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편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8 18:00
연재수 :
159 회
조회수 :
7,937
추천수 :
30
글자수 :
723,372

작성
24.01.05 18:00
조회
55
추천
0
글자
10쪽

가스페르 (7)

DUMMY

마침내 책봉식 날이 다가왔다.


똑똑똑.


“예, 들어오십시오.”

“아들아, 상태는 어떠냐.”

“더할 나위 없습니다.”


1왕자가 빼어난 정장을 입고 자신의 어머니, 왕비를 마주보았다.


“어서 나가자꾸나. 맹꽁이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알겠습니다.”


일 년에 몇 번 열리지 않는 왕실의 정문이 환하게 개방되었고, 그 넓은 틈으로 무수히 많은 백성들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괜찮으냐?”


왕비가 숨을 헐떡이는 2왕자에게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물었다.


“괜··· ···괜찮습니다.”

“무리하지 말거라. 책봉식은 후로 미루면 된다.”

“아닙니다··· ···. 지금 하겠습니다.”

“시작까지 약 한 시간 가량 남았으니 조금 쉬다 오거라.”

“예··· ···, 감사합니다.”


궁으로 들어가는 2왕자를 보며 1왕자와 왕비는 씩 불미한 조소를 지었다.

제퍼는 의중을 알 수 없는 무표정을 짓고 있었으며, 가장 큰 혼돈은 저 아래 백성들에게서 퍼졌다.


“2왕자께서 갑자기 왜 들어가시는 거지?”

“긴장하신 것이겠지. 어디 이런 일이 많았던가?”

“뭔가 다른 느낌이 드는데··· ···.”

“예끼! 불길한 망발을 지껄이는가?”


털썩.


누가 들어도 힘 없는 소리가 2왕자의 방 전역에 울렸다.


“빌어먹을. 책봉식 당일에 이렇게 될 건 누가 알았겠나.”


똑똑똑.


세 번의 노크 소리가 울리자 2왕자가 잽싸게 다시 정자세를 잡았다.


“들어가도 되겠느냐?”


벽 너머에서 들렸기에 그리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2왕자가 듣기에는 선명한 목소리였다.


“예, 들어오시죠. 어머니.”


끼이익!


경첩에서 나는 소리가 묘하게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2왕자에게는 왕비가 더없이 좋은 사람이었다.


“어머니 혹시 차는··· ···.”

“걱정 말거라. 많이 챙겨왔으니.”


차를 받아 든 2왕자가 뜨거운 것인 줄도 간과하고 허겁지겁 들이켰다.


“천천히 마셔라.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다.”

“컥컥!”


뜨거움에 몸이 거부할 때가 되어서야 흡입을 마친 2왕자가 평온을 되찾았다.


“후우··· ···.”

“좀 진정이 되었느냐?”

“예. 감사합니다.”


2왕자의 건강이 온전했더라면 이런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겠지만, 이미 그런 시기는 모두 지나간 후였다.


“조금 쉬고 나오거라. 이제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제때 나가겠습니다.”


약속과 달리 2왕자는 책봉식이 시작되는 와중에도 나타나지 않았고, 제퍼는 여전히 기분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앉아 있기만 했다.

피오렐라는 불안한 눈빛으로 제퍼, 1왕자, 왕비를 번갈아 보았다.

백성들은 저마다 웅성거리며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왕실 근위대는 그런 백성들을 통제하기에 여념이 없었으며, 3왕자는 책봉식에 출석도 하지 않고 저 멀리 어딘가에서 술을 퍼먹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2왕자는 정신병에 가까운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주기가 점점 짧아졌고, 2왕자는 병에 담겨 있던 차를 쉴새 없이 들이켰다. 그럼에도 증상은 나아질 기미조차 없었고, 약간 진정이 된 틈을 놓지 않고 다급히 숨을 가쁘게 몰아 쉬며 자신의 자리로 나타났다.


“오 저기! 왕자님이!”


이를 본 한 백성이 소리쳤고, 미친 듯이 많은 환호와 함성이 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왕자님 여기 한 번만 봐 주세요!”

“저도 한 번만!”


2왕자는 점점 어지러워지는 정신을 붙잡고 자리에 앉았다.

이를 본 1왕자가 왕비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분명 못 나올 거라고··· ···.”


