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과학자-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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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sci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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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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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8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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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년 6개월 2주차 -5-

DUMMY

“으으...상처가 뜨겁다..”

“추워...물...”

“...살려줘.”

“.....”


부상병을 함정에서 모두 끌어내고, 상처를 싸매고, 느지막히 저녁을 지어 먹고 나자 시간이 꽤 흘렀다. 그 동안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던 자들도 죽거나 지쳐, 이제 신음소리를 내거나 열로 인한 헛소리를 하는 자들을 제외하고는 다들 말이 없었다.


부상자 파악을 끝내고, 마을쪽에서 도망쳐온 병력들까지 얼추 수습한 이후, 일단 경계병 몇을 세우고 숙영지를 편성했을 때는 이미 축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토벌군의 사기는 높았고, 군사들의 조련도 비교적 잘 되어있던 터라 저 이양선에 관련된 역적들이 사는 마을을 한달음에 모두 토벌할 수 있었으나, 하룻밤 사이에 분위기는 반전되고 만 것이었다.


“그래, 마을을 들이친 적병의 수효와 무장이 얼마나 어찌 된다고 하였느냐?”

“저번에 노획했던 양총과 같은 총을 든 자들도 있고, 더 좋은 총을 든 자들도 있는 듯 하더이다.”

“더 좋은 총?”

“마을 서쪽과 남쪽에서 연거푸 총을 쏘아대는데, 눈 깜짝할 새 탄알이 물경 수백여 발씩 쏟아져 내리니, 당해 낼 방도가 없었사옵니다.”

“수백여 발 씩이나 말이냐?”

“그렇사옵니다. 순식간에 수십 명이 죽어나갔고, 투구도 갑옷도 소용이 없었사오며, 설사 두터운 벽을 등지고 선들 소용이 없었사옵니다. 밥 두어 술 뜰 시간 안에 총알이 물경 수만여 발은 날아왔으니, 병력이 못해도 백여 명은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집과 담벼락 뒤에 몸을 감추고 총알만 연거푸 쏘아대는 터라 정확한 인원은 보지 못하였사옵니다.”

“백여 명이 총알을 수백여 발씩 쏘아대는 총을 들고 왔다...”


실제 마을을 들이친 인원은 7명에 불과하였으나, 집과 지형지물에 은폐, 엄폐를 유지한 채로 탄을 쏟아 부었던 터라 당한 입장에서는 정확한 인원을 파악하지 못한 터였다. 워낙 완벽하게 당한 기습이라, 심히 당황한 때문에 적병이 많게 느껴졌을 것이었다.


거기에다, 패전은 패전이었으니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라도 적을 부풀리고 수치를 조작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서를 막론하고 흔한 일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잘못된 정보를 전해 받은 지휘부에서 허실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였다.


“혹시 적들 중에 그 사영이라는 것이나 다른 특이한 자들은 없었느냐?”

“얼핏 본 것이라 확실하지는 않았으나, 선비도 있었고 양이와 왜놈, 되놈들도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허어... 양이와 왜놈, 되놈에 선비까지...이 무슨 기괴한 일이란 말이냐..”


“저 군졸의 말이 사실일까요?”

“과장이 있겠으나, 아주 헛된 말도 아닌 듯 싶소이다.”

“그렇겠지요. 얼마 전까지 저 양선과 치고받고 했었다는 되놈들과 왜놈들이 다시 저 양선을 구원하고자 백여 명이 왔다? 말이 되지 않소이다.”

“허면 아주 헛된 말이 아닌 듯 싶다 하신 것은...?”

“그 양총도 그러하고, 칼을 튕겨낼 정도로 질기면서 가느다란 철사도 그러하고, 노획한 각종 기물들도 말이 되지 않는 것들 아니오이까. 이제 저 양인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이 곳을 들이친다고 해도 반쯤은 믿어야 하지 않겠소이까?”


당연히 순무영 지휘부는 그 정보를 다 사실이라 믿지는 않았다. 그래도 워낙 기이한 일이 많이 일어난 직후라 일단 마을 쪽에서 온 병사가 가지고 온 정보를 어느 정도 선에서 걸러 받아들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렇게 판단 후 결정을 내린 진압군은 일단 제철소 진입을 포기하고, 급히 전령을 한양과 공충 감영으로 보냈다. 부상병들을 수습하고 사망자의 시신은 가매장한 후, 날이 밝는 대로 공충 감영까지 물러나기로 결정한 것이다.


