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랑전(極狼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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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HaL
작품등록일 :
2023.10.09 20:25
최근연재일 :
2024.09.19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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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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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역려과객(逆旅過客) (1)

DUMMY

“종리양!”


현 강호에서 호사가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다고 할 수 있는 이름이, 덕화루 안에 크게 울려 퍼졌다. 자연히 술잔을 기울이던 사람들은 어느 하나 빠짐없이 그 이름을 부른 이를 돌아보았다.


“···저 사람, 화검(華劍) 도종인 아냐?”

“화산제일검이라는 그···?”

“매화검을 대성했다던데요?”

“무공으로는 이미 송 장문을 넘어섰다고 합디다만···?”

“뜬소문인 거 아니오?”

“뭐, 진실인지는 조만간 밝혀지겠지. 곧 천하지회가 있으니까 말이야···!”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높아지고 덕화루 안이 곧 도떼기 장판이 될 기색이 보이자, 도종인은 검을 뽑아 들었다.


챙!


“누구든 화산의 일에 과분한 관심을 가지려 한다면, 이 도종인이 직접 그 분수를 깨우쳐드리겠소!”


삽시간에 덕화루에 정적이 잦아들었다.


“종리양! 네놈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다 알고 왔다! 당장 얼굴을 내밀지 못하겠느냐?!”


잠시간 다시 정적이 흘렀다. 참다못한 도종인이 직접 방들을 일일이 다 뒤져볼 기세로 발을 떼는데, 3층 객실 중 한 문이 조용히 열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사형.”


도종인의 이마에 핏대가 솟구쳐 오르고, 그와 함께 지켜보던 사람들은 숨소리도 죽인 채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윽고 도종인이 입을 열었다.


“누구든, 화산의 일에 과분한 관심을 가지는 분은 이 도모가 직접 분수를 깨우쳐드리겠다고 이미 말한 것 같은데···?”


도종인의 검이 번뜩, 빛을 발했다.


“으아악!”


덕화루의 객들이 우르르, 너 나 할 것 없이 죄다 도망쳐 나가자, 루주가 울상을 짓고 슬금슬금 도종인의 앞으로 다가왔다.


“저, 저기···. 도 대협. 부, 분명 화산의 일이 매우 중한 줄은 자, 잘 알고 있습니다만···.”


찰그랑!


도종인은 루주 앞에 던진 주머니를 가리키고 눈살을 찌푸렸다.


“금이오. 오늘 저녁의 손해를 메우기에는 충분한 금액일 것이오.”

“아이고, 아이고! 이, 이러실 필요야···!”


말과 달리 루주는 도종인이 던진 주머니를 게 눈 감추듯 품속에 집어넣은 뒤였다. 루주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이고, 화검 대인. 더 필요하신 것이 있으십니까요?”

“술! 그리고 덕화루를 두 시진만 비워주시오.”

“저, 점소이들까지 전부 말입니까요?”

“루주 당신도 말이오.”


기물과 매상을 보관한 금고가 걱정된다는 이야기를 직접 하지는 못하고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었지만, 도종인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루주는 울상을 짓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부, 분부대로 하겠습니다요.”


루주의 지령을 따라 점소이들이 객실을 돌면서 안내를 시작했다. 그 사이에 루주는 도종인 앞에 술독을 가져다 놓았다.


“대인, 저희 덕화루가 자랑하는 두강주(杜康酒)입니다요.”

“···고맙소. 이제 루주께서도 자리를 좀 비워주시오.”

“···예, 예에···.”


루주의 못마땅한 표정을 마지막으로 덕화루가 조용해지자, 도종인은 한숨을 푹, 내쉬고서 검을 칼집에 꽂아 넣었다. 그리고 탁자와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뭘 멀뚱히 서 있는 게냐? 와서 앉거라.”

“···.”


종리양이 머쓱한 표정으로 머뭇거리자 도종인은 그런 종리양을 보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여전히 겁이 많구나.”

“···뭐요?!”


종리양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더니 3층 난간을 박차고 뛰어내렸다. 사라락! 화려한 회전으로 가볍게 착지한 종리양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도종인의 맞은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 거요? 말씀해보시지요!”


당당한 태도로 먼저 이야기를 꺼냈지만, 어딘지 불안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던 종리양의 동공은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중이었다. 그런 종리양을 가만히 쳐다보던 도종인은 분노를 참으며 주먹을 꾹, 틀어쥐더니 말했다.


“···언이도 내려오는 것이 어떠냐?”


이번에야말로 종리양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사색이 된 종리양이 어떤 표정을 짓든, 도종인의 눈은 오로지 종리양이 나온 객실 문을 향해 있었다. 잠시 후, 객실 문이 열리고 아리따운 소녀 하나가 얼굴을 내밀었다.


“소녀 황보언이 사부님을 뵈옵니다.”


