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을 보는 환생 군주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공기재단사
작품등록일 :
2022.12.22 15:12
최근연재일 :
2023.06.13 18:30
연재수 :
170 회
조회수 :
184,592
추천수 :
3,792
글자수 :
957,680

작성
23.05.21 18:30
조회
277
추천
10
글자
12쪽

태풍(2)

DUMMY

“물러서지 마라!”


아슬라프의 해군은 시야가 어두운 폭우 속에서도 안간힘을 다해 깃발을 흔들고 신호를 주고받았다. 훈련한 대로 이탈하지 않고 각자 자리를 지켰다.


반면에 해적선은 훈련보다는 자신들이 편한 대로 전투해왔고 태풍 속에서 싸운 경우는 별로 없었다. 각자 살길을 찾아 사방으로 흩어져 대열이 무너졌다.

게다가 어선의 비중이 높고, 나포한 상선이 섞여 있어, 제국 군선보다 작고 내구성이 떨어지는 배가 대부분이어서, 암초에 좌초되거나 태풍에 떠내려간 배도 상당수였다.


‘안 되겠군. 이대로는 필패야.’


막다른 곳에 몰린 크사이는 분위기를 전환할 최후의 방법을 모색했다. 뱃머리로 아슬라프의 배의 옆구리를 들이받는 충각전술을 사용하려는 것이었다. 그의 배는 제국의 군선을 빼앗은 거라서 아슬라프의 배만큼 컸다. 흔들리는 풍랑속에서도 자신이 배를 정확히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기에 쓸 수 있는 전술이었다.


“돌격!”


직접 키를 잡은 크사이는 자신의 배를 아슬라프의 배로 돌진시켰다.


“전속력으로!”


폭풍우를 받아서 팽팽해진 돛의 힘으로 배는 파도 위를 날 듯이 움직였다.


“들이받아!”


뾰족한 쇠조각 장식이 달린 뱃머리가 아슬라프의 배의 옆에 부딫혔다.


빠직!


둔탁한 소리와 함께 양쪽 배에 거대한 충격이 전해졌다. 거부할 수 없는 강한 힘에 양측의 선원들이 모두 힘없이 종이인형처럼 쓰러졌다.


“우리 배에 이 정도 충격이 올 정도면, 옆구리를 받힌 적의 배는 두 동강이 났을 거다.”


몸을 일으킨 크사이는 중얼거리며 아슬라프의 배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슬라프의 배는 타격이 없이 물에 떠 있었다. 오히려 크사이의 배의 뱃머리가 흔적도 없이 산산조각나서 사라졌다.


“멀쩡하잖아? 이게 어찌 된 일이냐?”


크사이는 황당해서 어쩔 줄 몰랐다.


“유령선인가? 뭐 저런 게 다 있어?”


해적들은 당황해서 아슬라프의 배를 쳐다보았다. 들이받힌 옆구리에서 나뭇조각이 떨어져 나갔지만, 여전히 배의 모양은 멀쩡했다.


“저 안에 뭐가 있어.”


받힌 부분의 나무가 떨어져 나간 자리에 철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탕카가 특수하게 제련한 얇고 가볍고 강한 철판으로 아슬라프의 배의 가장자리를 둘러싼 것이 효과를 발휘했다. 충돌에 철판이 충격을 완화하고 버티면서 배의 파손을 막았다.


“저러면 아무리 들이받아도 우리 배만 부서지지.”


해적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뱃머리가 휑하니 없어진 채, 방향을 잃은 크사이의 배는 폭풍우에 위아래로 심하게 흔들렸다.


“물이 들어옵니다!”


충돌의 충격으로 선체가 금이 갔는지 바닥에서 물이 스며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이런, 젠장!”


크사이는 당황해서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그의 부하들이 탄 배는 어느새 거의 사라지고 멀쩡한 배가 없었다. 태풍에 떠내려갔더나, 도망쳤거나, 암초에 부딪혀 가라앉았거나, 아슬라프의 해군과 싸우다가 나포되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냐?”


