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100층 회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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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12.12 09:23
최근연재일 :
2023.01.28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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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0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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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그냥 받아들이세요. 무엇이든

DUMMY

32.


미로의 틈이 골치가 아픈 이유는 인간의 오감을 어지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더웠다가 추웠다 하는 도통 종잡을 수 없는 온도에, 수시로 불어오는 바람엔 향긋한지 지독한지 모를 냄새가 섞였다.

가끔 바람에 닿는 피부는 따가웠고 또 간지러웠다. 혀끝은 맵고, 달고, 짜고······.


“하물며 시각 정보마저 왜곡되죠.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멀게 느껴져요. 조만간 신기루도 보게 될 걸요?”


단순히 촉각이나 후각, 미각, 청각 따위가 어지러운 거면 꾹 참고 버텼을 거다.

문제는 시각이 왜곡되면서 전투에 있어 거리 감각부터 달라진다는 데에 있다.


“쉐도우는 그 때문에 어렵게 느껴지는 겁니다. 위치를 쉽게 특정할 수 없으니까.”


안 그래도 핵을 부수질 않으면 죽지도 않는다.

오감이 왜곡된 상태에서 약점마저 타격해야 한다.


“하지만 알아둬야 할 건 놈은 결코 물리 면역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 말은······.”

“누구나 위치를 특정해낼 수만 있으면 쉽게 사냥할 수 있는 몬스터란 거죠.”


그리고 차도윤은 이들 앞에서 녀석의 위치를 특정해낸다는 걸 증명했다.

그것만으로도 김태하는 차도윤의 편에 붙었고, 납득한 채 10만 코인이나 되는 거금을 지불했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에게 마력을 공유해드릴 거니까.”

“마력을······ 공유한다고요?”

“정확힌 동조한다고 하는 게 맞겠죠.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지더라도 거부하지 말고.”


하지만 차도윤은 말하다 말고 가만히 허공을 응시했다.

한창 영화를 보다 딱 재밌는 부분에서 영상이 멈춘 것처럼.

기다려도 차도윤의 입에서 새로운 말이 나오질 않았다.

특히 강의료로 10만 코인이나 지불한 김태하는 그 행동에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비싼 돈을 투자했는데 질질 끌고 앉았으니 영 마음에 안 들 수밖에.

그는 자신의 성급함을 감추지 못했다.


“말하다 말고 지금 무슨······.”


허공을 바라보던 차도윤은 사람들을 돌아보며 멋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미안합니다. 미로에선 워낙 시간 흐름을 알기 어려운 지라······ 벌써 24시간이 지났다는 걸 모르고 있었네요.”


느닷없는 사과와 함께 왜 갑자기 시간에 대해서 언급하는지는 다들 모르는 눈치였다.

차도윤도 구태여 설명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한 번 보고 나면 이해하기 싫어도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설명하라고 해도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이기도 했고. 그저 해줄 말은 이것뿐이다.


“지금부터 저한테 생기는 변화를 두고 크게 걱정하진 않으셔도 됩니다.”

“네?”

“그냥 받아들이세요. 무엇이든.”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을 응시하던 차도윤은 그의 앞으로만 카운트 되는 시간을 확인했다.


[3, 2, 1······0.]

[‘약화의 저주’가 적용된 지 24시간이 지났습니다.]

[약화의 저주가 강화됩니다.]


눈앞으로 떠오르는 일련의 메시지 뒤로는 온몸을 뒤트는 감각이 따라왔다.

다행히 빛이 터져 나오진 않았다. 괜히 요란스럽게 빛이 번졌으면 심한 어그로가 끌렸을 텐데. 그건 다행이네.


“어, 어어······?”


나지막이 당황한 듯 내지르는 김태하의 목소리에 맞추어 차도윤의 몸은 바뀌기 시작했다.

쭈글쭈글하던 주름이 곧 펴졌고 희게 번졌던 머리카락은 모조리 새카맣게 물들었다.

별안간 온몸이 회춘하는 모양새는 솔직히 기괴하기 짝이 없는 현상이었다.

변신보다는 변이에 가까웠다.


“흠.”


머지않아 모든 변이를 마친 차도윤은 목소리를 한 차례 가다듬었다.

그에게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옷부터 갈아입어야겠네.”


놀랍게도 7살 무렵의 아이.


“다, 당신은······ 대체.”


황망히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아이가 되어버린 차도윤은 주섬주섬 옷을 꺼내 입었다.

인벤토리엔 이런 사태를 대비해서 여러 옷가지를 미리 준비해서 넣어 놨다.


“마저 이야기를 나눠보죠.”


미로의 틈만큼이나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차도윤만이 태연했다.


[‘약화의 저주 Lv.2’가 적용되었습니다.]

[다음 단계로 접어들기까지 24시간 남았습니다.]


*


이대영은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12명의 헌터에게 세뇌를 걸 수 있었다.

