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 밴드천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김규똘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8.26 17:04
최근연재일 :
2023.09.29 19:20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30,004
추천수 :
3,724
글자수 :
171,704

작성
23.09.15 18:40
조회
3,820
추천
112
글자
10쪽

아부지 저 정말 열심히 할게요!

DUMMY

2차 예선 이후 심사위원들 사이가 언쟁으로 시끄러웠다. 1차 예선이 끝난 후, 너나 할 것 없이 걸었던 내기 때문이다.


“거, 보라니까요. 제가 맞았잖습니까. 제가 보기에 그 팀, 대상감이에요.”


심사위원으로 모인 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대중음악연구회가 뜨거운 감자였다. 음악 전공하는 애는 딱 한 명밖에 없으면서도, 이런 저력을 보여줄 수 있다니. 여러모로 신기한 팀이었다.


“거기 음악 전문으로 하는 애는 건반 치는 여자애 딱 한 명밖에 없던데, 대상은 무슨. 본선이 호락호락한 줄 아나.”

“결국에는 1차 가는 것도 제가 이겼잖습니까. 분명히 걔네 본선에서 대상 탈 거예요.”


나이 젊은 두 작곡가는 대중음악연구회의 본선 성적에 대해 말을 얹었다.

한쪽은 ‘대상은 못 탈 것이다’라는 의견이었고, 다른 한쪽은 ‘분명 대상 탈 것이다’라는 상반된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예전 음악학부 서클 애들 나왔던데, 나는 과연 걔네를 이길 수 있을까 싶어. 걔네도 장난 아니던데.”

“한국예전이면 하모닉스인가, 그 친구들? 아- 걔네도 야무졌지.”


다른 한쪽에서는 새로운 이름이 떠올랐다. 한국예술전문학교의 ‘하모닉스’라는 서클에서 나온 팀이다.


“한국예전 애들이 대단하긴 대단해. 그렇지?”


한국예술전문학교라면 당대 한국 방송계를 주름잡는 학교였다. 한국예전 동문들이 파업하면 방송국이 마비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방송계에 끼치는 영향력이 어마무시했다.

그만큼 끼가 많고 재능 많은 걸출한 인재들이 매년 배출되었다.


“저쪽은 대상 타나, 못 타나 가지고 내기하나 본데, 그럼 우리는 이걸로 내기하자. 하모닉스가 이길 것이냐, 대중음악연구회 애들이 이길 것이냐, 내기하자.”

“내기? 내기면 뭘 걸어야 하지 않나?”


내기를 먼저 제안한 남자는 주변을 휘휘 둘러보더니 귓가에 속삭였다.


“시바스 리갈. 어때? 남대문 도깨비 시장에서 구한 건데.”


80년도에 양주는 기내 면세나 도깨비 시장 같은 곳에서나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남자가 건 시바스 리갈은 제법 귀한 물건이었다.


“키야, 그 귀한걸? 그럼 난 일주일 치 술값 내가 다 대기로 하지.”

“좋아, 무르기 없기다?”


여기저기서 내기로 시끄러웠다. 장내가 먹자, 마시자 판으로 소란한 사이, 조철우 팀장은 소주를 자작하며 빈 잔에 술을 채우고 있었다.


‘그놈의 대중음악연구회 얘기는 끊이지가 않네.’


가만 들어보면 비슷한 얘기밖에 없었다. 이 사람들이 취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 얘기가 질리지를 않아 그런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한 얘기를 또 하고 있다는 것만은 잘 알았다.


‘그러고 보니···.’


대중음악연구회 얘기를 계속 흘려듣다보니, 조철우는 회사에 떠도는 소문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


‘나승연이 뭔 신인 밴드 데뷔시킨다는 게 걔네였구만?’


한양레코드에게 산삼보다 더 귀하고 대스타와의 계약보다 더 귀한 게 바로 신인이다.

대스타와의 음반 계약보다 발굴한 신인 데뷔 음반이 더 드물어, 신인과의 계약 소식은 금세 회사 내에 퍼졌다.


‘나승연 팀장님이 뭔 신인 밴드랑 계약하셨더라고요. 이름이 뭐였더라··· 뭔 연구회?’


언젠간 부하 직원에게 들었던 정보가 똑똑히 떠올랐다.


‘신인 데뷔 계약을 이미 했다, 라···.’


조철우는 나승연이 말했던 ‘계약’의 정체가 ‘데뷔 음반 계약’임을 떠올리고는 혼자 배를 잡으며 호탕하게 웃었다.


“뭐 좋은 일 있나 봐요?”


조철우 팀장이 뜬금없이 웃음을 터트리자, 조철우의 앞자리에 앉은 심사위원이 의아하게 물었다.


