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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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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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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결 (4)

DUMMY

“넌. 누구야?”


곧게 자란 나무가 가득한 숲 속 어느 성인 여성처럼 보이는 이와 어린 여자아이가 대치하고 있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대치라고 할 수 없었다.

어린 여자 아이는 무릎 꿇은 여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크르르릉.


아이의 뒤엔 지구의 ‘동물’이라 불리는 생명체와 긴밀히 비슷하되 전혀 다른 생물이 그르렁대고 있었다.


“다시. 물을게. 넌 누구야?”


아이의 안광이 푸르게 빛났다.

그 위압감에 여성 소유의 모든 것은 전의를 잃었다.

몸도 마음도 말이다. 그녀의 격은 이미 효력을 잃어 그녀를 평범한 영혼 혹은 인간으로 보이게 했다.


“나··· ··· 나는 신 아르테미스의 주민 셀리노프. 겨우 너 따위를 올려다볼 위인이 아니다.”


셀리노프.

익숙한 이름이었지만 지금 이노에게는 더없이 생소하고 낯선 이름이었다.


“신··· ···. 너 《관념》에서 왔구나.”


셀리노프가 흠칫했다.

그녀는 꺼내지지 않는 격을 억지로 모두 발현해 뒤로 성큼 호를 그리며 물러섰다.


“빌어먹을. 허용 상상력이 너무 적어서 격을 발현하기가 힘들어.”


이노가 천천히 셀리노프에게 다가갔다.

그 위압감은 과장을 조금 덧대어 신과 같은 수준이었다.

허용 상상력이 거의 없는 이곳에서 셀리노프는.


“너무. 약해.”


이노가 가볍게 손짓하자 곁에 있던 육식 공룡 티라노가 셀리노프의 목을 쳐 생명을 끊어내고 말았다.

피로 아수라장이 된 숲을 보던 아윤이 한숨을 턱턱 내쉬었다.


***


{이제 다 같이 모여야지.}


***


이노가 흠칫하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가.”


하늘에서 괴이한 격이 담긴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허용 상상력의 씨가 말라가는 이곳에선 그 정도의 신언이라면 최소 지신 급의 인물이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이노의 몸이 금빛으로 화했다. 이노도 가스페르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이찬.”


이노가 그 행성에 존재하지 않자 자연스레 주인을 잃은 공룡들도 이노의 격 속 흰 구로 이동되었고, 행성은 그 주인을 잃었다.


사아아아.


그리고 찰나의 순간 이노는 격의 크기를 헤아릴 수 없는 누군가 자신의 행성에 내려오는 것을 느꼈다.


“으앗!”


이노가 부딪히며 떨어진 곳은 낯선 곳이었다. 숲은 온데간데없고 간간이 듬성듬성 꽂힌 나무만 보일 뿐이었다.

뭔지 모를 동그란 것들을 단 괴물체가 양방향으로 이동했고 이노는 이에 큰 혼란을 느꼈다.

이노의 주변을 지나는 이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말을 했다.


“누가 유기했나 봐. 불쌍해.”


버려? 누가 버려? 난 버려지지 않았어.


이노는 자신의 누더기를 고쳐 입고 어딘가로 향했다.

본능이 이끄는 움직임이었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가르침을 받지도 않은 움직임이 이노를 올바른 곳으로 인도했다.


“이노?”


어느새 인적이 드문 넓은 골목에 들어선 이노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저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선명히 귀에 때려 박혔다.


“이노야?”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어두워서 가장 잘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이노에게 다가오는 이는 그녀의 생명의 은인이자 그녀의 이름을 지어 준 사람.


“이··· ···찬.”

“여긴 어떻게 왔어? 몰골은 왜 그래.”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해 주는 이찬을 보며 이노가 말했다.


“배고파.”

“어? 어. 그래 밥 먹으러 가자.”


얼떨결에 이찬의 작은 옥탑방엔 이찬, 아윤, 가스페르에 이노까지 모두가 모여 버렸다.


후루루루룹!


가스페르가 라면을 정신없이 흡입하는 와중 방문이 열리며 이찬이 들어왔다.

안에서는 아윤과 가스페르가 큰 솥에 라면을 끓여 먹고 있었다.

백호양은 아윤의 품에 안겨 강아지 간식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오 이촨! 오셨숩니까? 라명 드쉐요 라명. 어?”

“제발 입에 넣은 건 다 드시고 말씀해 주세요. 왕실의 품격은 얼어 죽을.”


가스페르와 아윤이 뜨거운 라면을 꿀떡꿀떡 삼키고는 이찬에게 질문했다.


“이노가 여기 어떻게 여기 있어?”

“이노가 어떻게 여기 있습니까?


둘의 공통 관심사는 역시 이노에 관한 이야기였다.


“모르겠습니다. 가스페르 때처럼 격이 느껴지는 곳으로 가다 보니 이노가··· ···.”


가스페르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보이더니 오른손에 든 젓가락으로 김치를 집어먹었다.

그 모습을 보던 이찬이 말했다.


“이상하군요. 어떻게 이렇게 네 명이 한 곳으로 모였을까요?”


그제서야 뭔가를 깨달은 듯한 가스페르가 이찬을 불러 앉혔다.


“안 그래도 말씀드릴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가스페르의 권유로 자리에 앉은 이찬과 이찬을 따라 곁에 앉은 이노, 그리고 그 어떤 상관도 쓰지 않고 라면을 먹던 아윤이 가스페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무슨 이상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신언도 아닌 것이 뭐 여하튼 엄청난 격을 담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번 뜸들인 가스페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기서 죽기엔 아쉽지.”

