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병 걸린 공자로 환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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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암(富馣)
작품등록일 :
2023.04.22 14:23
최근연재일 :
2023.08.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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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2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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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회수하지 못한 떡밥 (2)

DUMMY

[그때 제이 파치노는 알지 못했다. 노상에 버려지듯 놓여있던 그 흔한 물건이 후에 자신에게 어떤 힘을 가져다줄지.]


"세상에~ 공자님! 오늘 장날인가 봐요. 물건도 사람도 넘쳐나요. 어디부터 갈까요?! 뭐부터 사야 하죠?"


공작령의 주도 에티오티아.

우리는 지금 그 에티오티아의 중앙 광장에 열린 오일장 속을 걷고 있다.

이자벨라가 상인과 손님, 광대와 먹을거리로 북적이는 시장을 보며 소녀처럼 눈을 반짝인다.


"공자님. 저쪽으로 가봐요. 갓 구운 빵 냄새랑 달콤한 과일 냄새가 나요. 빨리요."


평소보다 활기찬 말투.

방방 뛰는 발걸음.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5년이나 제대로 외출하지 못했을 텐데. 저런 것도 당연한가.”


13살 때부터 방구석 폐인 카일을 모셨을 이자벨라다. 친모의 죽음과 함께 세상과의 단절을 선언한 주인. 그런 주인을 묵묵히 그것도 5년이나 모신 거다. 말은 안 했지만 늘 이런 생활을 꿈꿨을 터.


"공자님. 놓치기 전에 우리도 빨리 합류하는 게 좋겠습니다."


"아이. 깜짝이야."


무거운 중갑을 입고도 소리하나 내지 않고 귀신처럼 내 옆으로 다가온 거구의 중년 사내.


"그···. 이름이 뭐라고 했지?"


"길버트 램파드입니다."


“그래 길버트. 난 괜찮으니까. 이자벨라 옆에 있어 줘.”


"제 임무는 공자님을 지키는 것. 이자벨라가 걱정된다면 공자님이 이자벨라 곁으로 가야 합니다."


길버트 램파드.

공작가가 멸망하기 전까지 수비 사령관으로서 최후의 최후까지 성을 수호한 충신.

죽기 직전 깨달음을 얻고 소드 마스터 경지에 올랐지만, 장렬히 전사하고 만다.

내가 깨어난 날부터 그 충신이 호위를 맡고 있다.

자식을 재물로 쓴 아비가 차마 얼굴은 못 보겠고 속죄는 하고 싶어 만들어낸 제 나름 궁여지책.


"나이는 어떻게 되지?"


"28살입니다."


"어?"


"무슨 문제라도?"


"아니. 훈련이 아주 고된가?"


앞에 숫자가 2가 아니라 3이라고 해도 믿을 비주얼이었지만 나는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

자고로 사람은 생긴 거로 놀리면 안 된다.


"공자님! 와서 이거 드셔보세요! 진짜 맛있어요!"


이자벨라가 양손에 돼지고기 꼬치를 든 채 손을 흔든다.

주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으로 보아 이 몸의 전 주인이었던 카일은 시녀에게 지독한 히스테리를 부리진 않은 모양이었다.

다른 소설들 보면 대부분 망나니거나 개차반이거나 열등감을 남에게 푸는 쓰레기던데 그저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쩌리 히키코모리면 양반인 샘.


"길버트도 하나 먹어."


"전 괜찮습니다."


"명령이라고 해야 먹을래?"


"... 잘 먹겠습니다."


꼬치를 우걱우걱 씹는 와중에도 사주 경계를 놓치지 않는 길버트.

이렇게 철저한 원리원칙에 입각한 행동이 그를 지금의 자리에 올려놓았을 거라 생각했다.


"아휴~ 공자님. 이렇게 흘리면서 먹으면 어떡해요. 증말~"


이자벨라가 품속에서 손수건을 꺼내 내 입 주변을 닦아줬다.