그러자 왕비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후우··· ···, 아들아.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더냐? 참고 기다리거라.”

“알겠습니다··· ···.”


왕비의 말에 수긍하는 것까지는 똑같았지만 집중에 집중을 거듭해야 낚아챌 수 있는 묘한 시기가 들어있었다.


“어서 앉거라.”

“예, 아버지.”


이렇게 차례대로 1왕자, 왕비, 왕, 2왕자, 피오렐라까지의 배열이 완성되었고, 피오렐라의 옆에 남은 두 자리는 참석하지 않은 3왕자와 참석하지 못한 4왕자, 가스페르의 것이었다.


“선포하겠다.”


책봉식은 특별히 왕이 직접 임명하는 특별한 예식이다.


“리그렛 반 아이데는 내 앞으로 오라.”


2왕자가 아직 진정이 되지 않은 듯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제퍼에게 다가갔다.

이어 두 사람이 마주보자 제퍼가 자신의 손에 들린 책봉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리그렛 반 아이데. 활의 신이자 우리 행성의 은총, 허완 님이 그대를 신지무의하여 이 권능을 하사하노니 그대가 이 행성을 비출 밝은 달이 되었음을 공포하는 바이다.”


아래에서는 박수 소리와 함께 귀가 찢어질 듯한 함성이 연신 들려왔고, 주변에서는 박수를 치며 2왕자의 책봉을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지금 2왕자는 당장 탈출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느라 백성이나 주변 가족들의 축하에 반응할 겨를도 없었다.


“으··· ···으으.”


다시 발작 증세가 도진 2왕자가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제퍼를 마주했다.

지금 2왕자의 눈 앞에는 제퍼가 있지 않았다.

얼마 전 보았던 피칠갑의 가스페르가 제퍼의 자리를 대신했을 뿐이었다.


“으아아악!”


2왕자가 공포에 못 이겨 털썩 주저 앉아 구석으로 기듯이 향했고, 그런 2왕자의 모습에 한순간 모든 백성과 근위대. 심지어는 제퍼와 피오렐라까지도 정적에 빠졌다.

그리고 1왕자와 왕비는 주체할 수 없다는 듯 웃음을 참으며 몸을 튀틀었다.


“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지금 왕자님이··· ···.”


이는 정적에 이은 패닉을 불러 일으켰고, 이런 패닉에서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근위대 대장이었다.


“근위대는 당장 2왕자님을 치료실로 모셔라.”

“알겠습니다.”


빠르게 달려 나간 두 근위대가 2왕자를 들어 치료실로 데려갔고, 여전히 패닉으로 물든 현장을 정리한 것은 이 상황에서 고조된 기분을 가진 왕비였다.


“백성 여러분. 지금 2왕자께서 상태가 별로 좋지 않으신 것 같으니 책봉식은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근위대에 의해 밖으로 내보내진 백성들이 저마다의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저 위에 무언가 있던 것 아닌가?”

“2왕자께서 정신 질환을 앓고 계셨다던가··· ···.”


평소 같았으면 그런 말을 한 사람을 꾸짖었을 중년들도 이번만큼은 침묵을 고수하는 분위기였다.


“대체 세상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 것인가··· ···.”


여전히 떠 있는 태양이 유독 밝은 낮이었다.


***


치료실에 누워 치료를 받는 와중에도 2왕자의 발작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으··· ··· 가스페르··· ···으어어어!”


여전히 가스페르가 보이는 듯 손사래 치며 발작했다.


“왕자님! 제발 가만히 계세요!”


그런 2왕자를 붙잡던 의료진들은 이미 충분히 지친 상태였다.

그때 왕비가 나타났다.


“왕비를 알현합니다.”

“수고가 많으시오. 2왕자는 내가 돌볼 터이니 그대들은 목을 좀 축이고 계시오.”

“하지만 저희 의료진이··· ···.”

“나도 의료 지식이 있을 만큼 있으니 걱정 마시고 얼른.”


의료진들은 왕비에게 등 떠밀려 강제로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그럼··· ···우리 간단하게 점심이나 때우고 올까?”

“좋아요. 뭐 먹을까요?”


누군가 의료진들의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화목하기 짝이 없었다.