황보언은 조심스러운 태도로 포권을 취했지만, 도종인은 황보언의 포권을 받아주지 않았다. 잠시 포권을 취한 자세 그대로 도종인을 내려다보던 황보언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두 사람이 모두 자리를 잡고 앉자, 도종인은 말없이 술독을 들어 봉인을 뜯어냈다. 그리고 독째로 벌컥벌컥 들이켰다.


“사부님!”


그 지독한 두강주를 빈속에 저렇게 들이붓다니. 독을 뱃속에 들이붓는 것과 진배없다. 황보언이 도종인을 말리자, 도종인은 반쯤 빈 술독을 집어던져 버렸다. 큰 소리와 함께 술독이 깨져나가고, 독 안에 담겨있던 값비싼 두강주가 덕화루의 바닥을 적셨다.


“정녕, 너희 연놈들이 제정신이란 말이냐?”

“···사부님.”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도종인이 불같은 분노를 쏟아내려는데, 갑자기 종리양이 술독 하나를 집어 들어 거칠게 봉인지를 뜯어냈다. 그리고 도종인과 똑같은 태도로 독째 술을 벌컥벌컥 들이켜더니 역시 마찬가지로 반쯤 마신 술독을 집어 던져 깨버렸다.


“내가 무슨 짓을 하건, 사형이랑 무슨 상관이냔 말이오!”

“···뭐?”

“내가 어디서 무슨 짓을 하든, 그것에 무슨 이유로 사형이 나를 간섭하느냐는 말이외다!”


도종인이 눈썹을 구부렸다.


“그게 한때나마 네놈의 사부였던 자에게 할 소리란 말이냐?”

“···그것이 내 잘못은 아니지 않소이까.”

“그렇다면 모든 잘못은 오로지 장문 사백께 있다는 말이더냐?”


도종인은 어이가 없어서 웃는다는 듯, 기가 찬 웃음소리를 냈다.


“하! 네놈이 정녕 미친 것이 아니냐?”

“나는 그저 위에서 결정한 대로 따랐을 뿐이지 않소.”

“이놈이 정녕···!”


정말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는지, 도종인의 얼굴색이 붉으락푸르락하며 그의 손이 점점 칼자루를 향해 다가갔다. 그것을 감지한 황보언이 얼른 종리양의 팔을 잡았다.


“지금 사부님께 대거리할 때가 아니잖아요! 제발 그만두세요, 사형!”


황보언의 사형이란 말에 도종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언이 너는 닥치고 있거라!”


도종인이 크게 호통을 치자, 이번엔 종리양이 안색을 붉혔다.


“나에게는 뭐라고 하든 상관없소! 언매는 건들지 마시오!”

“뭐라? 언매?!”


마침내 폭발한 도종인이 종리양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종리양도 지지 않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이마를 밀듯이 맞댄 채로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네놈이 장문인의 제자가 되기로 선택한 순간부터 언이는 더 이상 네 사매가 아니다! 내 분명 말하지 않았더냐? 그 선택은 네놈의 선택이며, 결단코 돌이키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나와 언매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요. 이미 사랑하는 마음을 어찌 막으라는 것이오!”

“대화산파의 명예는 안중에도 없단 말이냐!”

“그건···!”


도종인은 거칠게 종리양의 멱살을 밀쳐버렸다. 종리양은 중심을 잡을 수도 있었지만,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밀려나 주저앉았다. 그런 종리양에게 황보언이 다가가려 하자, 도종인은 거친 동작으로 검을 뽑아 들었다.


챙!


“답해보아라. 대화산파의 명예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냐?”

“···그건 아니오.”

“하면!”


도종인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이성을 간신히 붙든 채로 소리쳤다.


“세상천지에 서로 사랑하는 숙질(叔姪)이, 어디에 있단 말이냐! 강호의 배분에 이것이 가당한 소리란 말이냐?!”

“우리는 떳떳하오. 우리가 천륜을 저버렸소? 인륜을 저버렸소? 도대체 그깟 배분이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그깟 배분···?!”


순간, 도종인이 칼을 번쩍 들어 올렸다. 종리양은 두 눈을 꾹 감고 얼굴을 돌렸다.


“이 자식···!”


정말 칼을 내리치기라도 할 것처럼 높이 들렸던 도종인의 검이 곧 힘없이 땅을 향했다. 그리고 그 손에서조차 떨그렁, 떨어지고 말았다.


“···내가,”


도종인은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가 너를 어찌하면 좋겠느냔 말이다···!”


두 사람을 황망한 시선으로 쳐다보던 황보언은 도종인이 검을 떨어뜨리자, 재빨리 그에게로 다가가 팔을 붙들었다.


