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 카피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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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사초™
그림/삽화
231229
작품등록일 :
2022.12.19 11:48
최근연재일 :
2023.12.29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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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19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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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1화. 사천당문의 막내 공자

DUMMY

어렸을 때부터 히어로를 꿈꿨다.

비록 하늘을 날거나 불을 내뿜는 그런 능력과 다르게 수수하기 짝이 없는 능력이었지만, 나에겐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머리가 조금 굵어졌을 때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에 기자만큼 편한 직업은 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민재 기자님, 상무님께선 자리에 안 계십니다.”

「상무님께선 오늘 아침에도 찜질방에 가신 댔지?」


비서의 생각이 머릿속에 파고들었다.

구운제약의 유니폼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그녀는 웃는 낯으로 잘라 말했다.


‘이 상황에 어제 술 처먹고 찜질방에서 숙취 해소냐? 잘하는 짓이다.’


나는 속내를 숨기고 입을 열었다.


“그러면 이민철 상무의 횡령 의혹에 대해서는 노코멘트로······ 작성해도 되겠죠?”

“죄송하지만. 제가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메뉴얼 대로, 메뉴얼 대로······」


기계적인 태도와 다르게 속마음은 적잖이 긴장하고 있는 것이 읽혔다.


‘뭐 그렇게 말해야겠지. 메.뉴.얼.대로’


나는 기자 수첩을 접고 미소를 지었다.


“후, 어쩔 수 없네요. 일단 알겠습니다.”


나는 구운제약의 주차장에 세운 애마 앞에 담배를 물었다.

검찰은 구운제약 비자금 조성 과정을 총괄한 이상철 상무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혐의로 수사 중이었다.

보통은 구속영장이 나와도 부족하지 않은 상황인데, 이상철 상무는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죽어라 로비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경제범죄수사과에서는 도주를 우려해 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 측에서 기각됐다.

이상철 상무가 대법원, 검찰 출신 변호사들과 매일 같이 술자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파악했다.


“이거 오너일가와 연관됐을텐데······ 이대로 꼬리 자르기에 나서려나?”


나는 조수석에서 이번 이상철 상무와 관련된 자료를 꺼냈다.

이상철 상무는 7년 전부터 의약품 원료의 단가를 부풀리고, 의약품 원료사와 허위로 거래하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

그렇게 조성된 비자금이 연초에는 100억 원으로 추산됐으나, 수사 결과 비자금 규모는 300억 원으로 확인된 상황이었다.


“직접 만나기만 한다면 오너일가와 어떻게 연루됐는지 알 수 있을텐데 말이지.”


나는 휴대용 재떨이에 담배꽁초를 버리며 차에 올랐다.

차의 시동을 걸려다가 잠시 눈을 감았다.


“으음······ 요즘 왜 이렇게 머리가 아프지?”


나는 조수석 수납함에서 진통제를 꺼내 먹었다.

그 원인이 과로 때문인지 아니면 과도하게 사람의 마음을 능력을 사용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이러다 죽겠네······.”


언제부터인가 몇 잔의 카페인과 몇 모금의 니코틴으로 하루를 버텼다.

아침에는 견과류와 커피 한 잔, 점심에는 에너지바와 에너지드링크, 저녁에는 출입처 사람들과 회식으로 속을 채웠다.

위장과 간이 비명을 지를 때면 약으로 달랬다.

건강을 해치긴 했지만 사회부에서 큼직한 사건들을 잡아내면서 한국기자협회에서 주는 이달의 기자상과 올해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취재 내내 꼬투리를 잡던 차장의 이름도 함께 올라온 게 내키지는 않았지만······.’


나는 한숨을 내쉬곤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자동차가 푸드덕거리는 것이 이제 슬슬 엔진오일을 갈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씨발, 정의를 위해 이 한 몸 바치겠다 이거야.”


고장난 와이퍼가 부슬부슬 내리는 빗물을 힘겹게 닦아냈다.


‘그래, 와이퍼도 갈고 엔진오일도 듬뿍 먹여주마.’


그렇게 생각했을 때 섬광이 시야를 찢었다.



***



“하! 독왕의 아들이란 놈이 독에 중독돼?”


서릿발 같은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낮지만 으르렁거리는 음색이 마치 호랑이와도 같았다.


“이! 당중월의 자식이 중독돼 병신이 됐다고! 차라리 죽었어야지! 그렇다면 원한 정도는 갚아줬을 테니까.”


독왕 당중월.

그는 사천당문의 가주이자 중원 무림에 손꼽히는 절정 고수였다.

당중월의 기세에 병실에 모인 사람들의 가슴을 짓눌렀다.


‘이건······ 환생이란 건가? 좆됐네.’


