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랑전(極狼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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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HaL
작품등록일 :
2023.10.0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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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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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성동격서(聲東擊西) (1)

DUMMY

“···천만다행이로군.”


도종인은 사흘 만에 만난 순득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너무 찾을 수가 없던 탓에, 혹여 사독파파가 끌고 온 무리 중에 그녀가 있었던 게 아닌가 하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예? 뭐가 말임까?”

“아닐세. 자네는 모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지.”

“어···. 헤헤, 뭐, 그렇지 말임다.”


지금 사흘이나 소식이 끊겨 있다가 간신히 나타난 사람이 이렇게 밝게 웃어도 되는 건지, 도종인은 의문이 생겼다. 물론, 살아남을 확률이야, 강심장인 편이 아무래도 높겠지만.


“그나저나, 지난 사흘 동안은 무슨 일이 있었나?”


지난 사흘 동안, 사라진 순득을 찾아 헤매던 도종인은 새삼 정주가 넓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2천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한순간에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정주는 지금, 아비규환이 펼쳐져 있었다.


“아이고, 말도 마십쇼. 다들 어찌나 겁을 집어먹었는지···! 게다가 그! 그 사독파파가 다시 나타났다는 거 아니겠습니까요! 믿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지만···. 하여튼 아주 난리도 아녔습니다요.”

“음.”


도종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흥분한 순득에게 진정하라며 손을 내저으며 다시 물었다.


“자네에게 별일 없었으면 다행이네만. 지난 사흘 동안은 어디 있었나?”

“아, 저 말씀이십니까요. 저야 뭐, 우리 할배 챙기느라 정주를 좀 헤맸습니다요.”

“그래서 찾을 수가 없었던 게로군.”

“그렇습죠, 뭐. 그르니까 말임다, 그게 어찌 된 거냐면···.”


순득은 치매 걸린 할아버지가 이제 다섯 살 난 어린아이처럼 사방팔방을 뛰어다니며 시도 때도 없이 울음보를 터뜨리며 엄마를 찾는 바람에 곤혹스러웠던 일들을 한참 떠들어댔다. 인내심을 발휘해 그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한 도종인이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 자네의 사정은 이해했으니, 뒷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

“아, 그렇습니까요? 아직 시작도 안 한 것 같은데··· 쩝.”

“···자네의 고충이 어떠했는지는 이해했으니 말일세.”


도종인은 순득이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먼저 부서진 검의 손잡이를 꺼내 들었다.


“어떻게 보시나?”

“이건···?”


순득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이, 이게 어찌 된 겁니까요? 이놈은 제가 대협께 드린 검이 분명한데···.”


손잡이를 잡고 본래 칼날이 시작되었어야 했던 부분의 잔해를 자세히 살피던 순득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건 그냥 부서진 게 아니군요.”

“어떻게 부서진 것 같은가?”

“이건···.”


순득은 부서진 검의 단면에 손가락을 대고 세게 문질렀다. 아무리 굳은살이 박인 거친 손이라도 날카로운 쇳조각에 대고 문질렀으니 당연히 피부가 찢어지고 피가 나와야 했지만, 순득의 손가락은 베이지 않았다. 도리어 남은 검의 단면이 바스러졌을 뿐이다.


“이놈은 특별히 불꽃놀이에 쓰는 토금속을 섞어 만든 건데···. 일반적인 정강보다 훨씬 단단하게 나온 놈인지라 중검으로 벼린 겁니다. 그런 걸 깨뜨린 것도 아니고 바스러뜨렸다는 건···.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불가능합니다요.”


도종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검을 새로 벼리기에는 철이 부족하다 했는가?”

“예.”

“자네는 이 길로 청룡은장으로 가시게. 거기서 화검 도종인의 이름을 대면 어음을 내어줄 걸세. 금으로 한 냥 정도 될 것이야. 그 어음을 받으면 곧장 백화춘(百花春)으로 가시게.”

“예. 예? 예엣?!”


청룡은장으로 가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금 한 냥이란 소리에 화들짝 놀란 순득은, 백화춘이란 말에 얼굴이 벌게지며 기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백화춘은 기방(妓房)이다. 그것도 매춘을 전문으로 하는 하급 창기들의 기방.


“오해하지 말게. 거기 가면, 정연이란 사람을 찾게.”

“정연··· 말입니까요?”

“그 사람에게 내가 보냈다고 하면, 몇 가지 준비를 해줄 걸세. 신변 보호는 물론이고.”

“아, 그렇습니까요!”


그제야 도종인의 말뜻을 알아들은 순득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부족한 철도 그쪽에서 구해다 줄 터이니, 후에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검을 좀 벼려주게.”

“언제까지 말입니까요?”

“늦어도 석 달 이내에는 다시 돌아올 것 같네.”

“석 달에 두 자루 말입니까요.”

“물론, 좋은 검을 벼리기에는 시간이 많이 모자라겠지만 말일세. 우선은 당장 쓸 검이 좀 필요하네.”

“좋은 철을 구할 수만 있다면야··· 기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습니다요. 다만, 좋은 철이 문제이지요.”

“좋은 철이라.”


도종인은 씩, 웃었다.


“그것만이라면 아무 문제 없다네. 아마 정연이란 자가 반드시 구해다 줄 걸세.”

“무슨 수로 말입니까요?”


도종인은 고개를 저었다.


“내 입으로 말할 수는 없으니, 가서 직접 물어보시게나.”

“···예, 대협.”


도종인은 순득을 보내고 나서야 발길을 돌렸다. 조금 늦었지만, 약조가 있으니 서둘러 쫓아가야 할 것이다.



* * *



“원종대사···! 이거,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오, 이거, 이거.”


