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검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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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2.07.03 19:15
최근연재일 :
2022.10.0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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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1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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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4화 .. 영연각의 사내들

DUMMY

무슨 말을 들었는지, 자영이 ... 한동안 내 곁에 나타나지를 않았네. 내가 ... "


잠시 동안의 침묵을 흘려보낸 천제가 긴장한 상제를 천천히 올려 보았다. 연적인 사내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집요했다.


“ 이제 ... 구중천의 안위와 천계의 안정을 위해서,

아직도 비어있는 황후의 자리를 메우고 천계의 기운을 이어갈 태자를 얻기 위해 모든 대신들이 뜻을 모으고 있네."


“ ... "


아무소리도 듣지 못한 것 같은 맹한 표정으로, 아직 옥호는 천제의 말에 어울릴만한 어떤 대답도 찾지 못한 것 같았다.


"... 대신들이... 청룡의 원신을 가진 자영을, 황후로 거론한다고 하지?”


" ... "


상제인 옥호의 눈에, 누각 위의 저 높다란 곳에서 흔들리고 있는 하늘하게 연꽃물이 든 내림막 천이 ... 그의 신경을 굉장히 거슬리게 한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천제의 말은 제쳐두고,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그 모습을 한동안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내 높은 곳을 바라보던 눈길을 걷은 옥호가, 한 때 그와 자영의 사형 이었던 자의 굳게 다문 입술 끝을 가만히 올려보았다.


“...감축...드립니다. 천제.”


감정을 누르며 옥호가 두 손을 공손히 모아 답하였다.


황룡의 원신인 천제와 맺어질 천계의 황후는, 백룡이 아니면 청룡의 원신을 가진 여인이어야 한다는 사실은, 구중천에서는 누구라도 모르는 이가 없는 처음부터 존재해 온 지극히 당연한 규칙이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곁에서 자영과 그를 지켜본 사내이기 전에, 하해와 같이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할 천제인 그의 마음을 믿어볼 요량으로, 옥호도 지금까지 막연하게 버텨온 건 사실이었다.


역시, 여인을 품은 사내의 마음엔 지위고하가 있을 수 없다는 말이, 구중천의 천제인 그에게도 비켜갈 수 없는 진리인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은, 오래 살아 거의 요물이 다 된 천계의 상신들로부터, 자영이 난처해지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그녀를 지키는 것이 옥호에게는 가장 우선적으로 살펴야 할 문제이기도 했다.


어렵사리 말을 꺼낸 순간이 지나고 상제에게 박혀있던 눈길을 풀었지만, 여전히 마음이 불편한 듯 천궁의 주인인 그가 노을빛만 열심히 쫓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어떠한 일에도, 천제의 마음은 흔들림이 없어야 했다. 그는 그렇게 배워 왔었다.


잠시 후 천제가, 공무를 논의하듯 건조한 투로 상제에게 말을 건넸다.


“오룡의 현신들은 구중천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기운들이니, 그 기운이 흩어지지 않도록 오룡들끼리 함께 어우러져야 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지.

자네 또한 적룡의 원신으로 구중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지 않는가!“


서서히 짙어지는 회갈색 빛 하늘을 응시하며, 아직까지 다행히 아무 반응이 없는 연적에게 마음을 놓은 천제가 이제서야 시원한 날숨과 함께 그의 너른 가슴을 원 없이 펼쳐 보이고 있었다.


“백룡의 원신인 명요 공주가 해선동 문을 닫고 패관 수련에 든 지가 벌써 이 만년이 지나고 있지만, 언제쯤 그 동굴의 문을 열고 나올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가 없지.

그렇다고 천계의 상신들이, 천제의 혼인을 마냥 미룰 마음은 없는 것 같다네.”


그의 궁색한 변명에, 상제의 좁혀지는 미간사이로 잔뜩 힘이 실리고 있었다.


어쩌면, 그 또한 자영을 너무 사랑해서 포기할 수가 없다는 말을, 자신의 앞에서 당당하게 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또다시 천궁의 주인인 자의 힘 아래, 굵게 핏줄이 선 두 눈을 내리깔 뿐이었다.


자영을 생각하며 들끓는 마음을 애써 감추려 할 때였다.


“옥호, 자네 생각해 보았나...?


