게 의아하지만.”

“인간이랑 피가 섞여서 그런 것일지도. 아니면 아직 재능이 개화하지 않았다거나······. 하지만 막 성인이 됐다는데 그만한 아들이? 역시 나이를 속였나.”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았을 수도 있겠지요.”

“······여러 생각이 든다만 우리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되겠지.”

“그렇지요. 개인적으로는 리카드가 좀 더 정보를 줬으면 했습니다만······”

“어쩔 수 없지. 그녀에 대한 것을 멋대로 발설한다면 그자가 분명 싫어할 거라 했으니. 우리도 잠자는 드래곤의 수염을 자르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도록 하지. 다만 예의주시는 하고 있도록.”


공연히 이스피리아의 정보를 캐지 말라는 뜻을 이해한 벨페르는 고개를 숙여 알겠다는 의사를 내보였다.



“우선, 리카드가 요구한 대로 처리해주겠나?”

“알겠습니다. 곧바로 그들을 국빈 취급할 수 있도록 안건을 통과시키겠습니다.”

“부탁하지.”


분명 많은 반발이 있을 거다. 신분은커녕 출신도 알려줄 수 없는 자를 국빈으로 처리하는 것이니.


그러나 가상의 신분을 쥐여주려 해도 나라는 3개밖에 없다. 타국의 유력귀족 같은 건 이미 다 알려져 있는지 오래이니 들키는 건 시간문제다. 게다가 가상의 가문으로는 국빈 취급하기에 무리가 있고.


억지로 밀어붙여도 되지만, 그러면 그만큼 반발은 더 거세어지고, 그들의 뒤를 캐는 자도 늘어날 수 있었다.


위험성을 높일 바엔 차라리 가문 명을 안 대면 오히려 그러한 경우가 없었기에 더 경계해 함부로 나서는 자가 적을 것이다.


리벨리타스나, 파라디우스의 이름을 빌려주는 경우도 생각해보았지만 ――심지어 왕가의 이름까지도 고려했다―― 상당히 무리가 있었고, ‘앞으로 이러한 가명을 대라’하면 그들의 심기가 불편해질 수도 있기에 조심스러웠다.


한 나라, 그것도 강대국인 벨루디스치고는 한낱 개인에게 너무 양보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상대는 ‘용왕’일지도 모르는데.


그 무섭디무서운 심판자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나라의 자존심이고 뭐고 간에, 일단 그 나라가 사라지지나 않게 최선을 다해야 할 것 아닌가.


차라리 그들의 정체를 공표하거나, 왔던 곳으로 돌아가라고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질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다행히 그들의 성품은 기본적으로 온화하다니 조금은 안심되었다.



“글로디아시여, 부디 어리석은 자들이 함부로 나서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하지만 무심코 기도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왕이 기도하는 모습은 무능하기에 신의 도움을 바라는 것으로 비쳐 전혀 좋지 않으나, 듣던 벨페르도 그 심정은 이해가 됐다.


그렇지만 기도하는 아크티알이나 그걸 지켜보는 벨페르, 둘 다 이 소원이 이루어질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어리석다는 말이 왜 있겠는가.


반드시―― 라고 해도 좋을 만큼 누군가가 무례를 저지를 것이다. 세상사 일이란 다 그런 것이니까.


다만 그것이 이 나라, 벨루디스를 지도에서 사라지게 할 정도의 역정을 사는 일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벌써 누군가가 무례를 저지르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이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어, 어때 보여요?”


교복을 입은 리아가 부끄러워하며 물었다.


그런 리아에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찬크에르가 말했다. 활짝 피다 못해 다른 여성이 봤다면 잠시 어지러워질 만한 미소를 품고.



“매우 잘 어울려, 리아.”

“정말요? 헤헷.”

“그런데 어찌 리카드 녀석이 리아의 치수를······ 흠. 잡아다 불게 해 봐야겠군.”

“네?”


중얼거리는 찬크에르를 보고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은 아이리스가 냉큼 리아의 손을 잡아끌었다.



“여전하군. 어머니, 내버려 두고 어서 가도록 해요. 리벨리타스 씨가 올 때예요.”

