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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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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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5.1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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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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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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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화 홀라당 벗은 허준영

DUMMY

중전 역시 이를 모르지 않았다.


“수술을 하면 우리 세자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셨지요?”


중전은 마지막 확인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마. 그런 말씀은 드린 적이 없사옵니다.”

“무슨 소리요? 이제 와서 발뺌을 하는 것이오? 분명히 수술을 하면 고칠 수 있다하지 않았소?”


중전은 임치두를 바라보면서 동의를 구했다.


임치두는 두 사람 사이에서 난감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지, 하면 낫는다고 말씀 올린 적은 없사옵니다.”

“이 자가 정말! 이보시오, 허 의원. 지금 나하고 말장난 하자는 게요? 그 말이 그 말 아니오?”

“수술 이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는 뜻일 뿐입니다.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 하지 않습니까. 의원은 최선을 다할 뿐, 병을 두고 장담 하지는 않습니다, 중전마마.”


중전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면 다시 묻겠소. 수술로 고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되오?”

“반반입니다.”

“반반? 그것 밖에 안 된단 말이오?”

“그렇사옵니다. 허나 그건 몇 식경 전의 가능성입니다. 탕제와 침 치료로 시간을 많이 지체하는 바람에 지금은 반반도 못 됩니다.”


그는 이 대목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고했다.


“세자 저하의 상황이 더 나빠진 것은 마마가 수술을 반대하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되었기 때문이옵니다.”


다행이 중전 마마 탓을 하는 것 같은 말투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중전의 표정이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중전의 눈에 시퍼런 불꽃이 일었다가 사라졌다.


“그러게 경각을 다투는 일에 빨리 수술을 했어야지 왜 꾸물거렸단 말이오? 어이구, 이 답답한 사람 같으니라고.”

“송구 하옵니다, 중전마마. 소인이 원래 미련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옵니다.”

“지나간 일이니 더 이상 나무라지는 않겠소. 허면 지금이라도 수술하면 고칠 가능성은 얼마나 된다고 보오?”

“백에 하나라 사료되옵니다.”

“뭣이라? 백에 하나라 했소이까?”

“송구하옵니다, 중전마마.”

“반반에서 불과 두 어 시진사이에 백에 하나! 이 자가 나하고 장난을 하자는 것이오?”

“마마. 빨리 결단을 내려 주십시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백에 하나, 천에 하나로 치료 가능성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 말에 중전은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알았소. 내 수술을 허락하겠소.”


그는 중전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옆에 있던 임치두에게 일렀다.


“밖에 준비된 뜨거운 물을 이리 가져 오너라. 그리고 화로도 잊지 말고.”

“예. 스승님.”


임치두가 화로와 뜨거운 물을 가지러 방을 나간 사이, 그는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는 먼저 재킷을 벗고, 터틀넥셔츠를 벗었다.


그 안의 러닝셔츠도 벗었다.


중전의 두 눈이 주먹만 하게 커졌다.


“아, 아니! 이 자가?”


그리고 그는 얼마 전 여자 친구 은교가 선물한 청바지도 벗으려했다.


여자 친구에게 선물 받은 청바지를 외간 여자 앞에서 벗는 것이 조금 미안한 일이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맛!”


놀란 중전은 두 손으로 눈을 가리더니 고개를 돌렸다.


“허 의원. 이 무, 무슨 해괴한 짓이오?”

“소인의 옷에 더러운 것들이 많이 묻어 있을 겁니다. 더러운 것들이 세자저하의 몸속으로 들어가면 큰 탈이 날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그러면 벗는다고 미리 언질이라도 줬으면 내가 마음의 준비라도 할 거 아니오.”

“소인이 큰 죄를 저질렀사옵니다. 워낙 다급한 상황이라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중전 마마는 이 방에서 나가 주십시오.”

“나? 난 왜요? 세자가 날 찾을 텐데요?”

“송구하옵니다만 중전 마마의 옷에도 더러운 것들이 묻어 있을 겁니다. 만일 중전 마마께서 이 방에 계시려면 그 옷을 다 벗으셔야 되는데, 그것보다는 밖에 나가 계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뭣이라! 이 자가 점점.”

“그리고 수술에도 방해가 되옵니다. 어서 결심을 해 주십시오.”


그 때, 화로를 들고 방으로 들어오던 임치두와 세숫대야를 손에 든 상궁은 이런 광경에 놀라 어쩔 줄을 몰랐다.


