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병 걸린 공자로 환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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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암(富馣)
작품등록일 :
2023.04.22 14:23
최근연재일 :
2023.08.12 22:00
연재수 :
1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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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2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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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모자람 없는 인생

DUMMY

뇌에서 시작한 격통이 혈관을 타고 눈, 코, 입, 심장, 발끝까지 전달된다.

격통이 위에서 아래로 하강하고

체온이 위에서 아래로 식어가고

눈꺼풀이 위에서 아래로 감긴다.


‘어라? 무슨 일이 있었지?’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도로에 자빠져있지 않았는데?

머리에서 피가 흐르지도 않았고.

아 맞다.

몇 분 전에 횡단보도로 뛰어들었지?

근데 내가 왜 뛰어들었더라?


***


작가의 말


지금까지 무속성 소드 마스터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은 외전 자르온의 탈모 극복기로 찾아오겠습니다!


무속성 소드 마스터.

연재 200화. 선호 531. 조회 200,178 추천 3516.


"......"


담배꽁초가 시산혈해를 이룬 책상 위.

기대하는 눈빛의 석영과 멍한 눈빛의 준오가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어떠냐?“


"구려"


"장담한다. 지금은 구려 보여도 나중에 트렌드랑 맞물리면 나중에 떡상한다."


"사이코패스가 쓴 글을 누가 읽어."


준오가 불쾌함을 넘어 혐오 어린 시선으로 석영을 노려보며 대답했다.


"사이코패스라니. 말이 너무 심하네."


"샤를 자르온. 성준오 이름 대충 유럽식으로 바꾼 다음 300화 동안 쉬지 않고 탈모 드립을 뱉는데. 이게 사이코패스지 사람이냐? 대한민국 5명 중 1명이 탈모야. 너 그러다 우리한테 맞아 죽어."


무속성 소드 마스터.

말 그대로 무속성을 가진 소드 마스터가 마왕을 토벌하는 얘기다.

샤를 자르온은 용사 곁을 따르는 탈모 걸린 마법산데 석영이 준오를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였다.

물론 성격이나 특징이 아닌 오직 ‘탈모’하나만 모티브로 했다는 게 문제일 뿐.


"내가 그때 왜 허락해서."


석영이 처음 자신을 모티브로 캐릭터를 만든다 했을 때 준오는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의리 있고, 선량하며 악을 위해서라면 그 적이 얼마나 강하고 거대하든 당당히 맞서는 정의로운 인물.


‘그 잠깐 사이에 머리카락 한 올 더 빠진 거 같은데. 내가 또 너무 스트레스 줬나?’


준오의 반응을 보자 석영은 일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준오는 유료화로 독자가 떨어져 나갔음에도 이탈하지 않고 결제해준 몇 안 되는 독자였다.

그런 친구를 작품에 빗대 너무 놀렸다는 걸 직접 만나 반응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하지만 그 미안함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미안해. 그래서 내가 모발이식 비용 보태주잖아. 몇 시 예약이냐?"

"3시 반."

"압구정이면 지금 나가야겠네."


석영이 그래도 양심은 있는 사람이다.

오늘은 준오의 모발이식 날짜를 예약하러 가는 날.


***


"그냥 너만 갔다 오면 안 되냐? 난 그냥 카페에서 대기하고 있을게."


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뿜어져 나오는 묘한 분위기가 석영을 압도한다.

복잡한 감정이 얽히고설킨 공간.

환자들의 눈이 빠르게 움직인다.

자신과 타인의 모량을 비교하는, 그러면서도 서로를 응원하는 기이한 분위기가 대기실을 채우고 있었다.


"짤랑."


문이 열리자 센터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입구로 쏠린다.


"아이고."


무심코 나와버린 탄식과


"예약하셨나요?"


‘오늘은 상담만 받으러 오셨나요?’라는 단계를 건너뛴 압도적 존재감.


"네. 성준오입니다."


"1번 상담실로 가실게요."


실장의 뒤를 따라가는 준오.

석영은 그 찰나의 순간 환자들을 보며 느꼈다.


‘늦기 전에 와서 다행이다.’

‘돈이 얼마가 들던 이식 하자.’