“엣. 하지만······”


아무리 아들의 재촉이라지만 찬크에르를 내버려 두고 갈 순 없었는지 리아는 엉거주춤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모습에 아이리스는 힘을 빼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바보 아빠, 빨리 와. 어머니를 지각하게 만들 셈이야?”


다분히 언짢은 말을 들은 찬크에르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그럴 순 없다며 다가왔다.


곁으로 다가오는―― 지구에서의 집사 차림과 똑 닮은 옷을 입은 찬크에르의 모습에 리아는 미안함으로 급격히 표정이 흐려졌다. 그가 저런 옷을 입은 건 본인의 탓이기도 하니.



“종자 같은 일을 하게 돼서 미안해요. 에르도 함께 학생이나, 선생님으로 왔으면 됐을 텐데······”

“괜찮아. 마음 쓸 것 없어. 내가 바라기도 했고. 배우는 거야 이렇게 리아의 사용인 노릇을 하면 자연스레 같이 수업을 들을 수 있잖아? 선생은 그럴 마음도 없거니와 리아와 떨어져야 하니 원하지도 않아. 난 지금으로 만족해.”

“에르······”


달래줌에도 리아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는데, 찬크에르는 이를 알아보고 옅게 미소 지었다.



“말하는 것도 불편하지 않아. 난 평상시대로 말하고 있거든. 그저 상대방이 가장 정중하다고 여겨지는 말로 들리게 할 뿐이야.”

“정말이죠?? 힘들거나 하지 않죠?”

“응. 정말 어렵지 않아. 약간 의사를 조정해서―― 흠. 나머지는 리아가 알아가는 거로 하자. 그편이 즐거울 거야.”

“으음. 알았어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리아.


사실 리아에게 전부 알려줘도 아무 문제 없었다. 그러나 리아는 이제 평생을 살아가며 망각하지 않는 존재가 됐다.


그러한데 벌써 세상의 모든 섭리와 규칙들을 알게 되면······ 자신도 겪었던 그 지독한 무료함을 느낄 것이다.


만만히 볼 게 아니었다. 배울 것이 없는 영원한 인생이란 생각보다 더 지루할 뿐이니.


찬크에르는 그것들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리아 스스로가 배워가며 살아가길 원했다. 부디 앞으로의 삶에 지루함 따윈 오지 않길 바라며.


이것이 리아를 만나 하루하루가 새로운 나날로 바뀐 찬크에르의 보답이자, 길고 긴 생에 만난 아내에 대한 사랑이었다. 받은 것에 비해 보잘것없다고 생각하지만.



“자자, 어머니. 아빠는 전~혀 걱정할 필요 없어요. 오히려 제가 떨어지니까 좋아 죽을 기분일 거예요.”

“아이리스는······ 혼자 괜찮니?”

“저요? 저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만약 위험한 일이 생겨도 아빠가 어떻게든 해주겠죠. 안 그래?”

“음. 내가 지켜보기도 하겠다만, 보호 마법들을 잔뜩 걸어뒀으니 문제는 없을 거다. 리카드 정도의 녀석들이 떼거리로 몰려와도 손가락 하나 건들지 못할 테지.”

“들었죠? 그러니 어머니는 재밌게 학원에 다니시면 돼요. 바로 친구도 생기셨고요.”

“응! 오자마자 그런 좋은 분이랑 친구가―― 아! 그러고 보니 시간이······”


밝아진 리아는 서둘러 문으로 다가갔다. 기분이 풀어진 그 모습에 찬크에르와 아이리스도 서로를 쳐다보며 살짝 웃고는 그 뒤를 따라왔다.


똑똑.


노크 소리와 동시에 리아는 바로 문을 열었다.


그와 함께 “실례합니다”란,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목소리가 들렸는데, 마력을 통해 누구인지 파악한 리아가 바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안네 씨, 라프리트 씨.”

“엇! 실례했습니다, 이스피리아 님. 시간이 되어 찾아뵙습니다.”


