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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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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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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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결 (5)

DUMMY

이곳은 멕시코의 어딘가.


“여러분 이곳입니다! 여기가 고대 마야 문명의 도시이자 멕시코의 유명 관광지 치첸이트사입니다!”


각국의 관광객들이 멕시코의 유적지인 치첸이트사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한국의 관광객도 당연 있었다.


“지금 앞에 보고 계시는 것은 치첸이트사의 상징이자 가장 유명한 건축물로 알려진 엘 카스티요(El Castillo)입니다.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


가이드의 안내를 들으며 관광객들은 치첸이트사를 둘러보았다.


“마지막으로 전사들의 신전(Temple Of The Warriors)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인신공양과 제물 의식이 진행되었던 곳으로 현재는 관광객의 출입이 금지되었으니 각별한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그럼 이제 자유 시간을 두 시간 정도 드릴 테니 자유롭게 관광해 주세요!”


여러 관광객들이 각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온 남녀 부부도 여타 관광객과 다르지 않았다.

슬하에 중학생 딸 하나, 초등학생 아들 하나를 두고 있는 부부는 점심 식사가 마치자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뛰어 놀 것을 권했다.


“잠깐 바깥에 둘러보고 와도 좋아. 하지만 엄마가 부르면 어떤 상황이 됐든 돌아와야 해!”

“네.”

“네!”


아이들은 그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유적지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관광을 이어갔다.

여러 장소를 기웃거리다 둘이 도착한 곳은 가이드가 말했던 전사들의 신전이었다.


“여기 들어가 볼까?”

“뭐? 안 돼. 아까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잖아!”


대부분의 건축물에 출입이 불가능한 것이 현 치첸이트사의 현실이었지만 개중에서도 가장 엄격하고 삼엄하게 출입을 금하는 곳이 이곳 전사들의 신전이었다.

중학생인 소녀는 소년을 설득하려 애썼지만 초등학생 소년의 호기심을 완전히 통제하지는 못했다.

소녀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이 소년은 이미 울타리를 넘어 전사들의 신전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안 돼!”


소녀는 다급히 소년을 데리고 나오기 위해 따라 계단을 올랐다.


“헉. 허억.”


소년이 계단의 끝에 올라와 정상에 도달했고, 소년을 따라 정상으로 숨을 헐떡이며 올라온 소녀가 소년의 손을 낚아채듯 잡고 내려가려던 순간.

소년이 소녀의 손을 뿌리치며 더욱 깊숙이 안으로 향했다.


“들어가지 말고 나오라니까!”

“누나, 와 봐. 여기 석상 같은 게 있어.”


소년이 가리킨 것은 고대 마야 신화의 비를 상징하는 신, 이제는 상상력과 격이 다해 《관념》에서 소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고 자취를 감춘 차크몰의 석상이 있었다.

누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앉은 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자세로 자리잡은 석상이 희미하게 진동했지만 소녀는 눈치채지 못했다.

다르게 말하면.


“누나.”


소년은 희미한 미동을 느꼈다는 것.


푸드더더덕!


전사들의 신전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던 새들은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라 도망가 버렸고, 연못가의 물고기들은 물 밑으로 사라져 버리거나 생존력이 약한 물고기들은 죽어 수면으로 올라왔다.


“이거 조금 움직인 것 같아.”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빨리 나가자. 여기 어딘가 불길해.”


그때 소년은 절대 꺼내서는 안 되는, 과장을 조금 보태어 죽은 신마저 되살린다는 금기의 문장을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이건 신의 석상이겠지? 이 신은 어떤 신이었을까?”


소년이 그 문장을 내뱉자 예민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던 미동은 이내 극동이 되었다.


두두두두둥.


동물들의 행동은 이 같은 행동을 모두 예상하고 도망친 것이었으리라.


“빨리··· ··· 빨리 나가자.”


소녀가 소년의 오른팔을 다시 한 번 잡아 자신의 곁으로 끌었지만 소년은 움직이지 않았다.

뿌리치려는 행동도, 소녀의 곁으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망부석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움직여. 야! 움직이라고!”


소년은 절대적인 것을 목도한 듯 차크몰의 석상을 향해 무릎을 꿇고 양팔과 머리를 하늘 위로 치켜들었다.


