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 밴드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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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똘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8.26 17:04
최근연재일 :
2023.09.29 19:2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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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4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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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아, 아- 신청곡 받습니다!

DUMMY

마침내 곡이 끝나자.


짝, 짝, 짝, 짝!


창밖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우렁찬 박수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이곳에 관객은 아무도 없었다. 기현은 고개를 재차 돌려 주위를 살펴보았다.

별안간 들린 박수 소리에 모두 의아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혼 멤버들도, 대중음악연구회 멤버들도, 이중 어떤 그 누구도 박수를 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 누구지?


의문이 더해져만 갈 때쯤.


“정말 잘 들었습니다. 굉장하더군요.”


창가 아래에서 중년 남자 한 명이 불쑥 튀어나왔다. 내내 쪼그려 앉아 있었던 것 같았다.


“누구세요?”


기현이 물었다. 분명 대문도 닫아놨고, 이 집에는 울타리도 있는데, 어떻게 들어왔지?


“아, 혹시··· 관리인 아저씨?”


남자를 유심히 바라보던 미선이 끝끝내 그를 알아보았다. 한달음에 달려가 그와 악수를 나눴다.


“네, 기억하시네요? 잘 지내셨어요? 오랜만입니다.”

“잘 지냈죠, 당연히! 관리인 아저씨도 잘 지내셨죠? 너무 오랜만이네요. 저 중학생 때 이후로 처음이죠?”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 모양이다. 미선과 아저씨는 정겹게 얘기를 나누었다.


“아마 그 정도 되었겠네요. 여튼, 처음에는 엿들을 생각은 없었는데, 노래가 제가 사는 옆집까지 들리더라고요.”


한창 책을 읽던 중,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참지 못하고 허둥지둥 뛰쳐나갔더랬다.

반면 미선은 대중음악연구회의 연주가 민폐가 된 줄만 알고 대단히 미안해했다.


“어머, 죄송해요! 시끄러우셨겠다.”


미선의 사과에 관리인 아저씨는 양손으로 손사레를 쳤다. 정말로, 정말로 노래는 듣기 좋았으니까. 마치 지루한 일상에 불쑥 나타난 선물과도 같이.


“아뇨, 아뇨.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저도 노래 깨나 듣는 사람인데, 이 노래는 처음 듣는 곡이라서요. 혹시 무슨 곡인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노래가 너무 좋더라고요.”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이런 노래 칭찬을 받다니. 노래를 작곡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기쁜 순간이 또 있을까.


“사실 제가 만든 자작곡이에요.”


기현은 미선과 아저씨의 대화를 가만히 듣던 중,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학생이 만들었다고요? 정말, 이 곡을요?”


관리인 아저씨는 정말로 놀란 얼굴이다.


“예, 사실 대학가요제 본선 진출했거든요. 대학가요제 생방송에서 선보일 곡이에요.”


'대학가요제'라는 말을 듣자마자 소리나게 손바닥을 맞대며 탄성을 질렀다. 그러면 다 이해가 됐다.


“이런 곡이면 바로 대상이죠. 와, 연예인 탄생이다, 연예인 탄생. 예비 스타 와있다고 어르신들 좋아하시겠네.”

“사실 여기 진짜 연예인도 와있긴 한데.”


기현은 웃으며 부엌에서 고군분투 중인 혼 멤버들을 가리켰다.

기현이 자신을 가리키는 것도 모른 채 새카맣게 탄 냄비와 밥을 수습해보고 있었다. 밥과 김치찌개를 만들어보겠다더니,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자신도 김치찌개 맨날 먹어서 김치찌개 하나는 기똥차게 끓일 수 있다더니, 결국 결과물은 이랬다.


“야, 야! 냄비 타! 탄다!”

“와, 이거 우리 김치찌개 만들 수는 있겠냐?”


‘너네는 연습을 해라, 우리는 밥을 할 테니’라며 의기양양하게 자진해서 밥을 하겠다던 배포는 어디가고, 우왕좌왕하는 세 사람만 남아 있었다.


“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관리인은 우왕좌왕한 혼의 모습을 보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분명히 저 세 사람, 어디서 본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한참 생각하던 중, 불쑥 이미지 하나가 떠오른다.

가죽 자켓에 가죽 바지. 강렬한 헤비 메탈의 이미지.


또 다시 손바닥이 짝 맞부딪쳤다.