노크했던 안네는 문이 바로 벌컥 열렸던 것에도 놀랐지만, 설마 리아가 직접 문을 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해 재차 놀랐다. 더불어 주인인 라프리트보다도 먼저 인사를 받게 된 것에 또다시 놀라워했다.


하지만 금세 리아가 이틀 전까지 기본예절을 몰랐다는 것을 깨닫고는 냉정함을 되찾았다. 그리고 이런 일에 마음이 상할 주인도 아니었다.


만약 라프리트가 리아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취할 행동이 조금 달라졌겠지만, 현재 주인은 리아에게 심하게 빠져있었다. 친해졌다는 것만으로 여태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굉장한 추태를 보일 만큼······


물론 개인적으로도 리아의 성품은 호감이 갔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안네는 찬크에르와 아이리스에게도 살짝 묵례하고 라프리트의 뒤로 물러섰다.



“죄송해요, 라프리트 씨. 제가 좀 꾸물거리느라.”

“후훗. 괜찮답니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어요, 리아 양.”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짓는 라프리트를 따라 리아도 미소 지었지만······ 달리 생각하는 게 있나 보다. 시선이 쭈욱, 라프리트를 훑어본다.


왜 그런 것인지 찬크에르는 대충 짐작이 갔다. 리아는 분명 비교하고 있는 것이라고.


라프리트는 평범한 여성이었다.


표현이 이상하지만 정말 평범한 여성이었다. 평균 ‘신장’의.


그로 인해 입고 있는 교복은 분명 같은 디자인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달라 보였던 거다.


리아에게는.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리아의 모습은 그저 라프리트를 작게 축소한 정도다. 리아는 팔이 길다거나, 다리가 짧은······ 신체 비율이 특이한 것도 아니니.


쉽게 말해 그냥 작은 것이다.


그렇지만 리아에겐 이 차이야말로 라프리트와의―― 성인과 꼬마의 차이처럼 느껴진 게 아닐까 싶다. 넘을 수 없는 벽처럼.


예상은 틀리지 않았는지 리아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 그래도······ 가슴! 나도 가슴만큼은 비슷할 거야.”


이상한 대항 의식이 생긴 리아가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받쳐 최대한 크게 보이게 했다.



“리! 리아 양!! 수, 숙녀가······ 아니, 여성이 남들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됩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라프리트는 예의에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리아의 손을 억지로 잡아 가슴에서 떼어냈다.


당연히 리아가 놀라 했지만, 이건 못 넘기겠던지 라프리트는 손을 붙든 상태로 더욱 엄하게 혼냈다.


그렇게 기가 죽은 리아는 고개를 숙이고 얌전히 라프리트의 설교를 들었다.


뭔가······ 필리아에게 혼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이었다.



“라, 라프리트 아가씨! 복도입니다. 장소를 생각해주십시오.”

“아······”


조용하면서도 다급한 안네의 목소리에 라프리트는 퍼뜩 주위를 둘러봤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방 간의 사이가 넓은 서쪽 기숙사였던 것이 다행이었다.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어쨌든 리아에게 창피를 주지 않았다는 것에 라프리트는 크게 안도하고는 사과하려 고개를 돌렸는데――



“······.”


암만 봐도 리아는 풀이 팍 죽은 모습이었다.



“리, 리아 양. 그······ 죄송해요.”

“아뇨, 괜찮아요. 오히려 감사해야죠. 저를 걱정해줘서 해주시는 말씀이시잖아요.”

“······.”


살짝 입술이 삐져나온 리아.


라프리트는 당혹스러웠는데, 이를 부채질 하듯 찬크에르의 시선이 정수리에 따갑게 박히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리스는 눈을 빛내고 있었지만.



“어, 어. 저기, 리아 양······ 아! 맞다.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오늘 저녁, 제 방에 놀러 오시겠나요? 맛이 좋은 과자가 들어왔답니다.”

“놀러요?! 네! 갈게요!”


아이를 달래주는 것 같은―― 이러한 게 통할까, 라프리트도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통했다.


과자보단 놀러 가는 것에 더 의의를 두는 것 같았지만, 일단 리아가 기분을 푼 듯하여 라프리트는 작게 숨을 토해냈다.


