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01.15 15:52
최근연재일 :
2024.03.15 10:00
연재수 :
400 회
조회수 :
16,308
추천수 :
1,480
글자수 :
2,061,634

작성
23.03.27 06:00
조회
45
추천
3
글자
12쪽

26. 인간체스 특별전 - 3

DUMMY

어흥선생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그의 입술. 그의 손가락은 부저 근처로 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삐!]


바로 그때, 침묵 가득한 스튜디오에 울리는 우렁찬 부저 벨 소리.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부저의 주인에게로 향했다.


“누구긴 누구야, 나지.”


뻔뻔한 목소리가 쩌렁하게 울렸다. 너무나 태연하게, 너무나 당당하게 부저를 누르고 있는 남자, 현과장이었다.


“현과장, 제정신이야? 세상의 주인이 너라고?”


그 뻔뻔함에 기막혀 하는 갓패치. 그의 발걸음이 천천히 현과장을 향했다.

갓패치의 발이 한 걸음 또 한 걸음 현과장에게 다가갈수록, 점점 더 짙어지는 공포감. 방청객과 모든 스태프들은 눈과 귀를 막은 채, 구석으로 달려가 몸을 움츠렸다.


“그럼 나지 누구야? 갓패치야?”

“당연히 나지! 현과장, 제정신이야?!”


어느새 현과장의 앞까지 다가온 갓패치. 현과장의 머리 위로 그의 길고 어두운 그림자 드리웠다. 현과장의 얼굴 위로 뜨거운 콧바람이 쏟아졌다.


“그럼 갓패치가 죽으라고 하면 난 죽어야 해? 그런 거야?”

“...어? 그건 아닌데.”


갓패치의 목소리에서 당혹감이 묻어나왔다. 그런 뜻으로 낸 문제가 아닌데. 갓패치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문제의 의도가 그런 게...”

“갓패치가 내 인생을 대신 살아 줄 것도 아니잖아?”

“그건 그런데...”


갓패치는 뻘쭘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구석으로 도망쳤던 사람들도, 완전히 반전된 분위기에 하나 둘씩 고개를 들고 현과장과 갓패치를 바라보았다.


“삶은 주체적으로 살아야 하는 거야. 다른 사람에게 맡기거나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현과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민국 꼰대의 평범한 설교. 그러나 스튜디오의 사람들에게는, 설교나 잔소리가 아닌, 그 어느 명언보다 강하게 와 닿았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 이 세상의 주인은 나!!”


한껏 더 목소리를 높이는 현과장. 몇몇 사람들은 그 목소리에 감동을 크게 받은 듯 눈가가 촉촉이 젖어갔다.


[짝짝짝!]


박수소리가 울려 퍼진다. 언제나 어흥선생에게만 들려왔던 그 소리가 이젠 현과장에게 쏟아졌다.


“감동적이다냥! 역시 현과장이다냥!!”


밀러오는 감동을 주체하지 못한 어흥선생. 그는 퀴즈단상에서 내려와 현과장에게 향했다. 금새 붉어진 어흥선생의 눈시울. 그는 아무런 말없이 현과장을 와락 끌어안았다.


“어, 왜 이래? 우리 지금 대결 중이야!”

“멋지다냥! 정말 멋지다냥!”


감동적인 두 사람의 모습. 그들을 향해 박수갈채가 쉴 새 없이 흩날렸다. 그런 그들을 갓패치는 묵묵히 바라봤다. 현과장의 외침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던 그였지만, 이미 인정하고 있었다. 자신이 낸 이기적인 질문에, 현과장은 적확한 대답을 했다는 것을.


“그럼, 승자를 발표해야겠군.”


쏟아지는 박수갈채 사이로 , 들려오는 갓패치의 목소리. 모두 누가 승자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럼 승자는...”


현과장에게로 향하는 모두의 시선, 그런데 바로 그때,


[폴짝!]


