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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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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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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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무학

DUMMY

※※※



하루가 흘렀다. 비무제전의 예선 이틀차는 어두운 밤이 되어서야 끝났다. 첫날과 마찬가지로 밤을 물들이는 화려한 불꽃을 배경으로였다.


“무슨 축기량이......?”

“곤륜파 내에서도 독보적인 듯 싶소만.”

“내가기공 위주로 연마했나.”

“그렇다기엔 몸의 균형이나 근육이 탄탄한데.”

“구파와 오대세가의 자제들에 필적하는 축기량이다. 세월 이상의 양이 깃들어 있어.”

“게다가 곤륜의 무인이 권장법을 장기로 삼는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보오.”


무연봉 위에서 흩어지는 이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시끄러웠다. 터벅터벅 걸어 내려가는 백연의 귓가에도 선명히 틀어박히는 소리였다. 그러나 당장 백연의 신경을 파고 드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봤어? 봤지?”


굉장히 뿌듯한 표정으로 얼굴을 들이미는 선아의 적갈색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방금 전까지 화염을 휘감고 있던 그녀의 몸에서 열기가 흩어져 나오는 듯 했다.


방금 전 예선 이틀차의 마지막 경기를 압도적인 승리로 마무리하고 온 선아였다. 놀랍게도 그녀는 검을 꺼내들지조차 않았다. 낙안권 초식의 형(形)에 적양공 기파를 뒤집어 씌워 싸웠던 것이다.


화려한 불꽃을 나선 경파로 휘감고 뛰어드는 박투술은 백연의 눈에도 훌륭했다. 권격 하나 하나에 터져나오는 엄청난 양의 불꽃 기파는 더욱 놀라웠고.


“잘했어. 엄청나던데.”


본디부터 축기량 하나만큼은 백연보다 뛰어나던 선아였다. 화기를 다루는 감응도도 확실히 섬세했다. 불꽃을 손아귀에 휘어잡아 다루는 것이 평소 항상 하던 야장 일과 다를바가 없을테니까.


“정말?”

“응. 아무래도 권장법을 더 엮어내야 할지도 모르겠네. 너한테는 검법보다는 그쪽이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낙안권 이후로도 이어나가 보는것도......”

“괜찮아. 나도 상대가 더 강했으면 검을 썼을거고. 굳이 권장법을 만들 필요까진 없지 않으려나.”

“적양공 기반의 박투술 하나 있는것도 좋으니까. 적양수(赤陽手) 정도로 생각해볼까 하는거야.”


백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피치 못하게 검 없이 싸워야 하는 상황은 가끔 있으니까. 그런 때를 위한 무공이 있는것도 괜찮다. 낙안권도 좋으나 처음부터 적양공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


구결 운용에 손해를 보는 부분이 존재한다. 손대보는 것도 좋을 일이지.


그의 말에 선아가 미소를 지었다.


“상냥해.”

“응?”

“아무것도 아니야. 그나저나 우리 그럼 전승인가?”


선아가 생글거리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마지막날 상대를 압도하며 몰아붙인 무진과 선아의 경기로 곤륜파 무인들은 모두 첫 경기를 승리로 끝낸 것이었다.


백자 배 열과, 청자 배의 청율을 합치면 도합 십일연승.


“나름의 업적이네요.”


청율이 말했다. 앞서 걷는 그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깃들어 있었다.


“비무제전 예선에서 한 문파의 십일연승이라는 기록은 들어본 적이 없어요.”


인상적인 일이라는 소리다. 모두의 뇌리에 선명히 각인되었을 정도로.


당장 오늘 밤부터 주루의 곳곳에서 떠돌 이야기였다. 운현으로 내려간 사람들의 입을 타고 파도처럼 퍼지고 있겠지.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백연은 조금 달리 생각하고 있었다.


“연승은 머리에 담아놓지 마.”


사형들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그의 말에 의문의 눈초리들이 쏟아졌다.


“왜 그러냐? 전승으로 본선 진출. 길이길이 남을텐데.”

“기록에 집착한다고 이기는건 아니니까. 우리가 첫 경기를 전승으로 마무리한건 맞으나, 그걸 목표로 삼으면 안돼.”


강한 이들은 많다. 백연은 사형들의 실력을 믿었으나, 그럼에도 뛰어난 기재들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혹시 지는 사람이 나올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아니, 아마 나올 것이었다. 당장 오늘도 이결과 연비는 아슬아슬하게 승리했다. 상대가 조금만 더 침착했어도 패배를 거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야. 지면 더 열심히 수련하면 그만이니까. 반드시 이겨야 하는건 목숨을 건 실전뿐이야. 외려 질거라면 이런 곳에서 지는게 낫지.”

