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피아니스트의 영혼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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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븐
작품등록일 :
2023.05.1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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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5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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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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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와 중학생

DUMMY

꿈을 꿨다.

피아니스트가 되는 꿈을.


전국적인 콩쿨에 나가 수상을 하고 모든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유럽에서 수많은 콩쿨을 휩쓸고 다음으로 목표했던 세계적인 콩쿨의 본선에도 진출한다.


그런데 무슨 2주 동안 가둬놓고 본선을 하냐?


핸드폰도 못 하고, 밥도 학교처럼 주는 급식을 받아먹는다.

그리고 오로지 연습, 죽도록 피아노만 친다.


힘들다. 이마와 등엔 홍수가 났고, 무엇보다 감정을 담아 건반을 누르는 것이 어렵다. 똑같은 곡을 몇백, 몇천 번을 칠 때마다 새로운 감정을 담아야 한다니··· 머리가 아프다.


어서 빨리 저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싶은데···.


차마 피아노 앞에서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어째서? 포기하면 편하잖아.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돼.


항상 그래왔듯 아쉽게 된 거지, 하고 도망가고 싶다.


그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꿈속의 나는 계속해서 피아노를 쳤다.


마치 내 몸인데도 내가 아닌 것 같은 모습.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렇게 변화시킨 걸까?


연주의 몰두한 내 손가락은 한시도 쉬질 않았다.

그렇게 하루 이틀, 어느덧 시간이 흘러 결국 무대에 섰다.


컨디션은 최상.

형형색색의 악기들과 기대의 찬 시선들, 그 가운데에 홀로 서 있는 나.


그저 꿈속이라지만, 2주라는 시간 동안 노력했던 결과물.

나는 내 모든 것을 손가락에 쏟아부었다.


연주가 끝나고 난 후 남은 것은 불태우고 남은 나의 잔해.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 일어나서 보내주는 박수 소리가 왜 이렇게 아름답게 들리는 걸까.

내 가슴은 어째서 벅차오르는 걸까.


역시 꿈이라서 그런가, 나답지 않다.


하지만, 꿈이니까··· 조금 더 욕심내도 되지 않을까?


세계 3대 콩쿨, 마지막 콩쿨.

폴란드 바르샤바.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낯익은 누군가를 향해 나는 활짝 웃어 보였다.



♪♪♪



“···야!”


컴컴한 눈앞, 몽롱한 정신, 그 틈 사이로.


“야! 이노헌!”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노헌의 몸이 흔들렸다.


“어, 어?”


노헌은 고개를 들어 천천히 그를 깨운 장본인을 바라보았다.


“점심시간이다, 인마.”


같은 반 친구인 준모였다.


“아, 내가 어제 잠을 잘 못 자서···.”


변명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점심을 먹으러 갔는지 교실은 휑하기만 했다.


“다른 애들은 먼저 급식실 갔어. 그런데 너 이 정신으로 오늘 1반이랑 붙을 수 있겠냐?”

“아아, 배고프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옆 반과의 약속을 언급하는 준모.


‘1반은 무슨···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노헌은 친구의 말을 흘리며 교실을 나섰다.

급식실을 향하는 와중, 옆에서 자꾸 무어라 말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지금 그에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건 바로 그의 인생에 새로 등장한 인물 탓.

정신없던 지난밤이 떠올랐다.



“가, 강현묵?! 그 피아니스트?!”

【예, 맞습니다. 그나저나 기사에는···.】

“지금 확인해 볼게요!”


참으로 당황스러웠던 첫 만남.

그건 충격의 연속이었다.


“코, 코마―?!”


강현묵 피아니스트는 그날 혼수상태에 빠졌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말과 종합해 보면 영혼이 비행기를 빠져나온 순간, 의식불명이 되어버린 것 같다고 했다.


“그럼 어떡하죠?”


현재 현묵은 노헌의 몸에 꼼짝없이 갇혀있는 상태.


“아니면 원래 몸이 있는 곳에 가보는 건 어때요? 뭔가 달라질 수도 있잖아요.”


물론 그렇게만 되면 쉽게 해결될 상황이었겠지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마 의식불명인 제 몸에 다가가는 것도 힘들 겁니다. 노헌이 저와 친분이 있던 사람도 아니고, 제 영혼이 들어와 있다고 주장해도 믿어줄 사람 한 명 없을 테니까요.】


두 사람이 밤새 머리를 맞대봤지만, 아침 해가 떠오를 때까지 실마리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저 이제 슬슬 등교할 시간이라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아··· 그럼 이렇게 하죠. 노헌이 일상생활하는 동안 저는 잠자코 있겠습니다. 남들 눈에는 노헌이 혼잣말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


이것이 어젯밤의 이야기였다.