‘힘내세요.’


환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뱉지 않았지만, 표정까진 숨길 수 없었다.


"......"


준오를 바라보는 원장의 표정이 좋지 않다.

그만큼 심각한 상태.

흔히 두피를 대지 혹은 토양, 모발을 싹에 비유하곤 한다.

지금 준오의 상태는


"환자분 두피가 가뭄인 건 아시죠? 그것도 몇 년 동안 지속된 심각한 가뭄이야. 토양에 수분이 없는데 싹이 자랄 수 있겠어요?"


아마존 숲을 개간하는 인간의 이기심이 준오의 머리에 존재했다.

흔한 말로 많이 벗겨진 상태.

듬성듬성 힘없이 자란 모발들이 정수리와 이마의 경계를 힘겹게 알려주고 있었다.


"약은?"


"먹고 있습니다."


"술 담배는 안 하죠?"


"직장생활 하다 보면 쉽지 않죠."


"담배는 정말 끊으셔야 하는데."


질문에 대답하면 대답할수록 의사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점점 무겁게 가라앉는 상담실 분위기.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에도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희망이다.

의사가 차트의 생년월일 부분을 동그라미 치며 애써 밝은 목소리로 상담을 이어간다.


"환자분 그래도 올해 서른다섯이네요.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젊잖아요. 고개 숙여 보세요."


모발이식의 기본 메커니즘은 뒷머리를 뽑아다 앞머리에 옮겨 심는 것이다.

절개, 비절개의 차이가 있지만 중요한 건 죽은 땅에 살아있는 풀을 옮겨 심는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옮겨 심은 풀은 신기하게도 죽지 않고 오래오래 생존한다.

생착이 잘 된다는 전제하에.


"......"


준오의 뒷머리를 점검하는 의사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빗으로 빗어도 보고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기도 하고 모발을 손으로 쓸어보기도 한다.

그렇게 쓸기만 했을 뿐인데도 머리카락 몇 올이 의사의 손에 딸려 나온다.

진찰은 그게 끝이었다.


***


"위험하오니 다음 신호에 건너주세요."


횡단보도 앞, 신호가 다섯 번이 바뀌도록 준오는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석영은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가슴 찢어지듯 아파하는 준오의 모습이 표정에 다 드러났기 때문이다.


‘내가 건네는 위로는 기만이다. 그냥 기다려주자.’


석영이 준오를 안지 30년이다.

중학교 때도 머리숱이 없긴 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남들보다 조금 없는 정도였다.

하지만 31살의 나이에 어렵게 학원 사감으로 취직한 준오는 성격에 맞지 않는 업무와 인간관계에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를 폭음과 줄담배로 풀었다.


"나 꿈이 뭐였는지 알아?"


풀린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던 준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뭔데?"


"바가지 머리."


"......"


"너같이 풍성한 놈은 시간이 지나면 머리카락이 자연스럽게 이마를 다 덮잖아. 난 아니야. 머리 빠지기 전에도 남들 다하는 바가지 머리 한번 해보지 못했다고."


어떤 말을 꺼내야 할까?

석영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경청했다.

지금은 그저 준오의 마음속 울분을 온전히 받아주겠다는 마음으로.


"남들보다 1.5배는 머리를 더 기른 다음 옆으로 쓸어 가리는 게 최선이었어. 근데 그거 알아? 그래도 다 가리지 못했어. 스케일링한 이빨처럼 군데군데 틈이 보였다고."


부모 없이 보육원에서 자라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준오였다.


‘괜찮아. 어차피 이식할 거니까. 반띵 확실한 거지?’


석영이 놀려도 애써 웃던 놈이다.

하지만 지금 준오는 마지막으로 잡고 있던 희망마저 무너진 것이다.


‘나 이식하면 파마도 할 거다. 아! 염색 먼저 할까?’


눈앞에서 희망을 잃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석영에게 당연한 것이 준오에게는 간절히 소망하는 무엇이었다.


‘어떡하지? 다른 병원 찾아볼까? 그래! 다른 병원은 가능할지도 모르잖아! 아니 미친 뒷머리 상태가 안 좋다고 이식을 못 하는 게 말이 돼? 분명 저 의사가 돌팔이인 거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고민이었다.


