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처럼 부서진 약속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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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우는피에로
작품등록일 :
2023.05.10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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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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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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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3 한 번의 기회 (3)

DUMMY

다음 날 오전. A-1구역. 오 박사 진료실.


백설이 오 박사의 진료실로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백설과 오 박사가 차례로 인사한다.


백설이 오 박사에게 새해 인사를 전한 후 자리에 앉는다. 가볍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요즘 불편한 건 없어요?”

오 박사가 묻는다.

“전보다 괜찮아진 거 같아요. 오래 걷거나 날 안 좋으면 아프기는 한데, 전보다는 고통이 심하지 않아요.”

백설이 말한다.

“다행이네요. 그럼 일단 약 줄여보고, 혹시 다시 아프면 그때 상황 보고 처방할게요.”

오 박사가 말한다.

“네.”

백설이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 물리치료 받고 가는 거 잊지 말고요.”

오 박사가 말한다.

“네.”

백설이 말한다.


오 박사가 진료기록을 빠르게 정리한다. 백설이 그런 오 박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오 박사가 진료기록 정리를 끝낸 후 백설을 바라본다.


“혹시 한 박사님 이야기 들었어요?”

오 박사가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아. 어제저녁에 변 박사님께 들었어요.”

백설이 말한다.

“네. 한 박사님, 아직 안 만나셨죠?”

오 박사가 묻는다.

“네. 오후에 시간 나면 가 보려고요.”

백설이 말한다.

“그렇군요.”

오 박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백설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다. 한 박사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걱정이다.




그때, 오 박사의 컴퓨터에서 알림음이 들린다. 오 박사가 무슨 일인가 싶어 알림을 확인한다. 알림을 확인한 순간, 오 박사가 미간을 찌푸린다. 백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무슨 일 있어요?”

백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는다.

“아. 건강센터 센터장실에 허 센터장님께서 오셨대요.”

오 박사가 말한다.

“허 센터장님이요?”

백설이 묻는다.

“네. 요즘 들어 자주 오시더라고요. 아무래도 불안하신 모양이에요.”

오 박사가 말한다. 그러고는 어깨를 으쓱인다.

“그런가 보네요.”

백설이 말한다.


백설이 비릿한 웃음을 짓는다. 요즘 들어 센터에서 자신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 같으니,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자기편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노력하는 모양이다.


“빨리 가 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백설이 묻는다.

“그래야겠죠?”

오 박사가 내키지 않는다는 듯 말한다.


오 박사가 다음 일정을 확인한다. 허 센터장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계산하기 위해서다.


“그럼 먼저 일어날게요.”

백설이 말한다.

“네. 갈 때 약 챙겨가고, 물리치료 꼭 받고 가요.”

오 박사가 말한다.

“네.”

백설이 고개를 끄덕인다.


백설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곧장 진료실을 나선다. 오 박사는 주변을 정리한 후 밖으로 나선다. 갑자기 온 손님이 달갑지는 않아도, 혹시 모르니 가야 했다.



*



오후. A-2구역.


백설이 한 박사를 만나기 위해 병원에 왔다. 곧장 한 박사의 병실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탄다. 백설이 자연스럽게 엘리베이터 구석으로 들어간다.


백설이 엘리베이터 문 오른쪽을 바라본다. 엘리베이터가 어디쯤 왔는지 층수가 보인다. 숫자가 빠르게 변한다.


‘~~~~’


백설이 계속해서 중얼거린다. 한 박사에게 할 말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필요한 말만 정확하게 하고 빠질 생각이라, 할 말을 고르고 또 고른다.


후.


이내 백설이 깊은 한숨을 쉰다. 한 박사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괜히 화가 났다. 그래도 그 뻔뻔한 얼굴을 보고 화내지 않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계속 심호흡한다.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문이 열린다. 백설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복도를 따라 천천히 걸어간다. 고요해서인지 복도가 길게 느껴진다.


“한 선생님.”


뒤에서 누군가 백설을 부른다. 백설이 뒤를 돌아본다. 변 박사가 서 있다. 백설이 변 박사에게 꾸벅 인사한다. 변 박사가 백설 쪽으로 다가온다. 백설이 스마트워치로 방음앱을 켠다. 백설이 변 박사에게 방음앱을 켰으니 말을 편하게 해도 된다고 알려준다.


“한 박사님, 만나러 온 거야?”

변 박사가 묻는다.

“네.”

백설이 고개를 끄덕인다.

“불편하면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변 박사가 말한다.

“아니에요. 한 박사님 입 열게 설득하려면, 제 도움도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가만히 있을 수 없죠.”

백설이 말한다.

“그래.”

변 박사가 한숨 쉬듯이 말한다.