너무 차분하게 새어나오는 그의 음성은, 옥호의 심장을 긁어내리는 것처럼 불편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만약 청룡의 원신인 자영이, 정말 자네의 마음처럼 둘이가 함께 원한다고 해서 남 모르게라도 둘이서 혼인을 맺게 된다면,

구중천을 감싸는 기의 큰 지류는 더 이상 천궁이 아니라, 중천으로 옮겨갈지도 모를 일이지.

천계의 상신들은 그 부분을 절대 놓칠 리가 없을 것이네. 분명 그대로 두고 보지는 않을 거야."


“ 그건.....”


궁색한 변명을 해대는 천제에게 불편한 심기가 서서히 치밀어 올랐지만, 일단 자영이 관련된 일이니 함부로 말을 내뱉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품어온 옥호의 불안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중인 건 확실했다.


‘ 이자는 천존이다... 눈에서 보이는게 없도록 옆에서 떠 받들어 주는 존재.'


지금까지 정리해 왔던 생각들이 한꺼번에 몰려왔지만, 일단 천천히... 좀 더 신중해야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천제와 상제의 입술이 동시에 들썩였지만, 천제의 음성이 먼저 그들 앞의 무거운 기운을 가로질렀다.


“ 우리에겐 각자의 감정들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책임들이 있지 않겠나?

가장 큰 우러름을 받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고뇌도 함께 받아들일 준비를 항상 해야 하겠지.

자영과 자네의 감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천하를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먼저 생각해 주었으면 하네.“


그리고는 나지막이 한마디를 덧 붙였다.


“ ... 최대한 빨리 서둘러야 할 거 같네...”


그의 계산이 시작된 이상, 어떻게든 ... 그대로 순응 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조금은 노기를 띠었지만, 정중한 목소리로 상제가 또박 또박 말을 이었다.


“사형, 정말 명요가 해선동 문을 걸어 잠군 이유를 모른 척 하십니까?”


옥호를 쳐다보는 천제의 표정에 불편함이 가득했다.


“그만하게 !”


“ 그렇게 천하창생을 귀하게 여기는 분께서, 남들에게는 다 보이고 다 들리는 명요의 마음을 왜 혼자서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척 하십니까?”



저녁 바람이 조금 더 세게 불어오는 탓인지, ‘연영각‘ 주변을 둘러싼 내림막천이 조금씩 더 거칠게 흩날리기 시작했다.


“사형이 그녀의 마음을 외면할 때마다, 오히려 그녀를 보듬고 달래준 이가 명요의 벗인 자영이었습니다.

친구의 마음을 알고 있는 자영에게 또다시 명요가 꿈꾸던 바램 까지 뺏도록 하는 건, 둘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천제의 혼인은, 상신들의 뜻으로 결정되는 일이야!”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가 담겨진 천제의 대꾸였다.


“사형께서 명요를 ‘해선동’으로 몰아넣지 않으셨습니까!”


“옥호!”


천제의 눈빛에 겨우 거두어 들였던 어두운 기운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사형의 모진 마음에 명요가 받은 상처는 결국, 그녀가 해선동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도록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그녀의 아픔을 모른 체하고, 자영에게 그 자리를 대신 하라고 하시는 겁니까 !”


하지만 천제가 다시 날카롭게 그를 향해 대꾸하였다.


“그때, 옥호 자네의 눈엔 명요가 나를 바라보는 눈만 보이고, 내가 자영을 바라보는 눈길은 전혀 보이지 않던가?”


" ... 아니요. 사형은 자영을 바라보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


옥호의 눈에도 당연히, 자영을 바라보는 그의 온순하면서도 오히려 무능해 보이기까지 하는 순박함이 보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 그는, 사형이었던 그의 마음이 이렇게까지 긴 시간동안 절실할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 자영과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멋쩍게 물러설 줄로만 알고 있었다.


“천계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천제의 혼인을 너무 늦출 수가 없네. 백룡의 기운이 더없이 필요하다고는 하나, 그보다 내가 청룡의 기운을 원하네!"


단호하고 고집스럽게 내뱉는 그의 말에, 사내로서의 분노가 목구멍 까지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천제... 사형...!”




유난히 붉게 내려앉던 저녁 노을도, 강렬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빠른 속도로 검은 밤빛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옥호는 넌지시 알고 있었다.