***


“저희 아들이랑 딸이 사라졌어요!”


그 시각, 소년과 소녀를 잃은 부부가 가이드에게 찾아왔다.


“저희 아이들을 잠시 풀어 놓았는데 불러도 답이 없고, 지진은 계속 일어나고··· ···.”


부부가 말끝을 흐리자 가이드가 결연한 눈빛으로 말했다.


“사실 짐작가는 곳이 있습니다. 저를 따라와 주시죠. 여러분! 잠시 바깥으로 나가 계세요! 전 아이들을 찾고 따라가겠습니다. 온 길을 따라 나가면 될 겁니다!”


관광객을 바깥으로 보내자 가이드의 표정이 한껏 굳어지더니 부부를 데리고 전사들의 신전으로 향했다.


“여보는 밖으로 나가. 내가 찾아 볼게.”

“뭐? 안 돼. 나도 같이 가.”

“일단 밖으로 나가. 나만 믿어.”


남매 아버지의 강경한 설득 끝에 남매의 어머니는 관광객의 대열에 합류해 바깥으로 나아갔다.


“이제 가시죠.”


가이드의 고개가 끄덕여지며 아버지와 함께 신전으로 향했다.


***


“··· ···아!”


자신과 소년의 이름을 부르짖는 목소리에 소녀가 전사들의 신전 모서리로 나가 힘껏 소리를 질렀다.


“엄마! 아빠!”


그러자 그 부름에 응하듯 남매의 아버지가 가이드를 동반해 신전으로 다가왔다.

남매의 아버지가 망설임없이 울타리를 넘고 계단을 오르려는 순간.


“잠시만요.”


격동하는 대지 사이로 가이드가 나타나며 아버지를 막았다.


“지금 올라가시면 안 됩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분개하며 고함쳤다.


“지금 내 딸과 아들이 위에 있는데 올라가지 말라는 것이 무슨 소립니까?”


가이드가 굳은 얼굴로 신전 정상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그 표정을 본 남매의 아버지도 어딘가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불쾌감과 공포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


“제가 분명··· ···가지 말라고 했을 텐데.”


무릎을 꿇고 아버지와 가이드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소녀의 뒤로 누군가 나타났다.

‘그것’은 소녀의 어깨를 잡아채더니 뒤로 넘어뜨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소년이었다.


“다시 여기서 활동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소년이 입을 열자 대지는 언제 격동이 일었냐는 듯 잠잠해졌다.

격동하는 대지 대신 그들을 맞이한 것은 누구도 감당하기 힘든 폭우였다.


쏴아아아아!


눈도 아닌 것이 차갑기는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우박도 아닌 것이 맞으면 피부가 뚫릴 듯 재려오기 시작했다.


“거기 이상한 옷을 입고 있는 놈.”


목소리에 담긴 아득한 격에 셋의 고막이 찢어질 듯했고, 소년의 입을 빌려 말하는 이가 부른 것은 가이드였다.


“네놈은 확실히 뭔가 알고 있군. 나를 네가 생각하는 그 장소로 안내해라.”


가이드의 안면이 돌이 될 듯 굳어졌고, 어쩔 수 없이 가이드는 그 제안을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아··· ···알겠습니다.”


소년의 몸이 하늘로 뜨고 천천히 가이드와 아버지를 향해 천천히 사뿐사뿐 내려왔다.

내려온 소년이 아버지를 보자 그의 눈에서 오만가지 감정이 내비치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크기가 큰 감정은 역시.


“단장지애(斷腸之哀)라 했던가. 걱정 마라. 이 그릇은 새로운 그릇을 얻고 나면 조속히 네게 보낼 터이니, 조금의 인고를 견뎌라.”


푸른 빛으로 가득찬 초점 없는 눈이 소년의 아버지를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


“그럼 이제. 안내해라.”


가이드가 격을 견디기 힘든 듯 옅게 고개를 끄덕였고, 둘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몇 분의 시간이 지난 후, 격의 후유증에서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아버지가 전사들의 신전 정상으로 시선을 옮겼고 그곳에는 이미 정신을 잃고 쓰러진 소녀가 보였다.

