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검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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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2.07.03 19:15
최근연재일 :
2022.10.0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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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14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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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8화 .. 해명연에서 태어난 아이들

DUMMY

그즈음 천계의 태선궁 에서는 천궁의 상선과 상신들이 모여, 이제 곧 다가올 불길한 별에 대한 논쟁으로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천궁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힘의 원천과도 같은 선불인 천상염환의 결계에 대한 논의는

며칠동안이나 그들이 서로 반대편으로 나누어서 반복하고 있는 논쟁이었다.


“ 자성의 별이 천계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서게 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자칫 저들의 농간으로 천해문이라도 열리는 날엔, 안팎에서 들이닥치는 마귀의 기운이 별의 영향으로 더욱 커지게 될 것이고, 귀왕이 천계를 집어 삼키는 일도 순식간일 겁니다.

선불이 없다면 천계는 아비규환이 따로 없을 테니, 천상염환을 봉인하는 건 너무 위험한 일입니다."


“ 어 허... 하지만, 천상 염환의 불꽃은 선대 천제들의 정신과 염력으로 이루어진 터라, 마성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는 곳이면 가리지 않고 바로 무주선광을 발현할 텐데, 그렇게 되면 잠시 주화 입마한 천계의 소선들까지도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 아니오 ! "


“ 그렇지만, 천계에 천상염환이 봉인되었다는 사실을 세상의 마귀들이 혹시 알게 되기라도 한다면, 평소 천계를 못마땅하게 여긴 그것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때가 왔거니 .. 하고, 귀왕편에 서서 힘을 보탤 것이 분명할 것을.

그렇게 되면 천계의 안위가 어떻게 되겠소. 뻔한 것 아니겠소!"


그들의 논쟁은 항상 같았다. 천계 소선들의 희생을 두고, 죽이느냐 살리느냐 두 편에 서서 갈팡질팡하기만 하고 있었다.


신선들이 하나씩 나서서 이야기 할 때마다, 한쪽으로의 기운이 커졌다가 기울었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원로 상신이 한걸음을 나서며, 천제와 신선들을 두루 둘러보았다.


“선기가 약한 소선들은 별의 영향이 천계를 누르는 동안에는 주화 입마가 되지만, 별의 열이 어긋난 이후에는 다시 원래의 의식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귀들의 침입에 맞서고자, 선불을 봉인하지 않고 그대로 두게 되면 아무 죄가 없는 소선들의 희생이 너무 크게 됩니다.

이번에는, 선대 마존의 태자가 이끄는 요마계도 마성이 가장 커지는 이때를 맞추어 구중천을 침범할거라는 사실이 분명한데, 한꺼번에 닥치는 우환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 이번에는 중천과 마계도 함께 논의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내 기다란 하얀 수염을 늘어뜨린 한 상선이 두 손을 천제 앞으로 공손히 모아 올리며 한 발을 앞으로 조금 내딛었다.


“귀왕의 이번 목표는, 마계를 차지하고 그의 자리를 되찾기 위함이 가장 우선이니, 아무래도 마계가 가장 큰 목표물이 될 것입니다.

마계가 마귀를 다스리는 힘이 크다고는 하지만, 소선의 생각에는 오히려 마계와는 얽히지 않는 것이 천계에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나른한 미풍에 하얀 옷자락을 흩날리며 무료하게 서있던 신선들이, 오래간만에 모두 한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신선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천제가,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허공으로 눈길을 돌렸다.


연옥색 기둥과 웅장한 황금빛 솟을지붕으로 이루어진 태선궁 대전에는 정갈하게 열 지어 늘어선 천계의 상선과 상신들의 모습이,

마치 천궁을 에워싸고 있는 구름조각을 떼어 늘어놓은 듯이, 단정하고 무정한 천상의 풍경과 어울리는 모양으로 서 있었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지친 눈으로 구름바다의 일렁임을 주시하던 천제가, 별안간 느껴진 기운에 놀라며 긴장한 표정으로 그 흐름을 쫓고 있었다.



익숙한 느낌으로 스치던 기운은 아주 순간적이었다. 분명히 나타났었지만, 급하게 어느 곳으로 스며들 듯이 다시 사라져버렸다.


' ... 청룡 ... 그런데 뭐지 ...? 이 차가운 기운은... '


익숙한 청룡의 기운에 이어서 또 다른 기운이 빠르게 스쳐갔다.


