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렙 히로인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9.16 14:10
연재수 :
274 회
조회수 :
33,956
추천수 :
315
글자수 :
3,873,671

작성
22.06.15 06:00
조회
130
추천
2
글자
27쪽

38

DUMMY

마족들의 숙소, 그곳에서 마련된 의자에 리아가 앉아 있었다.


‘으······ 긴장되네.’


기다리던 순간이건만 막상 닥쳐오니 리아는 부끄러움과 긴장감으로 굳어졌다. 중간에 상태를 보러 온다는 찬크에르에게도 절대 오지 말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아가씨. 긴장 푸······시라는 것도 좀 이상하나요. 그래도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맞아요. 긴장할 거 없어요! 무척 귀엽고 예쁜걸요.”

“그, 그런가요? 고마워요, 여러분. 아시리트 씨도 화장 고마워요.”


다른 마족들과 함께 돕던 아시리트는 미소 지었다.



“전 별로 한 것도 없어요. 아가씨의 피부가 워낙 아이 피부처럼 깨끗하고 보드라워서 연지 정도만 발랐을 뿐인걸요.”

“아, 아이······”

“아시리트 언니!”

“헛! 아뇨! 아가씨. 비유가 그렇다는 것이지, 아가씨가 아이라는 건······”

“네네. 윤기 흐르는 머릿결도 드레스와 잘 어울리고 아름다우세요.”

“맞아요. 천상 여성이에요!”


아시리트들의 필사적인 위로에도 불구하고 리아의 눈은 빛을 잃어 가고 있었다.


똑똑.


이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마족의 숙소는 리아의 대기실로 사용하는 건 주민들 전원 알고 있으니 함부로 다가올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여길 찾아올 사람은 정해져 있다.


난처해하던 아시리트들의 화색이 밝아졌다.


그 심경을 대변하듯 리아의 치장을 도와주던 마족 여성은 황급히 뛰어가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그녀들의 예상대로 한 남성이 있었다.



“어서 오세요, 이스카르 어르신.”

“오우. 리아를 데리러 왔는데······ 왜들 그래?”

“아뇨, 아뇨. 아가씨는 준비를 모두 마쳤어요. 어서 이리로······”


의아해하면서도 이스카르는 안내되는 대로 나아갔다.


이윽고 작게 칸막이가 쳐진 곳에 도착했다.



“아가씨는 이곳에.”

“응. 고마워. 리아야, 준비됐니?”


감사를 전하며 이스카르는 천천히 칸막이를 열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있는 리아가 그의 시선에 들어왔다.



“아, 아버지 오셨어요?”

“어, 어. 그래, 리아야······”

“아버지······?”

“······예쁘구나. 정말로.”

“그래요? 헤헤.”


옆에 있던 아시리트들도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는 다 됐니?”

“네. 그런데······ 정말 괜찮아 보이나요? 여러분들이 열심히 꾸며줬는데 어울리지 않으면······”

“무슨 소리를 하니. 아까 말했지? 정말 예쁘고 잘 어울린단다. 이 아빠가 보증하마.”

“고마워요, 아버지.”

“후후.”


댕댕.


시간이 됐다. 이제 가야 했다.


이스카르는 리아에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손을 내밀었다.



“자. 공주님, 가실까요?”

“네. 잘 부탁드려요.”


익살스럽게 말하는 이스카르. 살짝 볼을 빨갛게 물들인 리아는 내민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살포시 얹었다.


두 사람은 미소 지었다.


그렇게 치렁치렁 단이 긴 드레스를 입은 리아가 일어서고, 아시리트의 도움을 받으며 문으로 갔다.


문 앞에 선 리아는 잠시 멈춰서 심호흡했다.



“괜찮겠니?”

“후······. 네. 괜찮아요. 가요, 아버지.”

“그래.”


문이 열리고 밖으로부터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두 사람은 서로 쳐다보고는 그 앞을 향해 나아갔다.


――‘딱’ 소리와 함께.






이번 결혼식은 찬크에르의 물음으로부터 시작됐다. 지구에서의 결혼식은 어떠한 식으로 이루어지냐는 그의 물음에서.