처음에는 전세가 양측이 팽팽했지만, 트셰니의 시체가 매달린 후로, 해적들의 기세가 꺾이고 제국군이 공세로 나갔다.

아슬라프의 병사들은 해전의 경험이 없어서 처음에는 긴장했지만, 이미 육지에서 성벽 수비에는 이골이 난 병사들이었다. 한 두 시간 정도 적과 싸우며 바다에 적응하자, 배를 기어오르는 해적들을 어렵지 않게 거꾸러뜨렸다.


“우리 배는 다 어디로 간 거냐? 치코! 랑게니! 내 아들들아! 어디 있느냐?”


크사이는 사라진 부하들을 찾으며 목을 빼고 그들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그러나, 그의 주위에 있던 해적선들은 보이지 않았다. 암초에 걸려서 부서진 배의 파편만이 사방에 둥둥 떠다녔다.


배가 기우뚱거리며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배를 버리고 탈출해야 합니다.”


크사이의 부관이 구명보트를 내리고 크사이에 올라타라고 권했다.


“이럴 수가.”


크사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갑판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지금껏 자신의 전투 사상 이런 치욕스런 패전을 겪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침몰하는 배에서 보트에 올라타는 것 외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크사이를 잡아!”


아슬라프의 배는 크사이가 탄 구명보트를 쫒아갔다.

크사이의 배는 있는 힘을 다해 노를 저으며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거대한 폭풍의 힘을 이기기는 어려웠다.


“저, 저기!”


그들은 눈앞에 다가오는 집채만 한 파도를 보고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으, 으악!”


파도가 그들의 자그마한 보트를 삼켰고, 보트가 뒤집어져 그들은 모두 물에 빠졌다.


크사이는 헤엄쳐 뒤집힌 보트에 매달리려 했지만, 연신 밀어닥치는 파도에 점점 멀어질 뿐이었다. 그는 몇 번 물 위로 떠올랐지만, 얼굴이 창백해지며 마침내 천천히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크사이!”


아슬라프는 허리에 밧줄을 묶고 물로 뛰어들었다.


“아슬라프!”


은쿤이 놀라서 소리지르며 아슬라프가 허리에 묶은 밧줄의 반대편 끝을 잡았다.


아슬라프는 헤엄쳐 들어가서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크사이를 붙잡았다. 물 위로 솟구쳐 올라가려고 발로 물을 찼지만, 한 팔로 크사이를 잡고 있어서 뜻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흡! 흡! 흡!’


숨을 참고 수면에 간신히 얼굴을 드러냈다. 그러자, 그의 허리에 묶은 밧줄이 그를 잡아당겼다. 은쿤이 그를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었다.


“이야압!”


은쿤은 괴력으로 물에 젖어 무거워진 두 사람을 한꺼번에 뱃전으로 끌어올렸다.


아슬라프는 갑판에 누워 헐떡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정신이 희미한 와중에도 크사이가 쿨럭 하고 물을 토해내는 것을 보았다. 폐활량이 좋은 마라족이라 물에 오래 있으면서도 버텨낸 모양이었다.


‘내가 왜 크사이를 구하려고 물에 뛰어들었지?’


그 순간 아슬라프의 눈앞에 환영이 펼쳐졌다.

그곳은 아주르 성이었다. 소년 알렉세이가 자신의 아버지 줄리어스 아주르 백작에게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버지. 제발 키티를 용서해주세요. 저를 봐서라도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알렉세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간절히 빌었다.


키티는 알렉세이1세의 유모였다. 귀족들은 자신의 아이를 키워주는 유모를 두었고, 알렉세이1세도 어머니보다 유모의 젖을 더 많이 먹었고 그녀가 씻기고 입히고 재워주는 날이 더 많았다.


“너를 봐서라도 자비를 베풀 수 없다.”


