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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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5.1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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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0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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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생사의 경계

DUMMY

“어떻소이까? 맥이 아주 좋소?”


중전은 그의 입에서 자신이 원하는 말이 나오기를 원하고 있었다.


사실은 은연중에 강요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중전 마마에게 아부할 생각 따위는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세자저하의 병태를 좀 더 살펴보고 난 후에 말씀 올리겠습니다.”


천하를 발아래에 둔 중전도 이 순간만큼은 그에게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입을 다문 채 세자와 그를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저하. 입을 벌린 다음 혀를 내밀어 주십시오.’


세자는 그가 시키는 대로 혀를 내밀었다.


황태(黃苔).


혓바닥에 누런 태가 잔뜩 끼어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황태에 검은 태가 군데군데 숯처럼 끼어있었다.


그의 낯빛이 처음으로 어두워졌다.


“됐습니다, 세자저하.”


그는 중전 마마를 향해 몸을 돌렸다.


“마마. 세자저하의 병은 잠들었습니다.”

“그 말은 깨끗이 나았다는 말이지요?”


중전의 얼굴이 밝아졌다.


“송구하옵니다만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 잠시 잠을 자고 있을 뿐이라는 말씀이옵니다.”

“그러면 때가 되면 다시 잠에서 깨어나서 요동을 칠거란 말이오?”

“그렇사옵니다. 병이 오래 잠을 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차마 세자가 죽음의 그늘 속으로 한 발 내디뎠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중전의 낙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허면? 어찌해야하오?”

“이미 말씀 드렸듯이 수술만이 유일한 치료법입니다.”

“수술! 수술! 수술! 허 의원은 그 말 밖에 할 줄 모르오? 수술. 그 말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니 그만 하시오.”


중전은 그의 꼴도 보기 싫은지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금은 수술로도 고칠 수 있다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탕제와 침으로 치료를 하느라 허비한 시간이 얼마인가? 생과 사를 얼마든지 넘나들 수 있는 시간이다.’


그와 임치두는 방을 나와 마당으로 내려섰다.


“이젠 어찌해야 합니까, 스승님?”

“내의원으로 가자.”

“내의원으로 가봤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수술만이 유일한 방도라고 하지 않으셨사옵니까?”

“수술 준비를 해야지.”

“무슨 수술 준비를 내의원에서 합니까요?”

“그러면 어디서 하느냐?”

“스승님도 답답하십니다. 아니, 중전 마마께서 수술이라면 저리 펄쩍 뛰시는데 어쩌시려고요?”


임치두는 심한 갈증을 느꼈다.


어디 가서 시원한 곡주라도 한 잔하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두어 식경후면 마마께서 나를 찾으실 게다. 그때쯤이면 세자저하의 복통이 다시 시작될 것이고, 그러면 마마도 어쩌시겠는가? 수술 밖에 방법이 없다는데.”

“기어코 수술을 하시려고요?”

“이놈아. 그러면 세자저하를 돌아가시게 내버려두란 말이냐?”

“그건 아니지만······. 세자저하도 저하지만 스승님도 살 궁리를 하셔야죠? 소인은 무서워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오줌보가 터질 것 같습니다.”

“나도 물론 살 궁리를 해야지. 그러니 수술 준비를 하자는 말이다. 지체할 일이 아니다. 서둘러야 한다.”


임치두는 기가 찼다.


‘수술 준비라니! 도대체 수술 준비를 어떻게 하는 건지 알아야 하던가 말던가하지?’


그러나 자신도 내의원의 내로라하는 의관이 아니던가!


그래서 임치두는 스승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옆에 붙어 걷기만 했다.


“내가 알아서 준비할 테니, 너는 내 옆에서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

“아닙니다, 스승님. 저도 같이 해야죠. 시간이 촉박하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수술 해 본 경험이 없지 않느냐?”


그는 임치두의 급소를 푹 찔렀다.


“예에? 아니 스승님은 소인을 어찌 보고······?”

“해 본 적이 있단 말이냐?”

“그, 그런 건 아니지만 ······. ?!?!?! 티가 났습니까?”

“났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났다.”