“누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겁니까?”


이어 가스페르의 대답을 이노가 가로챘다.


“나도. 들었어.”

“너도 들었다고?”


이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한테는. ‘이제 다 같이 모여야지’라고 했어.”

“자··· ···자자··· ···잠깐만요. 정리를 해 봅시다.”


가스페르가 혼란한 얼굴로 말했다.


“이전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팔 개월 전 《관념》에서 넘어온 셀리노프라는 주민에 의해 행성의 멸망을 목도할 뻔했습니다. 다행히 그 전에 계약이 성립되면서 전 허완이라는 저희 행성 시조의 주민이 되었습니다.”


허완. 분명 들어 보았다. 아니 싸우는 것을 보기도 했다.

투쟁 대회 때 홍길동과 싸워 패한 인물이던가.

다행히 투쟁 대회와는 다른 길로 신이 된 모양이었다.

그제서야 이찬은 가스페르의 주변을 휘감던 격의 정체를 알아냈다.

가스페르와 비슷하지만 결코 같지는 않은 이질적인 격의 주인은 허완이었던 것이다.


“잠깐.”


아윤이 가스페르의 말을 그쳤다.


“그게 팔 개월 전의 이야기면 이미 해결이 됐을 거고. 가스페르가 여기 있다는 건 그 해결이 좋은 쪽으로 되었다는 건데. 목숨의 위협을 받은 게 언제예요?”


가스페르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의 눈에 가스페르의 팔이 옅게 덜덜 떨리는 것이 들어왔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분노와 두려움이 동시에 치밉니다. 해와 달의 신이었습니다. 그들은 진짜 신이었고, 저희는 그들을 감당할 수 없었어요. 이렇게 죽나 싶은 허망감이 들 때쯤 갑자기 이곳, 지구로 이동된 겁니다.”


이것이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임을 인지한 모두가 이번엔 이노에게로 시야를 돌렸다.


“나는. 별거 없었어. 그런데. 한 가지 의심스러운 점은 있었어. 가스페르가 팔 개월 전 상대했다던 주민의 이름이. 내가 상대한 여자의 이름과 같았어.”

“뭐?”


가스페르가 반사적으로 이노에게 되물었다.


“이름이 셀리노프였다고?”

“응.”


혼란에 말을 더듬는 가스페르를 대신에 이찬이 이노에게 물었다.


“그리고 어떻게 됐어?”

“뜬금없이. 이동됐어. 그리고. 내가 사라지기 직전 누가 내 행성에 나타났어. 강해 보였어. 두려울 정도로.”


목도한 시간이 찰나였음에도 이노의 몸엔 소름이 돋았다.

그 정도로 진짜 신은 차원이 다른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거 보통 사안이 아닌 거 같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제삼자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본 이찬이 결론을 도출했다.


“이로써 저희의 목표는 확실해졌습니다.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놈들을 막고, 이노와 가스페르. 둘을 원래 세계로 돌려 놓는 것. 그것이 우리의 최종적인 목표입니다.”


갑자기 아윤이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다.


그아옹!


그 영향으로 백호양은 아윤의 품에서 튀어 나가 버렸다.


“가스페르와 이찬은 아윤을 쫓으려 했지만 그러기엔 백호양과 이노만 집에 덩그러니 남겨지기에 참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알아서 잘 할 거라 생각됩니다.”

“이하동문입니다.”


그리고 얼마 안돼 아윤이 돌아왔다.

그녀의 손엔 작은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그건 뭐야?”

“옷이지. 지금 애를 누더기만 입힌 채로 다니게 할 셈이야?”

“아니 이노는 우리보다 나이가 몇십 배는 많은—”

“닥쳐. 내가 어리다면 어린 줄 알아.”


이노를 화장실로 데리고 간 아윤이 신속하게 이노의 옷을 갈아 입혔다.


“봐. 이렇게 예쁜 아기한테 누더기라니 안 어울린단 말이야.”


노란 티셔츠에 멜빵바지.


“진짜 여느 유치원생 같네. 어디서 난 거야?”

“내가 옛날에 입던 건데. 너 기억 못해?”

“기억하지··· ···. 자, 자 그래서 저흐이의 계획은.”


다급히 얼버무리려다 말을 더듬은 이찬이 목을 가다듬었다.


“큼큼. 일단 제가 들은 정보와 알고 있는 정보. 그리고 모든 지식을 규합해 정리해 보겠습니다.”


서랍에서 노트를 꺼낸 이찬이 슥슥 거침없이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분··· ···, 몇십 분이 흘렀고, 그에 따라 가스페르는 뒤로 넘어가 잠에 들어 버렸고 아윤과 이노, 백호양은 셋이서 뒤죽박죽 놀고 있었다.


탁!


책상이 덜컹 흔들리며 이찬의 기지개가 이어졌다.

책상이 내려쳐진 소리에 백호양은 깜짝 놀랐고, 가스페르는 깜짝 놀라다 못해 튀어 올랐다.

아윤과 이노는 큰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자. 여러분 모여 주세요.”


진짜 정말 마지막 작전 회의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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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가스페르 (4) 23.12.29 54 0 9쪽
78 가스페르 (3) 23.12.27 87 0 9쪽
77 가스페르 (2) 23.12.24 4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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