줄리어스 백작은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친하다고 측근이라고 봐주기 시작하면 아무도 네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네 측근일수록 더 엄정하게 죄를 물어야 한다. 그래야 부하들이 너를 두려워하고 딴짓을 하지 않는다. 원칙을 지켜야 해.”


‘키티...’


아슬라프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유모 키티는 알렉세이가 성장해서 유모가 필요 없어지자 해고되었다. 대저택에서 유모로 일하며 풍족하게 먹고살던 그녀는 자신이 살던 가난한 농가로 돌아가 농사를 지어야만 했다.

그러자, 농노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알렉세이의 귀중품과 줄리어스 백작 부인의 보석을 훔쳐서 도시로 달아났다.

하지만, 멀리 도망가지 못하고 말을 타고 추격한 기사들에게 잡혀서 도로 아주르 성으로 끌려갔다.


줄리어스 백작은 자신의 영주이자 고용주인 사람의 물건을 훔쳐 달아난 죄로 그녀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당시 농노는 허락 없이 영주의 땅을 떠날 수 없었으니, 탈출한 죄와 도둑질한 죄를 가중 처벌한 것이었다.


소년 알렉세이는 아버지에게 유모를 용서해달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부탁을 딱 잘라 거절했다.


“나는 키티에게 10년 간 내 유일한 아들을 맡길 정도로 믿었다. 그런데 그런 나의 믿음을 배신하고 보석을 훔쳐서 달아나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힌 자를 용서하면 공동체는 무너지고 만다.”


키티는 교수형에 처해 졌다. 소년 알렉세이는 유모의 죽음을 무력하게 바라보아야만 했던 자신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버지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지만, 유모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 켠이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환각에서 깨어난 아슬라프는 깨어나서 포승줄에 묶이고 발에 족쇄를 찬 채 선창 아래 감옥으로 끌려내려가는 크사이를 보았다.


‘크사이는 키티의 환생이었구나.’


아슬라프는 그제야 자신이 왜 그렇게 크사이에게 애착을 느꼈는지 깨달았다.

왜 청년 크사이를 보았을 때 첫눈에 마음에 들어서 발탁해서 승진시켰는지, 왜 타락한 그에게 제국에 항복하라고 끈질기게 설득하는 편지를 보냈는지, 왜 본능적으로 그를 구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었는지 설명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크사이가 가난한 아이들에게 자선을 베푼 것도 이해가 되었다. 전생에 유모여서 그랬는지 크사이는 아이들을 아주 좋아했다.


그러나, 동시에 전생의 잘못을 반복하고 있는 크사이의 모습이 딱했다.

키티는 알렉세이1세를 잘 키웠지만, 일을 그만두게 되자 물건을 훔쳐 도망쳤다가 교수형에 쳐해졌다. 크사이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알렉세이1세에게 발탁되어 해군제독까지 되며 그를 위해 일했지만, 알렉세이1세가 죽은 후에는 해적질을 하다가 붙잡혀서 교수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은쿤이 아슬라프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어차피 재판 받고 죽을 자인데 뭐하러 목숨 걸고 바다에 뛰어 들어가서 구했어?”


전생의 추억에 젖었던 아슬라프는 그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전에는 은쿤의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분명히 답할 수 없었다.


“아무리 나쁜 놈이라도 죽기 전에 회개할 시간은 줘야 할 거 아냐.”


아슬라프가 크사이를 바른 삶으로 이끌려는 충동을 강하게 느낀 데에는 전생의 인연이 작용했을 것이다. 유모가 타락하는 것을 막지 못했던 알렉세이1세의 후회가 업보가 되어, 무의식중에 유모의 환생인 크사이에게 갱생의 기회를 주고 싶어졌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태풍은 차츰 잦아들었다.


“사람 살려!”


아슬라프의 병사들은 밧줄을 던져서 바다에 빠져 난파선 조각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을 건져 올렸다.


“해적선은 모두 격파되었습니다.”


전투 초기에 도망쳐서 마라 섬으로 돌아간 사라위의 함대를 제외하면 대부분 나포되거나 침몰했다.


