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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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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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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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룡(3)

DUMMY

“폐관이라? 어째서?”


백연이 반문했다.


그만큼 당황스러운 소리였다. 구파의 검객들. 실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폐관에 들어가는 일이 드물지 않다. 허나 검룡은 아직 약관 언저리의 어린 무인이다. 산에서 검을 휘두르며 선도(仙道)를 이루기 위해 수련에만 매진할 나이가 아닌 것이다.


“이유야 나도 모르지. 여하튼 그런 이유로 화산은 이번 용봉지회에 불참이다. 다른 후기지수들이 나올 수도 있었을테지만, 검룡이 없는 화산이라. 문파 전체적으로 굳이 올 이유가 없다 봐야지. 섬서의 뒷수습도 하느라 바쁠테고.”


백연이 머리를 쓸었다. 검룡 유성이 폐관에 들었을 줄이야. 이번 용봉지회에서 만나 검을 나눌 수 있을거라 약간은 기대하고 있었건만 아쉬운 일이었다.


“그 괴물이 폐관에서 나오면 또 얼마나 강해져 있을지 몰라 무섭기도 한데.”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젓는 당소하. 그의 표정에 어린 것은 감탄 섞인 경외와 어렴풋한 곤란함이었다.


“왜. 너와 유성의 무위가 그리 많이 차이나나?”

“재능의 차이다.”


단언하는 모습이다.


“칠룡이라 묶어 부르지만 그 중 검룡의 재능은 월등한 위치에 서 있다. 그 나이에 매화검수에 필적하는 무위. 그것도 한해 한해 성장세가 말이 되질 않아. 그가 칠룡의 꼬리에서 머리까지 올라오는데에 단 일년 하고도 반밖에 걸리지 않았다면 믿겠나?”

“일년 반이라.”

“화산의 미래라 불리는 검이다. 이미 화산의 장문인에게 직접 무공을 사사받고 있다는 소리도 있어. 진실일거다.”


화산 장문인의 직전제자라.


‘그래서였나.’


섬서에 있을 당시 유성의 매화검법은 같은 화산파의 매화검수들과도 조금 다른 이질적인 느낌이 존재했다. 이제 와서야 이유를 알듯 했다. 경지에 이른 고수의 검은 본류와는 다른 영역을 구축하기 마련이다.


“그 운하검신(雲霞劍神)의 직전제자라니. 작금 정파의 절대자 중 하나에게 사사받으며 재능과 노력까지 더해진 놈이다. 향후 정파제일검(正派第一劍)의 자리는 이미 맡아뒀다는 소리도 공공연히 돌지. 다만......”


당소하가 백연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가 백연을 위아래로 훑더니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 생각에 그건 이제 암화, 네 몫인 듯 하군.”


부담스러운 시선이었다. 정파제일검이라고? 백연은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 자신의 실력에는 언제나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싸움에서 승리라는 결과를 이끌어 내는 것에 대한 자신이지, 무공 고하에 대한 내용이 아니었다.


그가 지금 나이에 비해 압도적인 무위를 지니고 있지만 그것은 백연 자신의 특수성에 의거한 것이기도 했다. 물론 이대로 발전시켜 나가면 정파제일검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다지 끌리지는 않는데.’


그의 시선이 닿는 곳은 그런 곳이 아니었다. 검귀의 검은 언제나 스스로의 내면을 파고들었다. 전생에 만났던 하늘에 닿는 무인들. 그리고 그들 조차도 넘보지 못했던 드높은 경지.


정파제일, 사파제일, 마도제일을 넘어선 천하제일(天下第一)의 위(位).


의지가 곧 결과가 되는 영역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만 정체되지 않고 전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에 닿는 것은 자신 혼자 이뤄내야 하는 일이 아니다. 홀로 걷는 길은 이미 한번 시도하다가 실패한 바.


백연이 옆을 힐끗 쳐다보았다. 잔을 홀짝이던 사형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왜 그래?”

“맛있어?”

