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자 출세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당근파
작품등록일 :
2023.05.10 23:13
최근연재일 :
2024.09.14 13:02
연재수 :
244 회
조회수 :
654,319
추천수 :
5,944
글자수 :
1,577,304

작성
23.08.08 00:00
조회
3,188
추천
22
글자
18쪽

92화 양호채 (2)

DUMMY

묵운 사마의와 곽하민은 주루의 문을 여는 유시가 될 때까지, 그동안 순우현에서 벌어진 많은 일들을 이야기하고 들었다. 두 사람이 객잔에 머무는 동안 객잔을 드나들며 살피는 자들이 있었지만, 두 사람 가까이 다가서진 않았기에 그대로 두었다.


재당주 목영천은 수상한 놈이 순우현에 들었다는 보고를 본채에 전했다. 물론 자신이 본 사마의의 무공이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라는 말도 함께 알렸다. 그리고는 소소 객잔의 점소이가 들은 대로 머지않아 춘일루에 든다 전하자, 미리 춘일루로 와 자리하고 졸개들에게 혹시라도 달아나는지 살피게 했다.


"당주님,

놈들이 움직였습니다."


"어디로 움직였다는 말이냐?"


"아! 그건. 바로 가 알아보겠습니다."


목영천은 두 사람이 함께 움직였다는 말에 성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라 여기고, 그렇다면 알고 있던 대로 이곳 춘일루로 오는 것이라 여겼다.


"산채에서는 아직 소식이 없느냐?"


"예, 당주님.

하지만 순번대로라면 이번에는 적당이 나오지 싶습니다."


'제법 강해 보이기는 했다만 고작 한 놈이니 적당주 혈랑도 피대경이라면 충분하겠지.'


"피 당주께서도 나오신다 하더냐?"


"젓가락으로 도를 튕겨 냈다 전했으니 나오시지 않으시겠는지요?"


"이놈이나 저놈이나 말도 바로 전하지들 못하니."


졸개는 재당주 목영천이 너무 겁이 많다 여겨졌다. 비록 대감도를 젓가락으로 튕겨 내긴 했지만, 그 정도의 무공은 채주나 부채주가 아니라 오 당의 당주들이라면 모두 해내리라 여겨졌다.


"당주님,

주루에 나와 있는 형제들만 해도 삼십이 넘습니다. 적당 형제들이 모두 내려오지 않는다 한들 그깟 놈 하나쯤이야 무슨 문제이겠습니까?"


"이놈아 내일까지 네놈의 목이 붙어 있게 하려거든 그놈 가까이 다가서지 말거라, 그나마 네놈이 셈을 할 줄 알고 장부를 보니 이르는 말이다."


"당주님,

그놈이 그리 강합니까?"


"내공을 제대로 익힌 놈이 분명하다."


졸개는 양호채의 당주들 가운데 목 당주의 지략이 높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재당주 목영천이 하는 말을 흘려듣지 못했다.


"당주님,

그럼 소인은 산채로 올라가 있을까요?"


"이런 놈을 보겠나, 지금 네놈만 달아나겠다는 말이더냐?"


"죽지 말라시지 않으셨습니까?"


"기다리거라, 놈들을 적당주에게 넘기고 가야 한다."




묵운 사마의와 곽하민이 객잔을 나와 시전 거리를 지나고 있는데, 청아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사마의가 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자 곽하민이 말했다.


"노래를 파는 아이입니다. 조실부모하고 조부를 모시고 살아가는데, 얼굴이 반반하니 양호채 놈들이 데려가 시중을 들게 하려 했지요. 수차에 걸쳐 조부를 모셔야 한다 거절해도 소용이 없자, 스스로 얼굴을 망치고 저리 노래로 생계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조손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 몇이, 동전 몇 개를 던져 주는 것을 본 사마의가 다가서려 하자, 곽하민이 말리며 말을 이어 갔다.