' 현빙화... 마계에서 유일하게 마존만이 가진 기운이 어떻게 또 다른 곳에서 느껴지는 거지...?'


수행이 깊은 몇몇 상신들도, 불시에 느껴진 이 상극의 기운에 의아해하며, 높은 곳에 앉아있는 천제를 응시하였다.


수행의 깊이가 낮은 신선과 선관들은 아무것도 느낄 수는 없었지만, 불편한 기운이 감도는 대전의 이 어색한 분위기속에는 점점 주눅이 들어가고 있었다.


천제와 상신들은 알고 있었다.

선불의 무모한 사용을 이야기하기 전에, 진정한 마기만 찾아서 소멸시킬 수 있는 오룡광진을 언제 어떻게 펼칠 것이냐에 대해서 먼저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아무도 청룡의 기운을 들먹이며 천제의 심기를 건드릴 배짱이 없는 탓에, 그들의 이야기는 한자리만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자영이 떠난 후 얼마나 오랜 시간을 천제가 힘들어 했었는지, 신선들은 알아도 보여도 전혀 내색을 할 수가 없었다.


명요공주 사이에 태어난 태자가 자라난 지금 까지도, 천제는 ‘연영각’에 혼자 앉아 쳥룡의 원신을 가진 여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삭히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먼저 말을 꺼낸 건, 천제였다.


“자영 상선이 떠난 후 흩어졌던 청룡의 기운이, 어디론가 다시 스며든 듯하오."


‘아, 그것 이었구나!’ 하고 미처 기운을 느끼지 못했던 신선들이 이제서야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천제의 말은 다시 이어졌다.


“오룡광진이 필요하다면, 오룡의 힘을 다시 모을 것이오. 하지만 지금 청룡의 원신이 없으니, 조금 전 그대들도 느꼈던 기운을 먼저 찾아보도록 하시오. 광진을 펼칠 수 있는 귀한 기운일지도 모르겠소! "




****




상제의 세정전 침전 까지 한달음에 달려간 현연이 턱까지 올라온 숨을 몇 번 헐떡이며 고르는 사이, 이미 천기를 느낀 옥호가 침전 문을 열고 급하게 나오고 있었다.


흔들림이 없는 눈빛은 아비로서의 신중함과 조바심을 애써 참고 있는듯해 보였고, 숨을 고르느라 힘들어하는 현연을 급하게 지나치며 붉은빛과 함께 순식간에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정영지 앞으로 밝은 붉은 빛이 떨어지자, 긴장한 표정의 옥호가 소맷자락을 크게 휘감으며 두모 선인 앞으로 우뚝 나타났다.


“상제를 뵙습니다!"


두모 선인이 두 손을 모아 머리를 조아리자, 상제가 짧게 팔을 저으며 그녀의 인사를 만류하였다.

이미 정영지의 수면위로 물방울을 뒤집어쓴 커다란 연꽃봉오리가 봉긋하게 떠올라 있었다.


뽀송하게 빛을 머금은 연분홍빛의 꽃잎은, 자영이 그를 향해 함박웃음을 지을 때 지독히 사랑스럽던 그녀의 발그레한 두 볼을 닮았다고. 옥호는 생각하고 있었다.


“ 정말 사랑스럽군...!"


꽃잎 안으로 정기가 충만해 지기를 잠시 기다릴 동안, 이미 옥호로부터 전음부를 전해 받은 주원 상선도 하얀 연기를 펼치며 옥호 옆으로 급하게 나타나 이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상제에게 두 손을 모으려 하자, 옥호가 먼저 주원의 손을 다잡으며 만류하였다.


“주원 상선, 이 아이들의 조모님 이십니다! 아이들의 유일한 가족이니, 영이가 돌아올 때까지 부족한 정을 상선께 부탁드립니다.”


주원 또한 수면위에 떠서 꿈틀거리는 해명연에 두 눈을 고정한 채 벅차오르는 감격으로 상제 에게 목례로 대답을 대신 한 후, 그렇게 하겠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 뇌이고 있었다.


하지만 옥호가 그늘이 드리워진 얼굴로 주원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주원 상선, 이 아이들에게 청룡의 원신과 현빙화의 기운이 깃 들었습니다.

