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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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핥기
작품등록일 :
2023.05.02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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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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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0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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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귀환 (7)

DUMMY

쿠과과과광!

성벽 아래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어찌나 컸는지 그 여파로 성벽 위에 있던 이들까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질 정도였다.

더불어 뒤이은 후폭풍 덕분에 그 모습을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이곳에서도 보던 우리들까지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려야 했다.

하지만, 이내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

그럴 수밖에.

뻥 뚫린 성벽.

그 안으로 밀고 들어오려던 적들이 엄청난 타격을 입고 후퇴하기 시작했으니까.

“후우! 레온이 성공했군요!”

누군가 말했고.

난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붉은 갑주를 걸치고, 얼굴까지 깊게 눌러쓴 투구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마리안.’

제국의 황녀.

그럼에도 꽃보다 검을 먼저 들어야 했고, 연회장보단 전장에서 보낸 시간이 월등히 많은 여자였다.

한마디로 타고난 전사랄까.

“유리가 이 모습을 보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 옆에서 중얼거리는 남자.

그레일.

대륙 남부 출신의 용병으로 창술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투사였다.

그 실력이 어찌나 출중한지 적은 물론이고 아군들조차 그와 일대일로 맞서는 건 악몽이라고 할 정도였다.

어찌 되었든···.

그 순간 알아차렸다.

‘꿈속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레일이 아주 오래전 죽어서 대지의 품으로 돌아갔으니까.

하긴.

그렇게 생각하면 마리안도 마찬가지겠지.

아니, 이번 공격을 성공시킨 사상 최강의 궁사 레온 역시 같았다.

마력을 화살에 머금고 적들에게 투사하는 게 특이였던 그였지만, 안타깝게도 동료들 중 비교적 일찍 죽어버린 그였으니까.

어찌 되었든···.

이들이 모두 살아 있다는 건?

‘초반인가?’

내가 이계로 넘어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나기 시작한 마병들.

그들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시작한 직후가 아닌가 싶은데.

스윽.

하고 돌아본 전장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

성벽은 성한 곳이 없었고, 헤아릴 수도 없는 사람들이 죽어 나간 채 나뒹굴고 있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적들을 확인 사살하고, 또 시체를 치우느라 여념이 없었고.

어찌 되었든 적들이 퇴각했으니 성공적인 방어전이었던 셈인데.

‘그럼 뭘 하나?’

안타까움에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고 있을 때였다.

“지누? 왜 그래요? 어디 다치기라도 했어요?”

제국의 황녀가 물어오길래 난 이내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차피 꿈속.

여기서 그들이 앞으로 마주하게 될 미래를 말해준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승전고를 울리며 기뻐하고 이들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도 않았다.

“아니.”

다시금 고개를 내젓곤.

“그냥. 좋아서. 이겼잖아.”

“지누도 참. 놀랐잖아.”

투구를 벗으며, 흡사 불꽃이 피어오르는 듯한 색깔의 긴 머리칼을 휘날리는 마리안을 보며 억지로 웃어 보이려던 찰나였다.


번쩍!


성 위로 펼쳐져 있는 하늘에서 번개가 쳤다.


꾸르르르릉!


뒤이어 천둥이 치자, 다들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아니고.

해가 버젓이 떠 있는데, 번개가 친다고?

하지만, 난 아니었다.

‘어째서?’

다른 의미로 이해할 수 없는 심정이 되고 말았다.

‘···초반 아니었던가?’

살아남은 자들의 면면을 봐서는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인데?

다시 말해서 아직은···.


꾸르르르르릉!


다시 한번 천둥이 울리자, 다들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하늘은 여전히 맑고 푸르기만 하다.

그리고···.


번-쩍!


세 번째 번개가 칠 때, 나는 소리쳤다.

“다, 다들 피해!”


콰쾅!


하지만, 그땐 이미 번개가 성벽 위를 직격한 뒤였다.

“끄아아아악!”

“사, 살려···.”

“카-렌!”

“으아아아악! 내 다리! 내 다리!”

성벽이 무너지며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비명이 난무했고, 번개 한 번에 쓸려나간 이들이 죽음의 공포와 온몸을 난도질하는 듯한 고통에 울부짖는다.

그걸 보면서 덜덜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이거···. 대체 무슨 뜻인 거지?’

적어도 십 년 후에야 벌어질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때였다.

턱.

누군가 내 어깨를 짚는 게 느껴졌다.

휙!