익숙한 무언가가 현과장의 머리 위로 올라탔다. 포근하고 푹신하면서 따뜻한 무언가. 그 무언가를 바라보는 어흥선생의 표정은 반가움으로 가득했지만, 무대 위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의 표정은 그러지 못했다.


“수, 수, 수, 숲 주인이다!!!!”


불안과 공포 휩싸여 사방으로 도망치는 사람들. 그들의 몸부림은 갓패치가 질문을 던졌을 때와 차원이 달랐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생존을 향한 외침. 스튜디오를 가득 메웠던 박수소리는 어디가고, 이젠 공포에 질린 비명소리만 공중으로 흩날렸다.


“지금 이거 우리 때문이야?”

“아니다냥. 키토님 때문이다냥.”


자신 때문이라는 말에 시무룩해진 키토. 그는 그저 축하해 주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그는 도망치는 사람들이 야속한 듯, 시선을 땅으로 돌렸다.


“괜찮아, 키토님. 나도 처음엔 환영 받지 못했으니까.”


현과장은 머리 위에 있는 키토를 향해 손을 올렸다. 그러자, 현과장의 손가락을 살포시 잡는 키토. 역시 키토의 마음은 현과장이 제일 잘 안다.


“키토님 나도 있다냥. 우린 가족이다냥.”


어흥선생 역시 키토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의 손길은 매몰차게 거절한 키토. 아무래도 자신의 탓이라고 말한 게 무척 섭섭했던 모양이다.


어느 덧 한산해진 스튜디오 안. 한산해졌다기보다, 현과장 일행만이 스튜디오 안에 남아있었다.


“모두 제정신이야? 이제 가야 할 거 아니야.”


갓패치가 무대를 내려가며 어흥선생과 현과장을 바라봤다. 그러자, 터벅터벅 무대를 내려가는 두 사람. 방청석에서 무대를 지켜보던 채야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합류했다.


“그럼 누가 날 가르칠까나?”

“글쎄, 아직 결판이 안 나서.”


채야의 담담한 질문에, 황급히 대답을 피한 현과장. 또 다른 당사자 어흥선생은 이미 스튜디오를 떠난 후였다.

오늘 스튜디오에서 일어난 일이, 그저 해프닝 정도로만 생각했던 현과장과 일행들. 그러나 그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방송은 계속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을.


***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시험.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현과장은 시험을 보기 위해 성출입관리소를 찾았다.

터벅터벅. 관리소 문을 향해 걸어간 현과장.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평소와 다르게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관리소. 생소한 분위기에 돌아갈까 생각도 했지만, 어흥선생과 박터져라 공부했던 지난날이 아쉬워서 그대로 관리소 문을 열고 진입했다.


“어, 저 사람이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현과장을 향해 순식간에 몰려온 사람들. 그들은 공손하고 또 상냥하게 현과장에게 말을 걸었다.


“저, 어흥선생님과 대결하신 분 맞으시죠?”

“그렇긴 한데요.”


현과장의 대답에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뭔가를 바라는 듯한,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한 그런 는빛. 그들의 눈빛은, 절대 평범한 사람이 보일만한 그런 눈빛이 아니었다.


“그, 숲 주인 있잖아요. 그러니까 인고의 보약.”

“인고의 보약이 뭔데요?”


현과장은 난생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현과장 그거 있잖아. 당신 머리 위에 쏟아져 내렸던 그거. 무지갯빛 그거. 설마, 지난날은 모두 잊은 거야. 인고의 보약 때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잊은 거냐고.


“보약은 한의원 가서 찾으세요. 나한테 이러지 말고.”


현과장이 자신을 둘러 싼 사람들을 피해 창구로 다가가려고 하자, 한 남자가 그의 손을 잡았다. 처음 말을 건넨 그 사람이었다.


“있으면 하나만 파쇼! 내가 값은 후하게 내놓을 테니까!”

“없는 걸 팔라고 하시면 제거 어떻게 팔아요? 그런 건 한의원 찾아가세요.”


