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추풍검 - 5분 후 갈라져 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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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렉스
작품등록일 :
2023.05.1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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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2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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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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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하품하생下品下生 1

DUMMY

아버지. 아버지께선 말씀하셨죠.


선택받은 소수는 모든 것을 갖게 됨에 감사하나, 그렇지 않은 다수는 하나라도 가짐에 감사해야 하노라고.


저는 아름다움과 강함 모두를 가질 수는 없노라고.


또래 아이들처럼 가꾸고 교제하며 살아갈 수는 없노라고.


거룩한 밤에 이성과 몸을 섞을 순 없노라고.


그러나 무를 추구하는 자들에게 있어서는 강함이야말로 아름다움이니,


이 무림인의 시대에서 저는 실로 강하면서 아름다운 존재이노라고.


-20XX년 12월 24일 이가살수문 전창신全槍身 이원


***


400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북청라IC, 북인천IC를 거쳐 130번 국도에 올라탄 뒤 서쪽으로, 영종대교로.


월미도에서 영종도로 가는 동안 지나간 길이었다.


영종대교를 타고 가는 동안 오른쪽 아래로 펼쳐진 갯벌을 볼 수 있었다.


이때쯤 아침 해가 뜨기 시작하여 갯벌에 황금빛이 스며드는 모습도 보였다. 역시나 장관이었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루아에게 쪽잠이라도 자라고 해두긴 했지만, 거리가 생각보다 짧아 여기까지 오는 데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방해꾼이 있었다.


바이크 엔진 소리가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아침 안개 너머로 드러난 그 모습은, 검은 가죽 재킷을 입은 폭주족들.


그들의 등짝에는 殺活(살활)이라는 글귀가 붉은색으로 쓰여 있었고, 손에는 쇠 파이프가 들려 있었다.


폭주족 두 사람이 내 좌우 차선으로 나란히 섰고, 오른쪽에 있던 사람이 쇠 파이프를 땅에 끌어 불똥을 튀기며, 서서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제 허름한 신세가 안 보이십니까."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 바이크를 보십시오. 군데군데 박살 난 꼴이 처참하지 않습니까? 꼴이 이러한데 무슨 부품을 더 떼어가 어린 청소년들을 길바닥에 나앉게 하려는 것입니까?"


내 능변에 그가 다른 폭주족과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러더니 입을 열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새끼 뭐라는 거야?"


그는 인상을 쓰며 쇠 파이프를 들이밀었다.


"여긴 못 지나간다."


"왜죠?"


"으으~ 여, 역시 보조석에 2명이 타고 있어서 시비 거는 게 분명해요~."


"그럴 리가 없잖아."


루아가 송하에게 딴지를 걸었다.


"이 도로는 우리가 점거하고 있다. 그러니까 머리 깨지기 전에 돌아가라, 아이들아!"


폭주족이 으름장을 놓았지만, 당연히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저희는 해궁사라는 절에 들르러 왔을 뿐입니다. 보내주시지요."


"해궁사?"


폭주족이 당황하여 벙찐 표정을 짓더니, 아까보다 더욱 성난 듯이 언성을 높였다.


"그러면 더욱 못 보내주지. 거기만은 절대로 못 보낸다."


"왜죠?"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라! 셋을 셀 테니까 그 전에 당장 돌아가라."


"하, 하지만 여긴 중앙 분리대 때문에 방향을 못 바꾸는걸요~!"


송하가 우는소리를 했지만, 폭주족은 무시하고 숫자를 세었다.


"하나."


물론 물러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둘."


송하는 안절부절못하는데, 나와 루아는 무덤덤하게 있었다.


"셋."


폭주족의 얼굴이 분노에 일그러졌다.


"아미타불!"


그가 해괴한 기합과 함께 쇠 파이프를 휘둘렀다.


그리고 그것을 루아가 손으로 잡아채어 빼앗았다.


"억···!"


루아는 쇠 파이프로 폭주족의 얼굴을 후려쳤고, 그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어두운 도로 너머로 쓰러져 갔다.


"아미타불!"