“누··· ···누구십니까?”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목장에 마스크를 쓴 남자가 단도를 뽑아 들고 의료진들을 소리 소문 없이 도륙내 사체를 은폐했다.


***


“아들아, 어미를 좀 알아 보겠느냐?”

“어··· ···어머니.”

“그래. 아직 멀쩡한가 보구나.”

“어머니, 차 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


그 말을 들은 왕비의 입엔 감출 수 없는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래 그래, 이 어미가 마실 것을 좀 주마.”

병에 담긴 차를 따라 2왕자에게 주자 2왕자는 그것을 허겁지겁 마셨다.

그러나 그 차는 2왕자가 평소에 왕비에게 받아 먹던 차가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보리차.


“이··· ··· 이것이 아닙니다. 어머니. 제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2왕자는 애걸복걸하기 시작했다.


“제발 차를 주십시오 제발··· ···.”


그러자 왕비가 천천히 2왕자의 귀에 대고 말했다.


“그 차는 이제 없단다.”

“왜··· ··· 왜죠?”


씨익.

분명 들렸다. 왕비가 자신의 귀에 대고 웃는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어··· ···어머니?”

“이제 네게 그것을 줄 가치가 없기 때문이지.”

“예?”

“네 역할은 이제 끝났단 소리다. 천천히 쌓아 온 환각제가 더할 나위 없는 효과를 보인 모양이야.”

“환··· ···환각제?”

“이제 말해 줘도 되려나··· ···. 네가 먹은 차는 모두 환각제였다. 환각제임과 동시에 진정제 역할을 하는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었고, 그 특유의 맛을 가리기 위해 설탕을 과량 첨가했다. 그 결과 너는 양껏 중독되어 정신이 혼미해졌고, 곧 너는 환각제로 인해 살되 죽느니만 못하게 될 것이야. 수고했다 아들아. 이제 내게 맡기고 영원히 자거라.”

“으··· ··· 으아아아아악!”


그렇게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2왕자는 치료실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고, 의료진들은 치료실에서 왕비를 봤다는 이유만으로 암살자들에게 조용히 암살당했다.

범인은 약 이 개월간의 짧은 수사기간 끝에 유야무야 미제 사건으로 남아 버렸다.

모든 사건의 전말은 이보다 절망적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고도··· ··· 섬뜩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미지의 편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00 성지화 (1) 24.02.18 34 0 11쪽
99 집결 (6) 24.02.16 30 0 10쪽
98 집결 (5) 24.02.14 42 0 10쪽
97 집결 (4) 24.02.09 36 0 10쪽
96 집결 (3) 24.02.07 88 0 10쪽
95 집결 (2) 24.02.04 43 0 9쪽
94 집결 (1) 24.02.02 36 0 10쪽
93 악의 몰락 (6) 24.01.31 43 0 9쪽
92 악의 몰락 (5) 24.01.28 32 0 9쪽
91 악의 몰락 (4) 24.01.26 80 0 10쪽
90 악의 몰락 (3) 24.01.24 48 0 9쪽
89 악의 몰락 (2) 24.01.21 50 0 9쪽
88 악의 몰락 (1) 24.01.21 60 0 9쪽
87 가스페르 (12) 24.01.19 56 0 9쪽
86 가스페르 (11) 24.01.17 76 0 10쪽
85 가스페르 (10) 24.01.12 43 0 10쪽
84 가스페르 (9) 24.01.10 30 0 9쪽
83 가스페르 (8) 24.01.07 47 0 10쪽
» 가스페르 (7) 24.01.05 56 0 10쪽
81 가스페르 (6) 24.01.03 43 0 10쪽
80 가스페르 (5) 23.12.31 44 0 10쪽
79 가스페르 (4) 23.12.29 54 0 9쪽
78 가스페르 (3) 23.12.27 87 0 9쪽
77 가스페르 (2) 23.12.24 41 0 10쪽
76 가스페르 (1) 23.12.22 70 0 10쪽
75 가월의 밤 (5) 23.12.20 44 0 10쪽
74 가월의 밤 (4) 23.12.17 70 0 10쪽
73 가월의 밤 (3) 23.12.15 61 0 9쪽
72 가월의 밤 (2) 23.12.13 82 0 10쪽
71 가월의 밤 (1) 23.12.10 61 0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