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쎄진 홍길동, 이번엔 안 봐줌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oooon
작품등록일 :
2022.05.11 13:48
최근연재일 :
2023.05.08 20:15
연재수 :
128 회
조회수 :
22,013
추천수 :
405
글자수 :
538,244

작성
22.05.14 12:10
조회
335
추천
4
글자
10쪽

< 11. 박계장, 옳은 선택을 하다 >

DUMMY

박계장의 머릿속은 난마처럼 얽혀있었다. 생각을 논리적으로 이어가기 어려웠다. 도대체 사건의 전모를 어떻게 그려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피해자인지도 헷갈렸다.


박계장이 조사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빙긋이 웃어줬다. 박계장은 내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진저리가 쳐지는 모양이었다. 나를 외면하고 자리에 털썩 앉는다. 한숨을 푹 쉬며 천장을 올려다본다. 내가 물었다.


“조서는?”


“무슨 조서?”


“나한테 받았던 조서 말이야. 서장한테 빼앗겼어?”


박계장은 아차 했다. 서장이 하도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조서를 회수할 생각을 못했다. 그렇다고 지금 다시 올라가서 조서를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피의자의 지문까지 찍힌 조서를 없었던 것으로 할 수는 없었다. 만약 그랬다가는 감옥에 가고도 남을 범죄였다. 우물쭈물할 수밖에 없었다.


“아, 어디 갔지? 찾아볼게. 찾아보지 뭐.”


“조서 다시 쓸 생각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서장이 조서 다시 받으라고 했지?”


“그래. 어떡하면 좋겠냐?”


본심을 무심결에 흘린 박계장이 살짝 당황했다. 오죽 답답했으면 피의자인 나한테 상의를 다 해올까... 순간 측은해 보였다.


“박계장, 잘 들어. 이 대목에서 삐끗하면 당신은 천 길 낭떠러지야. 그냥 인사에서 물 먹는 게 낫지 감빵에는 가지 말라고. 이 악물고 기다리라고. 그러다가 서장 바뀌고 청장 바뀌고 대통령도 바뀌다 보면 당신을 다시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생길 거야.”


“당신이 어떻게 알아?”


“당신도 알고 있잖아? 괜히 목전의 불이익 좀 피해 보겠다고 무리수 두다간 바로 깜빵이란 말이야. 당신의 꿈이 그냥 뭉그러지는 거라고. 알았어?”


“그래서 지금 당장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그냥 버텨. 진술서는 피의자가 거부해서 받을 수가 없다고 하고. 그러면 아마 최서장이 갖고 있는 진술서로 영장을 치든지 말든지, 아니면 사건을 그냥 없던 일로 하든지 말든지 하겠지. 그것은 최서장 일이고 어쨌거나 당신은 책 잡힐 일 하지 말고 버티라고”


박계장은 무너진 하늘에서 구멍을 찾은 것 같았다. 노트북 모니터를 탁! 덮었다. 그리고 나한테 얼굴을 활짝 펴고 말했다.


“우리 서로 경찰, 피의자 딱지 떼고 인생 이야기나 합시다. 홍길동씨”


나는 빙그레 웃음이 지어졌다.


“모든 걸 내려놓으면 마음이 편해지죠. 경감님”


“홍길동씨, 당신 대체 누구요?”


“나는 그저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사람이오. 그게 힘없고 돈 없는 사람을 도와주는 일이든 나쁜 놈들을 응징하는 일이든 세상의 불의와 불공정을 조금이라도 해소하는 일이라면 나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내 몸을 던져요. 이번 일도 그런 일 중 하나였죠.”


“뭐, 당신이 말하는 대의명분 그런 거는 대충 짐작하겠는데 내가 물어본 것은 당신은 대체 누구냐, 사람이냐 뭐 귀신이나 도깨비냐 그런 질문이었소.”


“사람인데 조금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이해해 주시오.”