“스승님. 이, 이게?”

“주, 주, 중전 마마. 이, 이 무슨?”


상궁은 세숫대야를 들고 있던 손과 턱을 덜덜 떨었다.


이 방에서 놀라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 준영뿐이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의 놀라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청바지를 내리기 시작했다.


“어맛! 이, 이 이보시오, 허 의원. 진정하시오.”

“어서 이 방을 나가시라 말씀 올렸사옵니다, 중전마마.”

“나, 나갈 테니 좀 처, 천천히 버, 벗으시오.”

“오죽 급하면 이러겠사옵니까?”


중전은 세자를 한 번 내려다 본 후 급히 방을 나갔다.


뒤를 이어 상궁도 나가고 임치두만이 방에 남았다.


빤스 하나와 양말만 신은 그는 따뜻한 물에 손을 정성껏 씻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스승님. 중전마마 계신데서 옷을 훌러덩 벗으시다니요. 죽으려고 환장 하셨소?”

“너도 벗어라.”


임치두는 본능적으로 다리를 꼬아 중요부위를 가리려고 했다.


두 팔을 X 모양을 만들어 상체를 가린 다음 말했다.


“저, 저도요? 제가 왜 벗습니까?”

“날 도와야 할 거 아니냐? 그 더러운 옷을 입고 날 도울 셈이냐? 네 옷에 묻어 있는 더러운 것들이 세자저하의 몸 안으로 들어가면 큰일 난다는 생각은 왜 못하느냐?”

“예? 아 예.”

“어서 벗어라. 지체할 일이 아니다.”


임치두는 주위를 살피더니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수술 준비를 마친 그는 발가벗겨진 세자의 귀에다 침을 놓았다.


임치두는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스승을 바라보았다.


‘수술을 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런데 왜 자침을 하시나요?’


임치두는 눈으로 그렇게 묻고 있었다.


“침으로 마취를 하는 거다.”


그는 임치두의 마음을 꿰뚫고 있었다.


“침으로 마취를 한다고요?”


듣도 보도 못한 말이었다.


“세자저하의 배를 마취도 안 하고 가를 수는 없지 않느냐?”

“예? 아 예. 그, 그렇지요.”


그는 그러고도 다섯 개의 침을 더 놓은 후 크게 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세자의 비명이 잦아들더니 조용해졌다.


“세자 저하. 세자 저하. 제 말이 들리십니까?”


그는 그렇게 물었다.


세자는 대답이 없었다.


“스승님. 지금 자침하신 혈자리가 어떤 혈자리입니까?”


임치두는 도저히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넌 날 도우려고 이 방에 있는 거지 배우려고 있는 게 아니다.”

“아 예.”


그는 침병(침의 손잡이)으로 세자의 뺨을 쿡 찔렀다.


세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취가 잘 됐는지 확인하는 것이라는 정도는 임치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이어 보자기를 뒤지더니 작은 병을 하나 꺼냈다.


임치두는 스승이 꺼내든 약병을 알고 있었다.


그 약병은 자신이 구해준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임치두도 병 속에 어떤 약물이 들어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는 약병의 뚜껑을 열더니 깨끗한 천에 물약을 묻혔다.


이어, 세자의 오른쪽 배주위에 넓게 바르기 시작했다.


물약의 향이 임치두의 코를 자극했다.


임치두는 어떤 약재로 물약을 만들었는지 물어보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향내로 봐서 두 가지 약은 알 것 같았다.


방풍(防風), 백지(白芷).


그러나 더 이상은 알 수 없었다.


“수술 전에 소독 하는 거다.”

“소독이라 하셨습니까?”


임치두는 스승의 말을 되뇌어 보았다.


그런 다음 그는 다시 새 약병을 끄집어냈다.


그 약병속의 물약을 다시 세자저하의 오른쪽 배에 고루 바르기 시작했다.


아주 정성스럽게.


‘조금 전은 소독을 하는 거라 했고, 이번에는 또 뭔가?’


임치두는 물약의 정체가 궁금해서 코를 킁킁거렸다.


“마취를 하는 거다.”

“아! 마취요?”


침으로 마취한 것도 모자라 약물로 또 마취를!


임치두는 마취약을 세자저하에게 복용을 시킬 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술부위에 바르고 있었다.