다만 어째서인지 쳐다보는 찬크에르의 시선이 더 강해진 느낌이었다.


왜 그런 것인지 궁금했으나 우선 이동하는 것이 먼저. 의문을 접고 라프리트는 가볍게 권유하였다.



“리아 양, 슬슬 가볼까요? 늦진 않았지만, 서둘러 가는 것도 좋지 않으니 말이죠.”

“네!”


반대는 당연히 없었고, 리아와 라프리트 일행은 기숙사를 나와 함께 입학식이 열리는 대강당으로 향했다.


조금 이른 시간에 준비하고 나왔기에 시간이 끌렸음에도 대강당으로 향하는 길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라프리트의 뒤를 졸졸 따라가던 리아도 취미를 살려 여유롭게 학원의 경치를 만끽······하는 듯했다.


그러나 리아의 반응을 예민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던 찬크에르의 눈에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뭔가 살펴보는 낌새랄까, 뭔가를 확인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혼났던 기억도 완전히 사라졌는지 열중하는 그 모습에 찬크에르는 일단 잠자코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의외로 라프리트가 이런 리아를 알아차리고는 말을 걸었다.



“왜 그러시나요?”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라프리트 씨.”

“아하~ 학원 내가 궁금하신가요? 안내해드리고 싶지만······ 으음. 오늘은······”

“괜찮아요! 라프리트 씨가 일부러 안내해주시지 않아도.”

“일부러가 아니에요. 제가 리아 양과 함께 다니고 싶어서랍니다. 하지만 시간이······. 하아······ 왜 하필 후작 가에 태어나서 리아 양과의 산책을 방해받아야 합니까.”

“네?”

“앗. 호호~ 아뇨, 잠시 시간을 계산해봤어요. 리아 양, 아쉽지만 전 일주일 정도 시간이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죄송해요. 정말 같이 다니고 싶었는데······”

“그럼 일주일 후에 같이 돌아다녀 보면 되겠네요.”

“그, 그래도! 정말 그래도 괜찮나요?”

“네. 전 시간이 많을 거 같으니, 제가 먼저 둘러보고 안내해드릴게요! 저······저도 치, 친구와 함께 다니는 건 처음이라 기대되니까 꼭 그때 같이 둘러봤으면 해요.”

“치, 친구!!! 아······”


라프리트가 휘청거렸다.



“아, 아가씨?!”

“라프리트 씨?!”


안네가 라프리트를 받으려 움직이려는 순간, 살짝 부는 바람과 함께 리아가 먼저 받아냈다.



“괘, 괜······괜찮아요?! 라프리트 씨!”

“아으······ 정말 굉, 굉장한 꿈이에요. 리아 양이 절 친구라고······”

“허엇! 그, 그렇게 싫으신가······요?”

“그럴 리가요! 오히려 행복하기만 해요! 아~ 꿈이라지만 정말 달콤했어요······”

“저도 라프리트 씨와 친구가 될 수 있어 너무 기뻐요. 저기······ 근데 꿈이라뇨?”

“아가씨. 정신 차리십시오!”


다급한 안네의 말에 그제야 라프리트의 초점을 잃은 촉촉한 눈이 빛을 되찾았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다 자신을 안고 있는 리아와 눈이 마주쳤다.



“에······”


라프리트는 볼을 살짝 꼬집었다.


아팠다······.


화들짝 놀란 라프리트는 벌떡 일어났다.



“에에에!! 미, 미안해요―― 아뇨, 죄송해요! 리아 양!”


“뭘요. 친구끼리는 돕는 거 아니겠어요?”


리아는 순진무구한, 너무나도 맑은 미소를 지었다.



“······.”


또 한 번의 기습공격에 라프리트는 잠시 어찔해졌으나, 참아냈다.


주변엔 사람이 별로 없다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자신만의 창피로 끝난다면 다행이나 지금은 리아도 함께 있는 것이다.


그녀가 창피당하다니. 그것도 자기 때문에······


그런 일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


평소의 완벽한 귀족으로 탈바꿈한 라프리트는 우아하게 인사했다.