그런 그에게 리아는 자신의 기억 속의 결혼식을 마법으로 보여주어 설명해줬다.


이를 흥미롭게 보던 찬크에르는 제안했다. 이대로 해보자고.


리아에겐 반대 따윈 없었고, 찬크에르는 옷부터 단상에 이르기까지 모두 손수 만들었다.


다만 눈으로 보기만 한 다른 세계의 옷을 재현하는 것은 그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옷감의 질감도 모르는 데다, 안쪽 마감은 어떻게 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찬크에르는 포기하는 법 없이, 모르는 부분은 리아에게 도움을 받아 만들어 나갔다.


그렇게 망각이 없던 찬크에르는 다시 보여 달라는 일도 없이 세세한 부분까지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턱시도는······.


문제는 웨딩드레스라 불리는 미지의 물건이었다.


유일하게 도움을 줄 리아에게도 그쪽에 대한 기억은 거의 전무했다.


대강의 생김새는 알고 있었지만, 안감이 어떤지, 질감은 어떤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마법으로 보여주는 모습도 모호할 뿐이었다.


전생에는 남자였으니 당연했다. 그쪽 업계에서 일하는 것이 아닌 한, 잘 아는 남성은 드물 것이다.


별다른 정보가 없는 만큼 찬크에르조차 어려움에 직면했다. 그나마 생김새는 알 수 있던 것이 다행이랄까.


리아를 위한 일이기에 찬크에르는 턱시도를 만들며 얻은 노하우와 [차원 수납]에 보관하고 있던 모든 옷을 살펴보며 연구를 거듭했다. 얼추 비슷해 보이는 옷이 있으면 한 올, 한 올 풀어가며 구조를 파악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해낸 것이다.


웨딩드레스를······


리아 몰래 만드느라 상당한 시간과 가지고 있던 옷을 제법 많이 소비했지만, 만들어진 결과물은 찬크에르도 만족스러웠다.


남은 과제이자 결혼식에 중요한 사회자와 주례자도 재빠르게 확보하고, 결혼식에 대한 설명도 놓치지 않고 해줬다.


처음 들어보는 결혼식에 대해 질문하는 에이브안과 잭에게는 대충 먼 나라에서 행해지는 방식이라 설명했다. 동포들에게 들은 이야기에도 얼추 비슷한 내용도 있었으니 딱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사실대로는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려면 일단 리아가 전생, 그것도 다른 세상의 기억이 있는 것부터 설명해야 하는데, 아무리 에이브안과 잭을 믿을 수 있다 하더라도 이 문제는 별개였다. 애초에 리아가 알리고 싶지 않아 하기도 했고.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오늘 이 순간이 왔다.


‘모든 건 리아를 위해. 이 결혼식은 그녀를 위해 준비했다.’


떨리는 심정으로 찬크에르는 자신의 신부를 기다렸다.


새로이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두근거리면서도 긴장되고, 행복하면서도 불안한, 뭐가 뭔지 자신조차 알기 힘들었다.


끼익.


60여 명의 사람들이 기대감에 웅성거리고 있었으나, 찬크에르는 문 열리는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리아가 나온 것이다.


찬크에르는 대기실 쪽을 바라봤다.


원래 순서로는 찬크에르가 단상의 오른쪽, 리아는 왼쪽으로 나오는 것. 그러나 너무 부끄러워하는 리아로 인해 동선을 변경했다.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드레스에는 항시 청결마법이 발동하도록 조처해놨다. 흙길에 더러워질 염려는 없었고, 멀리 돌아오는 도중 리아가 안정을 취할 수만 있다면 만만세였다.


그런 생각을 머리 한구석으로 하고 있으니 열린 문밖으로 이스카르가 나왔다. 그리고 시선을 조금 내린 그곳엔······


자신의 사랑스런 신부가 있었다.



“······”


단상에 서 있는 찬크에르가 한 곳을 뚫어져라 바라보자, 밑에 있던 주민들도 하나둘씩 그가 보고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찬크에르처럼 말을 잊고 멍하니 쳐다보게 되었다.


도각도각.


