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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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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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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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월의 밤 (3)

DUMMY

맞으면 바스라질 것 같은 위력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공격의 그 끝마저 허공이었다.

여유롭게 공격을 피한 전학생이 실실 웃음을 흘렸다.

침착을 유지하기 버거운 상황에도 이찬은 침착했다.

대신 몸의 열을 방출하기 위해 무수한 질문을 퍼부었다.


“너는 누구지? 그 녀석들과는 무슨 관계냐.”


전학생은 말없이 그의 주먹을 흘려낼 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찬은 전투 과정에서 무언가 괴리감을 느꼈다.

그래, 말이 없는 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이찬이 느낀 괴리감은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학생은 숨을 쉬지 않는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공격의 중심에서도 헐떡이는 숨 한번은커녕 몰아쉬는 숨조차도 들을 수 없었다.

또 하나 의문인 것은.


찍찍!


전학생의 어깨에 올라있는 쥐새끼 한 마리.

하늘은 점점 어두워져갔고, 그가 모아온 상상력은 슬슬 바닥을 드러내 보였다.

하지만 이찬은 행동자였고, 그는 타인을 파악하는 데는 도가 튼 사람이었다.


“너, 서생원(鼠生員)이구나.”


서생원.

사전적 의미에는 쥐를 의인화하여 속되게 부르는 말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다시 말하자면 손톱 먹은 쥐.


찍찍찍찍!


“아예··· ···. 멍청··· ···한 놈은··· ···아니었··· ···군.”


어떤 상황에서도 열리지 않았던 전학생의 입이 기괴한 소리와 함께 벌어졌다.


“멍청이라니. 전 지구를 통틀어도 나보다 똑똑한 사람은 드물 텐데?”


이찬의 정확한 지적에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서생원이 쥐의 지시를 받들어 한번 더 입을 열었다.


찍찍찍!


“아직··· ···네가 간과··· ···한 것이 있군.”

“그딴 건 안 궁금해. 그나저나 네 어깨에 들러 붙어 떨어지지 않는 저것이 네 신인가?”

“··· ···”

“그럼 저 쥐에게 묻지. 어이 쥐새끼. 이 그릇은 뭘 하려고 만든 거냐?”


찍찍찍찍찍!


“네가··· ··· 관여할··· ··· 일이 아니··· ···다.”

“사실 짐작가는 바는 있다. 아무래도 지구의 ‘허용 상상력’이 턱없이 부족하니 급하게 그릇을 하나 만든 거겠지. 그 과정에서 인간의 형태는 갖추었지만 안타깝게도 코와 입, 귀는 형태만 갖추었을 뿐, 딱히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도 않아.”


미동도 없던 서생원이 마침내 표정에 변화를 드러냈다.


찍찍.


“확··· ···실히 똑똑··· ···하군.”

“그럼 두 번째 질문.”


찍찍찍찍찍!


“그··· ··· 전에.”



“뭐?”

“그 연회에··· ···서 아무도 못 알아봤다.”


이는 아마 신들이 자신을 못 알아본 것을 지적한 것이리라.

확실히 이상한 부분임은 틀림없다.

짧은 기간이었다고는 하나 이찬은 관념을 뒤흔들었다.

시스템에 무지한 신들이라고는 하나, 이찬의 얼굴 하나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단 말이다.


“그래, 그 부분이 확실히 의문스럽긴 했어.”

“그건··· ···네가 알아··· ···서 해결해야 할··· ···일.”

“그럼 질문하겠다.”


서생원은 침묵으로 이찬의 질문을 허했다.


“어떻게 지구로 왔지?”


《현실》과 《관념》의 사이에는 좁혀질 수 없는 경계가 존재한다.

이건 갓 《관념》에 온 일개 주민도 아는 사실.

그런데 눈앞의 인물은 명백히 두 세계의 경계를 허물었다.

아니, 허물다 못해 아예 부숴버린 느낌이다. 저 연회장을 구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상상력이 투입되었는지 감히 감도 잡히지 않는다.


찍찍!


“그 어떤··· ··· 신도, ··· ··· 경계를 허물지 못한다.”

“근데 너는 어떻게 했냐고.”

“··· ···, 모든 세계를 통틀어, 유일하게··· ··· 두 세계··· ···의 경계를 허물··· ··· 수 있는 자.”


이찬의 눈가가 작게 파르르 떨렸다.

떨리는 이찬의 눈가와 다르게 서생원의 한쪽 입꼬리는 하늘을 뚫을 듯 솟아 있었다.


“··· ··· 팔 개월 전, 《관념》을 뒤흔들고 유유히 사라진··· ···. 지구의 한 행동자··· ···.”


이찬이 서생원의 말을 격하게 부정하며 그를 향해 돌진했다.

이찬의 정신이 붕괴를 시작한 것이다.


“으아아아!”


후웅!


그러나 흥분을 가득 머금은 주먹 따위가 적중할 리가 없었다.

허공을 가르며 벽에 박힌 주먹에서 피가 흘렀지만, 겨우 그 피 흐르는 고통으로 가려질 말이 아니었다.


“행동··· ···자.”

“닥치라고!”


내지른 주먹에서 피가 줄줄 새며 아름다운 곡선을 그렸다.


“내 고유격··· ···은. 누구도··· ···모르게 남의··· ···등에 올라타··· ···는 것. 그것은··· ···, 행동자의 이동이라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이찬의 피로 붉게 물든 주먹이 서생원의 얼굴에 작열했다.