“아군의 피해는?”


“다섯 척이 암초에 파손되었고, 세 척이 태풍에 떠내려갔지만, 나머지 배들은 이상이 없습니다. 해적에게 빼앗긴 배는 한 척도 없습니다.”


아슬라프의 함대는 계속 항해해서 마라 섬에 도착했다.


해적들이 도망치고 패퇴한 마라 섬은 제국군이 상륙하는데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항구에 백기를 꽂아놓고 기다리고 있다가 항복했다.


전세가 기울자 도망친 사라위의 함대가 마라 섬에 돌아와서 사라위를 감옥에서 구출했고, 크사이의 함대가 괴멸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사라위는 마라 섬 주민과 남은 해적들을 항복하도록 설득했기 때문이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남의 물건을 빼앗아서 의적 행세를 해온 것이 부끄럽습니다. 저희에게만 죄를 묻고 저희를 따른 선원들과 마라 섬 주민들은 용서해주십시오.”


사라위는 살아남은 해적 선장들과 항구에 나와 무릎을 꿇고 아슬라프를 맞았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자수했으니 정상을 참작해서 벌을 주겠다.”


아슬라프는 해적 선장들을 감옥에 가두고 지금까지의 악행과 선행을 조사해서 재판 결과 경중에 따라 각자 벌을 주겠다고 말했다.


“마라 섬의 주민들은 아슬라프 대공께 충성할 것입니다. 제국법을 따르고 이제 해적질은 절대 하지 않고 농사와 고기잡이로 살며 세금을 바칠 테니, 주민들은 용서해주십시오.”


아슬라프는 그들을 선처해주겠다고 약속하고 마라 섬을 자신의 영지로 흡수했다.


“고맙습니다. 아슬라프 대공 전하.”


마라 섬에 나온 마라 족은 머리를 조아리며 그의 너그러운 처사에 감사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전생을 보는 환생 군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이카루스 제국 지도 +1 23.04.10 1,553 0 -
170 제국의 평화(완결) +7 23.06.13 245 9 13쪽
169 전쟁의 끝 +1 23.06.12 222 9 12쪽
168 제국의 전쟁(2) 23.06.11 228 9 12쪽
167 제국의 전쟁 23.06.10 258 9 12쪽
166 종교개혁 23.06.09 229 10 12쪽
165 노헨그라드 제국의 황제가 되다 23.06.08 244 10 13쪽
164 비요른의 반란 +1 23.06.07 225 9 13쪽
163 저스틴(2) 23.06.06 217 10 12쪽
162 저스틴 23.06.05 216 9 12쪽
161 리베루스 포위전 23.06.04 221 9 12쪽
160 약스 도시연합(2) 23.06.03 234 10 12쪽
159 약스 도시연합 23.06.02 241 8 12쪽
158 혁명(2) 23.06.01 260 8 12쪽
157 혁명 +1 23.05.31 270 9 12쪽
156 이달고의 오산(2) 23.05.30 255 9 12쪽
155 이달고의 오산 23.05.29 255 9 12쪽
154 마약상 딩기스 23.05.28 259 10 13쪽
153 포획 작전 23.05.27 260 9 12쪽
152 의사 헤이즐 23.05.26 270 8 13쪽
151 코카나무 농장 23.05.25 275 9 13쪽
150 환관 이달고의 제안 23.05.24 277 9 12쪽
149 모함의 결과 23.05.23 280 10 13쪽
148 군터의 모함 23.05.22 280 9 13쪽
» 태풍(2) 23.05.21 278 10 12쪽
146 태풍 23.05.20 268 10 12쪽
145 해적왕 크사이(3) 23.05.19 270 10 13쪽
144 해적왕 크사이(2) 23.05.18 278 7 12쪽
143 해적왕 크사이 +2 23.05.17 299 10 12쪽
142 마라 섬의 해적(3) 23.05.16 309 1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