모두가 침묵하는 광장에 맑은 구두 소리가 울리고, 리아는 사뿐한 걸음걸이로 서서히 다가왔다.


가까워짐에 따라 사람들 등에 가려 잘 안 보였던 이들의 눈에도 마침내 리아가 들어왔다.


얼룩 하나 없는 순백의 드레스와 베일. 머리까지도 은발이라 온통 하얀 리아는 보는 이들에게 순결과 청순함을 물씬 느끼게 했다. 성녀라 믿고 있는 마족들에게는 신성해 보이기까지 하였다.


마을로 돌아온 이후로도 전혀 성장하지 않은 리아였다. 자칫하면 어린 신부 놀이로 될 수도 있건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혹시 리아가 긴장했더라면 농담을 건네려 했던 주민도 마찬가지였다. 말을 잃고 쳐다보기만 했다.



“요정······”


하객 중 누군가가 헐떡이듯 말했다.


말을 한 장본인도 모르게 무의식중에 나온 말로, 주변은 조용했기에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견은 나오지 않는다. 말을 할 생각조차 들지 않거니와 자신들도 그리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견이 있을 리가 없다.


――어느 누가 후광까지 비치는 듯한 저 모습을 보고도 그리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모두의 시선이 모인 것을 느끼며, 리아는 양쪽으로 갈라진 하객들의 사이를 지나 단상으로 다가갔다.


리아는 살짝 고개를 들어, 이미 단상위에 서서 자신을 기다리는 찬크에르를 바라봤다.


‘와······ 에르. 너무 잘 어울린다.’


장발이라 조금 어색함이 있지 않을까 했었지만, 막상 두 눈으로 보고 나니 그런 건 없었다. 그러긴커녕 마치 소설 속의 귀공자가 튀어나온 모양새다.


‘이런 멋진 남자와 내가······ 겨, 결혼!’


찬크에르는 외모뿐만이 아니라 성격, 마음씨까지 모든 게 완벽한 남자였다.


그런 사람과 지금 결혼식을 한다니······ 꿈이라 생각될 정도로 현실감이 없었다.


그런데······


리아는 살짝 고개를 내려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완벽한 찬크에르에 비해 너무나 작디작은 몸. 외모는 리아 스스로도 나름 귀엽다는 생각을 조금 하고 있지만 그게 끝이었다. 성인으로 봐줄지나 걱정이다.


리아는 마을로 돌아오고 나서도 조금의 성장이 없는 자신의 작은 신체가 상당한 콤플렉스였다.


이전에도 비슷한 생각이 들 때면 외형이 전부가 아니라 다독이고, 되도록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고야 말았다.


그렇기에 부정적인 생각이 들고야 말았다.


잘생기고 훤칠한 찬크에르와는 빈말로도 어울리는 한 쌍으론 보이지 않는다고······



“리아야.”


울상이 되어가던 리아의 귀에 작게 이스카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리아는 고개를 돌렸다.



“당당해지거라. 넌 지금 이 자리의 주인공이고, 이 자리의 누구보다도 아름답단다. 찬크에르에겐 정말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인 여성이야. 그런 여성이 자신 없어 하면 축하해주는 분들과 찬크에르에게도 실례가 아니겠니.”


자신의 손을 잡고 앞만을 바라보고 걷는 이스카르의 얼굴은 늠름했다.


의복도 집에 있는 것들 중 가장 좋은 것이었지만, 시골에서 축제할 때나 볼 수 있을 법한 옷이었다. 찬크에르의 턱시도랑은 비교할 수도 없었고, 드레스를 입은 자신과도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도 가슴을 펴고 걷는 이스카르에게는 한 점의 망설임이나 부정적인 감정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오직 당당하게 앞으로만 나아갔다.


‘그래. 아버지도 저리 멋지게 가시는데 내가 기죽으면 안 되지. 후광까지 있으니 당당하게 가는 거야.’



“네. 전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딸이니까요. 매력적인 거야 당연한 거죠.”

“그래. 그래야 내 딸이지.”


이스카르는 미소를 지었고, 리아도 마주 웃었다.



“아버지······”

“응?”