“사제야, 걱정이 많다.”


무진이 씩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쓸었다.


“네가 말 안해도 그 정도는 다들 알아. 우리가 뭐라고 백날천날 이긴다고 자만하겠냐.”

“무진 사형은 전승해야지. 못하면 죽어.”

“너무한거 아니냐?”


반발하는 무진의 모습에 백연이 픽 웃었다.


“아무튼 그렇다고.”


사형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저들도 알고 있을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백연은 구태여 한번 더 꺼내들었다. 패배의 낙심은 사형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클 수 있기에.


‘사람들의 관심도 마찬가지다.’


그가 이런 관심을 기대한 것은 맞다. 그러나 사형들 개개인에게는 짐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지. 이제 내일부터는 모두가 곤륜파의 승리만을 머리에 담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이미 이틀 연속 너무나도 기대를 넘어서는 모습만을 보여준 까닭이었다.


사람들은 한번 기대를 뛰어넘으면 계속 그 이상을 원한다.


그에 부응하기란 어려운 법. 끝없는 상승세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백연은 잘 알았다. 그것이 사형들의 마음에 큰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이만 오늘은 다들 푹 쉬고. 내일은 이틀 연속으로 경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을테니까. 몸이 굳지 않게 조심해.”

“알았다.”

“백연도, 쉬어.”

“자기 전에 잠깐 내 무공좀 봐주면 안될까? 따로 물어보고 싶은게......”


무진과 소홍, 선아가 제각기 말을 거들었다. 사형들의 걸음이 가벼웠다. 어둑해진 밤하늘 아래 청율의 맑은 웃음 소리가 뒤따랐다.


더할 나위가 없었다. 그때까지는.


하지만 결국 다음날.


백연이 우려하던 일이 찾아오고 말았다.



※※※



경기장을 진동시키는 울림이 퍼졌다. 무당검선은 축기량이 끝이 없는 듯 했다. 비무제전 예선 내내 지치지도 않고 육합전성을 펼치는 것이.


[곤륜파 연비 대 공손세가 공손월의 대진은, 공손월의 승리임을......]


와아아아-!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그것을 귀에 담으며 백연은 가만히 턱을 괴었다. 그의 앞에 앉은 사형들의 등에 옅은 침묵이 감돌았다.


곤륜파의 첫 패배였다. 자연히 끝도없이 올라가던 사형들의 분위기도 가라앉을 수 밖에 없었다.


반면 사람들에게는 또다른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요소겠지. 곤륜파의 검이 처음으로 꺾인 순간이니까.


‘연비 사저는 괜찮으려나.’


시종일관 밀렸다. 중간에 자령안을 사용하고 날카로운 살검을 펼쳐 몇차례 위협적인 반격이 들어가긴 했으나, 공손세가의 기재는 그것에 쉬이 당해줄 만큼 녹록한 상대가 아니었다.


‘예린에게 꽤나 버텼었다고.’


뇌룡을 상대로 선전한 이라 하면, 단연코 그만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 연비가 지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도 그리 받아들여지냐는 다른 문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비가 머리를 축 늘어뜨린채로 걸어 돌아왔다. 이리저리 찢겨나간 무복에는 옅은 핏물마저 배어있었다.


“......미안.”

“고생했어.”

“이겼어야 했는데. 중간에 전진 보법만 밟았어도 기회가......”

“연비야.”


스윽.


가볍게 일어난 연청이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그래도 피붙이라고 위로해주려는 건가. 백연이 그리 생각하고 있을 무렵.


“오라버니?”

“그래. 패배했으면 거기 앉아서 이 오라버니가 전승하는거나 보고 있으렴.”


입꼬리를 끌어올린 연청이 유들유들 웃었다. 그에 순식간에 표정을 구긴 연비가 씩씩대기 시작했다.


“진짜, 이 인간이 입은......”

“오라비한테 인간이 뭐니, 인간이.”

“지기만 해봐!”


탁 풀린 연비의 분위기에 백연이 옅은 한숨을 흘렸다.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문파의 첫 패배의 충격,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라는 것은 어려운 일일 터인데.


‘사람들의 평은 아무래도 좋아.’


이미 목표는 초과 달성했다. 장문인은 지금 이 순간도 경기를 보지 못하고 열심히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을 터였고, 한번의 패배가 그간 곤륜파가 보여준 모습을 빛바래게 만들지는 못한다.


이제부터는 본선에서의 성적, 그리고 백연 자신이 어디까지 가는지가 중요하겠지.


그러나 각자의 패배는 각자가 오롯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연비는 연청의 도움으로 다행히 금방 기운을 차린듯 보였으나.


‘이게 끝이 아니겠지.’