“아! 알겠다! 금주의 인기가요에 나오지 않았어요?”


앞치마를 입고 있는 지금 이미지와는 정반대지만 분명히 그 사람들이 맞았다.


"와! 어떻게 아셨어요?"


혼 멤버들은 자신들을 알아본 사람이 오히려 반갑고 신기하기만 했다. 자신들을 알아본 사람은 관리인 아저씨가 처음이었다.


"제가 금주의 인기가요 애청자거든요."

"저희가 나온 편 보셨구나!"

"네, 당연히 봤죠. 진짜 잘하시던데요."


지이이잉-


그때 대문 벨소리가 울리고, 미선이 대문으로 향했다.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내내 조용하던 집에서 노랫소리가 들리니, 어르신 두 분이 궁금해 찾아오신 것이다. 어르신을 알아본 관리인 아저씨는 반갑게 인사했다.


"아, 어르신들! 여긴 왜 오셨어요?"

"그냥 하루종일 조용하던 집에서 노래가 들리길래 와봤어. 뭔 일 생겼나, 싶어서."

"걱정돼서 와보셨구나?"


관리인 아저씨는 그 마음 다 안다는 듯 으하하,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 여기는 여기 주인집 따님 친구분들이고, 여기는 연예인. 가수래요."


관리인 아저씨의 소개에 기현과 혼 멤버들은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뭐? 연예인? 가수? 가수면 저어기 마을 회관서 함 노래들 불러 봐라. 오늘 잔치 있다."


자칫하면 불쾌할 수도 있는 부탁이었다. 관리인 아저씨는 멤버들 눈치를 살살 보며 얼버무렸다.


"예? 에이, 돈 받고 노래 부르는 사람들이 그냥 노래 부를까요."

"내 맨입으로 노래 부르라켔나. 수육 삶았다. 수육 먹고 싶음 노래 한 곡 해주든가."


'수육?!'

'뭐, 수육?!'


혼 멤버들은 수육이라는 얘기에 눈이 ?돌았다. 수육이라면 원래 준비했던 김치찌개보다 훨씬 밥이 좋았다. 밥은 물론 냄비도 태워먹었던 참이었다. 이렇게 가다간 오늘 저녁, 쫄쫄 굶어야 할 지도 몰랐다.


"오늘 마을 할아버지 칠순이라 먹을 것도 많어. 어때, 좀 땡기나?"


그런 와중 나타난 수육은 가뭄에 내린 단비와도 같았다. 수육보다 더 있다지 않는가. 수육보다 더! 고민하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

아무렴요, 노래 백 곡, 천 곡도 더 불러드릴 수 있습니다.


"네에!! 수육!!! 노래 부를게요!!"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냉큼 양손을 들고 '수육~! 살았다!'하고 소리쳤다.


저녁이 해결되었으니, 우리는 그저 훈련에 매진하기만 하면 될 터.

혼 멤버들은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늘 온 이유는 다들 잊지 않았겠지."


본선이 며칠 남지 않았다. 오늘은 그것을 대비한 특훈이었다.


"그러면 진짜 특훈 시작해볼까?"


대중음악연구회 멤버들은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특훈? 장기현한테 그동안 굴림 당한 게 얼만데, 당연히 누가 와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멤버들은 몰랐다.

헤비메탈의 무서움을.


.

.

.


"병철아, 드러머가 너 혼자 튀어나가면 어떡해. 다른 멤버들 연주 안 듣냐?!"

"미선아, 넌 혼자 튀면 안 된다! 지금 독주회 하자는 거 아니야."

"성호야, 성현아, 너네 방금 코드 꼬였다! 형제라고 코드도 똑같이 꼬이냐?!"


템포가 빠르고 속주가 많아 전체적인 곡 난이도가 높다던 장르답게, 형님들은 멤버들의 자잘한 실수를 잡아내고 있었다. 거의 신기에 가까울 정도의 능력이다.


"형, 형들···. 이제 그만···."

"뭘 그만해? 더 해야 해, 모자라! 한 번 더!"


그렇게 이장님께서 부르기 전까지 연습은 계속되었다.


*


구성진 노랫가락이 마을 회관을 우렁차게 울렸다.


"저는 종운 형이 목포의 눈물을 저렇게 구성지게 부를 수 있는 줄 몰랐어요."


