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피아니스트의 영혼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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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븐
작품등록일 :
2023.05.1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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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5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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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7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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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예중, 정하린

DUMMY

연주회장 안, 입구 근처.


‘산책 좀 다녀올까?’


지루함에 지친 하린이 입구를 서성이던 때였다.


“그런데도 그렇게 잘 치는구나! 그러고 보니 이름이―”

“야, 그거 부탁이나 좀 해 봐.”

“아! 알겠다고.”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들.


‘마주치기 싫었는데···.’


목소리의 주인은 하린과 같은 천예중학교의 학생들.

되도록 그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아 먼저 와있었던 참이었다.


‘어차피 중등부 시작하면 마주쳐야 하니까, 어쩔 수 없지···.’


그런 마음으로 로비에 나가려던 참이었을 터였다.


“그 오늘 참가하는 애 중에 정하린이라고 있거든?”


갑작스레 문 너머에서 언급된 자신의 이름.


‘또 시작됐구나.’


학교에서나, 콩쿨에서나, 들리는 그녀의 뒷담.

이제는 하다 못 해 화조차 나지 않았다.


“그런데?”

“혹시 그 영상처럼 하린이도 참교육 좀 시켜주면 안 될까?”

“뭐―?”


게다가 참교육이라니,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자신들 연주로는 상대가 안 되니, 다른 사람을 부른다니.


‘그럴 시간에 연습이나 더 하지.’


하린은 참교육이니 뭐니, 그런 것보단 상대방이 궁금했다.


‘누구랑 이야기하는 거지?’


남자의 목소리는 천예중 학생의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런저런 생각해 봤지만, “이 콩쿨에 참가하는 중학생 중 나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그 애는 이제 한국에 없을 텐데?’


자신의 라이벌이라 불리는 친구가 한 명 있었지만, 분명 지난달에 유학 갔다고 본인에게 들었다. 심지어 성별마저 다르니, 그 친구일 가능성은 제로.


땡―


이윽고 종이 울리고 하린은 바로 문을 열었다.

실시간으로 진행 중인 뒷담 화 현장을 피하고 싶은 마음보단 상대방이 누군지 더 궁금했기에.


“어···? 하, 하린아?”


문이 열리고 시야에 들어오는 건 같은 학교의 얼굴들과.


“·····?”


당황한 표정을 짓고 하린과 자신의 앞에 여학생을 번갈아 보는 남학생이었다.


‘아, 걔구나.’


<전공자 압살해버리는 레전드 중학생>

피아노를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자극적인 제목의 영상.

하린 또한 제목에 이끌려 시청한 기억이 있었다.


그저 영상으로 들었을 뿐이지만, 그의 연주는 마치 오랫동안 단련된 피아니스트의 것만 같았다.


‘콩쿨에선 처음 보는 거 같은데?’


그런 연주를 한다는 것은 분명 전공자일 터, 하지만 하린이 다년간의 콩쿨을 다니면서 그를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니면 유학이라도 갔다 온 건가?’


여러 의문이 들었지만, 자신의 학교 학생들이 왜 저 남자에게 부탁했는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도 안 질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하린은 대화를 나누던 둘 사이를 지나쳤다.



♪♪♪



노헌은 그저 억울했다.

갑자기 다가온 여학생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을 뿐인데.


‘왜 이렇게 된 거냐고.’


갑자기 들어온 제안.

할 거면 본인들 힘으로나 할 것이지 왜 자신에게 시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 하, 하린아?”


타이밍 좋게 로비로 나온 참교육의 당사자.

이건 누가 봐도 오해할 만한 상황이었다.


차갑게 무시한 하린이 노헌과 여학생 사이를 지나쳐 가는 순간.


노헌은 그녀와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가늘게 째려보는 하린의 눈빛.


비록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오해를 사고 싶진 않은 노헌이었다.

서둘러 무어라 해명을 하려 했지만···.


【가버렸네.】


현묵의 말대로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하린.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노헌에게 여학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 어쨌든 참교육해줄 거지?! 그런 거로 알게!”

“아니, 애초에 나는―”


콩쿨에 참가도 안 했는데···. 라는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무리로 돌아가 버린 여학생.


“뭐, 아쉽게 된 거지···.”


오해에 오해가 쌓인 이 난감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노헌은 서둘러 연주회장으로 들어갔다.


【다음 콩쿨에서 다시 보게 될 텐데, 미리 오해 풀어놓는 게 어때?】

[이따가 마주치면 꼭 이야기해볼게요.]