“실례했어요, 리아 양.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어엇.”


잠시 당황하던 리아였으나, 곧 배운 걸 떠올렸는지 라프리트와 똑같이 양 치마 끝을 잡고 인사했다.



“아니에요. 말씀드렸듯 친구는 서로 돕는 게 아니겠나요.”

“후후. 그렇군요. 여러분도 죄송합니다. 갑자기.”


사죄하는 그녀에게 아이리스는 미소 지으며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아뇨. 잠시 어지러울 수도 있는 거죠.”

“고맙습니다. 아이리스 군.”

“군은 빼주세요. 그냥 아이리스로 괜찮아요, 리벨리타스 씨.”

“그럼 저도 라프리트로 부탁해요, 아이리스.”

“알겠어요, 라프리트 씨.”


언뜻 보면 화기애애한 둘의 상황이다만―― 아니, 실제로도 화기애애한 건 맞다.


그러나 아이리스는······ 정확히는 아이리스와 찬크에르는 조금 바빴다.


둘은 리아가 현기증이 난 라프리트에게 [정화]를 사용하려는 걸 말리느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주 분주했는데, 아이리스가 앞으로 나온 것도 가림막으로서 라프리트와 안네의 시선을 가리려 했던 거다. 그틈에 찬크에르는 빠르게 리아를 설득했고.


그 일련의 과정은 순식간에 이루어졌고, 언제나 티격태격하는 둘이지만 이때만큼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였다. 덕분에 들키지 않고 리아의 마음을 접게 만들 수 있었다.


힘겨운 노력 끝에 가까스로 막은 찬크에르는 더는 리아가 섣부른 짓을 하지 못하게 자리를 정리하려 했다.



“아가씨, 슬슬 이동하심이.”

“아, 그러네요. 입학식은 중등부도 같이 하니 사람이 모이면 북적거리겠어요. 라프리트 씨, 이제 어지러움은 좀 나아지셨나요?”

“네. 저는 괜찮아요.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미소 짓는 라프리트가 정말 괜찮은 듯하여 리아도 함께 다시 길을 재촉했다.


라프리트와 리아는 대화도 하며 즐거운 분위기로 나아갔고, 찬크에르의 바람대로 이번에는 별다른 일 없이 대강당 앞에 도착했다.


리아는 그곳에서 멍하니―― 학원 내부를 둘러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묘한 낌새로 살펴보았는데, 서두르는 듯했던 라프리트는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말을 걸었다.



“리아 양, 너무 아쉽지만 여기서 헤어져야 할 거 같습니다.”

“아, 그렇죠. 일이 있으시다고······”

“예. 전 아무래도 타국에서 오신 분들을 좀 뵈어야 되어서······ 그래도! 오늘 약속엔 늦지 않게 올 수 있습니다.”

“다행이에요!”


“왜 하필”이라며 투덜거리는 라프리트가 떠나가고, 리아는 입학식이 열리는 대강당으로 들어섰다.


작가의말

드디어 학원편 돌입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라스티아 입니다


오늘도 인사드릴 수 있어서 기쁘네요


다들 좋은 하루되세요!


아 그리고 7시 15분에 1화 더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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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52 22.06.23 120 0 42쪽
53 51 22.06.23 112 0 39쪽
52 50 22.06.21 119 2 22쪽
51 49 +2 22.06.21 112 2 21쪽
50 48 22.06.21 131 1 20쪽
» 47 22.06.21 106 1 21쪽
48 46 +2 22.06.19 120 2 39쪽
47 45 +2 22.06.18 105 1 24쪽
46 44 22.06.18 122 1 28쪽
45 43 22.06.17 116 2 23쪽
44 ?? +2 22.06.16 104 1 17쪽
43 42 22.06.16 96 2 19쪽
42 41 22.06.16 98 2 33쪽
41 40 22.06.16 102 1 30쪽
40 39 22.06.16 112 2 18쪽
39 38 +2 22.06.15 130 2 27쪽
38 37 22.06.13 94 1 28쪽
37 36 22.06.11 106 0 20쪽
36 35 22.06.11 98 1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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