“사부님, 전부 소녀의 잘못이어요. 사형··· 아니, 종리 사숙께는 아무런 잘못도 없으니, 죽이시려거든 소녀를 죽이시고 사숙은 용서해주시어요!”

“···언아.”


도종인은 떨리는 눈으로 황보언을 내려다보았다.



* * *



계축년, 즉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도종인은 3년의 강호행을 선언하고, 화산을 나와 강호를 전전하는 중이었다. 그 이유야 역량의 부족함을 실감하고 더 넓은 세계를 체감해보겠다는 흔하디흔한 사유였지만, 역시 속사정이 있었다.


도종인의 사부인 청송진인은 화산에선 드물게도 도관을 틀고 혼례를 금하며 도호로 스스로를 호칭하는, 몇 안 되는 진짜배기 도사 중의 한 사람이었다. 같은 항렬의 사형인 장문 송청양 진인이 ‘청도’라는 도호가 있음에도 도사보다는 강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인물이었다.


이런 청송진인과 송 장문 사이에는 오래전부터 꽤 깊은 골이 있었다. 첫째 이유를 꼽자면 단연 성격의 차이다. 추구하는 것이 다르고,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고, 사물을 바라보는 눈이 다르니 서로 격하고 지낼 수밖에 없는 터였다.


그랬던 청송진인이 아직 젊은 도종인을 남겨두고 먼저 등선해버린 탓에, 청송진인에 대한 송 장문의 남은 감정은 전부 그의 유일한 제자인 도종인이 감당하게 되어버렸다. 그 탓에 결국 송 장문의 등쌀에 못 이긴 도종인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선택한 것은 강호행이라는 이름의 도피였던 것이다.


사실은, 이후 다시는 화산으로 돌아가지 않을 요량이었다. 3년을 기약했지만, 여정이 길어져 5년이고 10년이고 강호행을 계속하는 일이야 얼마든지 있는 일이고, 기실 송 장문으로서도 눈엣가시인 도종인이 보이지 않는 편이 마음 편할 테고 말이다.


그러나 그런 도종인의 발목을 붙잡은 것은 바로 그의 첫 번째 제자이자, 유일한 제자였던 종리양이었다. 아직 열일곱의 어린 나이였던 종리양은 달포마다 두 켤레씩 신을 갈아야 하는 거친 강호행을 견디지 못하고 열병이 나 쓰러지고 말았다.


노상 한복판에서 앓아누운 제자를 버리고 갈 수는 없었으니─ 도종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가장 가까운 문파에 몸을 의탁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도종인이 체류하게 된 문파는 산동성에 있는 황보세가였다. 그리고 그를 손님으로 받아준 사람은 바로 산동벽수(山東劈手) 황보문성이었다.


산동벽수는 지독한 무공광이었으며, 문파 간의 우열을 가르는 것은 문도의 수나 세력의 크기 같은 어정쩡한 것이 아니라 오직, 뛰어난 개인의 기량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산동벽수의 눈에 도종인은 아직 닦이지 않은 옥이었다. 진흙이 잔뜩 묻어, 스스로를 자갈인 줄 착각하는 보옥 말이다.


빈말하지 말라며 손을 내젓는 도종인에게 산동벽수는 확실한 신뢰의 증표를 보여줬다. 곧, 그의 딸인 황보언을 제자로 받아달라 요청한 것이다.


아들이 둘 있긴 했지만, 황보언은 산동벽수의 고명딸─ 곧 그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어여쁜 금지옥엽이었다. 그런 금지옥엽을 제자로 맡기며 산동벽수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내 복덩이를 맡기고자 하는 이는, 화산이 아닐세. 나는 그대, 화산의 제자 도종인이란 사내에게 내 딸을 맡기고 싶네. 스스로 알지 못하지만, 빛나는 잠력을 가진 사내에게···!”


이 일이 도종인에게는 매우 큰 자극이 되었다. 황보언을 부르는 ‘복덩이’란 산동벽수의 애칭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 것이었을까? 황보언을 제자로 받고, 도종인은 결국 매화검을 대성하고야 말았다.


이십사수(二十四手)로 시작하여, 십사수(十四手), 마지막 칠절(七絶)까지 전부 45수에 해당하는 매화검을 대성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기나긴 화산의 역사상으로도 매화검을 대성한 것이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인물은 고작해야 열 명 안팎이다.


─화산제일검.


그래, 적어도 당대에서는 확실한 화산제일검이라 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산동제일로 일컬어지는 산동벽수의 벽력신권(霹靂神拳)을 매화칠절(梅花七絶)의 마지막 초식, 암향부동화(暗香不凍花)로 깨뜨리고 그에게서 확실한 승리를 따내던 그날, 도종인은 벅찬 마음으로 강호행을 종료하고, 화산으로 복귀할 것을 결심했다.