♪♪♪



“오늘 한 번 1반 털어보자.”

“그래, 2반 단합력 보여주자고.”


방과 후, 미리 약속되어 있던 1반과의 결투.

노헌은 친구들을 따라 피시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피시방이라···.’


노헌이 보고 듣는 감각을 공유하는 현묵 또한 어느새 이 분위기에 심취해 있었다.


‘원래 몸으로는 절대 안 갔었는데.’


그도 노헌과 마찬가지로 학창 시절이 있었다.

비록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턴 외국에서 지냈지만, 그전까지는 한국에서 지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피아니스트인 그에게 피시방, 아니 키보드는 독이나 마찬가지였다.


타닥타다닥, 지금도 노헌이 치고 있는 키보드.

손가락을 사용하는 건 피아노와 마찬가지였지만,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피아노는 손 전체를 쓰지만, 키보드는 손을 책상에 올려놓고 손가락만을 움직이기에 장시간 이용할 경우 손목에 큰 무리가 갔다.


그것은 피아니스트에겐 수명을 깎는 것과 마찬가지.

그렇기에 현묵은 처음부터 컴퓨터 게임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만약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면 나도 저렇게 게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조금 더 청춘을 즐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이 맴돌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도 소용없을 뿐이었다.


“아니, 이걸 진다고?”

“아, 이건 진짜 아닌데!”


분통을 터뜨리는 소리에 현묵이 정신을 차렸을 때 화면에는 패배, 두 글자가 떠 있었다.


‘한참 게임에 울고 웃을 나이긴 하지.’


중학생답다고 생각했지만, 노헌의 반응은 현묵의 생각을 벗어났다.


“뭐, 아쉽게 된 거지···.”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의 자세, 한참 승부욕이 가득 차 있을 시기에 이런 어른스러운 모습은 대견하기까지 했다.


“다음에 이기면 되지.”


그 말을 끝으로 피시방을 나와 홀로 걸어가는 거리, 어느덧 하늘은 주황빛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현묵도 노헌도 침묵하고 있던 순간.


귓가에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강렬하고도 빠른 박자의 클래식.

피아노에 문외한인 노헌도 한 번쯤은 들어봤던 곡.


【쇼팽의 「흑건」.】

“아, 이거 영화에서 들어봤어요.”


소리를 낮춰 대답하는 노헌.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은 어느새 소리를 따라가고 있었다.


발이 멈춘 곳은 중앙 광장.

버스킹이 자주 나타나는 문화의 공간, 그 가운데에서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


까치발을 들어 틈 사이를 엿보니 낯익은 누군가가 눈에 들어왔다.


“아 걔구나?”

【누구?】

“옆 반에 피아노 전공한다는 여자애예요.”


음악 시간 한정 인기가 많아지는 특이한 친구로 노헌은 기억하고 있었다.

중학교 3년 동안 연관된 적이 없어 흐릿한 이름을 떠올리려 애쓰고 있던 사이.


“와! 진짜 개 잘 친다!”

“나중에 피아니스트 되는 거예요?”


화려한 연주는 사람들의 환호와 함께 막을 내렸다.


“헤헤, 아직 이 정도로 피아니스트는 멀었죠!”

“멋있다. 이재은~!”

“야아~ 왜 이래~!”


수줍게 웃으며 말하는 재은과 주변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그녀의 친구들.


그 순간, 현묵의 머릿속에 무언가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무대 위, 환호를 받는 자신의 모습, 세연과 대화하던 비행기의 풍경, 추락하는 와중 머릿속을 맴돌던··· 쇼팽 콩쿠르.


쇼팽의 곡을 들어서일까, 시큰거리며 떨려오는 심장.


【피아노···.】

“네?”


아쉬움과 미련, 그리고 자신의 처지에 치밀어오르는 분노.


【피아노가 치고 싶어.】


현묵의 의지에 노헌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뭐, 뭐야?!’


자기 멋대로 움직이는 몸에 노헌은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사람들을 헤치고 피아노로 다가서는 노헌, 아니 지금은 현묵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둘의 입장이 바뀐 것처럼 노헌은 그저 현묵의 행동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피아노 앞에 서 있는 현묵.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앉아있던 재은이 엉거주춤 일어났다.