천제인 그가 이곳, ‘영연각’ 으로 그를 불러낸 이유를...


천궁의 중앙, 영선강이 모이는 가장 신성한 곳에. ‘자영을 연모하는 마음으로 지은 누각 (영연각)’ 을 세우고 자영보다도, 오히려 그의 연적인 사내에게 먼저 보여주고 그의 위용을 과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천제는 항상 치밀하고 빈틈없이 세상을 잘 다스렸고, 그리고 그런 성품에 걸맞게 그의 사랑도 빈틈없이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백룡이 사라진 지금, 어쩌면 백룡을 사라지게 한 지금을 지그시 참고 기다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적어도 상제가 생각하는 천제는 그런 모습이었다.


세상은 질서보다는 조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옥호의 마음속에, 천계는 언제나 구중천의 모든 계에서 가장 무능한 두목 정도 같은 존재로 여겨지고 있었다.

누군가 말해주지 않는다면, 천계 스스로가 자신들의 고지식한 무능함을 깨닫도록 해 주고 싶었다.


적어도 인간들이 하늘이라고 믿는 극도의 완벽한 세상에서, 두목 같은 건 필요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짙게 그늘진 표정으로 남긴 어색한 인사와 함께, 어느새 손님을 남겨둔 채 저만치 먼저 가버린 천제의 모습을 눈으로 쫒으며,

그의 긴 소맷자락에 감춰진 두 주먹으로 하얗게 질릴 만큼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




천계의 한적한 곳에 위치한 백선궁의 대문은 언제나 막힘없이 활짝 열려 있었다.


자영과 그의 모친인 주원 상선이 기거하는 이곳에는, 주인의 성격처럼 궁문을 지키는 병사들도 하늘거리는 하늘빛의 얇고 경쾌한 평상복 차림에, 창 칼 한 자루 없이 평온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천계 원로 상신의 궁을 지키는 병사답게, 그들의 기운과 눈빛은 하나같이 강인하고 비범해 보이는 모습들이었다.


날듯이 대문을 지나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는 노란색 옷자락이 백선궁의 내궁을 가로질러 경쾌하게 휘날리고 있었다.


정원에서 나른하게 털을 고르거나 하늘을 향해 긴 목을 뽑아 올리고 서있던 선학과 공작이 놀란 눈을 치켜 뜨고, 깜빡임도 잊은 채 그 뒷모습을 따라 함께 돌고 있었다.



이제 막 인간계에 다녀온 자영이, 부지런히 회랑을 돌아 활짝 열려진 방문 안으로 내달리듯 들어섰다.

그리고 그녀의 모친인 주원 상선은 놀란 기색 하나 없이 언제나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두 팔을 활짝 벌린 채로 그녀를 담뿍 안아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이 글에서 오룡은  다섯 마리의  용.  

황룡  백룡  청룡  흑룡  적룡 .  이고

각각의  원신은,  

천제  명요  자영   전신  상제 입니다.

간단히 말씀드리고  조금씩  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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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23 하윌라
    작성일
    23.08.09 22:32
    No. 1

    네네~ 천제에 대한 설명이 아주 이해가 쏙쏙 되네요. 남자들의 견제란 그런 것일지. 사실 여자들은 그런 것에 흔들리진 않는데 말이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해품글
    작성일
    23.08.10 00:02
    No. 2

    아이쿠 참~~ 하윌라 님...ㅋㅋㅋ
    태풍 뉴스 보고 심각해져 있다가, 하윌라님 댓글 보고, 빵 터졌습니다~~ㅋㅋㅋ
    감사해요,, 미숙한 글을 정성껏 읽어 주시고 댓글까지 남겨 주셔서요..
    시원한 라떼 라도 한 잔 드시면서 보시라고 하고 싶은데.
    말뿐일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하윌라님도 건필 하세요~!
    마음 만이라도, 받아 주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3 하윌라
    작성일
    23.08.10 08:20
    No. 3

    앗 제일 무서운 소리닷
    마음을 받아달라뉘~~~
    그대의 마음이 제게 있습니까??
    설레는 마음에 다음 글을..... 부끄부끄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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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문.. 반월검의 주인 +8 22.07.07 718 1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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