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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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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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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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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가스페르 (10)

DUMMY

가스페르가 낯선 듯하지만 또한 낯익은 침대에서 눈을 떴다.

자연스레 하루를 시작하려던 그가 다시 침대에 걸터앉았다.


“하아아··· ···.”


깊디깊은 탄식을 쏟은 그가 산산조각난 채 서궤 위를 뒹구는 인시터애로우의 가장 큰 조각을 집었다.

줌통과 아귀를 주위로 한 활의 핵심 부분이었다.


투두둑.


부서진 활을 으깨듯 쥐어 짜낸 가스페르가 약 10년전 아버지와 함께 갔던 장소와 만났던 이를 떠올렸다.


***


-인사드려라 아들아.


가스페르가 인사를 건네자 누군가가 쪼그려 앉아 그와 눈높이를 맞추곤 살갑게 맞이해 주었다.


-눈빛이 똘망똘망하구나.


고개를 들어 제퍼를 본 중노년의 남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찌 폐하를 가장 닮은 건 이분인 것 같습니다.

-흠흠. 쓸데없는 말을.


왜인지 수줍어하던 제퍼가 자신의 뒷등에서 활을 꺼내 남자에게 건넸다.


-오래 전 부서진 것인데, 수리를 미루고 미루다 이리 되었구려. 고쳐 줄 수 있겠소?”

-안 될 것 없죠.


제퍼가 남자에게 건넨 것은 이 행성의 시조인 허완이 이 땅에 남겼다는 유일한 유물, 남겼다는 전설의 무기. 인시터애로우였다.


-귀한 무기의 수리를 제게 맡기셨군요. 이거, 책임감이 말이 아닙니다.

-디오스 마노(Dios mano)라고 불리는 이가 겉치레가 많구려.

-이러는 거 본 적이 하루이틀이십니까? 하루 뒤에 오시면 말끔하게 고쳐 놓겠습니다. 원래 몇 시간도 안 걸리는데 특별한 물건이니 하루나 걸리는 겁니다.

-믿고 맡기겠네.

-조심히 가십시오, 왕자님.


***


“그래. 디오스 마노.”


디오스 마노. 그는 이 행성 아니, 이 행성 계열 심지어는 은하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대장장이라 불리던 남자였다.


‘그 사람이라면··· ···!’


침대 곁에 뒹굴던 가방을 하나 챙기고 그 안에 인시터애로우의 조각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챙겨 가방을 굳게 닫았다. 그리곤 가방을 메고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어제의 달 때문에 초토화가 된 왕궁이 보였다.

특별한 외압은 없었기에 물리적으로 초토화된 것은 아니었지만.


“거기 빨리 서류 더미 챙겨서 이리 와!”

“그거 전서구들 다 받지 말고 꼬리표가 빨강인 것만 챙겨서 답장해!”

“지··· ··· 지금 갑니다!”


그리고 난장판의 한복판에는


“폐하! 어서 결재를··· ···!”

“잠시 있어 보거라! 지금 바쁜 것 안 보이느냐!”

“이게 더 급합니다, 폐하!”

“아닙니다, 이게 제일 급합니다!”

“좀 닥쳐 보거라! 가스페르! 이것 결제하는 것 좀 도와다오!”


고개를 돌리던 도중 제퍼의 레이더에 걸려 버린 가스페르가 제퍼를 보지도 않고 고개를 돌려 달려 나갔다.


“저런··· ···!”


서류 더미에 파묻힌 제퍼가 가스페르를 미세하게 원망했다.


‘내가 저러라고 데리고 다닌 게 아닌데··· ···.’


“흐앗!”


가스페르가 전력으로 달려 시내에 도착했다.

철저하게 모자를 눌러 써 분장 중이었기에 누구도 가스페르를 알아보지 못 했다.


“여기서 어디더라··· ···?”


가스페르가 「광휘의 발걸음」을 발동하고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강렬한 표지판이 가스페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저기다!”


그곳에 도착한 가스페르가 그곳의 푯말을 읽었다.


“디오스 마노의 공방에 어서 오세요?”