“어··· 그 옆 반에?”

“나 피아노 한 번만 쳐도 돼?”

“뭐? 지금 내가··· 하, 아니다. 그래 쳐보든가.”


【대체 무슨 생각하시는 거예요?! 어서 제 몸 돌려주세요!】


노헌의 재촉에도 현묵은 답하지 않고 그저 피아노를 응시했다.


손끝에 닿은 피아노의 감촉.

노헌이 어릴 적 리나의 집에서 잠깐 만진 것이 마지막이었던 건반.

그의 손가락을 현묵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세상이 고요해졌다.



오른손에서 시작된 잔잔한 선율.

왼손과 만나 이어가던 그것은 마치.

폭풍의 전조였다는 듯 숨을 한 번 들이키고는.


폭주하기 시작했다.


‘이, 이게 뭐야!’


노헌은 자신이 보고 있는 광경이 의심스러웠다.

건반 위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자신의 오른손.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베는 듯한 냉기가 현묵의 손에서 뿜어져 나왔다.


거대한 재앙을 눈앞에 마주했을 때 이런 기분일까.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의 압도감.


연주가 끝난 뒤에도 광장은 여전히 고요했다.

마치 「겨울바람」이 모든 걸 앗아간 것처럼.


“아빠! 저기 피아노 되게 잘 친다!”


정적을 깬 건 광장을 지나가던 한 아이의 목소리.

그리고 동시에.


“우와아아아아아아! 미쳤다!”

“호, 혹시 진짜 피아니스트신가요?!”

“와, 나 진짜 온몸에 소름 돋았어!”


주변 사람들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끊이질 않는 박수 속에서 현묵, 아니 노헌은.


그저 멀뚱멀뚱 서 있었다.


【확실히 이 몸은 손이 많이 굳어있네.】


어느샌가 원래 위치로 되돌아간 현묵의 혼잣말을 들으며 말이다.


“야.”


그때 갑자기 들려온 날카로운 목소리.

돌아보니 옆 반의 재은이었다.


“너 피아노 쳤었어?”


놀라움, 당황도 아닌 불만.

대체 뭐가 그리 불편한지 그녀는 아니꼬운 표정으로 노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이걸 어떻게 대답해야 해···?’


피아노를 친 건 현묵이지만, 남들이 봤을 때는 영락없이 노헌의 연주로만 보였을 터, 하는 수 없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 이리나나, 너나, 아주 끼리끼리 노는구나?”

“뭐?”


알 수 없는 말을 끝으로 홱 돌아서 친구들과 떠나는 재은.

현묵이 연주하기 전과 정반대인 태도에 노헌은 그저 황당했다.


【아직 어리구나.】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현묵.

노헌은 서둘러 시끌벅적한 관객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이거 쇼팽의 「겨울바람」이죠?! 완전 최고였어요!”

“나중에 연주회 하면 꼭 갈게요! 이름 좀 알려주세요!”

“혹시 영상 제 채널에 올려도 될까요?!”


자꾸만 달라붙는 사람들을 간신히 빠져나와 노헌은 조용히 외쳤다.


“아니, 제 몸을 뺏을 수도 있는 거였어요? 이렇게 되면 저 진짜 무당한테라도 갈 수밖에 없어요!”

【이, 이건 고의가 아니라··· 그냥 피아노를 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몸이 움직여져서!】


당황해 횡설수설하는 현묵을 다그치며 노헌은 집으로 향했다.

다음 날 무슨 일이 일어날진 상상하지 못한 채.



♪♪♪



다음 날 아침.

노헌은 평소처럼 졸린 눈을 비비며 교실에 들어섰다.

그러자.


“야야야! 이노헌!”

“아니, 너 언제부터 피아노 쳤었냐?!”

“네 영상 하루 만에 10만이야!”


모든 반 친구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뭐, 뭐?”


대체 무슨 영문 모를 소린지, 노헌은 그저 자신을 둘러싼 친구들을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너 어제 이재은 완전 개 털었잖아! 피아노로!”

“걔 오늘 봤는데 표정 엄청 썩어있던데?”


각자 한마디씩 하며 어깨를 두드려 주는 친구들.

그중 한 명이 노헌의 눈앞에 들이민 핸드폰.

화면에는 한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바로.


<전공자 압살해버리는 레전드 중학생.>


이라는 10만 조회 수의 영상이.



그리고 영상이 끝나자.



“야, 나 좀 보자?”



팔짱 낀 재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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