"당장 호구지책을 마련해 주시는 것도 인지상정이지만, 돕지 않으시는 것이 오히려 저들을 돕는 일입니다. 은자를 내주셔도 저들 손에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양호채 놈들이 구걸한 은자마저 빼앗는다는 말씀이시오?"


"그렇습니다."


"근처에 없는 듯싶소이다만?"


곽하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보이는 동전 몇 닢이야 상관하지 않더라도, 그나마 많이 쌓이면 오히려 모두 빼앗기고 말지요. 은자라도 내주시게 되면 아마 모르긴 해도 핑계 삼아 속살까지 뒤지지 않겠습니까?"


묵운 사마의의 표정이 한껏 굳어졌다. 곽하민의 말이 모두 사실이 아니라 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기에, 양호채에 대한 묵운 사마의의 분노는 커져만 갔다.


"이곳 사람인 게요?"


"어디서 왔든지 나가지 못하니 이곳 사람이지요."


"곽씨 세가에 들이지도 못하는 것이오?"


"저들뿐이 아닙니다. 놈들의 눈치도 살펴야 하고요."


"말씀하시기를 양호채가 곽씨 세가를 건드리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다툼이 일면 놈들에게도 피해가 크다 하시지 않으셨소이까?"


"오해가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물론 본가에도 호원 무인들이 있기는 합니다. 또한 이곳에 세가를 이루고 있는 많은 가문에도 몇몇 호위들이 있고요. 그들을 모두 움직이고 멸문을 각오한다면야 어느 정도 피해를 주겠지요.


놈들은 오백에 달하고 우리는 모두 모아야 오십을 넘지 못합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놈들의 무공이라 해봐야, 몇몇을 제하고 나면 각다귀들과 다를 것 없지만, 오 당을 차지하고 있는 자들의 무공은 우리들로서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놈들만 없애면 양호채를 밀어낼 수 있는 것이오?"


"어디까지를 말씀하시는지는 모르나 오 당의 당주들이 없다면 이런 지경은 아니겠지요."


"지현과 호형호제한다시지 않았소이까? 놈들이 사라진들 지현의 횡포가 사라지겠소이까?"


"그렇다고 관을 상대로 어쩌겠습니까? 다만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심정입니다."


"주루의 운영을 놈들이 하고 있다면 주루에 가면 놈들이 있겠구려?"


"걱정되십니까? 목 당주가 대협을 살폈으니 오 당 가운데 한 곳은 산을 내려왔을 겁니다."


묵운 사마의는 양호채 무리가 오백이라 했으니 그중 한 곳이면 백은 되지 싶었다. 시전을 지나던 놈들이 모두 각다귀 수준이었으니, 당주라 한들 다를 것 없으리라 여겨져, 표정을 굳히고 기세를 펼쳐 내며 말했다.


"오 당이라···. 그중 한 곳이면 백은 되겠소이다."


곽하민은 묵운 사마의가 펼쳐 낸 기세에 놀라며 작은 희망을 본 듯 묵운 사마의를 떠봤다.


"모두 죽이시겠다는 말씀으로 들리는 것은 소생의 착각일까요?"


묵운 사마의는 곽하민의 물음에 곽하민의 표정을 살피고는 가볍게 말을 받았다.


"죽이리까?"


곽하민은 묵운 사마의의 기세를 느끼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물었다.


"가능한 일인지요?"


"그리 어렵진 않을 것 같소이다만?"


곽하민은 묵운 사마의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대답을 이어가자 가볍게 고개를 저어가며 말했다.


"생각 외로 무서운 분이셨군요?"


"그리 알고 주루로 가자신 것 아니시오?"


"······."


곽하민이 속을 읽히고 대답을 못 하자 묵운 사마의는 풀어냈던 기세를 거두며 곽하민에게 다시 물었다.


"세가의 호위 가운데 무공이 강한 분이 계시오?"


"그건 어찌 물으시는지요?"