변 박사가 백설을 가만히 바라본다. 백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면 괜찮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계속 백설에게 짐을 지워주는 것 같아 미안하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한 박사님 만난다고 제가 잘못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백설이 장난스럽게 말한다.


백설이 변 박사를 보고 살며시 웃는다. 변 박사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서다. 변 박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이 너무 걱정하는 것도 백설에게 불안함을 심어주는 것 같아, 백설을 믿고 걱정하는 걸 그만두기로 한다.


“그래. 이야기 잘하고 와.”

변 박사가 말한다.

“네. 이야기 다 하고 나서 상황 이야기해드릴게요.”

백설이 말한다.

“응.”

변 박사가 말한다.


백설이 변 박사와 이야기를 마친 후 한 박사의 병실 앞에 선다.


후.


백설이 작게 심호흡한다.


똑. 똑.


노크한다. 안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드르륵.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그리고 천천히 병실 안으로 들어선다.




한편, 한 박사가 침대에 기대어 앉아있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났는지 침대 위에 책상을 펼치고 그 위에 스마트폰을 올린다. 인터넷 앱을 연 후 화면을 위로 쓸어올린다. 그러자 허공에 홀로그램 화면이 뜬다.


한 박사가 최근 센터에 관해 올라온 기사들을 하나씩 살펴본다. 평소와 같이 손으로 허공을 휘휘 저으며 스크롤을 내리다가 멈칫한다.


‘회복을 빨리하려면 평소에도 신경을 써야 해요.’


문득 김 박사의 말이 떠오른다. 김 박사가 그동안 근육을 사용하지 않아 굳었는데, 빨리 회복하려면 평소에도 근육을 많이 쓰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터치펜을 하나 주면서 핸드폰을 할 때도 이걸 쓰라고 했다.


한 박사가 침대 옆에 있는 서랍을 바라본다. 그 위에 김 박사가 주고 간 터치펜이 있다. 한 박사가 손을 뻗어 터치펜을 잡는다. 그리고 터치펜으로 화면을 내린다.


툭.


갑자기 손에 힘이 빠지면서 터치펜을 놓쳤다. 펜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진다. 한 박사가 멍하니 떨어진 펜을 바라본다.


하.


한 박사가 깊은 한숨을 쉰다. 고작 펜 하나도 제대로 잡지 못해 떨어뜨리는 자신이 한심했다.


한 박사가 허공을 바라본다. 오늘 아침, 변 박사를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어제 깨어난 후 종일 이런저런 검사를 받았다. 변 박사는 한 박사가 깨어나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아 잠시 병실에 왔었다. 그리고 한 박사가 검사를 받는 걸 지켜보다가 떠났다. 그리고 오늘 아침 다시 한 박사를 찾아왔다. 달갑지 않은 사람을 계속해서 보니 불편했다.


변 박사는 한 박사의 태도에 개의치 않고 한 박사 옆에 앉았다. 그리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박사님이 쓰러지시고 나서 무슨 일인가 싶어서 경찰에서 조사를 진행했어요. 그랬더니 허 센터장님께서 주신 술을 마시고 쓰러졌다는 걸 알게 되었죠.’

변 박사가 덤덤하게 말했다.


한 박사는 당장이라도 반박하고 싶었다. 자신이 쓰러지기 지전에 허 센터장에게서 받은 술을 먹은 건 사실이지만, 꼭 그것 때문에 쓰러진 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변 박사의 말이 견고하게 들려서 쉽게 반박할 수 없었다.


‘물론 쉽게 믿을 수 없겠죠. 몇 년을 충성했던 사람에게 버림받았다는 걸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변 박사가 싸늘하게 말한다.


한 박사는 떨리는 눈으로 변 박사를 바라보았다. 변 박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한 박사를 바라보았다. 눈빛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자신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강하게 말하고 있다. 한 박사가 침을 꼴깍 삼켰다.


변 박사는 차분하게 증거 몇 가지를 보여주었다. 한 박사는 묵묵히 변 박사의 말을 들었다. 변 박사가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자신은 10cm씩 아래로 추락하는 것 같았다. 허 센터장이 자신의 단단한 동아줄이라고 믿었는데, 그 믿음이 무너졌다. 비참했다.


한참 이어지던 변 박사의 말소리가 뚝 멈췄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주희야, 너가 원하는 게 뭐야?’

변 박사가 나지막이 물었다.


그 말에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늘 답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 답이 생각나지 않는다.


‘센터로 돌아오는 게, 니가 원하는 거 아니야? 너는 센터에 대한 애정이 많잖아.’

변 박사가 말했다.


변 박사의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 센터에서 있었던 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수십 년 동안 청춘을 바쳐가며 열심히 보냈던 무수한 날들이 생각났다. 그러면서 센터에 애정을 쏟아붓게 되었고 센터에서 나간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게 되었다.