“준오야! 다른 병원···.”


고민이 끝나고 석영이 옆을 봤을 때, 준오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끼익! 쾅!


"꺅!“


"어머! 어떡해!"


"거기! 친구분! 119 불러주세요. 빨리요!"


눈 깜빡한 사이에 석영의 눈앞에 참극이 벌어졌다.

4살 또래 여자아이를 품에 꼭 안은 채 차에 치여 쓰러진 준오.

그게 석영이 기억하는 준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


시야가 점점 붉어진다.

아무래도 보닛에 머리를 정통으로 부딪친 거 같은데.

아이는 살아있나?

점점 흐려지는 의식 사이로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넌 살았구나! 그거면 된 거지.


"피곤하네."


의식이 어둠 속 깊은 심해로 점점 침잠해간다.


죽는 거구나.


다음 생은 이번 생보다 풍성한 삶이길.


그게 내가 성준오로서 바라는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이었다.


"모자람 없는 인생이었다."


그렇게 내 마지막 한 가닥 의식마저 툭 끊기는 소리와 함께 나는 눈을 감았다.


"ㄱ..ㅗ...ㅇ ... ㅈ..ㅏ... ㄴㅣㅁ....."


흐릿한 의식 속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공자님! 공자님!!"


심해로 침잠하던 의식이 누군가 끌어올린 듯 빠르게 상승했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에 힘을 주자 서서히 떠지는 눈.

중세 유럽풍의 응급실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공자님! 저 보이세요? 공자님!"


VIP 병동인가?

드라마랑 많이 다르네.

옆에 간호사는 혼혈인가?

검은 눈에 검은 머리긴 한데 얼굴이 서구형이네.

그래도 아름다우십니다.


"여긴 어디 대학병원입니까?"


"깨어나셨다! 공자님 잠시만요! 의사를 불러올게요."


중세 시녀 복장을 한 간호사가 급하게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뭔 컨셉의 병원이야? 아니 애초에 이런 컨셉의 병원이 있나?"


진짜 돈만 있으면 별 지랄을 다 하는구나.

아니 어떤 정신 나간 이사장이 병원을 중세 시대 인테리어로 꾸며.

저 미인 간호사를 보면 몹시 진지한 거 같은데.

몰입 잘하네.


"산 게 신기하네. 여기였나?"


손을 들어 보닛에 부딪힌 이마 부분을 만져봤다.

이상하리만치 부드러운 이마.

뭐야?

피부가 왜 이렇게 매끈하지?


"어?"


습관적으로 이마를 쓰다듬던 손이 멈춘다.

평소였다면 매끄럽게 넘어가야 할 구간이 무언가에 막혔다.

빽빽한, 그러면서도 억센 무언가.


이게 뭔 상황이야?


아무리 손으로 쓸어봐도 없어야 할 장소에 머리카락이 있었다.


"아~~"


내가 생각해도 그 사고는 죽기 어려운 사고였다.

신은 나의 선한 마음에 감동했고 내 염원을 이뤄주신 거다.

풍성하게 하루하루를 살고 싶은 나의 염원을.


"피부가 유난히 하얗네. 난 그냥 내 모습에 머리만 빽빽하게 만들어줘도 괜찮았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을 바라보니 갈색 머리칼과 눈썹, 검은 눈을 가진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를 가진 미남 귀공자가 서 있었다.


"아예 모습이 바뀌었네."


"카일 공자님! 의사를 모셔 왔어요."


아니 천국인데 의사는 왜 필요해?

역시 단테의 신곡에서 묘사한 천국과 실제 천국은 다르구나.


"몸은 괜찮으세요? 갑자기 발작하고 쓰러지셔서 제가 얼마나 놀랐는데요! 어휴 정말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세차게 뛰어서!"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녀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 손을 잡는다.


"저기···."


"말씀하세요. 공자님."


"여긴 어딥니까?"


"갑자기 웬 존댓말이에요. 아직 정신이 온전치 못 한 거죠? 저는 기억하세요? 제 이름이 뭐예요?"


내가 아무 말 없이 소녀를 바라보자 소녀의 얼굴에 재차 그늘이 드리워진다.