"내가 할 수 있어. 줘."


"가만히 계셔 보세요."


나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이자벨라가 팔을 쭉 뻗어 내 입을 닦아줬다.

이자벨라와 나는 1살 차이지만 신장으로는 180cm와 168cm, 무려 10cm 넘게 차이 났다.


“고마워. 이자벨라.”


“뭘요. 이거 가지고.”


“아니야. 정말 고마워.”


탈모를 늦추는 최고의 방법은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다.

요 며칠 자고 일어나 베개 밑을 확인해보면 머리카락의 이탈 수가 성준오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적다.

이런 이자벨라의 헌신이 없었다면 내 머리칼은 지금의 굵기도, 모량도 유지할 수 없었으리라.

빠진 머리카락을 관찰해본 결과 굵기도 나쁘지 않았다.

자연 이탈인 샘.


"공자님. 이번엔 어디로 갈까요?"


"다 먹었으면 이제 할 일 해야지. 이자벨라는 내가 적은 품목들을 구해와 줘."


"어성초, 박하 잎, 알로에, 검은콩, 맥주 효모. 이것들을 다 어디에 쓰시게요?"


“풍성하고 윤기 넘치며 향기로운 모발을 타고난 너는 영영 이해할 수 없겠지.”


나는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는 그 막막함을 이라는 말을 덧붙이려다 이내 마음속으로 삼켰다.


“무슨 말씀이세요?”


"쓸 곳이 있어. 어성초랑 박하 잎은 공방에서 즙으로 짜 용기에 담아달라 그러고 맥주 효모는 양조장에서 작은 알갱이 형태로 만들어줄 수 있는지 물어봐 줘. 얼마나 살 건지 물어보면 있는 만큼 다 산다 해주고."


"알겠어요. 그럼 갔다 올게요."


이자벨라가 도통 알 수 없는 쇼핑 목록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길을 나선다. 탈모 치료에 필요한 미녹시딜, 피나, 페시아 계열의 약은 모두 합성 약물이다. 현대 의학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탈모약이 이곳에 있을 리 만무. 그렇다면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탈모가 다가오는 시기를 늦춘다.

지금 시작하면 늦지 않는다.


"명령해도 안 따라갈 거지?"


"위급할 때 위치를 알 수 있는 호각을 건넸습니다."


뭐지?

이 거칠지만 섬세한 남자는?


"이제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큰 상점이나 노점 말고 바닥에 물건 깔고 장사하는 사람들은 없나? 그런 쪽도 구경해보고 싶은데."


"안내하겠습니다."


시장 중심가가 가판을 열고 물품을 파는 곳이었다면 외곽으로 갈수록 바닥에 물건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잡상인들이 많아졌다.


"흠···."


"찾는 물품이 있는 겁니까?"


"지팡이. 마법 상점에서 파는 거 말고."


내 말에 세상 물정 모르는 애송이 도련님을 보는 표정이 길버트의 얼굴을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방금 뭔가 되게 불충한 눈으로 본 거 같은데?”


“그럴 리가요.”


“아닌데? 뭔가 엄청나게 하고 싶은 말 있었던 거 같은데?”


“그럼 한 말씀만 올려도 되겠습니까?”


“한 말씀 아니어도 된다.”


“마법 무구라는 것은 이렇게 길바닥에서 동화 몇 닢, 은화 하나 준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거, 내가 매일매일 방구석에만 틀어박혀 산 히키코모리라고 세상 물정도 모른다고 생각하네.


“진짜 이런 길바닥에 있다니까! 내가 소설에서 봤어!”라고 해 봤자 당연히 믿어주지도 들은 척도 하지 않을 걸 알고 있기에 그냥 입 꾹 닫고 내 갈 길 가기로 했다.

지가 어쩔 거야.

갑은 난데.


"얘야."


“어?”


길을 걷던 중, 웅혼한 목소리가 내 발길을 잡아챘다.

귀가 아닌 머리로 직접 전달되는 느낌.


