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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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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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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3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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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페르 (5)

DUMMY

“와아아아아아!”

“1왕자와 왕비께서 수도로 돌아오셨다!”


백성들의 무수한 환호와 환희를 받으며 마차에서 행차한 1왕자와 왕비가 백성을 마주 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왕비께서 나한테 손을 흔들어 주셨어!”

“뭐라는 거야. 나한테 해 주신 거거든?”


백성들의 반응으로부터 1왕자와 왕비의 인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


“도착했습니다.”


목적지까지 이들을 데려다 준 마부가 영광인 듯 둘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에 맞춰 1왕자와 왕비가 마부에게 인사를 건넸다.

단역이 주연을 보좌하기 위해 나선 것처럼 마부는 그 길로 돌아갔다.


“시작인가 ··· ···.”


레드카펫을 걷는 와중에도 양 옆으로 도열한 백성들에게 살갑게 인사를 건넸고, 백성들은 어쩔 줄 몰라 하는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수고가 많으시오, 부인.”


제퍼가 누구보다 먼저 나와 1왕자와 왕비를 맞이했다.


“왕을 알현합니다.”

“왕을 알현합니다.”


왕비와 1왕자가 동시에 왕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넸다.


“피오렐라는 후유증으로 참석하지 못했소. 아 잠시, 보는 눈이 많구려. 안으로 드시오.”


고풍적이고 화려한 의상을 뛰어 넘는 가족간의 사랑에 백성들은 어쩔 줄 모르는 듯한 표정을 취했다.


“이곳까지 오는데 체력을 많이 소모했을 터이니 먼저 쉬시오.”

“감사합니다. 아버지.”

“부인은 잠깐 내 방으로 오시오. 가스페르, 너도 따라 오거라.”

“알겠습니다.”


왕과 왕비를 따라 붙는 가스페르의 뒤로 1왕자의 따가운 시선이 작열했다.


***


“어인 일로 저를 부르셨나이까?”

“시치미 떼지 마라. 이미 다 알고 왔지 않나?”


한껏 가볍고 급박해진 제퍼의 목소리에 왕비는 피식 실소해 버렸다.


“뭐가 그렇게 즐겁지?”


증오에 가까운 목소리의 높이가 왕비에게 날카로운 날을 세워 그녀를 겨냥하고 있었다.


“그저 당신의 이런 모습을 간만에 봐 즐거울 뿐입니다.”


그에 반해 왕비는 여유롭디 여유로운 표정으로 제퍼의 말을 되받아쳤다.

고요한 정적이 흐른 끝에 입을 연 것은 왕비였다.


“여쭐 것이 있어 부른 것이 아닙니까?”


제퍼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왕비의 말에 호응했다.


“나는 불과 며칠 전에 가스페르를 내 후계로 책봉했다.”

“이미 들었습니다.”

“편지에 쓰여 있었으니 말이야.”

“제게 하고픈 말씀이 무엇입니까?”


제퍼가 옆에 앉아 안절부절 못하는 가스페르를 한번 훑더니 말했다.


“가스페르의 후계 책봉에 대한 왕비의 의견을 듣고 싶군.”


왕비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제 의견까지 갈 것이 무어 있겠습니까? 이미 왕께서 결정하신 일을 제 변론으로 뒤엎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알겠네. 볼일은 다 보았으니 왕비도 들어가서 쉬게. 이틀 뒤 공포가 있을 예정이니.”

“알겠습니다.”


“아버지. 어쩌자고 그런 말을 하셨습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나?”

“대화의 갈피를 못 잡겠어서 말입니다. 어머니께 무슨 뜻을 전하고 싶으셨던 겁니까?”


복도를 걷던 제퍼가 휙 돌아 뒤따라 오던 가스페르와 마주했다.


“넌 네 공백의 일 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지 않느냐. 네가 지난 날의 기록을 알면 내 반응도 이해할 수 있을 것··· ···.”


잠깐 감정에 북받친 제퍼가 이어 또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그 짧은 틈을 잡은 가스페르가 제퍼에게 물었다.


“그럼 그 일 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 주십시오! 왜 말씀해 주시지 않는 겁니까.”


제퍼는 가스페르를 더 볼 수 없다는 듯 시선을 회피했다.


“따라오지 말거라.”


겉으로만 여유로워 보이는 제퍼가 자신의 침실로 향했다.


들고 있던 서류를 지나가던 수하에게 맡긴 가스페르가 침대에 누웠다.


***


후루룹.


왕비가 여유롭게 다탁에 앉아 차와 다과를 집어 먹으며 폭소를 흘렸다.


“아하하하! 즐겁구나, 즐거워. 내 평생 왕이 저토록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볼 줄이야.”


그런 그녀와 마주 본 1왕자가 먹던 다과가 얹힌 듯 연신 가슴을 두드렸다.


“그런데, 겨우 이런 걸로 아버지가 무너지실까요?”


1왕자의 말에 눈살을 찌푸린 왕비가 차를 내려놓았다.


“아들아, 이리 미련해서 어찌 왕이 되겠느냐. 우리가 지금 등장한 것만으로도 저들은 엄청난 심리적 부담을 느낄 것이란 다?”

“근데 분명 초대장은 아버지가 보내신 것··· ···.”


1왕자가 말끝을 흐리자 왕비가 1왕자를 질책했다.


“하고 싶은 말은 끝까지 다 하려무나. 주장을 확고히 하란 말이다. 내가 몇 번을 가르쳤는데 쯧쯧.”


지지 않겠다는 듯 이를 으득하고 간 1왕자가 끝까지 말을 이었다.