화들짝 놀랐다가 이내 재빨리 돌아보자···.

“마, 마리안?”

바로 등 뒤에 마리안이 서 있었다.

그것도 머리에서부터 시작된 피를 얼굴 가득 흘리면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왼쪽 눈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붉은 검상.

그 덕분에 유난히도 아름다웠던 푸른 눈동자는 핏물로 붉게 물들어버렸지만.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저 모습은···.

그녀가 죽기 직전에 입은 상처였으니까.

놀란 내가 말을 채 잇지 못하고 더듬거리고 있을 때, 그녀가 서글픈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누.”

“······?”

뭔가 중요한 말을 하려는 듯한 모습.

그래서 더는 말하지 않고 기다렸지만.


“이제 돌아갈 시간이야.”


어?

갑자기?

기다렸던 말과는 너무 뜻밖인 얘기.

이해할 수 없는 전개에 놀라서 눈을 크게 치켜뜨는 순간이었다.

눈앞이 확 일그러지며, 어지러워졌다.

휘청.

나도 모르게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비틀거리는 찰나.

팟!

하며 눈앞의 빛이 꺼지며 사방이 어두워졌다.

그걸로 끝이었다.



***



조용히 눈을 떴다.

“후욱···후욱······.”

안면을 뒤덮다시피 한 마스크.

가쁜 숨이 흘러나왔다.

답답한 마음에 산소마스크를 벗기 위해서 손을 들어 올렸는데···.

“큿!”

일순간 팔이 부러지는듯한 통증.

이 정도면 근육이 파열된 수준이 아닌데?

후우···.

이럴 거라고 생각은 했다마는.

인상을 살짝 쓰며 다시금 손을 움직였다.

파팟!

바늘이 빠지면서 팔뚝에 매달려 있던 링거 줄이 떨어져 나가 튀어 올랐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손을 뻗어 마스크부터 벗겼다.

“후아!”

누워 있는 곳이 갇힌 공간인지 거짓말로라도 상쾌하다곤 말할 수 없었지만, 마스크를 벗는 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훅···.”

숨을 깊게 들이마시곤 상체를 세우려 했다.

“······!”

뭐지?

묶여 있는 건가?

시선을 돌려 내 몸을 살폈다.

피식.

묶인 건 아닌데, 이불이 목까지 덮여 있다.

실소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불이 무거우면 또 얼마나 무겁다고.

겨우 이 정도로 몸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졌나 싶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누군지 몰라도 꽤나 신경 써준 느낌이랄까.

가족들이라도 다녀간 걸까?

불현듯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자,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젠장.

또 어머니 가슴에 대못을 박은 건가.

“쯧.”

이래서 싸움 따윈 안 하려고 했건만.

억지로 몸을 일으켜 상체를 세우곤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1인용 병실.

어떻게 봐도 호화롭다곤 말 못 해도, 상당히 깔끔하고 세련된 방이었다.

그렇다는 건···.

병원인가?

뭐, 먼지 풀풀 날리는 막사가 아닌 것만 해도 어딘가.

저쪽 세상에선 막사 안에서···. 심지어는 들판 한가운데서 깨어나는 것도 다반사였으니까.

피식하고 웃고는 시선을 돌려 창 쪽을 바라보았다.

커튼이 처진 모습.

이래서야 지금 시각이 밤인지 낮인지 알 길이 없다.

뭐, 상관없나.

지금 내 상태는 무조건 쉬어야 하는 상황이니까.

마력 탈진이겠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내 몸은 내가 잘 안다.

수십 번 겪은 일이니까.

마나 통로. 즉 마혈이 타통된 게 아니라면 억지로 유도한 마나의 흐름은 무조건 몸에 타격을 주게 된다.

그리고 마혈은 각성해야만 가질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난 지금 매우 심각한 상태라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

각성하지도 않은 주제에 마력을 훔쳐 썼으니까.

물론 안다.

이조차도 축복이라면 축복임을.

저쪽 세상에서 늘 붙어 다녔던 동료 중의 한 명. 신관이자 치료사였던 아리스의 말에 따르면, 내 체질은 1억 명에 한 명이 있을까 말까 하다고 했던가.

그렇다.

유도제 혹은 트리거라고 하는 것도 아무나 쓸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 아무나가 아닌 게 바로 나라는 존재였고.

그건 그렇고···.

몸속에 깃들었던 마나는 싸움 끝에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을 테고.