“티 안내려고 나름 무진 애를 썼는데도요?”

“무진 애 쓰는 것도 티가 나더라.”


임치두는 입을 다물었다.


“부끄러워 할 거 없다. 수술. 너만 안 해 봤겠느냐? 조선 땅에서 수술을 해 본 의원이 어디 있겠느냐.”

“맞습니다, 스승님. 저도 내의원에 오래 있었지만 수술을 말하는 의관은 본 적이 없기는 합니다. 심지어 어의도요”

“그렇겠지.”

“아! 선왕(先王) 때에 전하의 등에 종기가 나서 환부를 쨌다는 어의의 말씀은 들은 적이 있습니다. 소인이 직접 본 바는 아니지만요.”

“그것도 수술이라면 수술이지. 장옹 수술과는 차원이 다르기는 하지만 말이다.”


수술에 대해 기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 제(齊)나라 때, 편작이라는 명의가 수술을 했다는 설이 있기는 하다.


그의 여러 저서 중에 편작외경(扁鵲外經)이라는 의서에 수술과정과 약 처방에 대해 서술이 되어있을 거란 짐작은 있지만 그게 전부다.


편작외경은 오래전에 소실되어 지금은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그 내용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수술은 마치 전설로만 전해지는 이야기에 불과할 뿐인 셈이었다.


‘그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던 수술을 스승이 거론하다니!’


임치두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것도 천하를 호령하는 중전 마마 앞에서 세자저하의 병을 두고 말이다.


‘스승은 허세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다. 십 여 년의 세월동안 그를 모신 자신이 아닌가?’


뭔가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수술을 입에 올리실 분이 아니다.’


임치두는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았다.


이번 기회에 스승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스승님은 수술 해보셨겠지요?”

“네가 나하고 있을 때 못 봤던가?”

“예. 저는 본 기억이 없습니다.”

“내가 내 입으로 수술을 해봤다고 하면, 사람들이 재수 없다고 하지 않겠느냐?”

“그럴 리가요? 다들 감탄하면서 스승님을 우러러 볼 겁니다.”

“으음. 그런가?”


그들은 어느새 내의원 앞에 당도했다.


이젠 그의 내의원 출입을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해보셨군요? 몇 번이나 해보셨는지요?”

“한 번.”

“예? 에게! 겨우 한 번이요?”

“한 번이 어디냐?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이냐? 사람의 배를 가르는 걸 허락하는 세상이냐? 중전마마도 나보고 뭐라 하시더냐? 사람 고치는 의원이 아니라, 사람 때려잡는 백정 놈이라 하시지 않더냐.”

“저도 들었습니다, 스승님. 아무리 중전마마라고 하더라고 그건 너무 하셨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수술을 한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나 다름없을 게다. 설령 병자를 살려낸다 하더라도 말이다.”


임치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지 시작이 중요한 법이다.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 되는 법. 그래야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이 수술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죽을 사람도 살릴 수 있는 세상이 되는 게지. 안 그러냐?”

“맞는 말씀입니다만 병자가 세자저하가 아니십니까? 세자저하를 상대로 두 번 째 수술을 시도하는 건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미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요.”

“그래. 네 말이 맞다. 미친 짓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말이다.”


그는 임치두를 힐끔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병은 지체가 높은 사람 낮은 사람, 잘 난 사람, 못난 사람 따지지 않고 찾아온다. 그러니 의원의 치료도 그런 걸 따져서는 안 되지. 높은 사람이라고 낮은 사람과는 다른 치료법을 쓸 수는 없지 않느냐.”

“천 번 백 번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그렇습니까? 같은 병이라도 천한 자들은 치료를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죽어 나가는 게 흔한 일이 아닙니까?”

“나도 안다. 하지만 세자의 장옹은 수술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잠시 후에 알게 될 거다. 세자저하가 다시 배를 움켜쥐고 온 방을 떼굴떼굴 굴러다니실 게다.”


임치두는 스승의 안색을 살폈다.


그는 확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난 수술 경험이 한 번 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걱정하기보다는 한 번이라도 해본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한 번이라도 안 해봤다면 나 역시 어의처럼 슬금슬금 뒷걸음질만 칠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

“수술만 하면 나을 수는 있습니까?”