“전에 이 약을 병자에게 먹여서 수술을 해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약성이 너무 강해 결과가 좋지 않더구나. 수술 결과도 만족스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병자가 나중에 속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일이 있었지. 복용시키기 전에 염려가 되긴 했지만 생각보다 속 아픔이 심해서 병자가 한동안 고생한 적이 있다.”


임치두의 눈과 귀가 크게 열렸다.


“그래서 바르는 방법을 연구한 것이다. 약재도 다시 가감(加減)해서 말이다.”

“그렇군요.”

“그나저나 세자저하께서 아직 미숙하시니 그게 걱정이다.”

“지금껏 마취했던 병자 중에 세자저하가 가장 어리지 않습니까?”

“맞다. 내가 마취했던 병자 중에 스무 살 남자가 제일 적은 나이였는데······.”

“스물이면 어른이 아닙니까?”

“그래서 양을 어느 정도로 조절을 해야 세자저하께 딱 알맞을지? 나도 궁금하다. 양을 조금 줄이기는 했는데 탈이 없었으면 좋으련만······.”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더 줄이면 마취가 제대로 안 될 거고요?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은 양을 알아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단 말씀이시네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알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느냐! 하지만 지금은 경험이 턱없이 부족하지 않느냐.”

“그렇지요.”

“이 정도가 적당양이 아닐까 짐작은 되지만 병자를 짐작만으로 대할 수는 없는 일이고. 이 약을 드시게 하는 것보다는 바르는 게 실보다 득이 많다는 확신은 있는데 말이다.”


임치두는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저 약이 동의보감에 수록되어 있는 초오산인가보다.


초오산 본방에서 두 가지 약재를 빼고 세 가지 약재를 새로 추가했다고 했다.


뺀 두 가지약재와 추가한 세 가지 약재가 과연 무엇인지?


“마취가 무르익으려면 일 각(15분)은 기다려야한다”

“일 각이요?”


임치두는 지금이 저 마취제의 처방구성을 물어볼 적기라고 판단했다.


이때를 놓치면 다시 물어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는 큰 결심을 한 후 입을 열었다.


“스승님. 저 마취제의 처방 구성이 너무 궁금해 미칠 것 같습니다.”

“네가 아무리 미칠 것 같더라도 가르쳐 줄 수는 없다.”

“연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서운하냐? 안 가르쳐줘서?”

“솔직히 조금 서운하긴 합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칼이라도 어린 아이한테 그 칼을 쥐어줄 수는 없는 일 아니냐.”


임치두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한데 그렇지는 않았다.


스승의 의술을 똑똑히 봤기 때문이다.


자신으로서는 시늉도 낼 수 없는 경지였다.


그런 스승이 자신을 어린 아이 취급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린 아이는 그 칼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는커녕 다치기 십상일 테니 말이다. 어린 아이는 제 몸 하나 다치는 걸로 끝이 나지만, 의원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그, 그렇지요.”

“그러니 의원으로서 아직 어린 아이에 불과한 너에게 이 약을 어찌 쥐어 주겠느냐?”


끙.


임치두는 신음을 토해냈다.


“이 말이 더 서운하냐?”

“아, 아닙니다. 스승님에게는 이놈이 어린 아이로 보이시겠지요. 이해합니다.”

“죽기 전에 너한테 전수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야 네가 또 후손에게 전해주고, 또 후손에게 전해주고 하지 않겠느냐!”

“정진 또 정진 하겠습니다, 스승님.”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는 침병으로 마취약을 바른 세자의 오른쪽 배를 꾹꾹 눌렀다.


세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조금 더 세게 눌러도 마찬가지였다.


“마취가 잘 된 것 같구나. 이제 시작하자.”


그는 화로에 찔러 둔 칼을 끄집어내어 찬찬히 살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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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132화 소매치기 야구선수 +1 23.08.27 974 2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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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129화 퇴원하자마자 또 입원 +2 23.08.24 1,027 24 12쪽
128 128화 위장이혼 +1 23.08.23 1,024 24 12쪽
127 127화 교통사고 +1 23.08.22 1,035 23 12쪽
126 126화 엿이나 먹어라 +1 23.08.21 1,057 24 12쪽
125 125화 광고모델 허준영 +1 23.08.20 1,080 22 12쪽
124 124화 장사꾼 +1 23.08.19 1,074 24 12쪽
123 123화 리진 회장 +3 23.08.18 1,083 2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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