“여태까지 저를 많이 아껴주셔서 정말, 정말 고마워요. 저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딸로 태어나 정말 행복했어요. 정말 고마워요, 아버지.”

“······그리 말해줘서 고맙구나.”


천천히 걷던 둘은 단상의 오른편 계단에 도착했다.






‘이제 교대할 시간이군······.’


너무나도 아쉬운 마음에 천천히 걸었음에도 벌써 도착한 게 애석하기만 하다. 그러나 리아에게―― 딸에게 못난 모습을 볼일 수 없다.


이스카르는 훌쩍 아쉬움을 털어내고는 리아의 손을 놓아주며 살며시 이마에 키스를 해줬다.



“결혼 축하한다, 리아야. 꼭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에르가 어떤지 아시잖아요. 저 반드시 행복하게 살 거예요. 아버지나 어머니가 시집 잘 보냈다고 자랑할 만큼요.”

“후후······ 그러니.”


살짝 눈물을 머금고 환하게 웃는 리아.


이스카르도 미소 짓고 마지막 배웅을 해줬다.



“자자. 더 이상 둘을 기다리게 할 순 없지. 어서 가려무나, 리아야.”


계단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다음 교대자, 루데릭과 아이리스에게 리아의 손을 넘겼다. 그리고 멀어져가는 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리아를 키우며 보냈던 나날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지나갔다.


그러다 리아의 모습을 새겨놓고 있던 시야가 뿌예졌다.


‘아아······ 정말 순서를 바꾸길 잘했어.’


필리아와 에이브안, 아이리스까지 거듭 말해 억지로 먼저 리아를 데려오게 되었지만······ 지금 보면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래······ 날 위해서였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스카르의 눈에 맺혀있던 눈물이 조용히 흘렀다.


확실히 마지막이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분명 자신은 눈물을 보였을 테니.


경사스러운 딸의 결혼식에 찬물을 끼얹고 싶진 않았다.


아버지가 딸의 결혼식에 눈물을 흘리는 일은 흔하고, 그럴 수 있지 않냐는 생각도 조금 들긴 했다.


하지만 그러면 이후 반드시 오랫동안 후회할 것이다. 딸의 결혼식을 망쳤다고. 주위에서 아무도 탓하지 않더라도, 그리 생각하지 않아도 말이다.


‘나중에 리아의 결혼식 이야기만 나오면 입을 다물겠지.’


그런 자신이기에 가족들도 적극적으로 순서를 바꾸게 했을 터다.



“당신······”


먼저 차례를 마친 필리아가 걱정스런 얼굴로 다가왔다.


이스카르는 눈가를 거칠게 문지르고 뒤를 돌았다.



“괜찮아. 필리아, 당신도 고생했어.”


많은 의미를 담은 말에 필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스카르의 손을 잡았다.



“당신도요. 참 고생이 많았죠?”

“고생보단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그렇게 말하면 제가 뭐가 되나요?”

“미안, 미안.”


짐짓 화난 듯한 음성이었으나 필리아의 표정은 부드러웠다.


이스카르는 미소를 지으면서 필리아의 손을 이끌었다.



“자~ 우리는 이만 자리를 이동할까? 리아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잘 봐둬야지.”

“네. 우리 딸의 결혼식인데 한순간도 놓칠 순 없죠.”


조용히 웃으며 둘은 하객들이 서 있는 가장 첫 줄, 상석으로 이동했다. 걸어가면서도 둘의 시선은 단상으로 향하는 리아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상석에서도 부부가 얼마나 딸을 아끼는지 잘 아는 주민들은 이 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말을 아꼈다.


배려해주는 주민들에게 마음속으로 감사를 전한 이스카르는 리아와 찬크에르, 두 사람을 축복하며 지켜봤다.



“리아야. 나야말로 우리 딸로 태어나줘서 고맙고 행복했단다.”






한편······


진지하고 감동적인 뒤쪽과 달리, 리아의 손을 건네받은 루데릭과 아이리스의 분위기는 묘하기 짝이 없었다.


감동의 ‘ㄱ’도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황당함만이 가득하였다.