"그렇지 않고서야 곽 공자께서 무공을 익히지도 않으셨는데, 소생의 무공이 강한지 약한지 어찌 알아보셨겠소이까?"


"호위장께서 소림의 속가이신데 육신갑을 익히셨다 하셨지요. 때때로 육신갑을 보이시며 내공과 외공의 차이가 어떠한지 말씀이 계셨습니다."


양호채 무리가 무시하지 못할 수준의 육신갑을 익힌 듯싶어, 묵운 사마의는 조금 놀랍다는 듯 곽하민에게 물었다.


"육신갑을 익힌 호위라. 널리 알려진 무공이나 속가에 전하기는 쉽지 않은 무공일진대, 그분께도 사연이 있으신 듯싶소이다."


"사연이 없고서야 어찌 이리 궁벽한 곳까지 드셨겠습니까?"


"떠나기 전에 한번 만나 보고 싶소이다."


"뭐 어려운 일은 아니니 그리하시지요."


성이나 부의 크고 화려한 주루들과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이 층으로 지어진 주루는 나름 잘 정돈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춘일루에 들어서자 점소이로 보이는 놈들이 두 사람을 힐금거렸고, 점소이들과는 달리 총관인 듯한 사람이 곽하민을 반기며 말했다.


"오랜만이십니다."


"귀하신 분을 뵙게 되어 모시고 왔으니 장 총관께서 살펴 주시게."


"그렇지 않아도 목 당주께서 두 분이 오실 거란 말씀이 계셨습니다."


"목 당주는?"


"잠시 전까지 기다리다 자리를 피하신 듯싶습니다."


"산에서는 누가 온다 못 들었는가?"


"적당주가 오는 모양입니다."


"적당주."


곽하민은 우려하는 표정으로 묵운 사마의를 바라보며 말했다.


"혈랑도 피대경이라는 자입니다. 아주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자인데, 도를 쓰는 것은 보지 못했어도 혈랑도에 베이면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간다 들었습니다."


사마의는 곽하민의 우려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들어가십시다. 주루에 왔으면 가기를 봐야지, 냄새나는 놈들을 거론해서야 되겠소이까?"


곽하민이 우려를 떨치려는 듯 크게 웃어 보이며 답했다.


"그렇지요. 주루에 들었으니 미기를 품에 안고 가기들의 노래를 들어야지요."


곽하민이 앞서자 장 총관이 서둘러 움직이며 지시하기 시작했다. 곽하민은 점소이의 안내도 없이 이 층으로 오르더니 한 곳을 열고 안으로 들었다. 미리 준비한 것인지 차려진 음식들이 화려하게 펼쳐져 있었고,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악사의 연주에 따라 가기가 노래를 시작했다.


묵운 사마의는 영주 설가장을 나선 이후, 객잔보다 주루를 더 많이 들렸기에 잠시 살펴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가기가 노래 한 곡을 마치기도 전에 기녀들이 들어왔다. 장 총관이 뭐라 했는지 모르나, 곽하민의 곁에는 청기로 보이는 기녀들이 자리했고, 묵운 사마의 양옆으로 홍기들이 몸을 가리던 장옷을 내던지고, 입지 않은 것만 못한 나삼 차림의 헐벗은 몸을 기대 왔다.


묵운 사마의는 오늘 밤 느긋이 즐기는 것은 불가했기에, 품에서 전낭을 꺼내 들고 늙은 악사와 가기를 먼저 불렀다.


"일이 생기거든 지체하지 말고 피하거라. 그러라고 미리 주는 것이니 명심해야 할 것이야."


묵운 사마의는 악사에게 은자 닷 냥을 내주고 또 가기에게도 닷 냥을 내줬다. 그 모습을 지켜본 기녀들이 온 힘을 다해 달라붙자 어깨를 흔들어 떨구고 은자 닷 냥씩을 내주며 말했다.


"이것은 잠시 노는 값이다. 만약 시간이 된다면 다시 내줄 것이니 그리 알고, 너희들도 일이 생기면 지체 말고 피하거라."