30키로미터 밖에서 보아도 그 사람의 공방임이 틀림없었다.


짤랑짤랑!


문에 달린 종소리가 가스페르를 처음으로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종 이후로 그를 처음 맞이한 사람은 중년의 여성이었다.


“여기가 디오스 마노의 공방··· ···.”

“맞습니다. 무엇을 고쳐 드릴까요?”

“아··· ···저, 여기··· ···.”


가스페르가 가방을 열어 촌촌히 부서진 인시터애로우를 보여 주자 여성의 얼굴이 희미하게 굳었다.


“어··· ··· 그럼 일단 주시겠어요?”


그녀에게 가방 째로 활을 건넨 가스페르가 입구 옆 의자에 앉아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여성이 다시 가방을 들고 공방에서 나왔다.


“너무 조각조각 부서져서 수리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하십니다.”

“예? 그게 무슨··· ···.”


일전에 제퍼와 함께 공방을 방문한 가스페르였다.

지금의 인시터애로우가 이 행성의 것이 아닌 《관념》에서 만든 모방작이라 할지라도 외형만큼은 원본과 똑같이 만들어졌기에 오히려 그를 직접 만나러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가스페르였다.


“한번만 더 요청을 드려 볼 순 없겠습니까?”

“죄송합니다··· ···.”

“그··· ··· 그럼 얼굴 한번만 볼 수 없겠습니까?”

“그것도 좀··· ···.”

“잠깐이면 됩니다. 잠깐이면.”


덜컥.


그때, 공방의 문이 열리며 나온 것은 디오스 마노는커녕 배가 나와 풍채가 크고 관리되지 않은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 계속 보고 있기를 거북하게 만들었다.


“무슨 소란이야?”

“죄송합니다. 손님 한 분이 디오스 마노를 만나 뵙길 요청하셔서.”

“뭐?”


쿵쿵쿵.


적잖은 소리를 내며 다가온 남성이 가스페르의 앞에 섰다.


“내가 디오스 마노인데. 나한테는 무슨 볼일이요?”

“예? 당신이 디오스 마노··· ···.”

“아, 그렇다니까! 뭐 이렇게 말이 많아? 어이, 이 사람 쫓아 내.”

“아··· ···알겠습니다!”

“잠시만··· ··· 잠깐만요!”


바깥으로 문전박대 당한 가스페르가 허망한 눈빛으로 푯말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은 절대 디오스 마노가 아니야.”


그 장소에 미련없이 등을 돌린 가스페르가 다시 ‘진짜’ 디오스 마노의 공방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기억을 더듬으며 도착한 곳은 수도의 극 외곽. 이곳을 나가면 거의 황무지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여기랑 비슷했던 것 같은데··· ···?”


약 10년전의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다 보니 지금과 다른 부분은 분명 존재했다.


저벅저벅.


양옆에 난 상가를 보며 중앙의 흙길을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눈에 담으며 이동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기억의 조각들이 한 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조각들이 모인 한 곳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


“여기다.”


낡아 빠진 허름한 공간.

마당에 있는 화로가 아니었다면 공방이라고 부르기도 머뭇거렸을 정도로 허름한 곳이었다.


“계··· ···계십니까?”


조심스레 주인을 불렀지만 대답은커녕 인기척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은 희미하지만 느껴지기는 했다는 의미다.


“허··· ···.”


짧지만 분명한 숨. 그러나 그것이 손님을 맞이하는 희망찬 소리는 아니었기에 가스페르는 생각할 틈도 없이 담장을 넘어 문을 열었다.


휘잉!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문을 열어 젖히고 침실로 향하자 거의 죽어가는 노인이 침상 위에서 끙끙 앓고 있었다.

이에 가스페르가 빠르게 달려가 부축 후 상점에서 회복제를 구입해 노인에게 먹였다.

반 아니, 거의 칠 할은 바닥에 흘려가며 마셨지만 조금만 마셔도 그 효능이 발하는 약이었기에 노인이 기력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어··· ···, 누구십니까?”