“이놈아. 의원은 병을 앞에 두고 큰 소리 치는 법이 아니다.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것을 모르느냐?”

“예. 제가 스승님 모시고 있을 때도 입버릇처럼 말씀 하신 거 기억합니다.”

“나를 초오(草烏)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거라.”

“초오는 어디에 쓰시게요?”

“생배를 가를 수는 없지 않느냐? 마취를 해야지.”

“아! 마취요?”

“그렇다.”

“스승님. 혹시 편작이 마취제로 썼다는 마비산(麻沸散)의 처방 구성을 아시는지요?

“마비산의 처방 구성은 전해지지 않는다는 건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 초오산! 동의보감에 수록되어 있는 초오산이군요. 맞습니까, 스승님?”



임치두는 의기양양했다.


오래 만에 스승의 심중을 꿰뚫어봤다는 뿌듯함 때문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맞는 말도 아니다.”

“무슨 말씀이 시온지?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스승님.”


두 사람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내가 초오산을 여러 번 써봤는데 안 듣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실험에 실험을 거듭한 끝에 동의보감 초오산 처방 중에 두 가지 약재를 빼고, 세 가지 약재를 추가해서 만든 약이 있다. 써보니 초오산보다 훨씬 낫더라.”

“그렇군요.”

“실은 내가 딱 한 번 수술을 해봤다고 했지만 성공 한 수술이 한 번이고 실패는 두어 번 했지. 바로 초오산 때문이다. 수술 중에 마취가 풀리는 바람에 그만 실패하고 말았다.”

“그 처방 내용을 일러주십시오, 스승님. 초오산에 가미해서 만드셨다는 마취제 말씀입니다.”

“안 된다. 일러 줄 수 없다.”


임치두는 입을 삐죽거렸다.


두 사람은 마침내 약장 앞에 섰다.


준영이 초오가 들어있는 약장을 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약, 또 다른 약.


임치두는 어깨너머로 보려고 애를 썼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스승의 손길은 망설임이 없었다.


재빠르고도 노련한 움직임이었다.


#


그의 예상은 한 치도 틀리지 않았다.


수술 준비를 마치자마자, 상궁 하나가 내의원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려왔다.


중전 마마가 보낸 상궁은 그를 찾았다.


“어서 가시지요, 허 의원님. 세자저하께서 배가 다시 아프다고······.”

“가자, 치두야.”


상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손에 보자기를 든 채 동궁전으로 내달렸다.


그 뒤를 임치두와 상궁이 뒤따랐다.


“상궁님. 동궁전에 도착하면 뜨거운 물을 준비해 주십시오. 세수할 물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화로와 인두도 준비해 주십시오.”

“화로와 인두는 뭐하시게요?”

“세자저하의 방 안에 들여놓으시면 됩니다.”


상궁은 그가 원하는 것을 준비하려고 방향을 틀어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세자의 방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그가 이미 예상하고 있던 바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세자는 배에 손도 대지 못하고 방을 떼굴떼굴 구르고 있었다.



“나 죽어요. 어마마마 나 죽습니다. 아이고, 배야. 어마마마, 나 살려주시오. 나 좀 살려주셔요요요오.”


죽어라 비명을 지르는 세자.


어쩔 줄 모르며 그런 세자를 안타까운 눈으로 내려다보면서 울먹이는 중전마마.



방으로 뛰어드는 그를 본 중전은 버럭 화부터 냈다.


“어디 있었던 게요? 의원이 병자 옆에 있어야지요?”

“치료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세자를 힐끔 쳐다본 그는 중전의 표정을 살폈다.


지금이라도 수술을 허락해 달라는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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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132화 소매치기 야구선수 +1 23.08.27 974 2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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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129화 퇴원하자마자 또 입원 +2 23.08.24 1,027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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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127화 교통사고 +1 23.08.22 1,035 23 12쪽
126 126화 엿이나 먹어라 +1 23.08.21 1,057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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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124화 장사꾼 +1 23.08.19 1,074 24 12쪽
123 123화 리진 회장 +3 23.08.18 1,083 2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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