그러나 신음 한번 내지 않는 서생원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일어섰다.


“고통은··· ··· 하등··· ···한 생물이나··· ··· 느끼는 것.”


이찬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며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정말 인간의 형태만 갖춘 그릇인가 봐? 고통도 못 느끼는 걸 보면.”


찍!


“잡··· ···답은 필요 없다.”

“잡담이다. 이 새끼야.”


이찬이 다시 지면을 박차고 앞으로 달려 나가려는 순간.


고오오오!


섬찟한 마기가 지구의 근간을 뒤흔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도끼 정도의 작은 코셰흐샤비브를 소환한 아윤이 번갯불처럼 빠르게 서생원을 들이받았다.

백호양을 저 멀리 둔 채 달려오는 아윤이 힘든 기색을 과하게 내비쳤다. 모두 지구의 ‘허용 상상력’을 아득히 초월했기 때문이었다.


“뭐하는 거야! 오지 말라니까!”


본능에 기거하여 이찬이 아윤을 만류하려 부르짖었지만 아윤은 그런 이찬의 말을 외면하며 서생원의 복부를 가로질렀다.

반 이상의 움푹 패인 상처가 구성되지 않은 서생원의 뱃속을 드러냈다.


찍찍찍!


“후··· ···퇴다. 얻을··· ··· 것은 모두··· ···얻었다.”


등장할 때보다 곱절은 빠른 속도로 도망치는 서생원을 이찬이 따라붙으려 했지만 아윤의 상태가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아윤을 데리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아윤의 어머니께는 감기라고 둘러대며 급조한 약 봉투를 드리고 호양과 함께 아윤의 집을 나섰다.


벌컥!


집에 온 이찬이 백호양을 조심스레 내려놓으며 푹신한 매트리스 위에 엎어졌다.

갖가지 잡념을 모두 뒤로 제쳐놓으니 남은 것은 ‘분노’였다.

자신은 왜 서생원의 말에 분노했는가.

그 이유는 모두가 어림짐작하고 있으리라.

지구의 존망이 걸린 상황을 초래한 이가, 그 어느 누구도 아닌 자신이라는 생각.

자신의 실수 때문에 자칫 이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그 이외에도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최종적으로 이찬의 머릿속과 가슴 속에 분노라는 감정을 유발시킨 것이다.


“하아아아아··· ···.”


그 어느 때보다 깊은 한숨을 내쉰 이찬이 자신의 과오에 뉘우치고 있을 때.


야오아앙!


백호양이 이찬을 향해 날아들었다.


“으와악!”


그것은 사흘 뒤에 생각하면 되는 일이라고 위로라도 하듯, 백호양은 이찬의 주변을 서성이며 연신 우짖었다.


‘천천히 생각하자··· ··· 천천히.’


속으로 되뇐 이찬이 벌떡 일어나 백호양의 울음을 통제하려 장난감을 가지고 왔고, 호양은 이찬이 장난감을 집자마자 계속해서 뛰어오르며 그것을 잡으려 애썼다.


“너 덕분에 내가 산다.”


이찬이 장난감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백호양과 놀아 주는 사이.


***


[하아아암!]


이찬에게는, 그리고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하고도 친숙한 신언이 이찬의 마음속에서 발했다.


[피곤하군. 얼마나 잔 거지?]

[얼마 안 주무셨습니다. 지구의 시간으로 일 년 조금 안 될 겁니다.]

[확실히 짧게 자긴 했군.]

[저희가 왜 깬 건지는 이미 알고 계실 테죠.]

[그래. 놈이 격을 발현했다. 그것도 지구에서.]

[지구에서 격을 발현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그러는 겁니다. 양해하시죠.]


등장만으로도 모든 바람의 집결을 일으키는 이와, 존재만으로도 만물의 경외를 한 몸에 받아내는 이.

풍백과 백룡이 이찬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깨어났다.


[그런데 뭣하러 격을 세 번씩이나 발현해 우리를 깨운 거지?]

[뭔가 특별한 상황이 있어 보입니다.]

[빌어먹을 지구의 규제 때문에 너나 나나 밖으로 못 나가는군.]

[시야라도 공유되는 게 어딥니까.]


두 인외(人外)의 존재가 이찬의 시야를 공유받기 위해 특정 구역으로 향하자 그들의 시야가 이찬의 것과 완벽한 공유를 시작했다.


짤랑짤랑!


[무슨 소리지?]

[장난감 같습니다.]


마침내 이찬의 시야가 완벽히 공유되자 두 신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 제가 잘못 보고 있는 것이 아니길 바랍니다.]

[그 얘기 내가 하려했는데··· ··· 저 미친 행동자 녀석. 자기가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도통 모르는 것인가?]


모처럼 당황하지 않는 백룡마저 이찬의 시야에 비치는 저 존재를 보고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서, 어서 밖으로 나가라!]

[제가 어떻게 나갑니까? 상상력을 한없이 계속 줄여도 밖으로 나가지는 못합니다!]

[미쳐버리겠군.]


이찬과 풍백, 그리고 백룡의 시야에 동시에 비치는 것은.


야오옹!


백호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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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가스페르 (6) 24.01.03 4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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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가스페르 (2) 23.12.24 41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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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가월의 밤 (4) 23.12.17 70 0 10쪽
» 가월의 밤 (3) 23.12.15 61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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