매화검을 대성해 화산의 명성을 드높이고, 산동벽수의 고명딸을 제자로 받아 황보세가와의 든든한 인연까지 맺은 상황이니, 아무리 장문에게 미운털이 박힌 처지라도 이제는 전처럼 대놓고 찬밥신세는 면하리라 여긴 것이다.


그야, 황보세가는 산동악가와 더불어 산동성을 양분하는 군웅칠세가의 일각이며, 산동벽수는 천하삼절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평가받는 고수다. 그 말인즉, 도종인은 그를 지지해주는 강력한 뒷배를 얻음과 동시에, 본인 또한 천하에서 열 손가락에 꼽을 고수의 반열에 올랐다는 뜻이 된다. 설마하니, 이런 자신을 냉대하겠는가? 아무리 장문의 마음이 그리하여도, 장로들까지 거기에 동조하겠는가?


도종인은 자신만만했다. 그렇게, 그는 두 명의 어린 제자와 함께 화산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귀환한 도종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제일매화검수(第一梅花劍手)에게 주어지는 화검(華劍)의 별호와 더불어 화산의 무사부(武師父) 중 으뜸인 총사범(總師範)의 자리였다. 얼떨떨하기만 했던 도종인이었지만, 매화검을 대성한 것으로 송 장문이 과거의 앙금을 털어준 게 아닐까 하고,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의 이야기가 여기까지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장문, 송청양은 도종인, 정확하게는 청송진인에 대한 앙금을 털어버린 것이 아니었다. 도리어 도종인의 약진이 송 장문으로 하여 해묵어 잊고 있던 앙금마저 되새기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송청양이 준비한 한 수는 비정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역사에도 없는 일이다. 사질의 제자를 강탈하는 사백, 그것도 문의 장문이라니.


그러나 다 늙은 나이에야 간신히 장문의 위를 노릴 수 있는 거대 문파의 퀴퀴한 점층 구조에 질려 있었던 종리양은 야망을 숨기지 못했다. 장문의 적전제자, 그보다 더 장문인에 가까운 자가 어디 있을까?


장문의 제안이 스승의 폐부를 찌를 비수 같은 것임을 알면서도 종리양은 장문의 손을 잡았다. 도종인의 제자로 남아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영예··· ‘화산의 장문’이라는 그 무엇보다도 크고 아름다운 꽃을 그 손에 쥐기 위하여─


물론 이 선택에는 청송진인으로부터 그 퀴퀴함을 이어받은 도종인의 성품도 한몫했다.


이미 죽은 스승에 대한 정이나 미련이 대체 무슨 소용인가? 만약 도종인이 죽은 스승을 등지고 처음부터 장문에게 절대복종을 선언하며 그의 앞에 부복했더라면, 애초에 쫓겨나듯 강호행을 해야 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리한 처세 대신, 자신의 처지를 그저 묵묵히 받아들였던 도종인은··· 종리양이 보기엔 답답한 존재였다. 무능하고, 무력했다. 그랬던 도종인이 어느 날 대오각성하여 단번에 화검의 별호를 거머쥐고 날아오르긴 했지만, 그건 고작해야 일신의 무예일 뿐, 화산 전체를 아우를 권위가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도종인도 종리양도 당시에는 미처 깨닫지 못한 변수가 하나 있었으니─


종리양이 그만 복덩이와 사랑에 빠져버리고 만 것이었다.



* * *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황보언을 내려다보며 도종인은 무너져 내리는 가슴을 곱씹었다. 그깟 원한이 무어라고. 그까짓 자존심이 무엇이기에 이리 많은 사람의 인생을 비극의 골짜기로 밀어 넣어야만 한단 말인가?


도종인은 송청양에 대한 증오와 원망이 차고 넘치는 가슴 탓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죽이시려거든 소녀를 죽이시고 사숙은 용서해주시어요!”


그때 종리양이 벌떡 일어났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뱃속의 아이는 어찌하라고 그런 소리를···!”

“···뭐?”


도종인이 멍한 표정으로 되묻자, 아차 싶었는지 종리양이 두 눈을 부릅떴다.


“아이···?”


도종인은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이게 무슨 소리···!”

“으아이씨아아앙! 진짜! 겁나게 시끄러! 너네 입 좀 못 닥치냐?! 앙?! 내가 시원하게 닫아줘? 이런 옘병···!”


딱딱하게 굳은 세 사람의 얼굴이 한 층 위의 객실 문을 향했다. 거기에는 사방팔방으로 산발한 머리카락을 꼬랑지처럼 뒤통수에 툭 튀어나오게 묶어놓은 소년 하나가 눈자위를 벅벅 비비면서 서 있는 것이었다.


“아주 지랄병들이 도지셨나, 왜 이렇게 시끄럽···. 엥? 왜 사람이 일케 읎어?”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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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23화. 천하지회(天下之會) (1) +1 23.11.21 596 9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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