현과장은 정중하게, 더욱 정중하게 거절하며 다시금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러자,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현과장의 팔과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사람들. 그들은 필사적이었다.


“아니, 왜 이러세요!!”

“그게 있어야 인간 체스에 나갈 수 있다고! 제발 하나만 팔아! 제발 하나만!”

“아니야, 나에게 팔아! 내가 더 잘 쳐줄게!”


인간 체스를 들먹이며, 현과장에게 사정하는 사람들. 그들의 광기 넘치는 행동에 급기야, 관리소 직원들이 나와 그들을 말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말리면 말릴수록 더욱 집요하게 현과장에게 달려들었다. 마치 인육을 탐하는 좀비 때처럼.


“2층입니다! 2층!”


바로 그때,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주민권 창구 담당 여성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2층으로 황급히 도망친 현과장. 그가 2층으로 올라가자, 직원들은 재빠르게 2층 입구를 막았고. 다행히도 좁은 입구 덕분에, 광기어린 사람들은 쉽게 진입하지 못했다.

시험장에 들어온 현과장은 한숨을 돌리며 자리에 앉았다.


“아니 뭘 팔라는 거야?”

“인고의 보약이요.”


시큰둥한 그의 목소리에 당연하게 대답하는 음성. 창구 여성이었다.


“그쪽도 인고 뭐시기가 필요해요?”

“아뇨. 전 인간 체스 안 나갈 거라서요.”


그녀는 단호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그녀의 표정. 현과장은 직감했다.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정체가 그녀가 방금 언급 했던 「인간 체스」때문이란 것을.


“인간 체스가 좀 그래요?”

“여왕이 집권한 이후에 많이 바뀌었어요. 인고의 보약이 없으면 마지막 도전조차 못할 정도로.”


시험지를 나눠주는 그녀의 손이 살며시 떨렸다. 이건 분노였다. 인간 체스가 아닌 여왕을 향한 분노.


“인간 체스인지 뭔지 나랑은 상관 없는데.”

“그러니까요. 현과장님은 여기서 시험보고, 또 시험보고, 또 시험보고, 또 시험보고, 또 시험보고...”


현과장은 여성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무슨 계속 시험만 보라는 거야. 주민권은 따지 말라는 거야, 뭐야?


“아니, 그런데 계속 시험만 보라는 건 무슨 뜻이에요? 나 주민권 따지 마라는 거예요?”

“아니요! 제가 시험 보라고 몇 번 말했는데요?”

“한 5번? 6번?”


현과장의 대답에, 주머니 속 수첩을 꺼내 내용을 읽는 여성. 그녀는 손가락으로 몇 차례 숫자를 세더니, 개운한 표정을 지으며 현과장을 바라봤다.


“그럼 6번만 더 말하면 되네요. 시험을 또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또 보시면 됩니다.”


창구 여성은 손가락까지 세어가며 천천히 읊었다. 아니, 6번이라고? 그전에도 대여섯 번 말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지?


“그게 무슨 말인지...”

“오늘 시험 말고도 아직도 11개나 더 남았는데요. 모르셨어요?”


그 순간, 예전 어흥선생이 대결에 앞서서 건넨 조건이 떠올랐다.


-그럼 내가 추천장을 써주겠다냥. 1차 시험 합격 추천장.


뒤통수가 얼얼했다. 1차 시험 합격 추천장이라고? 그렇다는 건 이런 시험이 12차까지 있다는 말이잖아!


“자, 잠깐! 시험을 12번 봐야 한다고요? 주민권을 따려면?”


현과장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그러자, 대답대신 고개를 사뿐이 끄덕이는 창구 여성. 순간, 하늘이 노래졌다.


“필기만 12차까지 있고요. 실기는 6차에서 끝나요.


노래진 하늘이 이젠 검게 보인다. 뭐? 실기도 있다고? 그것도 6차까지?