"예, 나으리."


두 기녀가 코맹맹이 소리로 대답하자, 사마의는 곽하민 곁에 앉은 청기들에게도 똑같이 내주며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만에 하나 늦게 피하다 피해를 입을까 염려한 때문이었지만, 기녀들은 그런 일이 자주 있었는지 그리 심각하게 여기는 것 같진 않았다.


술잔이 돌고 가기의 노랫소리가 연회장을 달궈 갔다. 선금을 받은 기녀들은 나름의 성의를 보이려는지, 잠시도 몸을 가만히 두지 않고 비벼 대며 안주를 먹이고 잔을 채워 냈다. 곽하민은 대범한 척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공연한 일을 벌인 것인가?'


'도를 튕겨 낸 것으로 모자라지 않아야 할 터인데.'


'호원장님의 말씀으로 그 정도의 무공이면 절정이라 하셨는데···.'


사마의가 곽하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그리 안절부절못하시려면 지금이라도 나가시오."


곽하민은 부끄러운지 얼굴이 붉어졌지만,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 나간다면 살아도 산목숨이 아닐 것입니다."


"하면 묻겠소이다. 목 당주 열이면 그 뭐냐 적당주를 이기겠소이까?"


목 당주 정도의 무인 열이면 온다는 적당주를 이겨 내겠느냐 묻는 말에 곽하민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이겨 낼 겁니다."


"그렇다면 그리 걱정하실 것 없소이다. 소생은 목 당주 백 정도는 충분히 감당하고 남으니 말씀이외다."


곽하민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소리였지만 믿어야 했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아니면 자신뿐이 아니라 곽씨 세가가 사라질 것이었다.


'공연한 객기가 일을 이 지경에 이르게 했구나.'


'졸개의 도를 튕겨 낸 것뿐이거늘.'


고개를 돌려 묵운 사마의를 살피니 사마의의 양손은 연신 기녀들의 가슴과 엉덩이를 희롱하고 있었다. 곁에 앉은 청기가 곽하민의 빈 잔을 채우고 있었는데, 잔을 든 곽하민의 손끝이 떨려 잔이 흔들이니 청기가 잔을 채우기 어려워했지만, 곽하민은 정신을 어디에 두었는지 잔을 든 손을 거두지 못했다.


희미한 말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기녀의 가슴에 머리를 박고 있던 사마의가 몸을 바로 세우는가 싶더니, 몽롱한 표정의 기녀들을 양팔로 바짝 끌어 양 가슴에 조여 안더니 찰진 소리가 들려왔다.


사마의의 품에 안겨 있던 두 기녀가 아프다는 듯 눈을 흘기며, 찰진 소리를 낸 엉덩이를 손으로 문지르자 사마의가 말했다.


"조금 늦을지 모르지만 기다리거라."


사마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모두의 눈길이 모아졌다. 사마의가 창문을 열고 내려다보고는 그대로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곽하민은 사마의가 사라지고서야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밖을 살폈다.


아직 말에서 내리지 않은 적당주 피대경이 졸개들을 향해 뭐라 소리치고 있었는데, 졸개들 사이에 사마의가 보였다. 머리는 어서 내려가야 한다 재촉하지만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기녀들을 돌아보니 악사의 연주도 가기의 노랫소리도 멈췄지만 모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

곽하민아~곽하민아~.'


곽하민은 창에서 몸을 돌려 이미 열려진 연회장 문을 나와 아래로 내려갔다. 달아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며 또 달아나지 않은 자신을 칭찬하며, 불과 스물도 되지 않는 계단을 천 리 먼 길처럼 천천히 힘주어 내려갔다.


불과 일각이나 되었을까?


사마의가 창문을 통해 날아내리고 무수한 갈등 속에 계단을 내려선 것이.