"이자벨라 브라운이잖아요. 공자님을 모신 지 벌써 5년인데!"


"어... 이자벨라..씨? 그럼 여긴 어딥니까?"


"진짜 이럴 거예요? 이자벨라씨라뇨. 말 편히 하세요. 여긴 공작성이잖아요. 이곳은 공자님이 지내는 방이고."


아니 난 그냥 현대판 천국이면 되는데 공자니, 성은 또 뭐야?

이거 다시 설정 못하나?


"저. 그러면 제 이름은 어떻게 됩니까?"


계속 장난치면 화낼 거라던 이자벨라가 장난이 아님을 알자 침을 꿀꺽 삼키고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입을 열었다.


"공자님의 이름은 카일 자르온. 올해 16살로, 아버님 샤를 자르온 공작님의 3남이에요. 정말 기억 안 나세요?"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인한 일시적인 기억 장애일 수 있습니다.“


내 눈을 요리조리 살피던 의사가 이자벨라를 붙잡고 이것저것 설명해주고 있을 문득 기시감이 느껴졌다.

잠깐.

샤를 자르온? 어디서 들어봤는데. 자르온.. 자르온... 어?!


"공자님! 그렇게 갑자기 일어나시면 안 돼요! 어디 가세요?!"


"에이~ 아니지? 장난치지 말아요. 진짜로!"


방에서 나와 복도를 달리며 들을지 안 들을지 모르는 신을 향해 간절히 외쳤다.

샤를 자르온이라니.

마법 쓸 때마다 머리가 빠지는 정신 나간 설정의 마법사가 아버지라니!


"헉... 헉.... 헉..... 진짜야?"


복도 끝.

그곳에 머리가 벗겨지다 못해 반도 안 남은,

그럼에도 뭐가 그리 좋은지 환하게 웃고 있는 샤를 자르온의 초상화가 보였다.


"이거 꿈 아니지?“


찰싹.


뺨을 있는 힘껏 때렸는데 아프다.


”아니네.“


아무래도 석영이가 자주 써먹던 빌어먹을 빙의라는 것을 당한 것 같다.

그것도 탈모 유전자를 가진 공자의 육체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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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병 걸린 공자로 환생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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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에필로그 +1 23.08.12 231 5 14쪽
122 돌아가자 23.08.11 215 4 12쪽
121 절공(切空) 23.08.10 211 4 12쪽
120 각자의 역할 (6) 23.08.09 189 4 12쪽
119 각자의 역할 (5) 23.08.08 186 4 11쪽
118 각자의 역할 (4) 23.08.07 192 4 12쪽
117 각자의 역할 (3) 23.08.06 195 5 13쪽
116 각자의 역할 (2) 23.08.05 195 5 13쪽
115 각자의 역할 (1) 23.08.04 194 4 12쪽
114 돌격 23.08.03 198 4 12쪽
113 약속 23.08.02 203 5 13쪽
112 스승과 제자 (5) 23.08.01 204 4 12쪽
111 스승과 제자 (4) 23.07.31 204 4 12쪽
110 스승과 제자 (3) 23.07.30 199 4 12쪽
109 스승과 제자 (2) 23.07.29 193 4 12쪽
108 스승과 제자 (1) 23.07.28 202 4 13쪽
107 영웅 (4) 23.07.27 204 4 13쪽
106 영웅 (3) 23.07.26 200 4 12쪽
105 영웅 (2) 23.07.25 207 4 13쪽
104 영웅 (1) 23.07.24 212 4 12쪽
103 시험 (4) 23.07.23 204 4 13쪽
102 시험 (3) 23.07.22 199 4 12쪽
101 시험 (2) 23.07.21 205 4 12쪽
100 시험 (1) 23.07.20 216 4 13쪽
99 너라는 변수가 (4) 23.07.19 223 3 13쪽
98 너라는 변수가 (3) 23.07.18 217 4 12쪽
97 너라는 변수가 (2) 23.07.17 220 3 12쪽
96 너라는 변수가 (1) 23.07.16 225 3 12쪽
95 모래성 23.07.15 235 3 13쪽
94 내 집 마련 (4) 23.07.14 232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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