"왜 그러십니까?"


"방금 무슨 소리 못 들었어?"


"못 들었습니다."


"내가 제대로 봤구나. 자르온의 후손아."


건물과 건물 사이 어두운 골목 너머에서 들려오는 웅혼한 목소리.


“저기구나!”


확실하다.

잊혀진 떡밥.

내가 건물과 건물 사이로 몸을 트는 순간


덥석.


길버트가 내 팔목을 강하게 붙잡았다.


“세게 잡지 마. 부러져.”


"저쪽은 안 됩니다."


"왜? 저기 뭐 사람 죽이는 놈들이라도 있나?"


"맞습니다. 저곳은 마을 경비도 쉬쉬하는 질 나쁜 왈패들이 있는 곳입니다. 저런 곳에 공자님이 찾는 지팡이가 있을 리 만무합니다."


즉, 저 안쪽은 무법지대라는 뜻인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나에겐 지급 소드 익스퍼트 단계에 호위가 있는데.


“주인이 가면 호위 기사가 따라와야 하는 게 임무 아닌가?”


“하지만.”


“그만. 주인이 가자는데 호위 기사도 응당 함께 가야 하는 거 아닌가?”


너무나도 맞는 정론에 길버트가 입을 뻐끔거린다.

설득할 수 없으면 설득당해야지.


“그렇다면···.”


"삐익!! 삐익!!!!"


이때 중앙 광장에서 귀를 찌르는 호각 소리가 들려왔다.

이자벨라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빨리! 이자벨라한테 가봐!"


내가 파악한 이자벨라는 정말 곤란한 일이 아니면 호각을 불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호각을 불었다는 건?

지금 정말 위험한 일에 처했다는 소리다.


"함께 가시죠.“


"이럴 시간에 빨리 가는 게 좋을 텐데?“


내가 이 자리에서 움직일 생각이 없다는 걸 파악한 길버트가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고민한다.


"제가 돌아올 때까지 여기 계셔야 합니다. 절대 혼자는 안 됩니다."


"알겠으니까. 빨리 가봐."


길버트가 다시 한번 신신당부한 후 빠르게 시장으로 달려갔다.


"자르온의 후손아. 시간이 없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빨리!"


길버트가 떠나자마자 들리는 다급한 목소리.

꼭 느긋하게 기다리려고 하면 시간이 없단다.


“길버트 미안.”


떡밥이 급하다는데 어떡해.

그리고 난 지금 16살의 철없는 소년.

이 정도는 용서해 줄 거다. 데헷.


***


"아~ 오늘도 공쳤네. 퉤! 돌아가자."


왼쪽 눈가에 문신이 새겨진 사내가 바닥에 돌을 발로 차며 인상을 팍 썼다.


"그러게. 대장. 이런 곳에 사람이 들어 오겠수? 나라도 안 들어오지."


"그럼 어떡해. 저 멍청한 대머리 새끼가 길거리 한복판에서 소매치기하다 사람을 칼로 찔렀는데."


대장 옆에 서 있던 족제비같이 생긴 왈패가 바닥에 물건을 펼쳐놓고 있는 대머리를 노려봤다.


"죄송합니다."


군말 없이 고개 숙여 사과하는 대머리 왈패.


"내일까지 한 푼도 못 벌잖아? 그땐 네 눈알을 연금술사한테 팔아 생활비 충당할 거다. 뭐해! 빨리 짐 안 싸고!"


“안 된다! 또다시 저 더럽고 냄새나는 가랑이에 낑겨야하다니! 그럴 순 없다!”


특색 없는 물건을 질서 없이 펼쳐놓은 보자기 위.

무질서한 물건들 사이, 밑에는 얇고 머리 부분은 뭉툭한 마법사들이 들고 다닐법한 지팡이가 달그락거린다.


"응?"


순간 지팡이가 움찔거린 거 같아 눈을 비비고 다시 한번 바라보는 대머리.


