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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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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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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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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몰락 (3)

DUMMY

90화 악의 몰락(3)

점멸하는 빛이 신호탄의 역할을 하듯 두 인형이 동시에 충돌했다.

한 쪽은 따뜻하고 온화한 양의 기운을, 다른 한 쪽은 서늘하고 공포스러운 음의 기운을 연거푸 쏟아내고 있었다.

그중 먼저 바닥에 곤두박질친 것은 양의 기운이었다.


“크허억!”


[뭐, 달은 해를 이기지 못한다고? 그래 여태껏 지껄인 정성 넘치는 지랄은 잘 들었고, 뒤져.]


전례 없이 하늘에 떠 음의 기운을 강화하는 달빛이 내리쬐었다. 그리고 그 앞에 나타난 것은 셀리노프였다.


[고유격 발현, 「초승달」.]


창졸간에 어두운 땅을 비추던 보름달이 초승달로 변화하여 세로로 세워졌다.


[피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후우우우웅!


셀리노프를 가로지른 후 가스페르를 향해 날아드는 초승달을 가스페르가 「광휘의 발걸음」을 이용해 겨우 빗맞았다.

허나 빗맞았다는 것은, 어찌 되었든 간에 맞았다는 이야기다.


“크악!”


미처 피하지 못한 오른쪽 허벅지에 긴 자상이 남았고, 이는 궁수에 있어서 치명적인 상처였다.


[《관념》의 비밀을 알고 있기에 인간은 너무도 나약하다. 네가 이해하기에 이 세상은 너무 방대하다고.]


가스페르는 셀리노프의 말을 어디로도 듣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활시위를 당길 뿐이었다.


“고유격 발현. 「총격포화」.”


본디 총격포화는 위에서 아래로 비처럼 쏟아지는 위치에서 극한의 위력을 발휘한다. 아래서 위로 발포하는 상황에서는 그 위력의 절반도 내지 못한다.


퍼버벙!


날아든 수 개의 화살이 폭발하며 연기를 일으켰지만.


[너무 약하다고, 이러려고 ‘허용 상상력’을 그렇게나 늘린 거야? 너무 의미가 없잖아!]


달빛이 내리쬘수록 셀리노프의 격이 가진 위력은 그 기세가 꺾일 줄을 몰랐고, 상상력은 쓴 것에 배가 되도록 차올랐다.

그것이 셀리노프의 아니, ‘밤을 비추는 서광’의 고유격. 「달의 요람」이었다.


[이쯤 되면 깨닫지 않았냐고. 넌 지금의 날 이길 수 없어.]


수우우욱.


그때, 셀리노프는 잠시 무춤했다.

어디선가 묘한 미시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정체는 바로.


“왜 연기가 안 사라질까?”


가스페르의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목소리만이 셀리노프의 귀를 자극했다.


쨍그랑!


무언가 셀리노프의 영역을 뚫고 영역의 안으로 들어오는 것만 같던 소리가 났지만, 셀리노프는 그런 것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누군가와 달리 말이다.

오 분 전의 「총격포화」로 인해 일어난 연기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주변을 맴돌고 있던 탓이었다.


후우우웅!


무언가 둔탁한 둔기가 날아드는 소리에 셀리노프가 몸을 뒤틀었지만, 연기에 시각과 후각이 무방비한 상태에서 이토록 빠른 공격을 피하기란 쉽지 않았다.


빠각!


절대 파손되지 않는 막강지궁이 연기 속에서 셀리노프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비겁한 새끼!]


“뭐가 비겁이야. 죽은 놈들은 비겁을 논할 수가 없어.”


그 외에도 수차례 온몸 구석구석을 구타당한 셀리노프가 고함을 쳤다.


[으아! 나와서 싸우라고!]


가스페르의 대답 대신 날아든 것은 화살이었다.

아니, 화살들이었다.


솨아악!

솨사사삭!


가공할 속도로 날아든 수십의 화살이 셀리노프의 몸 곳곳에 박혔다.


“내가 너 때문에 화살을 몇 종류나 샀는지 알아? 일단 이 연기를 발생시키는 화살부터 지금 네 몸에 붙어 있는 폭발 화살까지, 투자 많이 했으니까 잘 봐 줘라.”


셀리노프가 박힌 화살을 손수 하나씩 뽑아 바닥에 던졌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었다.

가스페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셀리노프의 몸에 박혀 떨어지지 않던 화살들이 일제피 폭발하며 불길을 일으켰다.


[으아아악!]


폭발로 인해 공중에서 중심을 잃은 셀리노프가 바닥으로 낙하했다.


터턱! 퉁!


흙바닥에 구르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퍼졌고, 가스페르가 「광휘의 발걸음」을 통해 셀리노프의 곁에 착지했다.


“준비 많이 했다고 했지?”


[많이··· ···했네. 근데 말이야.]


겨우 흙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셀리노프가 가스페르조차 눈으로 쫓지 못할 속도를 보이며 가스페르의 막강지궁을 가로챘다.


[나는 달만의 신이 아니야.]


막강지궁의 끝에서 닿기만 해도 차게 식을 것만 같은 한기가 가스페르의 몸 안까지 느껴졌다.

이내 셀리노프의 손에서 충전된 화살의 색이 희게 질렸다.