쌓아 둔 수급과 전리품들은 아까웠으나, 이미 부상자가 너무 많았고 적에 대한 정보도 적었던 데다, 마을에서 돌아온 자들의 보고를 걸러 듣는다 하더라고 듣도 보도 못한 무기나 장비, 파 놓은 함정 등이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날이 밝기를 기다리면서 잠시 눈을 붙였다. 아니 붙이려 했다. 가뜩이나 늦은 시간에 잠든 그들이었으나, 제대로 눈을 붙일 수 없었던 것이다. 날이 풀려가는 중이라고는 해도 아직 겨울이 다 지나가기 전이라 추워서 그런 것도 있었으나, 부상자들의 상태가 너무나 빠르게 악화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으아아악!”

“아파!!! 아프다고!!!”

“끄어어어어어....”


특히 함정에 빠졌던 부상자들의 상태가 심각했는데, 하나같이 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비명을 지르고 악을 쓰던 탓에, 부대 전체가 잠을 설칠 수 밖에 없었다.


해가 떠오르고 나자, 부상자들의 참혹한 모습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늦겨울과 초봄 사이쯤인 이때에, 땀을 뻘뻘 흘리며 펄펄 열이 끓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춥다고 온 몸을 부들부들 떠는 자들이 부지기수였으나, 이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찔린 발이나 발목 주변은 끓는 물에 데치기라도 한 것처럼 시뻘겋게 변해 있었고, 피부는 묘하게 번들번들거렸다. 하나같이 상처난 곳부터 위쪽으로 땡땡하게 부어있었고, 진물이 나는 자도 있었으며, 상처가 덧난 정도가 심한 사람은 이미 고름을 흘리고 있었다.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급한대로 주변에서 나무를 베어다 태워 잿물을 만들어 상처를 씻고, 그나마 좀 깨끗한 천으로 상처를 감싸는 정도가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평소라면 근처 마을에서 소달구지나 수레를 빌려 부상자를 싣고 후송하는 것이 상책이었을 터이나, 지금은 도음을 청할 수 있는 바로 그 마을을 조져놓고 온 터라 가장 가까운 다른 마을까지는 직접 옮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또 부상자를 들고 갈 들것을 만들고 땔감을 구하고 하느라 지체하던 사이 환자들의 상태는 더더욱 악화되었고, 심한 자는 다리 전체가 붉게 변하고 발에 난 상처로 피고름을 쏟아내기 시작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나마 절뚝이며 걸을 수 있던 자들 수십여 명도 날이 추워서인지, 입이 잘 벌어지지 않고,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 불편함을 호소했다.


“한여름도 아닌데 어찌 이리 상처 덧나는 것이 심하단 말이냐.”

“한여름이라 해도 이 정도로 상처가 빠르게 덧나지는 아니하오이다.”

“어허... 큰일이로다. 일단 집부터 구해 들어가야겠구나.”


그렇게 간신히 가까운 작은 마을로 도착한 그들은, 집들이 모두 비어있는 것을 확인했다. 혹여 먹을 것이나 땔감이 있는가 찾아보았으나, 남은 것이라고는 비어있는 낡은 장롱과 뒤주, 그리고 어지러이 굴러다니고 있는 몇몇 세간과 밥그릇뿐이었다.


급히 집을 떠난 듯, 어지러져 있는 집들을 보며 그들은 잠시 쉴 준비를 했다. 각자 가지고 다니던 개가죽을 깔고 덮고 하며 추위를 막을 준비를 하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장과 쌀풀을 발라 말린 무명 띄를 솥에 넣고 삶아 장죽을 만들어 환자에게 먹이고 그들도 먹고 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부상병을 눕히고, 오는 길에 추가로 죽은 자들을 매장하고 나니, 또 밤이 되었다.

굶주리고 추위에 떨며 사기는 바닥을 쳤고, 그렇게 되자 사소한 것으로도 다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애초에 순무영의 특성 상, 부대를 편성할 때부터 여기저기서 수십여 명씩 뽑아 한 부대로 묶은 곳이니, 단합력이 좋을 리 없었다. 사기가 하늘을 찌르고 승전이 일어날 때야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한 무리로 그럭저럭 움직이는 데는 문제가 없었으나, 이처럼 극한 상황이 닥치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네놈이 감히 나를 비웃는 것이냐?”


군관 한 명이 낮에 절뚝대며 걷던 군졸의 얼굴을 보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군졸은 억울하다는 듯 군관을 보며 무어라 변명을 하려 했으나, 입이 벌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군졸은 땀을 뻘뻘 흘리고, 몸을 떨면서 필사적으로 말하려 애썼다.


“읍..으..으으으.. 으으으으으.”


