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추풍검 - 5분 후 갈라져 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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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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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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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0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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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상발도공 조황현 1

DUMMY

나는 칠 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남매 전원이 위아래로 2살 차이가 났는데, 나는 15살이니까 2살씩 오르내리면 나머지 형제들의 나이를 간단히 유추할 수 있었다.


내가 속한 이가살수문李家殺手門에는 뛰어난 살수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우리 칠 남매는 특히 뛰어났다.


그것은 모두 문주門主인 아버지의 뛰어난 교육 덕택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천 가지의 살법殺法을 꿰고 있다고 하여, 구무림 사람들로부터 '천수상좌千手上座'라는 별호로 불리곤 하셨는데, 칠 남매는 각자 아버지께 가르침을 받았으며, 나 또한 일대일로 그분께 살법을 배웠다.


내가 지금보다 어렸을 적에, 내 무공인 월하추풍인의 개론을 배울 때 겪었던 일화 중 인상 깊은 한 가지가 있다.


그날 아버지께서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하얀 도복을 차려입고 계셨다.


허리춤에는 칼 한 자루를 차고 계셨는데, 나를 가르치실 때는 대부분 그런 모습이셨다.


아버지께서는 움직이지 않거나 죽은 생물, 사물을 상대로는 절대로 비법을 행하지 않으셨다.


의미가 없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그래서 연줄을 통해 어디선가 공수해 온 죄수를 상대로 시연이 행해지곤 했다.


그날 아버지께선 마당 정중앙에 앉아계셨고, 죄수에게 자신의 앞을 뛰어가도록 지시하셨다.


단 한 번, 단 한 번만 아버지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으면 그 즉시 해방이었다.


죄수는 자유를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어갔고, 아버지의 앞을 지나쳐갔다.


그 순간,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분명히 보았다.


아버지께서 앉은 채로, 허리춤에 찬 칼을 단숨에 뽑고 집어넣으시는 모습을.


당시엔 실력이 미천하여 베는 것은 보지 못했지만, 어쨌든 아버지였으니 그를 베는 데에 성공했음은 자명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죄수는 쓰러지지 않고 계속 달려 나갔다.


마치 공격이 빗나간 듯한 모양새였고, 죄수도 그리 생각했는지 결승선을 지나는 마라톤 선수처럼 두 팔 벌려 기뻐했다.


"야하아! 살았다! 살았다고!"


그가 그리 외친 그 순간이었다.


그는 길에 있던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걸린 쪽의 몸 절반만 말이다.


죄수는 몸이 반만 남았고, 이내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과연 이것을 즉사라고 불러야 할까.


피와 적막으로 가득 찬 마당에서, 나는 말과 넋을 잃었다.


"팔정염불八丁念佛."


그런 내 정신을 아버지의 한마디가 일깨웠다.


"지극히 빠르고 예리한 검에 맞아, 자신이 죽은 것도 모르고 먼 거리를 걸어가서야 죽는다는 뜻이다."


아버지께선 내게 마주 보고 앉으라 하셨고, 나는 그리 하였다.


아버지의 가르침이 시작되었다.


"아까 내가 발도술拔刀術로 적을 제압한 것을 보았느냐."


"네."


"세간에는 발도술이 초고속의 쾌검이라 생각하는 자들이 많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으로, 본디 발도술이란 그저 검을 뽑는 기술일 뿐이다. 기껏해야 상대방이 눈치를 못 챌 때, 기습적으로 검을 뽑아 베는 암살법으로나 쓰이지. 여기까지 이해하겠느냐?"


"예, 아버지."


"그것은 바로 '의식의 허점'을 노리고 행하는 발도술이다. 누구나 배우고 쓸 수 있지.


월아, 너는 우리 이가살수문의 검객으로서, 그런 범부들의 발도술을 익히되, 결코 그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너는 '의식의 허점'을 뛰어넘어, '상식의 허점'까지 베어낼 수 있는 발도술을 다루어야 한다.


월하추풍인은 그 둘을 적절히 섞은 무공이다. 뼈를 깎는 심정으로 그것을 단련하면, 어느 쪽에든 능히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예, 아버지."


아버지,


지금 생각하면 내게 살수의 업을 지운 그가 그리 달갑진 않았다.


그렇지만 그의 무공 자체는 대단했으며, 살아 있는 역사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당시의 나는 진심 어린 존경을 담아 아버지께 고개를 조아렸다.


그때쯤 궁금한 것이 하나 떠올랐던 내가 아버지께 여쭈었다.