‘너가 원하는 대로, 다시 센터에 돌아올 수 있게 해줄게. 그러니까 나 좀 도와줘.’

변 박사가 말했다.


한 박사는 입을 꾹 다물었다. 변 박사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여태 자신과 대립하던 사람을 쉽게 믿을 수는 없었다. 자신이 센터로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끌어내리겠다고 생각했던 사람과 쉽게 손을 잡을 수는 없었다.


흠.


길어지는 침묵에 변 박사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정말 내가 너한테 위협적인 존재인 거 같아? 허 센터장님께서 그렇게 말하니까 그게 사실이라고 믿었던 게 아니고?’

변 박사가 침묵을 깨고 물었다.


다시 무언가가 머리를 강타하는 기분이 들었다. 가슴이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한 박사가 멍한 얼굴로 변 박사를 바라보았다.


‘정말 변 박사가 나한테 위협이 되는 존재였나.’

한 박사의 마음 깊은 곳에서 그런 의문이 피어 올랐다.


그 의문이 들기 시작하니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수십 년 동안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웠다.


‘아무튼 지금 너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잘 생각해.’

변 박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변 박사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생각해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한 박사는 변 박사가 간 후 내내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했다.


후.


한 박사가 깊은 한숨을 쉰다. 자신이 보았던 것 중 무엇이 진짜였는지, 믿었던 것 중 무엇이 진실이었는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수십 년 동안 쌓아왔던 탑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똑. 똑.


노크 소리가 들린다. 한 박사가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빼고 문 쪽을 바라본다.


드르륵.


문이 열린다. 그리고 백설이 들어온다.


한 박사가 놀란 얼굴로 백설을 바라본다. 예상하지 못한 손님이다.


“일어났다는 이야기 듣고 왔어요. 몸은 좀 괜찮으세요?”

백설이 걱정 어린 얼굴로 묻는다.


한 박사가 벙벙한 얼굴로 백설을 바라본다. 백설이 그런 한 박사를 가만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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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3 한 번의 기회 (3) 24.08.19 7 0 11쪽
83 082 한 번의 기회 (2) 24.02.02 8 0 12쪽
82 081 한 번의 기회 (1) 24.02.01 10 0 13쪽
81 080 일 년 전 그날의 진실 (3) 24.01.26 10 0 12쪽
80 079 일 년 전 그날의 진실 (2) 24.01.25 13 0 12쪽
79 078 일 년 전 그날의 진실 (1) 24.01.24 10 0 12쪽
78 077 함박눈이 내리던 날 찾아온 선물 (3) 24.01.23 11 0 13쪽
77 076 함박눈이 내리던 날 찾아온 선물 (2) 24.01.12 7 0 13쪽
76 075 함박눈이 내리던 날 찾아온 선물 (1) 24.01.11 10 0 11쪽
75 074 신의 영역을 향해서 (4) 24.01.05 9 0 11쪽
74 073 신의 영역을 향해서 (3) 24.01.03 9 0 11쪽
73 072 신의 영역을 향해서 (2) 23.12.29 14 0 13쪽
72 071 신의 영역을 향해서 (1) 23.12.25 12 0 12쪽
71 070 두 번째 보름달 (6) 23.11.10 11 0 12쪽
70 069 두 번째 보름달 (5) 23.11.09 9 0 12쪽
69 068 두 번째 보름달 (4) 23.11.08 10 0 11쪽
68 067 두 번째 보름달 (3) 23.11.07 11 0 12쪽
67 066 두 번째 보름달 (2) 23.11.06 8 0 11쪽
66 065 두 번째 보름달 (1) 23.11.05 8 0 12쪽
65 064 공든 탑이 무너지나 (4) 23.11.02 7 0 12쪽
64 063 공든 탑이 무너지나 (3) 23.11.01 6 0 12쪽
63 062 공든 탑이 무너지나 (2) 23.10.31 8 1 12쪽
62 061 공든 탑이 무너지나 (1) 23.10.30 8 0 11쪽
61 060 드러나는 연기의 정체 (5) 23.10.27 10 0 12쪽
60 059 드러나는 연기의 정체 (4) 23.10.26 9 0 13쪽
59 058 드러나는 연기의 정체 (3) 23.10.25 7 0 13쪽
58 057 드러나는 연기의 정체 (2) 23.10.24 10 0 12쪽
57 056 드러나는 연기의 정체 (1) 23.10.23 7 0 12쪽
56 055 짙게 깔린 검은 연기 (5) 23.10.20 9 1 11쪽
55 054 짙게 깔린 검은 연기 (4) 23.10.19 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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