현빙화의 기운은 천계에서 많이 드러나지 않아서 아이가 극한의 상황에 이르러 각성하기 전까지는 마계의 원신이 깃들었음이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청룡의 기운은 아이가 자신의 선광만 밝혀도 금방 드러나게 됩니다.

혹시 천제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 마무리 지어졌던 자영의 희생이 헛되이 될 수도 있습니다. “


옥호의 잔뜩 찌푸려진 미간과 어두운 눈빛으로 보아, 무엇인가 하기 힘든 결정을 내리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영이 천후의 선택을 받아들이지 않은 후 모두의 안위를 위해 스스로 천계에서 잊혀지는 길을 선택하였는데, 그녀의 원신의 일부일지도 모를 청룡의 기운이 중천의 아이로 다시 나타나게 된다면, 천계의 신선들은 이전의 그녀의 선택을 모두 계략으로 여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오히려 이전보다 더 큰 화를 자초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차마 말끝을 잇지 못하고 일그러지는 그의 눈매에 힘이 실리고 있었다.


"... 자영을 위해서라도 아이들의 선기를 봉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아이의 신식이 약해져 후일, 스스로가 용의 기운을 각성하기 전까지는 또래보다 모자라는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테죠... 아이를 위해서도 못할 짓 이지만, 지금은 어쩔 수...“


눈 끝 언저리에서부터 일어난 굵은 핏줄선이, 그의 이마 끝으로 타고 올라가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주원 상선, 두모 ... 이 비밀은,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될 것이오!"


가장 행복해야 할 순간이 무색하게, 주원과 두모의 낯빛에도 그늘이 어둡게 내려앉고 있었다.


잠시후 무거운 분위기를 알 리 없는 소선 현연이, 또다시 쌕쌕 거리는 맑은 소리와 함께 이들을 향해 힘들게 달려오고 있었다.


아기씨들이 탄생하는 경이로운 장면을 놓칠 새라, 숨이 차서 쪼여오는 허리춤을 꾹꾹 눌러가며 작은 강아지처럼 붉은 혀를 내밀어 헐떡이고 있었다.


정영지 앞에서 무거운 표정으로 서있는 상제와 주원 상선의 앞까지 달려와서는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며, 아직 손가락마디까지도 포동포동한 살결에 덮여진 어린 손을 공손히 포개어 상제를 향해 예를 표했다.

발그레해진 볼 살 사이로 새어나오는 가쁜 숨소리가 마치 작은 새가 지저귀듯 얕고 짧게, 아직도 들쑥날쑥 거리고 있었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옥호의 어두운 표정에도 잠시 미소가 어리며, 그의 관자놀이를 무겁게 짓누르던 굵은 핏줄선이 사라져갔다.


그리고 다시 그의 표정엔 아이의 탄생을 목전에 둔 속세의 아비가 그렇듯, 긴장감과 희열이 번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정기가 충만해진 해명연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크게 꿈틀거리기 시작하자,

어미의 양수가 터지듯 영선강의 선수로 덮여있던 결계의 테두리에 금이 가더니, 잠시 후 ‘파-' 하고 결계를 뚫고 물살이 크게 부서져 내렸다.


떨어지는 물살에 정영지 주변의 모든 생명들이, 놀라움 반 두려움 반으로 해명연의 봉우리가 열려지는 광경을 눈 깜빡임도 잊은 채 쳐다보고 있었다.


연분홍빛의 꽃잎이 벌어지며, 핏빛처럼 붉은 속 봉우리가 봉긋하게 드러나는가 싶더니 이내 봉긋한 속 봉우리마저도 펼쳐지고,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정영지의 물살위로 가득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를 본 옥호가 얼른 해명연 위로 날아올라 봉우리에서 먼저 튕겨 나오는 여자 아이를 받고, 뒤이어 꽃잎 속에서 밀려져 나오는 남자아이를 다른 손으로 소중이 품어서 주원 상선이 서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언제 준비하였는지, 두모 선인이 아이들을 눕힐 작은 바구니 침상 두 개를 상제 앞으로 가지고 왔다.


주원 상선과 상제가 조심스럽게 아이 둘을 바구니 침상에 눕힌 후, 사랑스러움과 슬픔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바구니 앞에 주저앉아, 아이들이 맑게 웃으며 옹알거리는 모습을 한동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후, 결심이 섰다는 듯 이제 막 아비가 된 옥호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표정없이 아이들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망설임없이 근엄하게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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