“응. 더럽게 맛있다. 이거 몇병 못 사가나? 청해에는 이런거 없던데.”


백연이 피식 웃었다.


“용봉지회 끝날때 사가면 되지.”

“음음, 아주 좋아.”

“잘 마시는군. 몇병 더 가져오라 하지.”


술잔이 몇차례 더 돌고, 당소하는 말을 이어나갔다. 첫 인상과 달리 그는 말을 하는 것을 즐겨 보였다. 이리 이야기 할 사람이 주변에 별로 없었는지.


“칠룡......그래. 검룡까지 이야기 했지.”

“팽가의 그놈이 지닌 무위는 어느 정도 되는거야?”

“그거야 끝까지 승부를 내봐야 알겠지만, 광도룡의 무위는 칠룡에서 중간정도 가는 편이다. 나와 얼추 동수를 이룰까.”


백연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당소하의 무위, 그리 낮지는 않아 보였는데. 아직도 객잔에서 보여준 그의 무공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렇다곤 해도 칠룡의 일원들이 승부를 끝까지 낼 일은 거의 없다. 애초에 손을 잘 겨루지 않지. 때문에 두 놈을 빼놓으면 다들 서로 할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거다.”

“두 놈?”


백연이 반문했다. 하나는 알 것 같은데, 두 놈이라.


“그래. 하나는 당연히 검룡이고, 나머지 하나는 칠룡이 육룡이던 시절, 용의 머리를 차지하고 있던 놈이다.”


육룡의 머리를 차지하고 있던 자. 흥미가 돋았다. 애초에 칠룡, 육룡의 이름을 달고 있다는 것 부터가 강호 무림에서 손가락에 꼽힐 재능이라는 의미건만, 그중에서도 검룡에 필적하는 재능이라니.


“섬뢰신창(閃雷神槍)의 제자이자 자식인 산동악가의 뇌룡(雷龍). 들어봤나?”

“들어봤습니다.”


끼어든 것은 단휘의 목소리였다. 술을 홀짝이던 그가 잔을 내려놓으며 눈을 반짝였다.


“그 명성은 청해같은 벽지에도 유명하지요. 약관에 이르기도 전에 악가 연환창식(連環槍式)의 전 초식을 깨우쳤다 하는 괴물 아닙니까?”

“맞다.”

“제가 알기론 산동 일대의 흑귀문(黑鬼門)도 뇌룡이 주도해 토벌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문주와 일대일 전투를 벌여 격살했다던데. 산동의 사파 무리를 정리하고 다니는 행보가 민심을 많이 산다더군요. 그리 인기가 많다고.”

“전부 사실이다. 흑귀문주를 격살한 건으로 한동안 이야기가 나돌았으니. 하지만 그놈이 인기가 많은 이유는 무위나 민생을 위한 행보 때문만은 아니지.”

“아하.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휘가 백연을 슬쩍 쳐다보았다.


“우리 사제는 아마 아직 모를겁니다.”

“그런가? 이거 재미있는데.”


당소하와 단휘가 동시에 씩 웃는 꼴이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뭔데? 왜 둘만 아는 이야기 하는데?”

“직접 봐라. 뇌룡도 곧 올테니. 용봉지회가 곧 시작이니 아마 늦어도 내일 안에는 도착하지 않을까 싶은데.”


말 속에 담긴 웃음기가 짙었다. 필시 자신을 골려주려는 행동이었다. 그가 뇌룡을 보고 무슨 반응을 보일지 궁금한 것이다.


“내기 한번 하실렵니까?”

“좋지.”

“저는 백연이가 관심없다 쪽에 걸겠습니다.”

“호오? 정말로? 그럼 나는 반대에 걸지.”


싱글거리며 대화를 나누는 사형과 당소하. 서로 죽이 아주 잘 맞아 보였다. 즐거워 보이는 모습에 백연은 고개를 저었다. 이쪽이 아니라 저 두 사람이 서로 사형과 사제같아 보일 정도였다. 아니면 같은 가문의 형제거나.