곽하민이 본 주루 앞 풍경은 내려오기 전 창을 통해 본 것과 너무도 변해 있었다. 적당주 혈랑도 피대경이 타고 왔던 말이, 몸통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나 속이 드러난 채 쓰러져 있었고, 쓰러진 말 뒤로 무언가에 홀린 듯 넋을 잃은 혈랑도 피대경이 보였는데, 혁화를 신은 다리는 발끝이 등을 향해 있었고, 하나밖에 남지 않은 팔은 그나마 남아 대롱거리는 손바닥이 아니라면, 팔이었다 여기지 못할 정도로 뭉그러져 있었다.


졸개들의 손에 여전히 대감도가 들려 있었고 보아하니 죽은 놈도 없었지만, 묵운 사마의가 둘러보는 눈길을 마주치는 놈은 없었다. 오히려 눈길이 향하는 대로 주춤거리며 물러서더니 사마의가 두 번 돌아보기 전에 거리가 오 장 밖으로 넓어졌다.


사마의가 졸개들 넘어 조금 멀리 바라보며 말했다.


"깨끗이 치우거라. 날이 밝는 대로 양호채를 찾을 것이다."


곽하민의 눈길이 절로 사마의가 바라보는 곳으로 향했다. 멀기는 했지만 그곳에 분명 목 당주가 있었고, 목 당주는 사마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마의는 목 당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멀찍이 피하는 졸개들 사이를 지나 주루로 돌아왔다.


곽하민은 주루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기에 주루 입구 기둥을 잡고 버티고 있다가, 사마의가 다가서자 잡고 있던 손을 놓았는데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사마의는 그런 곽하민을 보고서도 그대로 이 층 연회장으로 올라갔다.


청기는 못 볼 것을 본 듯 창가에 주저앉아 있었고, 홍기들은 들어서는 사마의를 마치 귀신을 본 듯 놀라며, 커질 대로 커진 눈으로 바라봤다. 사마의가 자리에 앉아 대접 가득 술을 따라 마시고 나서야, 홍기들이 사마의 양편에 다가섰지만 선뜻 곁에 앉지 못했다.


"어렵거든 다른 아이를 들이거라."


사마의의 말에 이름이 설앵이라던 기녀가 창가에 주저앉은 청기들에게 뭐라 하자 청기들이 연회장을 나갔다. 가기와 악사는 창밖을 보지 않은 듯싶었지만, 설앵이 악사와 가기도 나가라 했다.


청기가 나가고 악사와 가기가 자리를 비웠을 때, 곽하민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연회장에 들었다. 설앵은 소청이라던 기녀에게도 나가라 말하며 소청의 등을 쓸어 주었다. 소청은 설앵의 다독임에 조금 진정된 듯싶었지만, 자리에 남기는 어려웠는지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갔다.


모두 내보낸 설앵이 사마의 옆에 앉으며 사마의의 빈 잔을 채웠다. 사마의는 그런 소청에게 의외라는 듯 미소 지어 보이고는, 텅 빈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 곽하민을 보며 물었다.


"그리 두려운 일을 어찌 시작하신 게요?"


곽하민은 숙였던 고개를 들며 잠시 멍하니 위를 바라보다 사마의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사마 대협께서 도를 튕겨 내시는 것을 보고 호위장께서 말씀하신 내공이란 것을 생각했지요. 일 권에 거목이 넘어가고 커다란 바위도 모래알로 변한다 하셨습니다. 들으면서도 허황되다 여겼는데, 대협께서 도를 튕겨 내시는 것을 보는 순간, 그동안 놈들에게 억눌렸던 가슴이 뚫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리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한잔 나누고 내공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정말 들은 것과 같은 위력을 낼 수 있는 것인지 알고 싶었을 뿐입니다. 주루에 들어서야 아니 객점을 나서면서 일이 잘못돼 간다는 것을 알았지만, 소생이 죽고 나면 그래도 본가는 살아남지 않겠느냐 싶었지요."


묵운 사마의는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는 곽하민을 대견한 듯 바라보며 물었다.


"정신은 좀 드시오?"