참다못한 루데릭이 물었다.


“너······ 그 뒤에 눈부신 건 또 뭐냐?”


멀리서 볼 때는 소중한 동생이 아름답게만 보여 자신의 머릿속이 만들어낸 환상으로 여겼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시간이 지났음에도―― 가까이 다가오는데도 불구하고 이 환상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존재했다.


이상함을 느낀 루데릭은 긴장하고 있었던 것도 잊고 빤히 쳐다보다 깨달았다.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 같은 게 아니라고. 저건 진짜 빛나고 있는 거라고.



“어머니······ 저거 마법인 거죠?”


루데릭과 마찬가지로 깨달은 아이리스도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리아가 마법을 쓸 땐 마력은 전혀 새지 않는다. 안 그래도 인간인 채로는 둔감했던 아이리스는 그걸 느낄 수 없기에 확신은 갖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리스는 알 수 있었다.


저건 100% 리아의 마법이며, 엉뚱한 자신의 어머니라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라고.


둘의 황당하다는 표정에 리아는 이스카르와 떨어지며 고여 버렸던 눈물도 쏙 들어갔다.



“아니, 그게······”


당황하여 허둥대는 리아.


사실 리아도 안 들킬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람 뒤에 후광이 비친다니 어딜 어떻게 봐도 이상하지 않은가.


찬크에르의 턱시도 차림을 봤을 때 그의 뒤에 후광이 비치는 듯 눈부셨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비치는 ‘듯’한 거다. 진짜로 뒤에서 비치진 않는 것이다.


이리도 이상하건만 여태 딴지가 없었던 건―― 결혼식이라는 특별한 상황 때문이었다.


대표적으로는 이스카르와 에이브안.


그들은 리아의 결혼식이라 긴장하여 사고가 둔해진 것이다. 그래서 후광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정확히는 리아가 예쁘기에 보인다는 뇌 내의 환각쯤으로 여겼는데······ 말하자면 팔불출이란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탓할 순 없으리라. 평소에는 리아의 요상한 행동을 빠르게 눈치채는 필리아조차도 오늘만큼은 예외였으니 말이다. 그녀 또한 리아가 예뻐 자신에게 저리 보이는 거로 생각했다.


이들 뿐만이 아니다. 마족들 전원은 리아의 성스러움으로 인해 후광이 보인다고 절찬리 착각 중이다. 뒤에서 리아의 드레스 자락을 잡고 보조해주는 아시리트도 마찬가지. 조금의 의문도 품고 있지 않았다.


그나마 이상함을 눈치챈 건 인간 주민들 몇 명과 잭 정도. 하지만 이조차도 무언가 이상하다 수준이었다.


다른 인간 주민들은 마법에 대해선 거의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이다. 에이브안뿐만 아니라 찬크에르, 최근에는 마족들이 주민이 되어 마법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지만, 조예가 깊다고 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설마 저 후광이 마법이며, 리아가 아이 같은 모습의 자신을 어떻게든 커버하려 발버둥 친 결과란 진실에 도달할 리가 없었다.


덕분에 아무도 딴지를 걸지 않아 리아는 어른스럽게 보이려는 이 작전이 나름 성공적이라 생각했다.


조금 전까진······



“헤헤헤. 그······ 많이······ 이상해?”


리아는 어설픈 웃음으로 무마하려 했다.


죽었다 깨도 어른스럽게 보이려 한 일이라곤 말할 수 없었다. 스스로 자신이 꼬맹이라는 걸 인정하는 꼴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차마 본인의 입으로 자신의 콤플렉스를 자극할 말을 꺼낼 엄두는 나지도 않는 것이다.


안쓰럽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으나······ 공교롭게도 루데릭과 아이리스에게는 효과가 좋았다.


이 둘은 리아가 어려 보이는 것에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알고 있던 거다. 그런데다가 화장을 한 리아를 보는 건 처음이다.


비록 연지를 바른 정도지만 상관없었다. 순백의 드레스와 은발을 땋아 길게 늘어뜨린 리아는 둘에겐 충분히 아름다운 여성으로, 누군가 “요정”이라고 말했을 때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수긍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여러 요소가 합쳐져 현재 둘에겐 곤란한 표정의 리아는 치명적이었다. 마치 자신들이 리아를 괴롭히는 것만 같았다.