“조금 특별한 능력이 궁금하네요”


“뭐 조금 특별하긴 하지만... 그다지 특별한 능력은 아니요. 무협지나 웹소설 보면 흔히 나오는 사소한 능력에 불과한 것들이요.”


“말하기 싫다는 뜻이군요?”


“말해줘도 믿지도 않을 텐데요, 뭐.”


“아니 난 믿을게요. 내가 직접 겪었잖소. 당신이 내 눈에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것을 내가 직접 경험했잖소?”


“나중에 적절한 기회가 되면 이야기해주겠소. 그러나 저러나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이오? 여기 계속 이렇게 있어야 되는 거요?”


“나도 모르겠소. 서장이 결정하겠지.”


박계장은 나의 충고대로 나를 더 조사하지 않았다. 형사과장을 통해 서장의 재촉이 전달되었지만 박계장은 피의자가 진술을 거부한다는 이유를 앞세워 처음의 조서를 변경할 수 없다고 버텼다.


최서장은 고민이 깊어졌다. 지금 책상에 놓인, 비록 구겨졌지만 법적 효력이 있는 조서를 가지고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하면 홍길동은 구속되겠지만 자신과 불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어린아이를 납치 폭행한 범인을 비호하고 이를 응징하겠다는 일개 시민인 홍길동으로부터 회초리 참교육까지 받았다는 게 알려지면 자신은 바로 옷을 벗어야 할 게 너무 분명했다. 게다가 그동안 음으로 양으로 스폰을 해주던 신성전자로부터 내쳐질 게 뻔했다.


그런데도 박계장 놈은 자신의 말을 쌩까고 있다. 경찰대 나온 놈이라 제 살길 먼저 찾는 게 여느 경찰 놈들과는 다르긴 달랐다. 멍청한 형사들 같았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조서를 다시 받아왔을 텐데 말이다.


물론 그 멍청한 형사들은 나중에 감사에 걸리거나 언론에 보도가 나서 옷을 벗게 되겠지만 박계장 놈은 역시 빈틈을 보이지 않는 게 머리가 좋은 놈인 게 분명하긴 했다.


어쩔 수 없다. 조서는 자신의 손에 구겨진 걸 다림질이라도 해서 살려놓되 대신 홍길동이 마지막에 하고 싶은 말을 한 부분을 삭제해서 영장을 신청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구속영장 발부 여부가 판가름 날 때까지 형사계 유치장에 넣어졌다. 박계장은 유치장에 앉아있는 나를 그윽한 눈으로 바라봤다. 나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박계장은 분명 다가올 인사에서 크게 물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길게 보면 그게 나은 선택이라는 걸 본인도 잘 알고 있다.


박계장은 나에 대한 호기심이랄까 친근함 같은 것이 급격히 생긴 것 같았다. 이상한 놈이지만 따지고 보면 괜찮은 놈, 또 그렇지만 뭔가 큰 비밀을 감추고 있는 놈이라고 생각할 터였다.


나는 ‘홍길동tv’에 아직 동영상을 올리기는 이르다고 봤다. 내가 무혐의로 풀려나면 ‘간단히 경찰 조사를 받고 이렇게 나왔다’고 구독자들에게 뒷얘기를 해주는 동영상을 올리고 이번 사건을 종결할 예정이다.


만약 내가 구속되어 재판을 받게 될 경우에는 나의 분신술(分身術-한 몸이 여러 개의 몸으로 나타나게 하는 술법)을 이용하여 감옥 밖에서 동영상을 업로드함으로써 전국의 구독자와 함께 권력 집단의 비리를 폭로해 나갈 계획이다.


일단 최서장의 판단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밤이 깊은 경찰서 형사계. 당직 형사들도 졸고 있고 유치장에 갇혀있는 잡범들도 잠이 들어 세상이 고요하다. 나는 시원한 바람이라도 쐴 요량으로 유치장을 조용히 빠져 나왔다. 유치장에는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나의 분신을 남겨두었다.