그때 당소하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소란했다. 그것에 반응한 것인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가 창가로 다가갔다.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당소하가 중얼거렸다. 그가 백연을 돌아보며 웃었다.


“와서 봐라. 저기 놈이 왔군.”


주루의 창가로 다가갔다. 삼 층 높이에 자리한 방에서는 대로변이 훤히 보였다.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 그 사이에 확 돋보이는 무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절도있는 걸음과 움직임.


함께 뭉친 행렬에서 나오는 기세가 얼핏 군문(軍門)의 그것과도 닮아 있었다. 들고 있는 무기가 검(劍)이 아닌 창(槍)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작금 강호에 창을 무기로 삼는 집단은 흔치 않았다. 정파 무림은 더욱 그랬다. 본디 창이란 황실 군문의 무기인 탓이었다.


때문에 정파 무림에 창을 주요 병기로 삼는 가문은 하나뿐이라 봐도 무방했다. 무신(武神) 악비(岳飛)가 세워냈다는 산동의 명문세가.


산동악가의 행렬이 천주산 대로를 따라 남궁세가의 장원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언제 들고 있었는지 손에 들린 술병을 입가에 가져가 홀짝이며 당소하가 손가락을 뻗었다.


“저기. 저 녀석이 뇌룡이다.”


백연의 시선이 손끝을 따라갔다. 산동악가의 한 가운데였다. 말에 올라타지도 않고 땅에 내려서 걷는 한 인영이 시선을 끌었다. 수수한 흑색 무복을 입고 있었는데, 소매가 닳은 것이 오랜 기간 입어온 옷인 듯 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백연의 시선에 들어오지 않았다. 순간 번뜩이며 일어난 섬광이 머릿속을 강하게 스쳤다. 시선이 자연히 잡아 끌렸다.


어깨에 비스듬히 걸친 커다란 장창. 한 손으로 들기 어려워 보이는 크기인데 가볍게 지고 있었다. 움직임에 거침이 없고 걸음 보폭이 정확했다. 멀리서 보이는 움직임 만으로 신체가 구성된 방향성을 알 것 같았다.


그 몸 자체가 하나의 창이자, 뇌전(雷電)이었다. 사지 근맥 전체가 전부 극한의 공격성을 위해 짜여진 듯 했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아도 그러했다. 그 속에서 백연의 머릿속에는 자연스레 창을 휘두르는 뇌룡의 모습이 새겨졌다.


보지 않아도 보이는 듯 했다. 일격 일격이 쾌속의 극치에 달한 창술. 찌르는 공격은 가장 강한 파괴력을 지녔으나 동시에 가장 자신이 위험해지는 공격이다. 목숨을 걸고 수십의 창격을 내지르는 창사. 뇌룡이라는 별호가 왜 붙었는지 보는 순간 이해할 수 있었다.


아직 일 초식도 견식하지 못했음에도.


“......대단해.”


그가 본 검룡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앞설지도 모르겠다. 검룡의 매화검법 성취는 그가 적화검류를 창안하는 영감이 될 정도로 뛰어났다. 하지만 그조차도 공격의 파괴력에 한해서는 뇌룡에 밀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도를 보는 순간 한번 손을 겨뤄보고 싶을 정도였다.


“하핫. 너도 저 놈의 미모 앞에서는 그리 말하는군. 아까 여검객들이 논검하자며 몰려들 때는 눈길도 주지 않아 각목인 줄 알았더니.”

“야, 내가 믿었는데 그러면 어떡하냐 임마.”

“응?”


웃는 당소하와 핀잔이 담긴 단휘의 목소리에 백연이 미간을 좁혔다.


“하긴, 중원제일미(中原第一美)라고 까지 불리는 놈이다. 아무리 여인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눈이 한번쯤 돌아가지 않을 수 없는......”

“......엥, 뭐라고?”


백연이 눈을 깜빡였다.