“아니! 엄청 잘 어울려! 역시 내 동생이야.”

“생기 넘치는 긴 머릿결도 그렇고, 우아한 자태가 마치 요정······ 네. 요정 같아요!”

“요정······ 그, 요정은 아담······”

“아뇨! 크고 아름다운 요정도 세상을 둘러보면 하나둘쯤 있을 거예요!”

“그래. 요정이 작다는 편견을 버려!”

“저기, 고맙긴 한데······ ‘작다’라는 건 좀······”

“앗! 아니, 리아가 작다고 한 건――”

“――어이, 바보 루데릭! 넌 그만 말해.”

“그만둬야 할 건 너희 둘이닷!”


쿵!



“으앗!”

“악!”

“너희 둘. 멈춰 서서 뭐 하고 있는 거냐?”


고통에 머리를 부여잡으면서 뒤로 돌아본 둘의 눈엔, 웃고 있지만 이마에 힘줄이 솟아난 잭이 있었다.


잭은 놀라는 둘의 머리를 손으로 쥐어 잡고는 자신에게 가까이 끌어당겼다.



“어이. 너희들, 촌장님의 잔소리가 얼마나 긴지 아냐? 앙? 너희는 어리기도 하니 넘어가실지 모르지만 난 아니야. 만약 촌장님의 기분이 나빠지면 난 무조건 설교를 들을 거라고. 그걸 너희들이 책임질 수 있어? 대신 들어줄 수 있냐고.”


얼굴을 바짝 붙여 무겁게 이야기하는 잭의 박력에 둘은 고개를 흔들기만 했다.



“그렇지? 아이리스, 네 엄마의 결혼식이야. 최대한 멋지게 끝내야겠지? 그리고 루데릭, 넌 성인인데 맡은 일에 충실해야 하지 않겠니? 나도 생전 해본 적 없는 진행자 같은 걸 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둘은 말없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잘해보자.”


여전히 웃는 표정으로 잭은 떨어졌지만, 눈은 날카로웠다. 흡사 사냥을 나갔을 때와 같은 매서움이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눈이 말하고 있었다.


한 번만 더 이상한 짓을 한다면 용서하지 않는다고······


몸을 떠는 둘을 놔두고, 잭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며 이미 웃음바다가 되어버린 광장을 쳐다봤다.


리아가 등장한 후 발생했던 신비롭고 엄숙했던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 분위기 덕에 거의 대다수가 품지 않던 의문이 생겨났다.



“끅끅. 쟤네들은 뭐 하는 거야?”

“하하. 긴장하셨겠지. 그런데 아가씨 뒤에 있는 빛은 뭐지? 사라지지 않는데.”

“어? 너도 보이고 있었어?”

“응? 자네도?”


아수라장이 되어 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리아의 후광을 눈치챈 건 괜찮았다. 그 정도야 잘 보이기 위한 신부의 귀여운 노력이라 보면 되니까.


하지만 삼삼오오 떠들기 시작하여 소음이 발생했다.


점점 신성한 결혼식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위험을 느낀 잭은 황급히 에이브안을 쳐다봤으나······ 다행히 그도 살짝 웃고 있는 걸 보니 설교를 들을 확률은 낮아 보였다.


안전을 확인한 잭은 침착하게 분위기를 정돈했다.



“음음. 아리따운 신부의 매력에 잠시 어찔해진 모양입니다. 여러분들께선 계속해서 이 결혼식을 축복해주시기 바랍니다.”


어찔해졌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이는 모두의 공통된 생각으로, ‘네가 때려서 그런 거 아냐?’라고 생각을 한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주민들은 일단 모르쇠 넘어갔다.


아직 결혼식은 끝난 게 아니었고, 무엇보다―― 안광을 번뜩이는 아시리트의 눈빛이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저 아이도 참. 저런 걸 또······ 저도 깜빡 속았지 뭐예요.”

“괜찮지 않아? 리아답기도 하고.”