아버지는 제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전사들의 신전 계단을 네 발로 기어올랐다.


“··· ···아!”


희미하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소녀는 자신을 감싸 안는 느낌이 들자마자 정신을 잃었다.

아버지는 소녀를 끌어안으며 무의식적으로 정면에 시선을 두었고, 그곳에 남은 것은 불에 타 그 형상을 잃은 차크몰의 석상이 그을린 자국과 함께 산산조각 부서져 있었다.


***


-속보입니다. 멕시코의 유명 관광지 치첸이트사에서 영문 모를 격동과 함께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당국은··· ···.


“가스페르! 아침 드세요!”


가스페르가 한창 보던 뉴스를 끄고 거실로 향했다.

어제와 달리 집이 넓어진 이유는 아윤의 어머니가 가스페르와 이노의 위조 사연을 듣고는 지금은 쓰지 않는 주택을 내 주어 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오늘 학교 가시는 날 아닙니까?”


오늘은 평일임과 동시에 이찬과 아윤이 개학한 지 오래 되지 않은 날이었다.


“아직 여유가 있습니다.”


아침은 이찬이 끓인 김치찌개와 달걀 프라이였다.

며칠새에 완벽히 한국에 적응한 가스페르는 허겁지겁 아침을 먹으며 말했다.


“멕시코라는 나라? 에 어떤 일이 터진 것 같습니다.”


아직 ‘나라’라는 개념이 익숙하지 않은 가스페르였다.


“지진에 폭우에 힘든 모양입니다.”

“지금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습니까?”

“그것도 그렇습니다만··· ···.”


가스페르는 헤랴에서 있었던 일들 때문인지 사소한 자연 현상에도 극심한 관심을 가졌다.


“어휴··· ···, 여하튼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이노랑 아침 맛있게 드십시오.”

“예, 다녀오세요.”


문이 닫히는 도어 록 소리가 들렸다.


“어 왔어?”


이찬과 아윤은 최근 등굣길과 하굣길에 극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다니고 있다.

언제 어디가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은 뭐 없네.”


학교에 도착하고 나서야 안심이 되는 둘이었다.


“이따 보자.”

“그래.”


사아아··· ···.


***


“크으으으! 이찬은 참 요리 솜씨가 좋다니까.”


감탄의 독백을 뱉으며 아침을 먹던 가스페르의 앞 의자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조금 일찍 깬 이노인 줄 알았으나 느껴지는 격의 종류와 상상력의 크기에서 이노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에 가스페르가 고개를 듦과 동시에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이노가 경계하며 식탁으로 다가왔다.

그 격의 주인은.


[··· ··· 위험해.]


가스페르의 몸에서 증기의 형태로 빠져나와 겨우 형태를 갖춘 허완이었다.


“네?”


[지금··· ···뭔가 위험한 게 오고 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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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악의 몰락 (5) 24.01.28 32 0 9쪽
91 악의 몰락 (4) 24.01.26 80 0 10쪽
90 악의 몰락 (3) 24.01.24 48 0 9쪽
89 악의 몰락 (2) 24.01.21 50 0 9쪽
88 악의 몰락 (1) 24.01.21 60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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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가스페르 (11) 24.01.17 76 0 10쪽
85 가스페르 (10) 24.01.12 43 0 10쪽
84 가스페르 (9) 24.01.10 30 0 9쪽
83 가스페르 (8) 24.01.07 47 0 10쪽
82 가스페르 (7) 24.01.05 56 0 10쪽
81 가스페르 (6) 24.01.03 43 0 10쪽
80 가스페르 (5) 23.12.31 44 0 10쪽
79 가스페르 (4) 23.12.29 54 0 9쪽
78 가스페르 (3) 23.12.27 87 0 9쪽
77 가스페르 (2) 23.12.24 41 0 10쪽
76 가스페르 (1) 23.12.22 70 0 10쪽
75 가월의 밤 (5) 23.12.20 44 0 10쪽
74 가월의 밤 (4) 23.12.17 70 0 10쪽
73 가월의 밤 (3) 23.12.15 61 0 9쪽
72 가월의 밤 (2) 23.12.13 83 0 10쪽
71 가월의 밤 (1) 23.12.10 61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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