곽하민은 그제서야 사마의를 바라보더니 반쯤 비어 있는 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키고 말했다.


"추태를 보였습니다."


사마의는 곽하민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오백이라 하셨소이까?"


"예, 양호채에 오 당이 있고 각 당에 백 정도의 졸개가 있으니 오백이 맞을 겁니다."


"모두 죽일 수는 없지 않겠소이까?"


"···."


곽하민은 묵운 사마의의 모두 죽일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듣지 못해 대답이 늦어졌다. 곽하민이 답하지 못하자 사마의가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소생 혼자 양호채를 찾는 것이 번거로움을 피하는 방법이지만, 그래서야 순우현이 바로 서겠소이까? 세가로 가시어 도움을 청하시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본가의 호위래야 열도 되지 않습니다."


"숫자는 상관없소이다. 그저 함께 양호채를 토벌한 것이 중요하지요."


"······."


"양호채가 어디인지, 죽여야 할 놈이 어느 놈인지, 알려 줄 사람이 필요하외다."


"······."


"진시에 놈들을 치러 나갈 것이니 가시면서 소문이나 내주시오. 그래야 놈들이 이곳으로 오지 않고 산채에서 기다릴 것 아니오."


사마의가 말하고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듯싶던 곽하민은, 입술을 깨물고 사마의를 잠시 바라보다 마음을 정했는지 아무 말 없이 연회장을 나갔다. 사마의는 홀로 남은 설앵을 끌어안으며 잔을 들이켜자, 안주를 입에 넣어 주던 설앵의 입에서 교성이 터져 나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대공자 출세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5 95화 양호채 (5) 23.08.11 3,172 23 13쪽
94 94화 양호채 (4) 23.08.10 3,166 23 15쪽
93 93화 양호채 (3) 23.08.09 3,182 24 19쪽
» 92화 양호채 (2) 23.08.08 3,189 22 18쪽
91 91화 양호채 (1) 23.08.07 3,220 22 19쪽
90 90화 의문? 23.08.06 3,286 22 16쪽
89 89화 팽가의 방문 23.08.05 3,284 24 16쪽
88 88화 자리의 의미 23.08.04 3,265 25 13쪽
87 87화 경사에 들다 23.08.03 3,266 27 15쪽
86 86화 도하 23.08.02 3,269 27 15쪽
85 85화 욕망의 시발점 23.08.01 3,366 24 17쪽
84 84화 소림을 찾다 +1 23.07.31 3,370 28 15쪽
83 83화 소소한 즐거움 23.07.30 3,375 24 17쪽
82 82화 보고서 23.07.29 3,388 28 14쪽
81 81화 개방 (2) 23.07.28 3,417 31 14쪽
80 80화 개방 (1) +1 23.07.27 3,487 29 18쪽
79 79화 다시 만난 사형제들 (2) +1 23.07.26 3,493 30 17쪽
78 78화 다시 만난 사형제들 (1) +1 23.07.25 3,484 28 17쪽
77 77화 밀명 (6) +1 23.07.24 3,467 29 16쪽
76 76화 밀명 (5) +1 23.07.23 3,483 27 15쪽
75 75화 밀명 (4) +1 23.07.22 3,486 31 15쪽
74 74화 밀명 (3) +1 23.07.21 3,476 29 15쪽
73 73화 밀명 (2) +1 23.07.20 3,476 28 15쪽
72 72화 밀명 (1) +1 23.07.19 3,486 30 14쪽
71 71화 감추고 보여주고 +1 23.07.18 3,482 33 15쪽
70 70화 교가장 (2) +1 23.07.17 3,492 34 18쪽
69 69화 교가장 (1) +1 23.07.16 3,501 32 16쪽
68 68화 설가장 (4) +1 23.07.15 3,474 30 12쪽
67 67화 설가장 (3) +1 23.07.14 3,483 29 17쪽
66 66화 설가장 (2) +1 23.07.13 3,481 30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