"뭐해?! 빨리 짐 안 싸고!"


하지만 문신남의 질책에


"예! 예! 갑니다."


대머리가 다급하게 짐을 싸며 일어났다.


"자르온의 후손아. 시간이 없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빨리!"


지팡이에 봉인된 검성의 영혼 다리아 카르밀의 마음이 조급해진다. 신성 왕국 헬리온을 건국한 4명의 개국공신. 마법에 자르온가가 있다면 검에서는 검성이라 불리던 다리아 카르밀이 있었다. 허나 그런 그녀도 지금은 한낱 지팡이에 영혼을 위탁한 가녀린 존재로 전락해버렸다.


‘원통하다. 검 하나로 대륙을 발아래 둔 내가. 남자의 가랑이를 두려워하던 신세로 전락하다니.’


태양력 1년.

대륙에 군림하던 마수들을 몰아내고 헬리온을 왕위에 앉힌 다리아는 더 이상 남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해 살기로 한다.


무(武)의 정점.


이미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던 그녀지만 분명 그 앞에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영역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 영역을 목격했다.

하지만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록 다리아는 한 번도 그 영역에 발을 디디지 못했다.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느낌.


"오~ 다리아. 오랜만이네. 자네는 여전히 20대의 꽃다운 외모 그대로구먼.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검을 익힐 것을."


"글라타르. 많이도 늙었군."


“여전히 돌려 말하는 법을 모르는군. 그래서 오늘은 어쩐 일로 나를 불렀는가?”


꽃 한 송이 보이지 않는 허허벌판.

그곳에 지금 다리아와 글라타르 두 사람만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심장에 있는 마나 코어를 중심으로 배꼽 아래 하나, 심장 정 반대편에 하나. 이렇게 3개의 코어를 공명시켜 볼 생각이네."


"그건 너무 위험한 발상이야. 꼭 그렇게까지 해서 소드 마스터를 넘어서야겠나?"


“보지 않았다면 애초에 그리워하는 마음도 없었겠지.”


“도저히 만족하지 못하겠나?”


"아이도 가문도 없는 내가 이제 와 검을 포기하면? 만약 무슨 일 생기면 수습 부탁해."


그게 다리아가 기억하는 마지막 기억이었다.

결국 마나 하트는 공명을 넘어 폭주를 시작했는데 바다보다 거대하고 소용돌이보다 거친 마나를 그녀는 제어하지 못했다.

마나의 폭발로 인근 마을까지 사라질 위기.


“허허. 비전술을 미리 적어놓길 잘했구만.”


글라타르가 점점 팽창하는 다리아의 마나를 마법진으로 감쌌다.

마나와 마나의 대결.

가까스로 마나의 폭발을 무마시킨 뒤 글라타르는 소멸하려던 그녀의 영혼을 자신의 지팡이에 간신히 붙잡아 뒀다.


"나중에라도 내 후손을 만난다면 은혜를 갚아주게."


그렇게 다리아와 마을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고 글라타르가 마나 입자로 산화했다. 그 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길을 가던 행상인에게 주어져 푼돈에 이곳저곳 팔려 다녔다. 그러다 이곳에서 만나게 된 거다. 염원하고 염원하던 글라타르의 후손을.


"뭐해? 빨리 안 따라오고."


"지금 갑니다!"


'안 돼! 얼마 만에 얻은 희망인데. 언제 또 자르온의 후손을 만날지 모른다! 안 돼!'


간절하게 염원하던 탈출이 멀어진다.

또다시 지옥 같은 녀석들의 아지트로 끌려간다.

술만 마시면 자신에게 오줌을 갈기는 문신남이 있는 그 아지트로.

찰나의 희망을 맛보자 그곳이 어제와 달리 더 지옥처럼 느껴졌다.


“어디 있는 것이냐?”


다리아가 울기 직전인 상태로 글라타르 자르온의 후손을 찾은 그때


"잠시만요!"


뒤에서 카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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