“아니, 주민권을 따는데 뭐 이렇게 힘들어?”

“그야, 성 안에 사는 사람이 되는 거니까요. 이 모든 게 전부 여왕 때문이죠.”


그녀의 목소리에 쓸쓸함이 묻어나왔지만, 현과장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가 당한 충격이 훨씬 더 컸기 때문에.

현과장은 자신이 없었다. 정답이 매번 바뀌는 시험을 12번이나 통과하라니. 차라리 어흥선생에게 추천장을 달라고 해볼까. 좋은 생각인 듯 느껴진 현과장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추천장을 그냥 줄 것이었으면 진즉 줬을 것이다. 아니, 추천장이 아닌 주민권을 줬겠지. 어흥선생 성격 상 그냥 줄 리 없다. 맺고 끊음이 확실한 인간이니까.


“정녕 방법이 없단 말인가!!!”


현과장은 시험장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그런데 그때,


“주민권을 얻는 다른 방법이요? 있긴 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대답하는 창구 여성. 그녀의 목소리에 현과장의 어둡던 하늘이 순식간에 개었다.


“방법이 있다고요? 무슨 방법인데요?

“그러니까, 그 방법이 뭐냐면요.”


현과장은 온 정신을 그녀에게 집중했다. 자신의 유일한 희망인 그녀에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4 44. 역쩐재판 - 4 23.04.14 37 4 12쪽
43 43. 역쩐재판 - 3 23.04.13 29 3 11쪽
42 42. 역쩐재판 - 2 23.04.12 33 3 11쪽
41 41. 역쩐재판 - 1 23.04.11 38 3 12쪽
40 40. 제발 좀 끝나라 김치 에피소드 - 2 23.04.10 34 3 12쪽
39 39. 제발 좀 끝나라 김치 에피소드 - 1 23.04.09 34 3 12쪽
38 38. 김치 그리고...2 23.04.08 40 3 12쪽
37 37. 김치 그리고...1 23.04.07 36 3 12쪽
36 36. 그 이름은 김치 - 6 23.04.06 44 3 12쪽
35 35. 그 이름은 김치 - 5 23.04.05 39 3 12쪽
34 34. 그 이름은 김치 - 4 23.04.04 39 3 11쪽
33 33. 그 이름은 김치... 속 작은 외전 <중년탐정 현과장의 사건일지> 23.04.03 38 3 12쪽
32 32. 그 이름은 김치 - 3 23.04.02 40 3 12쪽
31 31. 그 이름은 김치 - 2 23.04.01 42 3 12쪽
30 30. 그 이름은 김치 - 1 23.03.31 42 3 12쪽
29 29. 인고의 보약 - 3 23.03.30 39 3 13쪽
28 28. 인고의 보약 - 2 23.03.29 43 3 12쪽
27 27. 인고의 보약 - 1 23.03.28 47 3 11쪽
» 26. 인간체스 특별전 - 3 23.03.27 45 3 12쪽
25 25. 인간체스 특별전 - 2 23.03.26 46 3 12쪽
24 24. 인간체스 특별전 - 1 23.03.25 43 3 12쪽
23 23. 여왕 찾아 삼만리 - 2 23.03.24 41 3 12쪽
22 22. 여왕 찾아 삼만리 - 1 23.03.23 48 3 11쪽
21 21. 붉은색, 그 의미는...3 +2 23.03.22 55 4 11쪽
20 20. 붉은색, 그 의미는...2 +2 23.03.21 67 4 12쪽
19 19. 붉은색, 그 의미는...1 +2 23.03.20 62 4 12쪽
18 18. 아니, 왜 여기인 거야?! - 2 +1 23.03.19 70 4 11쪽
17 17. 아니, 왜 여기인 거야?! - 1 +2 23.03.18 77 4 12쪽
16 16. 차원문4 +2 23.03.17 78 4 12쪽
15 15. 차원문3 +2 23.03.16 80 5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