“예, 예. 갑자기 너무 웃긴 일이 떠올라서. 아, 너무 웃었네. 당황스러우셨죠? 죄송합니다.”


그는 고인 눈물을 닦으며 찰랑일 정도로 채운 소주를 입에 털어넣었다.

쓰고 맛없던 소주가 너무너무 달콤하게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그래, 나이도 어지간히 처먹었으면 집에서 집안일이나 할 것이지. 뭔, 부장을 단다고.’


이 여자는 뭐가 그렇게 급해서 벌써 계약을 해놓으셨을까. 물 먹이기 딱 좋게 말이야.


조철우는 한양레코드의 부장은 자신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


2차 예선에 합격한 날, 기현은 다른 때보다 집에 늦게 도착했다. 멤버들과 뒷풀이 겸, 본선 진출에 관해 상의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말았다.

자칫하면 통금에 걸릴 수도 있었던 시간이다.


“어머니, 아버지- 저 들어왔어요.”


현관문을 열자 고요한 기운이 자신을 반겼다.


‘하긴 주무실 시간이긴 하지.’


어머니와 아버지, 누나 모두 잠들었는지, 집안은 캄캄하게 불이 꺼져 있었다.

2차 예선에 통과했다는 소식을, 본선에 진출해 텔레비전에 나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드리고 싶었지만 아쉬웠다.


‘관심이나 있으실까.’


기현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니나 누나는 조금 기뻐할 테다.

반면, 상 못 타면 무조건 교사 하라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영 미지수다.

애초에 이런 쪽에 일절 관심 없는 집안이라, 관심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일이고.


기현은 가족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살금살금 걸으며 방으로 향했다. 안방 맞은 편 방인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다, 기현의 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아버지.”

“······.”


방 너머는 묵묵부답이었다.

당연하다. 주무시고 있을 테니까.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아버지에 대한 진심을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 저예요, 기현이요.”


들려도, 들리지 않아도 상관없다.

지금 기현은 아버지에게 말을 걸며 제 진짜 본심과 의지를 토로하고 있었다.


“저 대학가요제 2차 예선 합격했어요. 저 본선 나가요.”


본선 나간다는 말을 들으면, 아버지는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웃음? 찡그림?

역시 무표정일까?

잘 상상이 안 됐다.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본선 진출했어요. 저 할 수 있다는 거, 잘한다는 거, 진짜로 보여드릴게요.”

“······.”


비록 아버지는 듣지 못해도, 기현은 계속 주절거렸다.

찡그린 표정이나, 냉랭한 표정의 아버지가 아니라, 환하게 미소 짓는 아버지를 상상해볼 수 있으니까. 인정해주는 아버지를 상상할 수 있으니까.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나아지는 기분이다.


“···아버지에게 떳떳한 아들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래할게요. 그러니까, 아버지도 지켜봐 주세요.”


기현은 마지막으로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들릴 듯 말 듯 아주 작았다. 이건 가장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


끼릭, 쾅, 무거운 철문이 닫혔다.

어둠 사이로 시계를 보니 통금이 조금 넘은 시간이다.

저 녀석, 아마 아슬아슬하게 들어왔으리라.


기현의 아버지 장기철은 늦은 밤,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잠에서 깨고 말았다. 옆에서 잠든 아내는 기현이 온 줄도 모르고 깊게 잠든 채였다.


‘이 녀석이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나가서 잔소리 좀 해?’


조금만 늦었어도 파출소에 연행될 수 있는 시간이다. 기철은 아들이 걱정스러웠다.


‘아니다, 됐다. 시간도 늦었는데, 내일 말하는 게 좋겠지.’


기현도 통금을 넘어서 바깥을 돌아다니면 파출소행임을 잘 알고 있었고, 나이도 나이고 군대도 다녀온 만큼 굳이 나서서 잔소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놈도 성인이니, 알아서 잘 처신하겠거니, 싶었다.


그렇게 다시 잠을 자기 위해 눈을 감던 때다.


“···아버지.”


방문 너머에서 기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내가 깨어있는 걸 아나? 대답해야 하나?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잠깐이다.

바로 뒤이어 기현의 목소리가 들렸으니까.


“저 대학가요제 2차 예선 합격했어요. 저 본선 나가요.”


기철은 곧이어 자신을 두고 아들이 혼잣말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기현의 혼잣말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기철은 대답하려 떼었던 입을 다시 다물고 묵묵히 아들의 혼잣말을 들었다.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본선 진출했어요. 저 할 수 있다는 거, 잘한다는 거, 진짜로 보여드릴게요.”


본선 진출이라···.

마냥 아직 어린애인 줄 알았는데, 그건 정말 큰 오산이었나 보다.

기현에게 음악은 단순히 치기 어린 한때의 불장난 같은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내성적인 성격을 이길 정도로, 거대한 무엇이었나 보다.