온도를 거의 가지지 않은 물건마저 그 한기에 꽁꽁 얼어 버렸다는 의미다.


[난 궁술의 신이기도 하거든.]


피육!


피하기엔 늦었다. 무엇보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럼 남은 것은 저 공격을 막는 것.

하지만 가스페르는 태생부터, 그리고 지금껏 해온 단련의 종류가 결코 방어와 그 어떤 연결도 되어 있지 않았음과 더불어 혹여나 그런 기술을 배웠다고 해도 저 정도 위력의 화살을 받아 치는 것은 힘들었다.


‘여기까지라고?’


가스페르가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의 끝을 받아들였다.

너무나 비참했다. 보름 동안이나 준비했다기엔 너무도 허술했다. 셀리노프의 격이 자신의 예상보다 큰 것을 보곤 크게 통감했다.


씨익.


셀리노프는 왼쪽 구각을 끌어올려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신의 승리를 직감하고 또 확신하는 미소였다.


솨아악!


그때, 세상이 느리게 흘렀다.


‘주마등인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고.


‘아니, 그냥 주변이 모두 멈춘 것만 같··· ···.’


나중에는 느리게 가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세상이 멈춘 것처럼 보였다.

가스페르가 무심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그곳에 있던 것은 여기에 있어선 안 되는, 여기에 있기엔 너무 이른 무언가가 있었다.


‘인시터애로우.’


가스페르가 끈끈이가 붙은 것인 양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떼어 한 발짝 내딛었다.

허벅지의 자상이 지끈이며 움직이지 말라고 명령했다. 거부했다. 내딛은 발이 저려왔다. 발을 내딛는 것에 성공하자 인시터애로우와의 거리가 더욱 가까워지며, 이제서야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가 되었다.

가스페르는 망설이지 않았다.

전심전력을 다해 손을 뻗었다. 손에 착 감기는 줌피가 자신에게 더없이 편안했고, 잘 맞았다.

어떻게, 누가, 언제 따위의 하찮은 질문은 지금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저 잡은 활에서 발현될 화살의 위력이 궁금할 따름이었다.


기이이이잉!


달빛 사이로부터 출발하여 사방에서 모여든 곡선의 온화한 햇빛이 화살촉에서 응집되었다.

셀리노프가 발현한 달빛과 완전히 반대의, 절대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처럼 극과 극에 있는 성질이었다.

이이제이. 이독제독이라 했던가.

가장 강한 방어는, 가장 강한 공격이다.


“으아아아아!”


생전 처음 질러 보는 고함에 묘한 고양감을 느꼈다.

활시위를 놓자 천천히 흐르던 시간이 다시 정상적인 속도로 돌아왔다.

느려진 시간에 의문을 품을 틈 따위 없었다.


사아아아아.


셀리노프의 화살과 가스페르의 화살이 맞닿은 순간. 둘은 격렬한 대립을 일으켰다.


날카로웠지만 둥글었다.

차가웠지만 따뜻했다.

거칠었지만 부드러웠다.


둘의 대립 끝에 먼저 항복한 것은 날카로운 쪽이었다.


솨아악!


셀리노프의 화살을 녹이다 못해 증발시킨 가스페르의 화살이 셀리노프를 향해 솟아올랐다.

셀리노프가 두 쌍의 하얀 날개를 펼쳐 자신의 앞에 방패처럼 둘렀고, 이 부분에서는 버티는 쪽이 승리했다.


촤아아아악!


하지만 멀쩡하지는 못했다.

따스한 온화함과는 반비례하듯 화살과 닿은 날개가 어쩌면 그보다 더 넓은 범위의 날개가 타들어 갔기 때문이다.

흰 날개의 네 부분에 거먼 재가 장식처럼 생겨났다.


사라락.


고유격 「달의 요람」 때문에 빠르게 수복이 되고 있다고는 하나 영 빠르지는 않았다. 너무도 미미했기에 이 전투가 끝날 때까지는 수복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에 따라 셀리노프의 비행 능력도 감소하였다.


[무슨 기형을 벌인 거냐.]


셀리노프가 그 말을 뱉은 순간.


사락.


어디선가 가스페르와 셀리노프가 아닌 다른 인기척이 느껴졌다.

셀리노프는 무시했고, 가스페르는 애써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느껴지는 격으로 보건대, 그는 디오스 마노가 아니다. 이 대국에 활만 건네주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아마 그저 배달부일 가능성이 농후하고, 그렇다면 이미 디오스 마노는··· ···.


가스페르가 고개를 저어 전투에 쓸 일 없는 잡념을 털어냈다.


“어쩌지? 난 이제 시작인데.”


[그 오만이 어디까지 가는지가 너무도 궁금하네.]


가스페르는 그제서야 인시터애로우의 활 몸통이 눈에 들어왔다.

아름답고 사늘한 기운이 깃든 철제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전의 가스페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만, 오늘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와 어울려지는 그런 옅은 사늘함이었다.


‘형태는 유지되었으나,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바뀌었어.’


이것은 이제 더 이상 인시터애로우라고는 부를 수 없는 새로운 활이었다.


아르코 솔(arco sol).

해의 활.


새 이름을 가진 인시터애로우가 가스페르의 손에서 환하게 빛나며 셀리노프를 노렸다.

아르코 솔의 첫 번째 살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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