"한 가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말해보거라."


"의식의 허점을 노리고 행하는 발도술은 누구나 쓸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랬지."


"그렇다면 상식의 허점을 노리고 행하는 발도술은 누가 쓸 수 있는 것입니까? 또 그것은 의식과 상식 양쪽의 허점을 노리는 월하추풍인의 발도술보다도 강력한 것입니까?"


"으음."


그 질문에 아버지께선 낮은 신음을 뽑아내시며, 전례 없이 길게 고민하셨다.


장고長考가 끝나고, 아버지께서 입을 여셨다.


"해보기 전엔 모른다··· 라고 해야겠지."


아버지께선 한층 근엄해진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둘 다 지극히 희귀하며 강력한 검법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어느 쪽이 더 어렵냐고 묻는다면, 그 말에는 단연코 답할 수 있지.


오직 상식의 허점만을 노리고 발하는 발도술은, 하늘이 점지占指해준 재능이 없고선 감히 넘볼 수 없는 경지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인간을, 살면서 딱 한 번 보았다."


***


"월아아아악!"


누군가가 내 등짝을 철썩 때렸다.


아니나 다를까 둘째 형이었다.


우리는 지금 어느 마을의 저녁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아니, 겉으로만 즐기는 것이고 실은 암살 대상을 찾으러 온 것이었지만.


"여기 맛있는 거 많이 보이네."


그런데 둘째 형은 마냥 축제가 즐거워 보였다.


"월아, 우리 내기 하나 할까?"


그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한 움큼 집어 들었다.


손을 펼치니, 그 안에 쇠구슬 5개가 있었다.


"우리 공기놀이 안 한 지 한참 됐지? 오랜만에 해볼까? 지는 사람이 오늘 밥 다 쏘기~."


그는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멋대로 놀이를 시작했다.


답해줄 필요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하는 것은 평범한 공기놀이가 아니었으니까.


둘째 형은 바닥에 공기를 뿌리지 않고, 하늘에다가 던졌다.


손에 쥔 1개를 제외한 4개의 쇠구슬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저녁이었기에 구슬은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둘째 형은 손에 쥐고 있던 구슬을 아래로 떨어뜨리고, 바닥에 닿기 전 그것을 낚아채며 공중에서 떨어지던 구슬을 하나 받아 쥐었다.


그리고 또 구슬을 떨어뜨리고 즉시 낚아채며 다음에 떨어지던 구슬 하나를 받아 쥐었다.


그 과정을 2번 더 반복하여, 총 4개의 구슬을 한 개씩 순차적으로 받아내었다.


일반 공기놀이와는 정반대였다. 하늘에 공기를 던진 뒤 바닥에 흩뿌려진 공기와 함께 잡아내는 그것 말이다.


하늘에 4개의 공기를 한꺼번에 던지고 절차에 따라 하나씩 받아내어야 하는데, 이걸 해내려면 4개의 공기를 각기 다른 힘으로 던져야 하고 손도 굉장히 빨라야 했다.


"자, 1단계 깼고, 다음 2단계."


그는 또 한 번 하늘 높이 구슬을 던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2개씩 한꺼번에 받아내었다.


구슬이 2개씩 짝을 지어 거의 동시에 떨어진 것이다.


그다음은 3단계였고, 그가 던진 구슬은 3개, 1개로 나누어져 떨어졌다.


4단계에선 4개의 구슬 모두가 뭉쳐서 떨어졌다.


"자, 마지막 5단계 간다."


그가 아래로 손을 펼치고, 5개의 쇠구슬이 떨어져 내렸다.


그는 즉시 손을 휘둘러 5개를 모두 낚아채고, 동시에 하늘로 던졌다.


쇠구슬은 5개로 뭉쳐 떨어지며, 그의 손등 위에 정확히 안착했다.


그러고는 그것을 다시 던져 한 손으로 잡아냈다.


공기 중에서 행하는 공기놀이, 이른바 공기공기놀이였다.


"어때, 도전해보실?"


"기권."


이것은 세상에서 둘째 형만이 할 수 있는 기예였다.


"짜아식 근성이 없네. 처발리더라도 도전은 해봐야 할 것 아니야."


"나는 형과 재능이 달라. 구슬 놀이의 재능 말이야."


"잘 아네!"


둘째 형이 내게 어깨동무를 해왔다.


"공기놀이뿐만이 아니야. 너는 내게 아무것도 이길 수 없어. 싸움도, 공부도, 연애도."


그는 주변의 포장마차들을 주욱 가리켰다.