‘그날은 정말 진심이었군.’


그때도 지금도 기현은 당당히 제게 음악으로 보여줄 것임을 줄곧 말해오고 있었다. 자신이 알던 내성적이던 아들, 배포 없던 아들, 숫기 없던 아들, 뒤로만 숨던 막내아들이 아니었다.


‘벌써 이렇게 컸나.’


어느새 아들은 기철의 생각보다도 더 커 있었다. 기철은 자신의 의지를 당당히 말하는 기현이 대견했다. 아들이 자랑스러웠다.

아마 상을 타오지 못해도 기철은 기현이 대견할 것이다.


“···아버지에게 떳떳한 아들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래할게요. 그러니까, 아버지도 지켜봐 주세요.”


내내 듣고만 있던 기철이 말문을 열었다.


“···열심히 해라.”


‘잠깐, 꿈인가?’


열심히 해라, 그 목소리는 분명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방문 너머에서 또렷이 들렸다.


'설마....'


주무시는 줄 알았는데, 다 듣고 계셨던 거다.

기현은 당황한 나머지 소처럼 눈만 끔뻑거렸다. 진심을 내보였다는 생각에 부끄러워져, 얼굴이 홧홧했다.

하지만 당황스러웠던 기분은 이내 아버지가 인정해주었다는 만족감으로 변했다.


"열심히 하라고 말씀해주신 거 맞죠?"


한 번도 듣지 못했던 격려다. 기현은 어떤 격려보다, 어떤 칭찬보다 뛸 듯이 기뻤다. 아버지가 제 진심을 알아봐 준 것이리라.

기현은 환하게 웃으며 방문을 살짝 열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저 정말 열심히 할게요! 진짜요, 진짜. 그럼 주무세요!"

"시끄럽다, 너희 엄마 깬다. 너도 얼른 자라."


괜히 답했나 싶지만, 저리 좋아하는 걸 보니 잘 얘기했다 싶기도 하다. 기철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배까지 흘러내린 이불을 가슴팍으로 다시 끌어올렸다.


"예!"


기현의 미소가 입가를 떠나지 않았다.


작가의말

오늘의 곡

Vanilla Fudge- Ticket to ride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1980 밴드천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종료의 건 23.09.30 863 0 -
공지 제목 변경 공지 및 연재 시간 안내 23.09.20 269 0 -
공지 내용 수정 공지 23.09.13 2,831 0 -
36 경 대중음악연구회 대학가요제 특별상 축 +11 23.09.29 1,682 55 11쪽
35 축하해요! 대학가요제의 진짜 주인공! +39 23.09.28 2,014 65 11쪽
34 드디어 본선이다 (3) +50 23.09.27 2,330 68 11쪽
33 드디어 본선이다 (2) +7 23.09.26 2,428 100 11쪽
32 드디어 본선이다 (1) +7 23.09.25 2,558 94 11쪽
31 아, 아- 신청곡 받습니다! +6 23.09.24 2,601 86 11쪽
30 특훈이다! +3 23.09.23 2,601 91 11쪽
29 잭 브루스와 폴 매카트니 +4 23.09.22 2,739 91 11쪽
28 염탐 +7 23.09.21 2,774 90 11쪽
27 시연 +10 23.09.20 2,863 94 11쪽
26 우리 하모닉스한테 절대 안 져 +12 23.09.19 2,933 93 12쪽
25 라이벌, 하모닉스(9.20 수정) +4 23.09.18 3,197 94 11쪽
24 난 오늘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어 +7 23.09.17 3,425 94 11쪽
23 부정맥인가? +4 23.09.16 3,615 104 10쪽
» 아부지 저 정말 열심히 할게요! +6 23.09.15 3,821 112 10쪽
21 본선… 축하드립니다 +11 23.09.14 3,895 108 10쪽
20 우린 한 팀이잖아 +4 23.09.13 3,866 107 10쪽
19 돈보다 값진 연주 +4 23.09.12 3,914 111 9쪽
18 봄날은 간다, 아나? +4 23.09.11 3,945 104 10쪽
17 이제 네 차례 +6 23.09.10 3,958 111 11쪽
16 만장일치 +2 23.09.09 3,970 103 10쪽
15 참가번호 99번 대중음악! 연구회입니다! +6 23.09.08 3,984 106 12쪽
14 형님들은 꼭 전설, 아니 레전드가 될 거예요 +3 23.09.07 3,962 108 10쪽
13 해체는 나중에 생각하자, 우선은 무대부터 즐기고 +1 23.09.06 3,958 111 10쪽
12 가자, 무대로 +5 23.09.05 3,987 112 10쪽
11 서울락밴드연합회 +2 23.09.04 4,078 116 11쪽
10 아버지의 마음 +7 23.09.03 4,097 125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