왼쪽에서 가만히 쫓아오던 폭주족이 소리를 빽 지르며 덤벼들었다.


루아는 들고 있던 쇠 파이프를 던져 그의 얼굴을 맞추었고, 그 폭주족 또한 쓰러져서 데굴데굴 굴렀다.


이제 차선은 한적해졌고, 우리는 무사히 영종도로 들어올 수 있었다.


금산IC에서 왼쪽으로 빠져 자연대로로 들어섰다. 영종도 내부를 가로지르는 도로였다.


이 도로를 조금 달리다가 두 번째로 나오는 교차로에서 좌회전하면 된다고 송하가 말했다.


그러나 여기 주민들은 우리를 환영하지 않는 듯했다.


아니, 그들을 주민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까 영종대로에서 보았던 가죽 재킷의 폭주족들이 또 옆 차선으로 따라붙었고, 그 수는 계속 늘어갔다.


게다가 교차로에 다다를 즈음에는 사방에서 폭주족이 나타나 우리를 완전히 둘러쌀 정도가 되어, 나는 바이크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폭주족들이 사방에서 헤드라이트 불빛을 잔뜩 뿌리며 우리를 비추었다.


잠시 주변을 돌아보며 분위기를 살피는데, 무리에서 한 명의 폭주족이 앞으로 나왔다.


잔디처럼 깎은 머리에 지도 모양으로 스크래치를 낸 폭주족이었다.


"우리는 살활회殺滑會다."


폭주족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그가 이마 주름을 만들며 우리를 노려보았다.


"너희가 우리 패거리 두 사람을 때려잡았다고 들었다."


"당신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죠."


"여긴 우리 구역이다."


"저희는 해궁사라는 절에 가야 합니다. 그냥 보내주시죠."


"그냥은 안 되지. 어디서 굴러들어 온 조막만 한 애새끼들이 우리 식구를 건드렸는데 그냥은 못 넘어가지."


"그냥 못 보내주면, 어떻게 보내주시려는 거죠?"


"시체로 만들어 보내주겠다."


역시나, 이렇게 될 줄 알았다.


2호검 범람 발도.


검지에 입김을 불어 범람을 뽑은 다음 폭주족 우두머리가 타고 있던 바이크에 날렸다.


범람은 바이크의 바퀴를 베었고, 그 즉시 바퀴가 터지며 차체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우두머리는 바닥에 얼굴을 꼴사납게 처박았다.


"뭐, 뭐야!"


폭주족들의 눈에는 내가 검지를 공연히 흔드니 우두머리의 바이크가 저절로 부서지는 것처럼 보였을 터다.


그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두려움에 빠져 물러나려는 자들도 있었고, 오기를 부리며 앞으로 나서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의 투지를 완전히 꺾어놓아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쇄태를 뽑고 땅이라도 부수려던 그때,


"그만둬라."


중후한 목소리와 함께, 다른 폭주족들이 거리에 나타났다.


그들의 행색은 놀라웠다.


그들은 머리를 빡빡 밀고서, 승려들이 입는 회색 적삼을 빼입고 있었다. 그냥 둘러 말할 것 없이 스님 그 자체였다. 바이크를 타고 있다는 점이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는 했지만.


"황진용, 절 근처에서 날뛰지 말라고 했을 텐데."


승려 무리의 최전방에 있던 젊은 사내가 바닥에 쓰러져 있던 살활회의 회주를 향해 일갈했다.


살활회주는 이를 악물고 일어서서는, 마찬가지로 쓰러져 있던 자기 바이크를 발로 찼다. 그리고 승려 무리의 우두머리,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절의 방장일지도 모를 그 청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성규빈, 내가 네 따까리냐?"


"절에 찾아온 손님이니 우리가 대접하겠다는 거다. 불만이면 여기서 한 판 붙던가."


성규빈이라 불린 젊은 승려가 노려보니, 살활회주는 시선을 피하며 더 이상 그에게 대들지 않았다.


"돌아가자."


그는 부하들을 이끌고 불빛을 길게 늘어뜨리며 아침 안개 너머로 사라졌다.