의식은 있었지만 사지가 철사로 결박된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심장 소리만 고장 난 전차처럼 덜커덩거리며 뛰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병신이 된 막내 공자······ 당연우인가?’


동선일보 사회부 기자 김민재.

교통사고인지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인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과거의 기억이 물결처럼 멀어져갔다.


‘거 더럽게 아프네.’


몸이 개미굴이 된 느낌이었다. 사방팔방으로 개미들이 굴을 뚫고 지나가는 통증에 몇 번이고 기절하고 깨어났다.


‘환생이고 나발이고, 이 고통 좀 빨리 끝냈으면 좋겠는데. 하, 씨발 꼼짝도 못하는데 어쩌지?’


나는 방법을 찾고자 필사적으로 당연우의 기억을 헤집었다.

가주에게는 각기 다섯 살 터울의 세 아들이 있다.

소가주인 장남 당연강, 차남 당연해, 그리고 막내이자 이 빌어먹을 몸뚱이의 주인공 당연우.

무가에서 태어났지만 무공에 대한 이해도나 근골은 형편없었고, 당가 다운 독심도, 오성도 썩 좋지 못했다.

그나마 반반한 얼굴이 눈길을 끌었다.

덕분에 당연우는 당문 안에서는 허안공자라는 불미스러운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얼굴이라도 잘생긴 건 좋다만······ 지금 상황에선 아무런 쓸모가 없잖아!’


이전 삶에서는 잘생기기는커녕 가만히 있으면 노려본다고 하고, 웃으면 협박하냐는 말이나 들을 정도로 험악했다.

물론 중원무림의 무가의 평가 기준에서는 하순위에 속하는 것이긴 했다.

나는 찬찬히 당연우의 기억을 끄집어 읽었다.

당연우는 당문의 하급무사가 익히는 취화독공을 익히고 있었다. 당문에서는 기초라고 볼 수 있는 독공이었다.


‘가주 아들이 왜 하급 무공을 익히는 거야?’


당연우의 기억을 좀 더 살피자 이유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시녀의 자식이자 후일 다른 곳에 팔려 갈 데릴사위.

본처 소생이 아닌 당연우는 일찍이 다른 세가나 문파에 팔려 갈 몸이었다.

그렇기에 당문의 비전을 하나라도 익힐 수 없었다.

차라리 당문다운 재능이라도 보였다면 몰라도 아쉽게도 당연우에게는 그런 모습은 없었다.


‘어린 나이에 몰래 무공을 훔쳐 배웠다는 건가? 당문에서?’


당문처럼 독과 암기 등 기밀을 엄수하는 집단에서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누군가 당연우의 손에 무공을 쥐여줬다. 그가 훔쳤다고 생각하도록.


‘취화독공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독까지······ 어떤 놈인지 수가 좋네. 빌어먹을.’


독공은 내공심법에 맞는 독을 해독제와 함께 섭취해야 익힐 수 있는 까다로운 무공이다.

취화독공 같은 기초 독공이 감당할 수 있는 건 식중독이나 시중에 나도는 싸구려 마비독 같은 독기가 약한 놈들 정도였다.

당연우는 어리석게도 감당치 못할 독을 먹었다.


‘쓰벌, 덕분에 내가 개고생이네.’


나는 눈을 감고 기억에서 본 취화독공의 구결을 따라 사지백해로 뻗어나간 독기를 통제하려 했다.

그러나 몸에 퍼진 독은 취화독공 따위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독공의 고수가 직접 독을 제거해주거나 독을 통제할 수 있는 상승독공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문제는 아비인 독왕이 포기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은 상황에서 타인의 도움이 받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하아, 어떡하냐?’


몸이 움직이지 않으니 방법이 없었다.


“막내 공자님, 몰래 무공을 배우려다가 주화입마를 당했다며?”

“사천당문의 공자님이 독공을 익히다가 중독됐다고? 쪽팔려서 말도 못 하겠네.”


이따금 병실 앞을 오가는 시녀들의 재잘거림이 절망감을 더했다.

가주가 포기한 이상 이대로 폐기될 운명이었다.

운 좋아야 산송장으로 평생 이 병실에서 죽어가는 정도였다.


‘해결할 방법은 독을 통제할 상승독공을 배우는 것뿐인가?’



“소가주님!”


깨고 기절하는 걸 반복하는 사이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병실 밖에서 들렸다.


“소가주님, 막내 공자님은 아직 위중한 상태입니다.”

“알고 있다. 그래도 동생이 저 꼴이 됐는데 병문안 한 번 가지 않는 건······ 아니지 않더냐?”


작은 소란이 벌어졌다.


‘소가주면 당연강인가?’


당중월이 말하길 당연강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무골이었다.

그 살벌한 당중월이 당연강의 근골을 보고 가타부타 말없이 소가주로 앉힐 정도였다.