그에 당소하의 미간이 천천히 좁혀지더니 이윽고 그의 표정이 요상하게 변했다.


“......너. 방금 대단하다는게 혹시 무슨 의미지?”

“신체 기도. 멀리서만 보아도 짜여진 근맥이 엄청나. 애초에 처음 무공을 연마할 때부터 외공 수련을 통해 신체를 자신의 무공에 최적화 시켜 만들어낸 몸이야. 아주 어릴때부터 오성이 뛰어나고 무학에 미쳐있지 않으면 저렇게 하기 어려운데.”

“너 지금......”

“저 몸으로 펼쳐내는 무공도 대략 예상이 가. 한번 겨뤄보고 싶군. 극한의 공격 절초일 것 같은데. 그걸 받아내다 보면 몇가지 영감이 떠오를 것 같아서.”


검으로 엮어내는 갑옷. 뇌룡이 펼치는 공격초를 막아낼 수 있는 방어초 정도라면 충분할 것이다. 그의 새로운 검식을 엮어낼 영감을 받을 수 있을것 같았다. 용봉지회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하핫. 봤습니까, 소가주?”

“......미치겠군. 진짜인가?”

“원래 이런 놈이라. 내기는 제가 이긴듯 하군요.”


백연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에 당소하가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 놈. 무림에서 제일 유명한 여창사다. 그 절세의 미모와 무위, 성품 모두가 유명하지. 덕분에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아, 그렇군.”


여인이었나.


그제서야 시선에 다른 것이 들어왔다. 수수한 무복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외양. 가볍게 묶어 내린 머리칼은 빛을 빨아들이는 듯한 흑발이었고, 멀리서 흐릿하게 보이는 얼굴 선만 보아도 미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달리 고아하다는 말을 쓸 법한 얼굴선이었다.


“뭐, 내 소견으로는 그냥 무공에 미친 놈이다만.”


당소하가 웃었다.


“그런 점은 너와 비슷해 보이는군.”


이윽고 산동악가의 행렬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남궁세가의 장원으로 들어간 것이다. 근처에 소란스럽게 모여있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흩어졌다.


그들도 창문에서 떨어져 다시 자리에서 술잔을 나누었다.


“여하간, 악가까지 온 것을 보니 이제 정말 용봉지회의 시작이로군.”

“사흘 뒤였나.”

“개회식은 사흘 뒤고, 본격적으로 대회가 시작하는 것은 일주일 뒤일거다.”


용봉지회의 대회. 이곳에 온 목적은 만금장과 금원방이지만, 대회도 소홀히 할 생각은 없었다. 검을 맞부딪히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감각을 불러 일으킨다. 하물며 전 중원에서 몰려든 후기지수들이다. 각양각색의 무공을 견식하는 것 만으로도 얻어갈 것이 많다.


“둘 다, 대회에 나갈건가?”


백연이 단휘를 쳐다보았다. 잠시 고민하는 듯한 얼굴을 하던 사형이 입을 열었다.


“저도 나가도 되는겁니까?”

“된다. 초청으로 온 사람과 동행한 무인들은 초청자 본인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 대회의 참가 권리도 마찬가지이지.”

“그럼 한번 해보지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는 단휘의 모습. 백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둘 다 나가야지. 너는?”

“이래봬도 당가의 소가주다. 나가지 않으면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겠는데.”


당소하가 술잔을 매만졌다. 술이 들어가 평소보다 나른하게 풀린 눈매가 짙었다.


“다들 높은 곳에서 만나면 좋겠군.”



※※※



사흘이 흘렀다.


그 사이 남궁세가의 장원은 수많은 사람들로 꽉꽉 들어찼다. 그 넓다 생각했던 전각들이 들어차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속속들이 도착하는 사람들의 면면도 가볍지 않았다. 중소 방파들도 많았으나, 마지막 며칠동안 들어오는 이들은 중원에 드높이 울리는 이름이 대부분이었다.