그러나 그 표정은 한쪽 입꼬리만 기괴하게 올라가 있는 것이, 누가 보더라도 비웃는 듯한 비틀린 웃음을 짓는 것이 맞았다. 그러나 눈에서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것이 또 무언가 괴기스러웠다. 그 군졸은 급한 대로 바닥에 무언가 쓰려 했으나, 추운 밤이라 바닥에 글이 써질 리 만무했다.


“씨발놈아 지금 내가 색주가에서 뒤나 봐주다 왔다고 무시하냐?”

“악!”

“이 개새끼가! 끝까지 닥치고 비웃겠다는거냐?”


이미 화가 치밀어 올라오던 군관은 그 군졸의 가슴팍에 발을 내질렀다. 그 군졸은 그대로 나가 떨어져 몇 바퀴 굴렀다.


“미친놈 또 사고치네.”

“어째 이번엔 오래 잠잠하다 했다.”


지켜보던 다른 군관들은 질 안좋은 군관이 병졸을 갈구는 그런 흔한 일이겠거니 했었다.


그러나 공포스러운 장면은 그 다음부터 시작되었다.


“읍..으으으..으으응..으어어어엉어어!!!!! 뿌드득 뿌드드드드드드드득!”


갑자기 그 군졸의 손과 팔이 오므라들더니 그는 그대로 몸을 뒤집고, 몸 전체를 활처럼 휘게 만들었다. 바닥에 닿아 있는 부분은 정수리와 발 뒤꿈치 뿐, 사람의 몸이 “ㄷ”자를 옆으로 세운 것처럼 등쪽으로 수축된 상태로 온 몸을 격렬하게 떨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는 벌어지지 않는 입으로 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듣는 사람들도 그게 입에서 간신히 새어나오는 비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찌나 고통스러웠는지, 아니면 턱이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꽉 다물어진 채로 움직여서인지, 입가로 피가 흐르고 이빨이 갈리다 부러지는 소리가 섬뜩하게 추운 밤을 울리고 있었다.


“뿌드드득, 뽀각!”


그의 머리와 목, 팔에는 핏대가 굵게 튀어나왔고, 얼굴은 시뻘겋게 변한 채로 찡그려져있었으며, 눈은 뒤집어지고 있었다. 얼굴은 사람이 저렇게 주름이 많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찡그려져, 보는 사람마저 그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이게 무슨...무슨 일이란 말이냐!”


그 자세도, 증상도 괴기스러웠지만, 그 고통 또한 표정과 새어나오는 신음만으로도 격렬하게 전해져, 가뜩이나 떨어져 있던 사기는 더 떨어지고, 공포마저 순무영 내에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 병졸은 허리가 활처럼 휜 채로 얼굴에는 세상의 고통이란 고통은 모두 짊어진 것 같은 표정을 하고 한 시진동안이나 고통을 받다가 허리가 말려 죽었다.

그 광경을 모든 살아남은 순무영 장병들이 봤으니 사기는 바닥을 뚫고 지하실을 향해 내려가고야 말았다.


결국 다음 날 아침이 밝았을 때는 탈영병마저 생기고야 말았다. 그리고, 부상병 중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도 더 나왔으며, 이미 감염이 심해 고름을 흘리던 자들 상당수는 다음날 시체로 변해있었다. 그러나 차라리 고름을 흘리다 일찍 죽은 자들은 오히려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그 기괴한 죽음을 맞이한 자와 같은 증상을 보이는 다른 환자들이 발생한 것이었다. 온 몸의 근육이 당겨지며 몸이 “ㄷ”자로 꺾인 자들은, 그 자세 그대로 그렇게 있으면서 고통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닌, 말 그대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발에 난 구멍은 벌어져 피를 흘리고 있었고, 온 몸은 피가 섞인 듯한, 붉은 기가 도는 갈색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 자들이 점점 늘자, 결국, 순무영의 지휘관들은 반란군 소탕을 완전히 단념하고, 사망자와 부상자를 버린 채로 사지 멀쩡한 사람들만 충청감영으로 후퇴하기로 결심하고 짐을 꾸렸다.


“후퇴...아니, 도망칩시다.”

“그럽시다. 그냥 도망치면 분명 책임이 무거울 것이니, 적당히 전과를 보고하고 적의 강대함을 부풀리는 장계도 가면서 생각해 보십시다.”

“부상자들은 어찌하겠소?”

“버려야지요.”

“그럽시다.”


공포가 컸던 탓일까. 전혀 이견 없이 그렇게 후퇴가 결정되었다.


죽은 자들과 부상당한 자들은 버려졌다.


그렇게 신속하게 서로 말을 맞추고 마을을 나서자..


마을 밖에는 살기를 진득하게 피워올리며

원한과 분노에 가득 찬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박규수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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