물론 세뇌는 그들의 행동을 모조리 조종하는 방식의 사기적인 스킬은 아니었다.

등급도 낮을뿐더러 숫자가 늘어날수록 세뇌의 난이도는 급격히 올라가니까.

실질적으로 아직 그의 수준으로는 단 한 명도 제대로 컨트롤하는 게 버거웠다.


‘그런 면에 있어서 여긴 나한테 운이 좋다고 볼 수도 있겠는데······ 흠.’


오감이 어지러워지는 정신 나간 공간이 이 ‘미로의 틈’이란 던전의 특징이다.

이곳에 있으면 당연하게도 그 어떤 헌터든 혼란을 겪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혼란을 겪을수록 세뇌의 난이도는 두말 할 것도 없이 낮아진다.

구태여 그들을 완전히 조종하진 못할 지라도 어지간한 선동이 가능해진다.

12명이나 되는 헌터를 꿰어 은근히 자신의 말을 믿도록 만드는 것도 충분히······.


“설마 김태하 씨가 우릴 그렇게 배신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 새끼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어요. 상층에서 회귀했다고 으스대더니만.”

“애초에 상층에서 회귀한 적 없는 거 아니야? 그걸 누가 증명하냐고?”


적어도 이 상황에서 살아나갈 방법이 김태하가 아닌 자신으로 여길 수 있도록.


“이대영 씨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을지요.”

“이대영 씨만 믿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엉성하게 짜 맞춘 프레임에도 그들은 알아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였다.

이대영은 자신을 바라보는 12명의 시선을 응시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가 됐든 공략을 시작하죠. 이 빌어먹을 미로를 빠져나가는 게 우선입니다.”

“확실히······.”

“갑시다. 이쪽입니다.”


하지만 이대영은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일부러 길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몇 번이고 갔던 길을 되돌아갔으며 일부러 시간을 끌어 이동을 방해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있었다.


‘이참에 노예들을 늘려놔야지.’


지금은 선동으로 인해 저들을 유인하고 있을 뿐인 별 볼일 없는 세뇌다.

하지만 세뇌는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그 효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좋아진다.

혼란 속에서 저들이 제대로 된 사실 파악을 못하고 있을 지금이야말로······.

놈들을 사로잡을 기회!


“이쪽을 한 번만 더 둘러보죠.”

“아까 봤던 곳 같은데······.”

“미묘하게 달라요.”


이대영이 12명의 헌터를 데리고 같은 자리를 빙빙 돌며 시간을 끌 때였다.


“전방에 몬스터입니다!”


선두에 섰던 헌터가 크게 외치며 날카로운 장검을 빠르게 꺼내들었다.

마찬가지로 고든의 단검을 움켜 쥔 이대영은 정면에 스멀스멀 다가오는 그림자를 보았다.

이름이 뭐라고 하더라?

김태하가 하도 겁을 주기에 우려스러웠지만 막상 부딪쳐보니 별 볼일 없던 몬스터.

이대영은 솔직히 우스웠다.


‘이런 놈을 상대로 뭐?’


그는 돌이라도 된 것처럼 굳어서 아무것도 하질 못하던 김태하를 떠올렸다.

노인네조차 한 방에 쓰러트리는 보잘 것 없는 몬스터를 그토록 겁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겁이 많아서 오래 살아남은 거겠지. 종종 그런 경우의 케이스도 있으니까.’


모르긴 몰라도 1회 차는 그토록 조심스러운 성격이 생존력을 높여줬을 것이다.

겁이 많을수록 도전을 회피하고, 안전한 곳에서 몸을 숨겨 무난하게 생존했겠지.

전투엔 아무런 영향을 못 미치는 바퀴벌레가 어쩌면 최전방의 헌터보다도 오래 산다.


“이전처럼 갑시다.”


이대영은 대충 브리핑을 하며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모름지기 다들 꽤 강한 축에 속한 이들이었다.

숫자만 믿고 달려드는 몬스터 따위가 뭘 어찌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승리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측면에도 있습니다!”


또 다른 외침에도 이대영이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는 이유였다.

벌레가 모여 봤자 벌레가 아닌가?


“일단 정면을 위주로······.”


하지만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눈치채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뭐, 뭐야!”


전방과 측면, 동서남북을 가리질 않고 몬스터가 급속도로 불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어그로를 끌어요!”


헌터 한 명이 불화살을 붙여 먼 표적을 조준했다.

궤적을 그리고 날아간 불화살은 한곳에 적중해 그대로 쾅 터져나갔다.

불길이 솟구치고 몬스터 몇몇이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고작 그게 전부였다.


“······이 무슨.”


동시에 수십 마리가 일제히 하나의 덩치로 모여들고 있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열 마리······ 도통 몇 마리가 섞여든 건지도 모르겠다.

이대영은 고개를 들었다.


“여긴······.”