“초대장은 아버지가 보내셨으니 저희의 등장을 지레 짐작하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래. 예상은 했겠지. 하지만 예상이라는 건 말이다, 이성에서 비롯되는 거야. 하지만 인간은 감정적이고 본능에 충실한 동물이지. 왕이라고 다를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이런 중범죄를 저지른 이가 대낮에, 그것도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에 사는 백성의 환호를 받으며 자신에게 온다? 불안하기 짝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씨익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 왕비가 다과를 집어 손에 넣고 으깼다.


“보기 좋게 포장해서 너는 대도시로, 나는 그런 너를 돕는 역할로 유배를 보냈지만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옆 행성 감옥에 갇혀 있던 아들이 일 년 만에 금의환향했네? 아마 어두운 동굴에서 한 줄기 빛을 찾은 느낌이겠지. 하지만 그건 빛이 아닌 다른 어둠일 뿐. 가스페르 그 녀석의 등장으로 오히려 우리의, 아니 나의 계획이 앞당겨졌다.”


숨도 쉬지 않고 말로써 광기를 드러낸 왕비가 혼잣말로 ‘그 수상한 녀석은 덤이고.’라며 조소를 머금었다.

1왕자는 그제서야 이해했다는 듯 미소와 차를 동시에 마실 수 있었다.


***


제퍼가 너른 침대에 개복하지도 않은 채 엎어졌다.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이냐.”


과연 왕비의 예상대로 제퍼는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며 침대의 시트에 파묻혔다. 아니, 자신의 생각에 파묻혔다.


‘이럴 거면 굳이 붙잡아 두지 말걸 그랬군.’


그 중에서도 특히 머릿속을 맴도는 것은 왕비와의 대화였다.


‘그저 당신의 이런 모습을 간만에 봐 즐거울 뿐입니다.’

‘제 의견까지 갈 것이 무어 있겠습니까? 이미 왕께서 결정하신 일을 제 변론으로 뒤엎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가스페르에게 했던 폭언 아닌 폭언도 신경 쓰이긴 매한가지였다.


‘그럼 그 일 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 주십시오! 왜 말씀해 주시지 않는 겁니까.’


인간은 후회의 동물이라 했던가.

‘이때 그렇게 말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하는 후회가 뇌의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한 국가의 수장답게 이내 정신을 차린 제퍼가 업무를 위해 탁자에 앉았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


침대에 누워 잠시 생각하던 가스페르가 무언가 생각난 듯 벌떡 일어나 어딘가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빠르게 걷던 가스페르가 어느 방 앞에 도착했다.

가스페르는 자신의 눈 앞에 있는 단어를 보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지어질 수밖에 없었다.


[피오렐라의 방]


담백한 푯말이지만 분명 그 말에는 꾹꾹 억제된 끼가 꿈틀대고 있었다.


똑똑.


“들어 와.”


몇 번 노크를 하자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인 거 어떻게 알았어?”

“내가 오빠 빼고는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으니까.”

“영광인데?”


피오렐라의 침대에 앉은 가스페르가 그녀를 어르고 달랬다.


“괜찮아?”

“응. 괜찮아.”


괜찮다고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묘하게 저하된 목소리와 표정이 그녀가 아직 힘든 상태임을 알 수 있게 했다.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피오렐라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스페르는 피식 웃으며 피오렐라를 안아 주었다.


“괜찮아. 이제 그런 일 없을 거야.”

“··· ···니··· ···.”

“응?”

“아니야.”

“뭐가 아닌데?”

“오빠가 준 화살 둘 다 잃어 버렸잖아··· ···.”


그 말에 가스페르가 터진 웃음을 다급히 숨기며 말했다.


“그거 때문이었어?”


가스페르가 격을 사용해 다시 화살을 건네 주었다.


“이번엔 무려 다섯 개다? 잃어 버려도 돼. 계속 줄게.”


피오렐라가 금세 화사한 얼굴을 보였고, 가스페르는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 내가 몇 가지 질문을 할 거야. 대답해 줄 수 있어?”


피오렐라가 격하게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고, 가스페르는 망설임 없이 질문 하나를 던졌다.


“내가 없던 일 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줄 수 있어?”


그랬다.

가스페르는 제퍼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없다면 다른 이에게서 가져 오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가스페르가 선택한 사람은 지금 이 왕궁 아니, 이 도시, 이 행성에서 가장 자신에게 우호적인 피오렐라였다.

그런데 피오렐라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어··· ···, 그··· ···.”


피오렐라가 과하게 머뭇거리는 것이었다.

아마 누군가가 걸어 놓은 금제와 가스페르의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것이리라.


“얘기해도 돼.”


가스페르가 한 번 부추기자 그제서야 숨겨져 있던 그날의 이야기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가스페르는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어쩐지 오늘은··· ··· 유독 달이 밝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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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악의 몰락 (2) 24.01.21 50 0 9쪽
88 악의 몰락 (1) 24.01.21 60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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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가스페르 (11) 24.01.17 76 0 10쪽
85 가스페르 (10) 24.01.12 43 0 10쪽
84 가스페르 (9) 24.01.10 30 0 9쪽
83 가스페르 (8) 24.01.07 47 0 10쪽
82 가스페르 (7) 24.01.05 55 0 10쪽
81 가스페르 (6) 24.01.03 43 0 10쪽
» 가스페르 (5) 23.12.31 44 0 10쪽
79 가스페르 (4) 23.12.29 54 0 9쪽
78 가스페르 (3) 23.12.27 87 0 9쪽
77 가스페르 (2) 23.12.24 41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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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가월의 밤 (5) 23.12.20 44 0 10쪽
74 가월의 밤 (4) 23.12.17 70 0 10쪽
73 가월의 밤 (3) 23.12.15 61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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