이제 사거리에는 우리와 젊은 승려들만이 남았다.


"해궁사에 볼일이 있다고 하셨습니까?"


성규빈이 정중한 태도로 질문 해왔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그러자 그가 따라오라면서 우리를 근방의 백운산으로 데리고 갔다.


좁은 산길을 바이크로 타고 올라가는데, 성규빈이 내 바이크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


"여기까지 오느라 큰 고생을 하신 것 같군요."


"예에, 그렇죠."


"이해해 주십시오. 저 녀석들이 가정교육을 좀 못 받았거든요.


"아아, 네."


혹시 이 바이크가 그 녀석들 때문에 망가졌다고 생각하는 걸까?


"저는 규빈 스님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저는 이월입니다."


"이월, 알겠습니다."


규빈은 통성명을 마치고선 아련한 표정으로 말했다.


"원래 저들도 우리와 한 식구였습니다. 정확히는 원래 살활회에서 함께 내지에서 활동하다가 이 섬에 들어와 스님이 된 것이죠. 그리고 저들은 다시 폭주족으로 돌아간 것이고요."


"아아."


"원래 이 산에 사시던 어느 고명한 법사님 덕에 저희가 이 섬에 정착할 수 있었는데, 저놈들은 그것도 모르고 은혜를 저버려서는···."


"그렇군요."


딱히 흥미가 생기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산을 오르다 보니 평평한 부지가 나왔는데, 그곳이 절이었다.


입구에 寺宮海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는데, 오른쪽에서 읽으면 해궁사였다.


"법사님께서 재미난 물건을 남기고 가셨는데, 한번 보시지요."


규빈이 우리를 마당에 있던 전신거울로 안내했다. 사찰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다.


전신거울의 아래에는 '삼라만보살'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는데, 규빈이 설명하기를 이는 부처가 되기 위해 수행하는 삼라만상의 생명체 모두가 보살이라는 대승불교의 교리를 표현한 작품이라고 한다.


한 사람씩 거울 앞에 섰다.


언제 잘랐는지도 모를 하늘하늘하고 덥수룩한 머리칼에, 바람을 쉽게 포착하도록 소매가 크게 만들어진 하늘색 도복. 헐렁한 바짓자락을 쑤셔 넣은 검은색 부츠.


나다, 월하추풍검 이월.


내 머리 위에는 15라는 숫자가 떠 있었다.


윤기 나는 검은 머리칼에, 구레나룻을 세로로 가로지르는 파란색 브릿지. 뒤통수 아래에 양 갈래로 묶어 내린 경단 머리. 검은 티셔츠에, 바짓단에 고무줄이 달린 칠부바지. 활동성 좋은 하얀 운동화.


아선당주 노루아의 모습.


그녀의 머리 위엔 16이라는 숫자가 떠올랐다.


신문팔이 소년을 연상시키는 갈색 빵모자, 머리끝이 갈라진 여성스러운 단발. 손목 부분이 불룩하게 부푼 하얀 긴팔 셔츠, 셔츠의 긴팔과 대비되는 갈색의 반바지. 짧은 양말과 주황색 구두.


병급 작명사 김송하의 모습.


그의 머리 위에는 20이라는 숫자가 떠올랐다.


"이 숫자는 뭐지?"


루아의 물음에, 규빈은 무엇을 의미하는 숫자 같냐고 되물었다.


"글쎄요, 나이 아닌가?"


내가 대답했다.


"맞습니다."


규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흠, 너 나보다 연하였구나."


루아가 나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얘는 그렇다 쳐도."


루아는 턱을 매만지며 송하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이게 성인 남성의 모습이라고? 너 정말 20살 맞아?"


"네, 네에, 맞는데요."


루아가 송하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피부도 부드러운데."


"으, 으으! 성희롱이에요."


송하는 금세 울상이 되었다. 나랑 5살이나 차이가 난다는 게 놀랍긴 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존대를 해줄 생각은 없다만.


한편 마당에는 연등이 잔뜩 걸려 있었는데, 사람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다.