하지만, 노헌의 그런 다짐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바로 한 사람 때문에.



♪♪♪



휴식시간.

늦은 점심을 먹고 로비로 돌아가던 길.


“이제 곧 중등부죠?”

【그래, 중등부가 되면 재밌어질 거야.】


이제 초등부에서 남은 건 오직 6학년들뿐.

그 뒤로는 중등부와 고등부가 노헌을 기다리고 있었다.


【콩쿨에선 보통 초등부의 비율이 제일 높아.】


대략 초, 중, 고등부가 총 300명이라고 하면, 그중 200명이 초등부고, 중등부와 고등부는 각각 50명 정도였다.


【원래는 하루 만에 끝날 콩쿨이었는데 갑자기 사람이 몰려서 이틀로 나뉜 거지.】

“네? 내일도 뭐가 있어요?”

【그야 오늘은 예선이었으니 내일은 본선을 해야지.】


본선.

실력자를 가리기 위해 피아노 콩쿨 또한 다른 대회들과 마찬가지로 예선, 본선으로 나누어져 있다.


【다음 주에 네가 참가하는 콩쿨도 어디까지나 예선이니까, 너무 긴장하진 마.】


서울 드림 피아노 콩쿨.

노헌이 다음 주에 참가하게 될 콩쿨로 어디까지나 서울 지역에서 하는 예선전일 뿐, 통과하게 되더라도 전국 각지의 예선을 통과한 참가자들과 본선을 치러야만 했다.

바로 서울이 아닌, 전국 드림 피아노 콩쿨에서 말이다.


“네? 전국에서 다 온다고요?”

【그래, 그리고 노헌아 놀랄 거면 일단 예선부터 통과하고 놀라자.】

“네···.”


그렇게 잡담하며 들어간 로비.

노헌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뒤로 묶은 검은 머리칼, 웃음기 없는 눈동자, 바로 정하린이었다.


‘지금인가?’


아까 쌓인 오해를 풀기 위해 다가가던 순간.


“네가 왜 여깄어?”


바로 옆에서 끼어든 갑작스러운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노헌을 바라보고 있던 건 바로.


“설마, 나 따라 참가한 건 아니지?”


이재은이었다.


“뭐야?! 네가 왜 여깄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의 등장에 노헌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당연히 콩쿨에 참가했으니까 있겠지, 노헌아?”


팔짱을 낀 채, 째려보는 재은.

그녀를 무시하고 황급히 하린이 있던 자리를 쳐다봤지만···.


【사라졌네.】


이미 텅 비어있는 자리.

오해를 풀 기회를 잃어버린 노헌이었다.


“설마, 너도 콩쿨 참가한 거야?”

“견학 왔다! 견학!”


이제는 하다못해 오해를 푸는 것마저 방해하는 재은.

노헌의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럴 시간에 연습이나 하지? 견학은 무슨 견학이야?”

“그러는 너도 어차피 예선부터 떨어질 텐데 뭐하러 나왔냐?”


재은과 노헌이 콩쿨 내기를 한 지, 벌써 3주.

그동안 둘은 마주칠 때마다 불같이 다퉜다.


재은은 항상 노헌만 보면 못 잡아먹을 듯 달려들었고, 노헌은 참지 않고 받아쳤다.


“이제 콩쿨 재개할 예정이니 잡담은 밖에 나가서 해주시겠어요?”


그리고 항상 마무리는 제3 자의 개입으로 끝이 나곤 했다.


결국, 로비 밖으로 쫓겨난 노헌과 재은.


“근데 너 정하린이랑 아는 사이야?”


그녀의 입에서 뜬금없는 이름이 나왔다.


“아니, 아는 사이는 아닌데··· 유명한 애야?”


노헌이 질문하자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는 재은.


“야, 서울에서 피아노 친다는 애가 정하린을 모른다고?”

“모를 수도 있지···.”


애초에 노헌은 전공자가 아니었다.

그저 1달 전까지만 해도 피아노와는 관련 없는 학생이었을 뿐.

물론 그 사실을 재은이 알 리는 없었다.


“심지어 너 이리나랑 친하잖아, 그럼 모를 수가 없는데?”

“뭐? 갑자기 리나가··· 아!”


번뜩 떠오르는 기억.


- “오늘도 하린이 만났는데 이번엔 내가 졌어. 아 좀만 더 잘 칠걸!” -

- “이번에는 내가 하린이 제치고 전체대상 받았다~” -


리나가 콩쿨에만 나갔다 오면 항상 언급하는 이름.