소년의 짐작이었다. 일승을 거둔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일승을 한 사람들과 붙는다. 첫 경기보다 강한 상대를 만날 가능성이 높았다. 패배하는 것은 연비가 마지막이 아닐수도 있다.


그리고 정확히 두 시진 뒤.


“저버렸네. 하하.”


이결이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돌아왔다. 곤륜파의 두번째 패배였다.


처음 연비의 패배와는 달리 웃고있는 얼굴에 분위기는 그리 심각해지지 않았다. 제각기 이결의 등을 툭툭 치거나 가볍게 놀려먹는 모습.


“너는 특별 수련이다 이놈아.”

“살살 해줘, 무진 사형......”

“밤샐 각오는 했겠지?”


그런 대화를 받아주면서 웃는 것이 졌음에도 크게 낙심하지 않은 듯 했다. 다행이라 봐야겠지. 하지만 백연은 천천히 미간을 좁혔다.


‘괜찮은 것 맞나.’


이결 사형. 본래 사고도 자주 치고 잘 덜렁대는 사람이다. 곤륜산에 있을때도 사숙조들의 수련 시간에 자주 지적 받기도 했으니.


그럼에도 그는 착실한 노력파였다. 남들 앞에서는 그리 드러내지 않았으나 백연은 이결이 수련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잠을 줄여가며 무공을 연마할 정도로.


그랬기에 백자 배 열명 안에 포함되어 무당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언제나 하하 잘 웃어 넘기는 사형이지만 지금도 정말 괜찮은게 맞을련지.


백연은 조용히 이결의 분위기를 눈에 담았다.


이어지는 대진이 빨랐다. 사흘차에는 곤륜파 무인의 대부분이 경기를 치뤘고, 연비와 이결의 앞뒷 순서에서 청율과 무진, 단휘, 소홍, 그리고 도현과 연청은 제각기 두번째 승리를 거두었다.


청율은 첫번째 경기보다 쉽게 상대를 압살했고, 소홍도 마찬가지였다. 무진과 단휘는 한 배분 높은 이대제자를 만나 이전보다 조금 고전했으나 말 그대로 조금이었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한 배분 높은 무인들을 상대로도 쉬이 이긴 괴물들처럼 보였겠지.


도현은 저번보다 편안해진 자세로 창명류수검을 펼쳐 장기전 끝에 승리했으며 연청은 연비에게 보여주겠다는 듯이 맹렬한 공격을 펼쳐 상대를 쓰러트렸다.


그렇게 곤륜파의 사흘차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마지막 순서로 설향이 경기장에 올라간채였다.


“설향, 설향이다!”

“오늘도 이길련지 궁금한데.”

“헌원가의 자제라. 송엽이 그보다 낫지 않겠나? 곤륜의 낙승으로 보이네만.”


유독 뜨거운 사람들의 반응이 이어진다. 그에 호응하듯 침착하게 보법을 딛으며 검끝에서 불꽃을 일으키는 설향의 모습.


눈길을 잡아끄는 까닭이었다. 무공의 화려함도, 설향의 외양도, 그 무위의 강함도.


하지만 백연은 설향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가라앉은 시선으로 조용히 경기장을 응시하는 이결을 확인하고 있었다.


웃음기가 사라져 있었다. 손목을 매만지며 설향의 검식에 집중하는 표정이 그랬다.


이결은 저기에서 무엇을 보고 생각하고 있을까.


옅은 한숨을 삼킨 백연이 경기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침 설향의 검끝이 허공에서 춤추고 있었다. 검이 떨어지며 화려한 적화검류의 초식을 자아냈다.


‘화간접무(火間蝶舞). 벌써 익혔네.’


백연이 직접 가르쳐주기 시작한 이후로 나날이 눈에 띄게 실력이 늘고 있는 설향이다. 적화검류의 초식을 익히는 속도가 지극히 빨랐다. 화기를 다루는 것도 그녀의 성향에 잘 맞는 모양이었다.


겉보기와는 달랐다. 설향은 고요한 불꽃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적화검류의 끝을 보려 하는지.


청율 사숙과 세 사형들 바로 다음으로 뛰어나다 볼만도 했다. 타고난 면모도 있겠지. 익히는 속도가 빠른것이.


아무나 그가 붙잡고 가르친다고 저리 될 수는 없었다. 그녀가 사천에서 뇌룡의 이야기를 꺼냈을때 불가능한 것이었다면 백연도 안된다고 말했을 것이다.


다만.


모두가 설향 같을수는 없었다.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눈앞의 이결도 그랬다.


쩌어엉!


“후우. 졌소.”

[곤륜파 설향......]