마나가 한번 혈관 속을 채웠다가 빠져나간 후, 지금 내 몸은 속이 없는 인형 같은 꼴이 됐다는 건데···.

“끙.”

신음이 절로 나온다.

아파서가 아니라···.

앞으로 또 며칠을 이렇게 꼼짝 말고 누워 있어야 할지 몰라서.

물론 이것도···.

살아있으니 가질 수 있는 감상이겠지.

생각이 여기까지 이어졌다가 이내 한쪽 눈을 찡그렸다.

“마리안···.”

방금 꾼 꿈 때문이었다.

이쪽으로 돌아왔는데도 그런 악몽 아닌 악몽을 꾼 건 왜일까?

그것도 하필이면···.

더없이 맑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던 벼락을 떠올리자, 몸이 다 떨려온다.

악몽과 같던 나날들의 시작이었다.

그전까지는 이대로 계속해서 싸워서 이겨나가다 보면 끝내는 이길 수 있으리란 희망이 있었지만,

그날···. 후에 다운헬이라고 불리게 될 날에 떨어진 벼락 한방에 모든 건 끝나버렸다.

물론 그 벼락이 직접적인 타격을 입힌 건 아니지만···.

확실한 건, 벼락이 떨어진 곳에 생겨난 차원의 틈에서 놈들이 튀어나온 뒤 간신히 유지되던 전황은 한순간에 뒤집혔다는 거다.

“후우···.”

그저 꿈일는지도 모르지만.

어째 예사롭지 않달까.

눈을 내리깔곤 옆쪽에 놓인 협탁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눈에 띈 핸드폰.

이렇다 할 의도 없이 뻗친 손 끌에 핸드폰을 끌어와 눈앞에 대령했다.

누군가 충전해 두기라도 한 걸까.

배터리가 풀로 차 있다.

띡.

전원 버튼을 누르고.

몇 초 후에 켜진 핸드폰에서 미친 듯이 알림음이 울리며, 부재중 전화 표시와 메시지들이 연거푸 숫자를 늘려나가고 있을 때였다.

달칵···하며 문이 열리고.

간호사 한 명이 들어서려다가 날 발견하곤 눈을 깜빡인다.

그것도 잠시.

“아!”

의미를 알 수 없는 한마디를 내뱉더니 그대로 돌아서 방을 빠져나갔다.

아니, 뛰쳐나갔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다가 픽하고 웃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뒤.

다다다다다다닷!

수많은 이들이 달려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중에서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앞서서 뛰는 이는 다름 아닌 유미진이었다.

콰당!

어찌나 세게 밀었는지 문이 벌컥 젖혀지며 벽을 때리고.

뛰어든 유미진이 날 보자마자, 멈칫하더니···.

“지, 진우야!”

울먹이는 그녀.

나참, 병원인 줄 알았더니.

아무래도 잘못 짚은 모양이다.

간호사가 서둘러서 빠져나가길래 당연히 의사를 데려오나 했는데.

유미진이 왔다?

그것도 마치 대기하고 있었다는 듯이?

회사에 딸린 연구소인 모양.

그게 아니라면, 그녀가 병원에 상주하고 있었을 리 만무하니 달리 설명이 되질···.

와락!

잠깐 동안 멈춰 서 있던 유미진이 내게 달려들어 끌어안는 바람에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흑흑···.”

그러곤 울어버리니, 뭘 어쩌겠나.

나는 엉겁결에 들어 올린 두 팔을 어찌해야 하나 망설이다가 가만히 그녀의 등에 올렸다.

그러곤 가볍게 그녀를 안고서 토닥거렸다.

그런 내 품 안에서 그녀는 계속해서 흐느끼고 있었고.

그때였다.


번-쩍!


창 쪽에서 느껴지는 새하얀 빛.

뒤이어서···.


쿠르르르릉!


천둥소리가 들리자, 나도 모르게 눈이 홉떠졌다.

서, 설마?

동시에 입술이 벌어지며 튀어나왔다.

“창! 창문 좀 열어봐요!”

정확히는 커튼만 치길 원했지만,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온 말이었다.

내가 한 말을 알아듣지 못했는지, 뒤늦게 도착해서 유미진과 날 번갈아 바라보고 있던 의료진들 중 간호사 한 명이 의사로 보이는 남자를 쳐다보자···.

의사가 고개를 끄덕여주고.

간호사가 얼른 창가 움직여서 커튼을 여는 순간이었다.

“······!”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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