밴드 혼의 보컬, 김종운은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에 힘껏 몰입 중이었다. 얼마나 몰입을 한 건지, 꺾기가 아주 수준급이다. 듣는 어르신들은 아주 꺄르르 웃으며 좋아라 하시고 계셨다.


"저 녀석, 내색 안 해도 은근히 이런 옛날 노래 좋아하니까. 판 깔아주면 잘해."


종운 형 덕에 얻어 먹는 수육이다. 두툼하게 썰린 촉촉한 수육의 지방 맛이 묵직하게 혀를 강타했다. 거기에 갓 담근 무말랭이와 김치, 쌈채소까지.


'천하일미가 따로 없네. 이게 천국이지.'


기현은 흐뭇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수육을 얹은 배추를 한 입 크게 물었다.


짝, 짝, 짝, 짝!


종운이 형의 목포의 눈물이 끝나자, 어르신들의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다음 타자는~ 두구두구! 바로바로 우리 대학가요제 본선 진출자! 대 스타가 될! 장, 기, 현!"


종운이 얌전히 존재감 없이 수육을 흡입하던 기현을 호명했다. 기현은 양볼 터지도록 수육을 먹다 호명을 당한 꼴이었다.


"다음 타자, 그래! 가자, 가자! 이번 타자는 무슨 노래를 부를까!"

"불러라! 불러라! 불러라!"


마을 어른들과 어르신들은 막걸리에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기현도 어르신들에게 한 잔, 두 잔, 얻어 마시느라 살짝 얼큰한 상태였다.

그래, 뭐 못 부를 게 뭐냐.

기현은 입에 남은 수육을 마저 다 씹어 삼킨 후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아, 아- 신청곡 받습니다-"


기현은 숟가락을 마이크 삼아 쥐었다. 기현이 신청곡을 받기 시작하자, 여기 저기서 다양한 곡들이 쏟아져 나왔다.


"굳세어라 금순아!"

"박경원! 박경원! 이별의 인천항!"

"백마야! 울지마라!"

"울고 넘는 박달재!"

"돌아와요 부산항에!"


구수한 곡들이 쏟아져 나왔다. 기현은 많고 많은 신청곡 중 한 곡을 콕 집어 골라 부르기 시작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불러야겠다.'


조용필의 노래인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기현이 아주 잘 아는 곡이다.


아, 이 곡을 야구장에서 얼마나 많이 목놓아 불렀던가.


'롯데야 1년만 기다려라.'


내년이면 롯데 자이언츠가 프로 구단이 된다.


눈을 감으면 아주 또렷하게 가사가 떠오른다. 기현은 야구장에서 목놓아 불렀던 기억을 떠올리며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청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좀 씩씩한데?"

"그러게 말여. 간드러지게 부르는 건 저 청년이 훨씬 잘하네."

"그래도 잘하긴 잘하는구만. 목소리가 정말 좋아."


어르신들은 기현이 야구장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른다는 것을 꿈에도 모를 것이다.


기현은 마지막 소절까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힘차게 불렀다.


마지막 소절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학생 참 씩씩하게 부르는구만!"


오늘의 주인공이신 어르신이 기현의 어깨를 팡팡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었다.


"뭘요, 제가 잘 불렀는지 모르겠네요."

"그나저나, 학생들 대학가요제 나간다고?"

"네. 저희 이번에 대학가요제 본선 나갑니다. 텔레비전 방송 타요."

"이야, 유명해지겠구만? 오늘 노래 정말 잘 들었네. 노인네들 앞에서 재롱 떨어주느라 고생이 많았어. 고마워."

"에이, 그런 말씀 마세요. 덕분에 잘 얻어먹었습니다."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는 손길에 기현은 멋쩍게 와하하, 웃어버렸다.


"자네는 분명 대상 탈 거야. 이 할아버지가 장담하지. 자네는 대상이야."

"···감사합니다!"


기현은 허리를 꾸벅 굽혀 인사했다. 말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유독 얻어가는 게 많은 이번 특훈이다.


작가의말

오늘의 곡

마그마-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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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아- 신청곡 받습니다! +6 23.09.24 2,599 8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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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돈보다 값진 연주 +4 23.09.12 3,913 111 9쪽
18 봄날은 간다, 아나? +4 23.09.11 3,944 10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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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만장일치 +2 23.09.09 3,968 10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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