경찰서 정문을 나오니 바로 코앞에 서울중앙지검과 조금 멀리 법원 건물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대검찰청과 대법원 건물이 위용을 자랑하고 서 있다.


저 건물들을 거쳐 간 시민들 중 억울한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부지기수이리라. 나도 그중 하나가 되려 하고 있다. 나처럼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그나마 어떻게든 살아나겠지만 대부분의 힘없고 빽 없는 사람들은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감옥으로 갔을 것이다.


벌써 새벽이 되었는지 청소차들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이른 아침 청소차들이 도로를 깨끗이 치워놓으면 당연한 권리처럼 고급승용차들이 쌩쌩 지나갈 것이다.


불독의 외제 승용차도 지금 쌩쌩 테헤란로를 달리고 있다. 불독의 차는 이윽고 24시간 영업을 하는 해장국 집 앞에 선다. 클럽에서 밤을 새운 젊은이들로 해장국 집은 북적였다.


불독이 차에서 내리는데 바늘에 실 가듯 최서장도 조수석에서 내린다. 그런데 오늘은 한 사람 더 있다. 불독이 내린 뒷자리의 반대쪽 문으로 두 사람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친구 하나도 내린다.


한두 번 와본 곳이 아닌 듯 익숙한 발걸음으로 세 사람은 해장국집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나는 변신술을 부려 놈들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얼굴을 살짝 바꾸고 놈들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얼마나 술들을 처마셨는지 술 냄새가 나에게까지 폴폴 풍겨 왔다.


놈들은 해장국과 수육을 시키더니 해장을 해야겠다며 소주도 한 병을 시킨다. 메뉴가 단순한 식당이어서 곧바로 음식이 나왔다. 최서장이 소주잔들을 채우더니 비굴한 웃음과 함께 잔을 들어 마시자고 권한다.


“자, 해장들 하시죠. 헤헤”


늘 표정이 불독 같은 이신성의 아들, 이선동이 지금은 인상을 풀고 젊은 놈에게 살살거린다.


“자, 우리 김영감, 쭈욱 한 잔 하시고... 사우나 가시죠. 술기운 쫙 빼고 출근하셔야죠. 하하”


젊은 놈은 특별한 말 없이 옅은 미소와 함께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세 사람은 서로 잔을 부딪쳐 원샷을 하고 수육을 한 점씩 입에 넣고 오물거리더니 숟가락을 들고 선지 해장국을 먹기 시작한다.


나도 출출하던 차라 놈들의 속도에 맞춰 해장국을 먹기 시작했다. 놈들은 어젯밤 술자리에서 할 말들은 다 했는지 별말들이 없다. 후루룩 쩝쩝 해장국과 깍두기 먹는 소리만 들린다.


밤새 어떻게 골인(?)을 시킬까를 두고 머리를 싸맸던 당사자인 내가 바로 옆자리에서 같이 해장국을 먹고 있는 걸 안다면 놈들은 급체에 토사곽란을 일으키겠지만 모르는 게 약인 모양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더 쎄진 홍길동, 이번엔 안 봐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 < 10. 박계장, 강적을 만나다 > +1 22.05.14 355 5 9쪽
10 < 9. 감옥을 택하다 > +1 22.05.13 387 6 9쪽
9 < 8.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몸 > +1 22.05.13 389 7 9쪽
8 < 7. 놈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 +1 22.05.12 418 7 10쪽
7 < 6. 돈에 대한 집착 > +1 22.05.12 458 11 9쪽
6 < 5. 첫 번째 참교육 > +2 22.05.11 493 12 10쪽
5 < 4. 맞어, 이상한 새끼야 > +1 22.05.11 513 13 9쪽
4 < 3. 귀신이냐 사람이냐? > +1 22.05.11 542 14 10쪽
3 < 2. 이런 우라질 놈이... > +1 22.05.11 629 14 10쪽
2 < 1. 제보를 받습니다 > +1 22.05.11 956 26 10쪽
1 프롤로그 +3 22.05.11 1,161 38 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