화려하게 낙하한 불꽃의 검로에 헌원가 무인의 검이 튕겨나가고, 승부가 결정되는 소리가 귀를 울린다. 빠르게 마무리지어진 경기장을 슬쩍 쳐다본 백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결에게 다가갔다.


“사형.”

“응? 백연이구나. 왜 불러?”

“경기도 일찍 끝났으니까. 식사시간 전에 잠깐 산책 좀 할까.”


아직 해가 다 넘어가지도 않은 시각이었다. 오늘 곤륜의 일정은 일찍 마무리 된 것이었다. 저녁 식사 이전에 돌아다닐 시간 정도는 있었다.


“산책? 아하하. 난 괜찮다니깐. 하다보면 지고 그럴수도 있는거......”

“가자.”


백연은 이결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몸을 돌렸다. 자연스레 경기장 밖으로 걸어나가는 사제의 모습에 이결이 눈을 깜빡였다.


“하아.”


이윽고 한숨을 내쉰 이결이 백연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인파가 가득한 무연봉 위였다. 봉우리 아래로 비스듬히 내려가는 산길을 향해 걷는 소년의 걸음이 가벼웠다. 이결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소년의 몸놀림이 달라졌다는 것을 눈치챘다. 어제부터였는지, 그 전부터였는지.


‘또 새로운 무공을 익혔나보네.’


어제 경기에서 보여주던 백연의 신묘한 몸놀림이 머릿속에 똑똑히 남아 있었다. 자신의 사제는 언제나 그랬다. 말도 없이 어느날 새로운 무공을 보여주고, 가르쳐주고.


경외심마저 들 정도였다. 이결은 중원 무림의 고수들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는 못했으나, 백연이 보여주는 행위가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사제의 자질을 죽을때까지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도.


“어디 가는거야?”


그렇게 잠시간 말없이 걷던 이결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물었다.


“무당파로 가는 방향이 아닌데.”

“사람 없는곳.”

“......그런데는 왜?”

“잠깐만.”


슬슬 인적이 드문 장소였다. 얼어붙은 땅을 뚫고 발목 언저리까지 자란 풀과 사방을 따라 굽이치듯 자란 나무들이 가득한 산속.


그 끄트머리 나무들 사이로 언뜻 보이는 절벽 앞에 멈춰선 백연이 주변을 가늠했다.


접시처럼 넓적하게 펼쳐진 바위 너머로 탁 트인 산 능선이 보인다.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주변에 인기척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백연이 절벽의 바위 끄트머리로 가 털썩 주저앉았다.


“이거 받아.”


그리고는 품에서 무언가를 뒤적이더니 이결에게 휙 던졌다. 얼떨결에 허공을 날아온 묵직한 물체를 받아낸 이결이 미간을 좁혔다.


그것은 자그마한 호리병이었다. 안에서 찰랑이는 움직임을 감지한 이결이 눈을 크게 뜨곤 백연을 쳐다보았다.


“이게 뭐야?”

“뭐긴 뭐야. 곡차(穀茶)지.”

“......술이란 소리 아니야?”


마개를 열고 향을 맡은 이결이 헛웃음을 지었다. 느릿하게 올라오는 주향이 선명했다. 품에서 호리병 하나를 더 꺼내든 백연이 싱긋 웃었다.


“다르지. 곡차라니깐? 도문에서 무슨 술이야.”

“야, 너. 어디서 이런걸 가져온거야. 걸리면 장문인께 혼나게.”

“소하가 줬어.”

“당소하? 독룡? 하하......”


이결이 어이없는 목소리로 웃었다.


독룡 당소하. 독특한 사람이라고는 들었으나 무당산에 술을 가지고 올라올 정도일 줄은 몰랐다. 백연은 친구를 잘 뒀다고 해야할지 못 뒀다고 해야할지.


“마셔. 약한거니까 괜찮아.”


어느새 호리병을 입에 대고 홀짝거리는 사제의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고개를 절래절래 저은 이결이 그의 옆에 걸어가 앉았다.


그렇게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결의 시선이 탁 트인 산맥의 능선을 향했다.


불어오는 바람이 차가웠다. 막 비스듬히 하늘에 걸린 노을이 이지러지며 춤추듯 허공을 누빈다.


노을을 눈에 담은채로 병을 홀짝거리기를 한참.


백연이 천천히 옆에 병을 내려놓는 것이 느껴졌다. 여상히 앞을 바라본 채로 백연이 입을 열었다.


“말해봐.”


이결이 눈을 깜빡였다.


“무엇을? 오늘 진 경기는 아까 이미 복기를......”

“무공, 싸움, 전투. 그런거 말고.”


소년의 음성이 허공에 드리웠다. 마치 노을과 섞여드는 듯 가볍고 평이했다.


“이결 사형은 어떤 사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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