“리아답다면, 리아다운데. 본인 결혼식에서까지 저런 엉뚱한 일을······ 정말 누굴 닮은 건지 원.”

“하, 하······ 자자.”


이스카르, 그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녀 또한 귀찮다는 이유로 모든 절차 다 무시하고 키스 한 번으로 결혼식을 바로 끝내려 했었다는걸. 안 그래도 짧은 절차였건만, 당신도 꽤나 엉뚱했다고.


그렇게 조금 소란스럽던 하객들도 집중하고 결혼식은 다시 진행되었다.


리아의 손을 잡고 인도하는 루데릭과 아이리스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눈은 진지하게 앞만을 바라보고 있었고, 한시라도 빨리 끝마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하였다. 다른 짓을 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잔뜩 기합이 들어간 둘을 보고 걱정하던 리아였지만, 그 생각은 이내 사라졌다.


도착했던 거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결혼식의 또 다른 주인공, 찬크에르 앞에.


멍하니 찬크에르를 바라보는 리아의 모습에 피식 웃은 루데릭과 아이리스는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잘하라고, 리아.”

“어이, 바보 아빠. 어머니 잘 챙겨.”


각자 나름의 격려를 건넨 둘은 단상을 내려갔다.


리아는 그 와중에도 시선이 찬크에르에게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눈을 뗄 수 없었다. 후광은 자신에게 비칠 텐데도 찬크에르가 빛나 보였다.


찬크에르는 자신을 넋놓고 바라보는 리아에게 다가가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기다렸어, 리아. 정말 아름다워.”


이 말을 함과 동시에 찬크에르의 미간엔 살짝 주름이 잡혔다.



더 해주고 싶은 말이 많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눈앞에 사랑스러운 리아가 있건만.


이 순간만큼은 말주변 없는 자신이 싫어지던 찬크에르였다.



“그걸로 충분해요. 고마워요, 에르.”

“리아······”


강하게 손을 쥐고 말하는 리아의 분홍 눈동자에 찬크에르는 경직했다.


아름다웠다······


미소 짓고 바라보는 모습도 아름다웠고, 자신의 마음을 눈치채고 달래주는 심성도 아름다웠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리아가 아름다웠다.


그냥 리아의 모든 게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 지금 당장 껴안고 싶었다.


리아의 등 뒤에 있는 후광은 매우 어울렸으나, 지금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웠다.


리아, 내 신부의 사랑스런 모습을 잘 안 보이게 했으니······


저 정도의 빛에 찬크에르가 잘 안 보일 리도 없었지만, 그는 그 조금의 방해도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마주 보던 둘은 가까워졌다.



“크흠······”


언제나 있던 일을 이 자리에서 할 줄이야.


어처구니없으면서도 이대로 내버려 두면 끝이 안 나는 걸 알기에 에이브안은 주의를 줬다.


리아와 찬크에르는 화들짝 떨어졌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손은 맞잡고 있었다.


‘좀 더 기다려도 됐건만.’


찬크에르는 에이브안이 조금 심술부린 걸 알았다. 그래도 그의 마음은 이해됐고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에이브안에게는 한없이 고맙기만 했다. 리아를 아끼고 사랑해줘서, 그리고 일부러 주례까지 서주며 자신과의 결혼을 축하해줘서.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마웠다.



“그럼, 이제부터 혼인 서약을 한다. 두 사람은 앞으로.”


다시 엄숙해진 분위기로 돌아온 가운데, 사이좋게 손을 마주 잡은 리아와 찬크에르는 에이브안 앞에 섰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증인이다. 그 아래, 맹세해주길 바란다.”


전통적으로 마을에서의 결혼식은 운명의 신에게로 맹세를 했었다.


하지만 신에 대해 묘한 경계심을 품는 리아를 위해 찬크에르가 배려한 것이었는데, 리아 자신도 잘 모를 신보단 소중한 사람들 앞에서 맹세하기를 원했기에 이처럼 바뀐 것이었다.


다른 이들도 이의가 있을 리가 없었기에 별문제 없이 이대로 진행되었다.