제갈세가 같은 명문세가 뿐만 아니라, 소림과 무당을 비롯한 구파의 일원들. 사천의 청성과 아미, 감숙의 공동과 저 멀리 떨어진 운남의 점창까지도 걸음했다. 듣기로는 종남파도 왔다 했는데, 얼굴을 마주하지는 못했다.


화산과 모산을 제외한 구파와 오대세가가 전부 이곳에 모여든 것이었다. 가히 천하의 이목이 쏠릴 일이었다.


백연은 대부분의 행렬을 보지 못했다. 이틀간 바삐 움직인 탓이었다. 잠시 회녕에 내려가 비도의 이동 위치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이요, 루주가 알려준 금원방의 본거지가 어디쯤 위치하는지도 확인해 두었다. 언제든지 바로 갈 수 있도록.


그리고 마침내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사람 많네.”


모여든 인파가 가득했다. 드넓은 대회장. 남궁세가의 장원에 구축된 임시 구조물이었다. 임시라곤 하나 어지간한 방파의 연무장 서너개는 합쳐 놓은 듯한 크기였는데, 그곳을 둘러싼 건물들도 웅장했다.


이런게 명문세가의 저력인가. 새삼 눈으로 보면서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수없이 많은 무인들이 모여들어 있었다. 하나같이 어린 면면의 무인들. 용봉지회에 걸음한 수많은 후기지수들이 한 자리에 모여든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저편 높은 자리에 팔짱을 끼고 앉은 팽악과 당소하도 눈에 띄었다. 당소하의 바로 밑 자리에 앉은 것은 그의 형들인 듯 했는데, 하나같이 표정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그렇게 백연의 시선이 대회장을 천천히 살피고 있을 때였다.


쿠웅.


백연이 고개를 번쩍 돌렸다. 그의 시선이 대회장 한 가운데에 고정되었다. 뒤편에 내려져 있는 계단으로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올라오고 있었는데, 그 기도가 마치 해일과 같았다.


‘괴물이군.’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스친 생각이었다.


동시에 그의 시야에 계단을 걸어 올라온 사람의 모습이 들어왔다. 화려한 백색 장포를 걸친 중년의 무인. 허리춤에 걸린 검 한자루가 지극히 가벼워 보였는데, 다른 무장은 일절 없었다. 몸의 체구가 작지는 않았으나 그리 크다 할 정도는 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에게서 뿜어나오는 기세는 달랐다.


호흡 하나 하나에 실린 기파. 그가 숨을 내쉬는 순간마다 주변의 대기에 서린 기운이 짓눌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곳 전체의 기운을 호흡 하나로 짓누르며 제압하고 있는 것이다.


한눈에 느낄 수 있었다.


‘금안나찰보다, 아니, 하령보다도 윗줄의 고수.’


다음 순간, 남자가 입을 열었다. 동시에 백연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들었다.


“본 무인은, 이번 용봉지회를 주관하게 된 남궁산(南宮山)이라 하오. 부족하나마 무림의 후인들을 위해 열심히 준비했으니 모두 빠짐없이 즐기고 가기를......”


육합전성도 아닌 가벼운 육성이 대기를 울린다. 사방 천지에 떠도는 기운이 호흡과 동화되어 움직이는 것이다. 목소리를 따로 증폭시키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레 의념이 행동에 담겨 나온다. 무형지기(無形之氣)를 다루는 것의 극한에 이른 무인이었다.


그러나 백연의 몸을 굳게 만든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기감에 더없이 예민한 몸인지라 느껴졌다. 남궁산의 호흡에 섞여나오는 기파. 느껴본 적 있는 것이었다.


“부탁드리고 싶구려.”


아주, 아주 옅어서 집중하지 않으면 놓쳐버릴 만큼 옅은 기운. 하지만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검고 끈적한 감각이 남궁산의 호흡 기파에 섞여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용봉지회의 개회(開會)를 정식으로 선언하겠소.”


그것은 바로 전생의 검귀가 수도없이 마주했던, 신교의 마기(魔氣)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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