"그러니까 내가 네 형님인 거야. 형에게 뭐라도 배우려면 조공을 바쳐야 하는 법이란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버지와는 달랐다.


둘째 형에게서 배우고 싶은 것 따윈 단 한 가지도 없었다.


내가 살면서 그에게 배운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손윗사람에게 반항하지 말라.


둘째 형은 주변을 돌아보다가,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다.


"야, 이거 뭐냐."


"응?"


"주변 좀 봐봐. 커플이 지천에 쫙 깔렸는데, 우린 남자 둘이 뭐 하는 거냐고."


"···."


"야, 쪽팔려서 안 되겠다. 따로 행동하자."


"형, 하지만···!"


"입 닥쳐! 목표물이나 똑바로 처리해."


그가 내게 삿대질했다.


"나는 여자 꼬시러 간다."


"형···!"


내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둘째 형은 인파 속으로 사라져갔다.


"실패하면 죽인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서.


나는 또 혼자가 되어,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늘 이랬다.


나는 둘째 형과 2인조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의 임무는 삼녀 노루아 세력의 인사들을 제거하는 것.


암살은 대부분 내가 맡는다.


본래라면 경험이 더 많은 둘째 형이 암살을 담당해야겠지만, 둘째 형은 귀찮다는 핑계로 내게 암살을 맡기고 본인은 놀러만 다녔다.


그 대신 뒤처리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었다.


한편, 이번 암살 대상은 이 마을의 동장으로, 노루아에게 자금과 인재를 대주는 살수 출신의 인사였다.


그는 오늘 축제에 와서 연설을 펼칠 예정이었으며,


살수 주제에 지나치게 얼굴을 내놓고 다니면 죽는다.


이 사실을 오늘 배울 예정이기도 했다.


나는 근처에서 조개구이와 오징어튀김으로 배를 채우고, 동장이 연설할 광장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들고 있었기에, 한 치의 부자연스러움도 없이 무리 속에 끼어들 수 있었다.


여기서 기다리다가 연설이 무르익으면 동장을 처치한다.


암살에 쓸 도구는 3호검 초풍. 유예기간은 최대치인 5분으로 맞춘다.


잠시 후, 동장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는 장황한 인사를 하고, 더 장황한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자리가 점점 차고, 내가 앉아 있던 자리는 비좁아졌다.


"어흠!"


그런 와중에 머리 벗겨진 노인 하나가 내 옆에 딱 붙어 앉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구린내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하아.'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공기를 마시는 게 괴로웠다.


'안 되겠다.'


차라리 사람이 더 모이기 전에, 움직임이 여유로운 지금 동장을 처치하고 자리를 빠져나가자고 마음먹었다.


"후우."


나는 검지에 입김을 불었다.


3호검 초풍, 발도.


그리곤 입김을 최대한 얇게 벼려내어 검지 끝에 달았다.


얇은 비늘 같은 칼날이 내 검지 위로 나풀거렸다.


공기의 칼날이므로 일반적으로는 인지할 수 없다.


기를 탐지할 수 있다면 초풍의 존재를 대략 알아챌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사람이 많다면 힘들다.


눈으로 보아야지만 확실하게 대비할 수 있다.


그러나 기를 눈으로 보는 것도 공감각 훈련이라는 것을 따로 받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공감각 훈련은 타고난 감각을 갖고 있지 않은 한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어려운 것이었다.


따라서 제아무리 살수 출신이라 하더라도, 노루아의 끄나풀 중 하나라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초풍의 존재를 눈치채고 막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눈치 못 챌 경우를 확률로 따지자면 9할 9푼 9리 정도?


이 자리에 1000명이 있다 치면 그중 1명 정도만이 알아챌까 말까 할 물건이었다.


만약에, 만에 하나 그런 존재가 있다 치더라도 문제없었다.


설마 초풍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에 있진 않을 테니까.


하지만, 초풍을 날릴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내 검지를 잡아챘다.


바로 옆에서 구린내를 풍기던 영감이었다.


이날, 나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1리의 확률에 찔리는 것이,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현상과 마주치는 것이 얼마나 소름 끼치는 일인지.


"자네가 이가살수문의 이월인가?"


노인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잠깐 밖에서 얘기 좀 나눌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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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작명사 협회 1 +1 23.09.22 57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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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천마신공 파비야 1 +1 23.09.18 46 2 13쪽
95 발도문 5 23.09.15 3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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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발도문 3 23.09.12 42 1 12쪽
92 발도문 2 23.09.11 4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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