비 오는 날 찍은 사진만큼이나 흐렸던 노인의 시야가 천천히 카메라의 초점 돌아오듯이 뚜렷해졌다.


“와··· ···왕자님?”


단번에 그를 알아본 노인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니, 고개를 숙인 정도가 아니고 절하듯이 굽혔다.

담을 넘다 날아간 모자 때문에 그를 알아본 모양이다.


“일어나십시오!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가스페르의 극구 만류 끝에 몸을 세워 벽에 기댄 노인이 물었다.


“왕자께서는 여기 어인 일로 찾아 오셨나이까? 그 전에, 참 올곧게 크셨습니다. 어렸을 적의 모습이 아직 잊히지 않는데··· ···.”


그러자 가스페르는 씁쓸한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디오스 마노··· ···, 맞지 않으십니까?”

“그래요. 한 때 그렇게 불렸죠. 그러나 저는 너무 늙었습니다. 무기 제련은 무슨 망치 하나 들기도 벅찹니다.”


마치 가스페르의 용건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 디오스 마노가 말했다.


“그러니 제게 무기의 수리를 청하는 것이라면, 저기 다른 공방을 찾아가 보십시오. 거기 제 제자가 있을 겁니다.”


그곳은 아마 가스페르가 문전박대 당했던 그곳일 테였다.


“그곳에서도 이건 수리하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제 제자가요? 그럴 리가 없는데··· ···.”


허나 가스페르도 눈치가 없는 편은 아니었다.


“제자가 멋대로 공방을 나갔군요.”

“그걸 어떻게··· ···.”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이렇게 쇠한 노인을 두고 떠나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

“예리한 지적입니다만, 제가 이리 병든 것은 제자 놈이 나가고부터입니다.”

“제자가 스승을 버린 것은 변치 않죠.”

“그것 또한 맞는 말씀이십니다.”

“그럼 전 다른 활을 구해야겠군요. 제가 의사를 하나 붙여드릴 테니 치료받으십시오.”

“잠시.”


떠나려던 가스페르를 디오스 마노가 붙잡았다.


“물건을 한번 볼 수 있을까요··· ···. 아무리 나이가 들어 노망이 났다지만, 아직 제련에 대한 욕심을 버리긴 힘드네요.”

“물론입니다.”


가스페르가 가방을 조심스레 열어 활을 보여 주었다.

이제는 인시터애로우의 복제품이라고도 믿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마치 이 공방처럼 말이다. 하지만 디오스 마노는 단번에 그 물건의 가치를 알았다.


“이것, 인시터애로우군요. 허나 어딘가 조금 다릅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복제품이군요. 느껴지는 힘이 달라요. 원본과 힘의 양은 같지만 결을 달리하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입니다.”


가스페르의 조각난 활을 보자마자 그 쇠약하던 노인은 어디 가고 무기 제련에 인생을 쏟아 부은 디오스 마노의 영혼이 그 몸에 자리했다.


“이미 갈가리 부서져 버린 뒤라 아예 고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


가스페르가 흠칫 디오스 마노를 바라보았다.


“수리해 보겠습니다. 제 마지막 제련을 이것으로 마무리하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허해 주시겠습니까?”


가스페르의 입이 지금 가스페르가 얼마나 벙쪘는지를 알려 주고 있었다.


“그럼 허락해 주신 것으로 알고,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일 년간 지펴지지 않던 아궁이에 불이 지펴졌다.

디오스 마노가 피우는 그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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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악의 몰락 (1) 24.01.21 60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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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가스페르 (8) 24.01.07 47 0 10쪽
82 가스페르 (7) 24.01.05 55 0 10쪽
81 가스페르 (6) 24.01.03 42 0 10쪽
80 가스페르 (5) 23.12.31 43 0 10쪽
79 가스페르 (4) 23.12.29 54 0 9쪽
78 가스페르 (3) 23.12.27 87 0 9쪽
77 가스페르 (2) 23.12.24 41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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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가월의 밤 (2) 23.12.13 82 0 10쪽
71 가월의 밤 (1) 23.12.10 60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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