즉 정하린은 흔히 말하는 라이벌이란 존재였다.


“얘네 둘이 맨날 상을 독차지하니까, 이젠 같은 콩쿨 참가하기만 해도 짜증만 나.”


투덜대며 불만을 토로하는 재은.

노헌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게 왜 리나랑 정하린 탓이냐? 상을 타고 싶으면 노력을 더 하던지.”

“하, 뭐? 노력? 내가 안 했겠냐? 아 맞아, 너도 그 둘이랑 똑같은 부류였지? 그래, 너한테 이런 말을 해서 뭐하겠냐.”


순간 정색한 그녀는 이내 노헌을 지나쳐 연주회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니,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상을 못 탔으면 그냥 아쉽게 된 거지하고 다음에 더 노력하면 되잖아.”


그렇게 노헌도 연주회장, 처음 앉았던 자리로 향했다.



♪♪♪



“곧 중등부가 시작될 예정이오니, 200번부터 220번은 대기실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어느덧 기다리고 기다리던 중등부.

안내 방송이 끝나길 무섭게 관객석에 앉아있던 중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나가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드문드문 보였는데 로비에서 봤던 천예중학교 무리의 일원들이었다.


‘아, 벌써 나오나 보네?’


마지막, 홀로 연주회장을 나서는 한 여학생.

정하린이었다.


【잘 봐둬, 연주를 감상하는 것도 연습이니까.】


현묵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노헌은 무대 위에 시선을 고정했다.


“제발, 그 애, 뒤 순서만 아니길···!”

“다른 애들은 몰라도, 그 애는 피해야지.”


중등부가 대기하는 동안, 웅성거리는 회장.

참가자들의 선생님이나 부모님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하나 같이 똑같은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애.

바로 정하린을 일컫는 말이었다.


【너도 다음 주에 콩쿨에 나가보면 알겠지만, 순서도 참 중요하거든.】


연주도 연주였지만, 앞 순서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콩쿨 결과가 좌지우지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바로 앞사람의 연주가 굉장히 형편없었다면 상대적으로 긴장을 덜 할 수도 있겠지만, 만일 이번 콩쿨 우승 후보라면?


[긴장돼서 미쳐버릴 거 같은데요?]

【그렇지, 그리고 또한 앞사람과 비교가 될 수도 있어.】


아무리 콩쿨 심사를 공정하게 하더라도 앞사람과 실력의 격차가 크다 보면 평범한 실력이라도 상대적으로 못 치는 것처럼 들릴 수가 있었다.


【그러면 이제 점수를 적게 받는 거지.】


어찌했든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선, 최대한 앞사람이 비슷한 실력이나 떨어지는 실력이길 빌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무리 앞사람이 우승 후보더라도 연주로 꿀리지 않으면 상관없지만 말이야.】


현묵의 말이 끝나고, 어느덧 정적으로 가득 찬 연주회장.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가 긴장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무대 위, 전광판을.


여전히 전광판에 쓰여 있는 번호는 199번.

초등부의 마지막 순서였다.

그렇다면 과연 200번, 중등부의 첫 순서, 가장 부담스러운 그 자리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


모두가 떨리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200번으로 변하는 전광판의 숫자.

그와 동시에.


또각또각―


무대 위로 들어서는 한 여학생.

마치 부담감 따위는 전혀 없다는 듯 당당한 발걸음.

바로 정하린이었다.


‘와, 처음부터 우승 후보가 나와버리다니.’


콩쿨에 참가하지 않은 노헌으로선 굉장히 흥미진진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뿐.


피아노 앞에 앉아 숨을 가다듬는 하린.

곧이어 그녀의 손끝에서 시작되는 잔잔한 선율.


순간, 노헌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설마?】


재은과 연관되게 된 계기.

노헌이 유명해지게 된 계기.

처음으로 피아노를 접하게 된 계기.



쇼팽의 「겨울바람」.



그것이 하린의 손에서 재현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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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예중, 정하린 +2 23.05.17 217 12 11쪽
7 콩쿨 견학 +3 23.05.16 220 9 13쪽
6 뒷걸음질 +1 23.05.15 228 12 12쪽
5 천예고등학교 +1 23.05.14 235 10 12쪽
4 88명의 친구 +2 23.05.13 259 11 12쪽
3 시작의 아라베스크 +1 23.05.12 318 13 12쪽
2 피아니스트와 중학생 +1 23.05.11 396 10 12쪽
1 하늘에서 떨어진 피아니스트 +2 23.05.10 687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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