방문이 열리고 칠척장신의 사내가 발소리 없이 다가왔다.

변발을 한 것처럼 반쯤 벗겨진 머리 때문인지 제 나이보다 스무 살은 더 먹은 것 같았다.

독으로 착색된 옥빛 얼굴에는 곰보와 여드름이 가득했다.


‘녹안공자 당연강.’


그의 추레한 외모를 비웃는 별호였다.

하지만 그 별호를 함부로 입에 담는 자는 없었다. 그는 분명 당문이 자랑하는 소가주. 독공의 고수였으니 말이다.


“연우야, 나는 네가 이렇게 돼서 기쁘면서도 슬프구나.”


인자한 목소리와 다른 섬뜩한 말이었다.

내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는 당연강의 손은 매끈했다. 독공을 익히면서 지문이고 뭐고 다 녹아버린 탓이다.

독기가 그의 손끝을 따라 움직였다. 마치 수많은 작은 갈고리처럼 몸에 쌓인 독기를 그러모았다.


“토독······인가? 이래서야 낫는다고 하더라도 무공을 익히는 건 평생 무리겠군.”


중얼거리는 그의 음색에서 묘한 희열과 죄책감이 묻어났다.

나는 목구멍에 꿀렁이는 가래를 힘없이 뱉어냈다.


“형님······.”

“깨어난 것이냐?”


놀란 눈으로 당연강이 나를 바라봤다. 옥빛으로 물든 그의 얼굴은 괴물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그 두 눈에 담긴 눈에는 짙은 연민이 묻어났다.


‘아둔한 장남.’


당연강은 무공에 남들과 다른 재능을 보였으나 그 심성이 당문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나약했다.

당중월이 끝내 장자 승계를 포기하게 된 계기였으며, 덕분에 당연강은 허울뿐인 소가주가 됐다.

독을 다루는 이는 늘 냉정해야 했다. 그러나 이 정 많고 심약한 장남은 가주의 기대에 턱없이 부족한 심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한참을 고민하더니 잔혹한 진실을 꺼내놓았다.


“······아버지께선 그냥 놔두라고 하시더구나.”

「벌모세수라도 한다면 어쩌면 나을 수도 있거늘······.」


그는 헛된 희망까진 말하지 않았다.

대신 힘없이 자신의 속내를 토해냈다.


“네가 이런 몸이 돼서야 나는 형제애라는 걸 느끼는구나.”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은 휴짓조각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그가 심약한 성격이란 건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선인이란 것은 아니었다.

내가 폐인이 됐으니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것뿐, 만약 내 몸이 낫는다면 그는 손바닥 뒤집 듯 태도를 바꿀 사람이었다.


‘마음이 약하다고 마음이 좋다는 건 아니지.’

“형님, 저는 몸이 낫는다면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그래, 그 정도라면 도와줄 수 있다.”

‘오독행공. 지금 소가주가 익히는 독공.’


오독행공은 탈명독공이라는 상승독공을 배우기 전 몸을 만드는 독공이었다.

축기를 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았으나 독기를 다루는 것만큼은 여느 독공보다 뛰어났다.

그리고 탈명독공이 가주만 익힐 수 있는 독공인 만큼 오독행공 역시 차기 가주가 아니면 배울 수 없었다.


‘오독행공을 읽으려면 시간이 필요해.’


오독행공의 구결, 기의 운용법을 찾고자 그의 기억 속을 훑었다.

운기야 당연강이 매일같이 하는 일이니, 구결을 얻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기의 운용법은 그가 의식하면서 하는 것이 아니어서인지 기억에서 끌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네가 그렇게 말해줘 고맙구나. 그래, 내가 의원들에게 이야기해서 편의를 좀 봐줄 수 있도록 하겠다.”


아직 운용법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나는 방법을 바꿨다.


“형님, 한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응?”

“오독행공을 운영할 때 어떤 방식으로 하십니까? 저 스스로 독을 빼고 싶어서요.”


당연강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건 아버지의 허락이 없으면 말해줄 수 없겠구나.”


당연강은 거절했지만, 그가 오독행공을 떠올리면서 머릿속에 기의 운영법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무리한 부탁을 드려 죄송합니다.”

“아니다. 푹 쉬어라.”


당연강이 방문을 닫고 나섰다.

나는 발걸음 소리가 멀어져가는 것을 듣고서야 눈을 감고 오독행공의 구결을 속으로 외웠다.

오독행공은 상승 독공인 만큼 그 구결이 현묘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당연강이 오독행공을 익히면서 해온 시행착오까지 모두 읽었다.

답안이 빤히 보이는 꼴이다 보니 오독행공을 익히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눈을 감고 오독행공의 구결을 따라 몸안 곳곳에 퍼진 독을 끌어모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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