그리고 이대영은 그제야 자신이 무얼 놓치고 있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하.”


12명이나 되는 헌터를 세뇌한답시고 정신없이 움직인 대가라 할 것이다.

하물며 자신조차도 ‘미로의 틈’에 의해 혼란을 겪고 있다는 걸 잊은 탓이다.

무심코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몬스터를 보며 전부 약한 개체라 상정한 결과였다.

이대영은 입술을 짓씹었다.


“빙빙 돈 게 아니구나.”


헌터들을 세뇌시키겠다고 빙빙 돈다고 생각했는데.

근데 그건 모두 그의 착각에 불과했다.


“알아서 죽으러 들어온 거구나.”


막상 그의 앞에 몰려든 몬스터 무리를 보고도 모를 수는 없었다.

그는 알게 모르게 이쪽으로 유인되어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아가리를 쫙 벌린 괴물의 입 속으로.


“어, 어떡하죠?”


아직 이지를 잃지도 않았건만······ 다들 행동의 주권을 자신에게 건네 오고 있었다.

처음부터 바라고 바란 순간이었지만 썩 유쾌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니, 어찌 유쾌하겠는가.

그가 원했던 상황은 이런 순간도 아닐뿐더러 이러려고 김태하를 두고 온 게 아닌데.


“어떡하긴······ 시발.”

“네?”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해. 시발 너희들도 2회 차잖아!”


욕지거리를 내뱉은 이대영은 눈을 부라린 채 어둠을 응시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어둠은 그들을 모조리 잡아먹고 있었다.


*


“······아직도 적응이 안 되네.”


앞서 걷던 안유리는 차도윤을 돌아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눈높이가 비슷했던 그녀는 이젠 올려다봐야 했다.


“대체 뭔 짓을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옆을 걷던 김태하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올려다봐서 그런지 덩치는 더욱 크게 느껴졌다.


“보통 미친 짓은 아니겠지. 영감이 아이가 됐어. 흠······ 그 다음은 뭐지?”

“혹시 성별도 변하나요?”


김희우마저 합세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정작 당사자는 조막만 한 주먹을 쥐었다 펴볼 뿐이지만.


“그나저나 괜찮을까요? 이렇게 아이가 되어버리면 아무래도 싸움은······.”


김희우의 우려 섞인 질문에 안유리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할아버지일 때도 그리 잘 싸웠는데 어려졌다고 그 실력이 어디 가겠어? 오히려 날아다닐 것 같은데.”


틀린 말은 아니다.

노인일 때보다 피로는 덜했고 움직이는 건 날듯이 가볍게만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노인일 때보다 훨씬 안 좋아진 부분도 명확했다.

김희우는 그 점을 콕 집어서 말했다.


“······저걸 보고도요?”


김희우의 시선엔 질질 끌리는 검집이 닿았다.

아무래도 자신의 신체보다도 긴 검이다.

그걸 제대로 휘두를 수 있을지 의문이 생겨났다.

여러 시선 속에서 차도윤은 손을 들어 사람들을 정지시켰다.


“다들 전투 준비해요.”


고사리 같은 손가락이 웬 어둠이 뭉쳐진 방향을 가리켰다.

무언가를 먹고 있는 건지 한참을 들썩이고 있었다.


“저건······.”


일행은 어둠 속에서 이쪽을 돌아보는 일련의 헌터 무리를 발견했다.

앞서 그들을 두고 떠났던 이대영과 12명에 이르는 상급의 헌터들이다.


-난······.


그들은 허망한 눈으로 이쪽을 돌아보며 고저 없는 목소리를 중얼거렸다.


-난······ 누구지?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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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라헬 스트로디아 +2 23.01.15 1,547 5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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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저게 왜 난쟁이야 +3 23.01.13 1,718 48 12쪽
34 음식은 멀쩡하다니까 +5 23.01.12 1,771 54 12쪽
33 돈값은 해줄 테니까 23.01.11 1,893 52 13쪽
» 그냥 받아들이세요. 무엇이든 23.01.10 1,947 55 12쪽
31 증명해보이면 되겠지? 23.01.09 1,963 57 12쪽
30 그때랑 지금은 시세가 다르지 +1 23.01.08 2,020 57 13쪽
29 줄래야 줄 것도 없어 23.01.07 2,064 50 13쪽
28 주변을 둘러보는 눈을 기르래도 +1 23.01.06 2,121 58 13쪽
27 차도윤입니다 +1 23.01.05 2,175 55 12쪽
26 그럼 해 봐. 감당할 수 있으면 +1 23.01.04 2,206 64 14쪽
25 안 돼. 저건 못 먹는 감이야 +1 23.01.03 2,239 59 12쪽
24 저들이 너희들의 원수다! 23.01.02 2,355 58 12쪽
23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23.01.01 2,596 57 12쪽
22 난 여기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 22.12.31 2,786 6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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