“신랑, 찬크에르레이. 그대는 신부, 이스피리아를 생의 반신으로서 맞이해 함께 살아갈 것을 맹세하는가?”


찬크에르는 가슴을 당당히 폈다.



“맹세하네. 이 몸이 바스러져 사라지더라도 언제까지나 사랑할 것임을 모두가 보는 앞에 맹세하네.”

“그럼. 신부, 이스피리아.”

“네.”

“당신은 신랑, 찬크에르레이를 남편으로 맞이해, 생의 마지막까지 함께 걸어갈 것임을 맹세하는가?”


살짝 홍조를 띤 리아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에이브안의 눈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말했다.



“네. 저도 생이 다하더라도 그를 사모할 것임을 모두에게 맹세합니다.”

“음.”


고개를 끄덕인 에이브안은 광장을 둘러봤다.



“둘의 서약이 끝난 가운데, 이 결혼에 이의 있는 자 있는가? 이의가 있다면 발언할 것을 허가한다.”


광장은 조용했다.


당연히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주민들 모두는 이 결혼식을 기쁜 마음으로 축복하고 있으니.


그런데다 리아의 뒤에서 보조하고 있는―― 무시무시한 안광을 내뿜는 아시리트 때문에 입을 열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모두가 이 결혼을 축복하는 것으로 간주하며······ 신랑, 찬크에르레이와 신부, 이스피리아가 지금 이곳에서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한다!”


광장 전체에 근엄하게 울려 퍼지는 에이브안의 선언과 함께 함성이 솟아났다.



“아가씨. 축하드려요!”

“리아야, 축하한다.”

“찬크에르 씨, 축하해요!”

“흥. 일단 축하는 해야겠지.”

“뭐······ 그렇지.”


주민들의 축복 어린 말들로 시끌시끌해진 광장을 뒤로한 채 찬크에르와 리아는 서로를 바라봤다.



“저, 저기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여, 여... 우으. 다, 당···신.”


자신의 손을 잡고 머리에 김이 날 듯 새빨개진 얼굴로 우물거리는 리아를 찬크에르는 애정 가득한 눈으로 내려다봤다.


사랑스러웠다.


그 마음이 시키는 대로 찬크에르는 한쪽 손으로 리아의 어깨를 감쌌다.



“나야말로. 내 아내가 되어줘서 고마워, 리아. 사랑해.”


찬크에르는 허리를 숙였다.


다가오는 찬크에르의 얼굴을 보며 리아는 살며시 그의 옷깃을 잡았다.



“저도 사랑해요.”


찬크에르의 숨결이 얼굴에 닿아 흐트러지는 걸 느끼며 리아는 눈을 감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만렙 히로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5 63 22.06.29 91 0 38쪽
64 62 22.06.29 88 2 39쪽
63 61 22.06.28 86 1 23쪽
62 60 22.06.27 89 1 33쪽
61 59 22.06.27 95 0 25쪽
60 58 22.06.27 96 0 26쪽
59 57 22.06.26 107 0 35쪽
58 56 22.06.25 101 1 12쪽
57 55 22.06.25 123 1 18쪽
56 54 22.06.25 111 1 33쪽
55 53 22.06.23 113 1 26쪽
54 52 22.06.23 120 0 42쪽
53 51 22.06.23 113 0 39쪽
52 50 22.06.21 119 2 22쪽
51 49 +2 22.06.21 112 2 21쪽
50 48 22.06.21 131 1 20쪽
49 47 22.06.21 106 1 21쪽
48 46 +2 22.06.19 121 2 39쪽
47 45 +2 22.06.18 106 1 24쪽
46 44 22.06.18 122 1 28쪽
45 43 22.06.17 116 2 23쪽
44 ?? +2 22.06.16 104 1 17쪽
43 42 22.06.16 96 2 19쪽
42 41 22.06.16 98 2 33쪽
41 40 22.06.16 102 1 30쪽
40 39 22.06.16 112 2 18쪽
» 38 +2 22.06.15 131 2 27쪽
38 37 22.06.13 94 1 28쪽
37 36 22.06.11 107 0 20쪽
36 35 22.06.11 99 1 2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