규빈은 성규빈이라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연등을 가리키고는 다른 연등을 가리켰다.


'황진용'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는데, 이는 아까 사거리에서 만났던 살활회주의 본명이라고 규빈은 말했다.


"예전에 저와 진용이를 계도해 주셨던 법사님의 성함도 여기 있습니다."


규빈이 연등 하나를 가리켰다. '아난'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아난?"


"제 사부님 성함이에요."


송하가 끼어들었다.


"네 사부님이라고?"


"네."


송하가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보았다.


"잠깐 어디 가신 건지 지금은 안 보이시지만요."


"그게, 아난 법사님께서는 지금···."


"잠깐, 아난이라고?"


규빈이 무어라 말하려 하는 걸 루아가 끊어 먹었다.


"혹시, 범불작사梵佛作師 아난 말하는 거야?"


"네, 그렇습니다."


"맞아요."


규빈과 송하가 동시에 대답했다.


루아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왜 그래?"


내가 묻자, 루아는 흥분하며 대답했다.


"여기 있는 김송하랑은 비교도 안 되는 거물이야. 작명사 협회의 전 협회장이라고!"


"혀, 협회장?"


요컨대, 작명사들의 왕이나 다름없었던 존재가 송하의 사부렷다.


작가의말

작중에 등장하는 해궁사라는 절은 영종도에 실존하는 용궁사를 모티브로 한 절인데, 이름을 그대로 쓰기가 뭣 해서 해궁사로 바꾸었습니다.


230613 수정 사항

벽력독립창 노루아 -> 아선당주 노루아로 변경.

전신거울 앞에서 모습 묘사하는 장면에서, 이월과 송하는 별호가 수식어로 붙어 있는데 루아는 무공의 이름이 붙어 있으므로 별호인 아선당주로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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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하품하생下品下生 3 23.06.13 130 5 13쪽
26 하품하생下品下生 2 23.06.12 138 5 13쪽
» 하품하생下品下生 1 23.06.09 145 5 12쪽
24 쟁탈전 삼參 - 종언과 회자정리 +2 23.06.08 148 5 13쪽
23 쟁탈전 삼參 - 백살존과 백살존 23.06.07 150 5 13쪽
22 무엇을 위해 바람은 부는가 3 +2 23.06.06 153 7 15쪽
21 무엇을 위해 바람은 부는가 2 +1 23.06.05 168 6 11쪽
20 무엇을 위해 바람은 부는가 1 23.06.02 154 8 13쪽
19 쟁탈전 이貳 - 원공수라검 원지원 2 23.06.01 162 5 13쪽
18 쟁탈전 이貳 - 원공수라검 원지원 1 23.05.31 183 8 14쪽
17 쟁탈전 일壹 - 정주폭렬공 류지열 2 +1 23.05.30 229 7 14쪽
16 쟁탈전 일壹 - 정주폭렬공 류지열 1 +2 23.05.29 235 12 14쪽
15 병급 작명공 김송하 2 23.05.26 252 13 14쪽
14 병급 작명공 김송하 1 23.05.25 303 14 16쪽
13 열식탄지공 이열 3 +3 23.05.24 344 17 13쪽
12 열식탄지공 이열 2 23.05.23 336 14 12쪽
11 열식탄지공 이열 1 +2 23.05.22 369 16 13쪽
10 벽력독립창 노루아 2 +2 23.05.19 357 19 10쪽
9 벽력독립창 노루아 1 23.05.18 351 21 11쪽
8 석산검 진림 2 +1 23.05.17 356 19 13쪽
7 석산검 진림 1 +1 23.05.16 385 20 11쪽
6 환림비검 최서용 2 23.05.15 444 25 16쪽
5 환림비검 최서용 1 +3 23.05.12 520 27 11쪽
4 만상발도공 조황현 2 23.05.11 542 32 10쪽
3 만상발도공 조황현 1 +1 23.05.10 649 34 12쪽
2 문둥검 문영화 +5 23.05.10 902 38 13쪽
1 이십사수매화검 천추강 +7 23.05.10 1,616 4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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