원종대사는 굳이 자리에서 일어나 현문진인을 맞이했다. 배분으로 치자면 현문은 원종의 사제 격이다. 손아랫사람인 자신에게 예의를 갖추는 원종대사의 모습에 현문은 빙그레, 입꼬리를 들었다.


“그간 무탈하게 잘 지내셨소?”

“잘 지내고말고요. 봉문을 선언한 지 십오 년이나 되었으니··· 이젠 뒷방 늙은이 신세가 다 되었지요.”

“뒷방 늙은이라. 후후후···.”

“이대로 금분세수(金盆洗手)하고 강호의 복잡한 정세에선 이제 손을 떼는 게 어떨까 싶지만··· 우리 장문 사형도 그렇고, 강호의 여러 선배님께서 강호무림의 안녕을 위해 분골쇄신하시는 마당에, 아랫사람이 먼저 손을 씻는 것은 예의가 아니겠지요.”


혓바닥에 기름칠이라도 하고 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끄러운 현문의 언변에, 원종대사는 속으로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현문에게 선배라 불릴 배분에 자리한 사람은 기껏해야 현현진인을 포함한 그의 사형들과 원종대사 정도뿐이다.


“우리가 정말 오래 하긴 했지. 계묘혈사가 벌써 15년 전의 일이란 게 믿어지시오? 난 아직도 가끔이나마 그때의 일들을 꿈속에서 본다오.”

“하하··· 강렬한 시대였지요.”

“아무렴.”


현문의 찻잔에 차를 따라준 원종대사는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피를 묻힌 손이 우리의 것이니··· 이 일을 마무리 짓는 것 또한 우리의 책임이 아니겠소? 적어도 이번 일까지는 우리가 해결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일일 것이오.”


원종대사의 그늘진 두 눈에서 선뜻 광망이 비친다. 천하삼절의 기세에, 현문은 숨을 쉬는 것조차 잠시 잊고 얼어붙고 말았다.


“으흠! 흠···! 바, 방장께서 말씀하시는 바는 잘 알겠습니다.”


현문은 원종대사를 부르는 호칭을 달리했다. 역시나, 쉬운 자가 아니다. 하긴, 천하삼절의 일좌이자, 소림의 방장이란 자리를 골패 쳐서 딴 게 아니라면, 이 정도는 해주는 게 정상이지.


“백련교의 일만 마무리 짓는다면, 이제야말로 태평성대라 할 수 있을 테니─ 방장의 말씀이 옳습니다. 우리가 힘을 내어 지난 계묘혈사의 마무리를 지어야겠지요.”


현문의 말에 원종대사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태평성대라···? 과연 그렇겠소?”

“예?”

“지난 15년간, 천하를 어지럽히는 한 간신의 이름이 백성들의 입에 계속 오르내리고 있지 않겠소이까?”

“허, 허허···. 그, 그렇지요.”

“하긴, 간신이 득세하여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랐으니··· 간신이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협력했던 이들에겐, 지금이야말로 태평성대일지도 모르지.”

“···?!”


원종대사의 말에 현문은 관자놀이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바늘로 찔러도 이렇게 뜨끔하진 않을 것이다. 지금 원종대사가 언급한 ‘간신’은 엄숭(嚴嵩)이 분명하다.


현 황상이 수도(修道)에 진심이었던 만큼, 청사(靑詞: 도교의 제례 때 읽는 축원문)를 잘 짓는 신하를 총애했고, 엄숭은 바로 그 청사를 잘 짓는 것으로써, 황상의 총애를 얻었다.


그리고 그런 엄숭이 스승으로 모신 도사가 바로 무당의 장로인 현문진인이었다. 다시 말해, 현문은 엄숭에게 있어서 정치적인 발판이 되어준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현문의 정을파가 물밑에서 엄숭을 지원해온 일은 그의 파벌 내에서도 극비에 속하는 일이다. 원종대사는 지금, 그걸 알고 있다는 뜻을 넌지시 내비친 게다.


‘무려 15년이나 봉문한 소림의 방장이 조정의 일을 어찌···? 아니, 어쩌면 그럴싸한 풍문을 듣고 떠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문은 급히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는 표정에서 당황한 기색을 지우고 웃는 낯으로 물었다.


“방장께서는 속세의 일에 관심이 많으셨군요. 조정의 일에는 언제나 뜬소문이 돌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우리 같은 수도자들이 그 범속한 일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야 그렇지. 우리 같은 수도자들이 속인들에게 속세의 일을 가르치는 건 어불성설이라 할 수 있겠지. 그 얼마나 우스운 일이란 말인가? 마치 어부에게 물질을 가르치는 것과 같은 일이 아니겠소? 그것도 내각수보(內閣首輔)에게 정치를 가르친다는 건··· 후후후.”


···어쩌면 증거까지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원래 이런 자가 아니었는데···? 분명, 이런 자가 아니었···.’


현문은 바짝 정신이 든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처음부터 약점을 잡히고 갈 수야 없는 노릇이다.


“속세를 떠난 이가 어찌 속세의 일을 알겠습니까? 오늘은 강호의 일과 백련교의 일을 논하러 온 것이니···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렇소이까?”


원종대사는 눈썹을 어긋매꼈다.


“뭐, 속세의 일에는 연연치 않더라도, 강호의 가련한 백성들에게는 도를 전하는 것이 우리 교인들의 도리가 아니겠소이까? 그런 의미에서 천하의 소리, 민심의 소리를 듣는 것은 딱히 도에 어긋난 행위라고는 볼 수 없지 않은가···.”


피식, 웃음소리.


“나는 그리 생각하오.”


현문은 마른침을 삼키고 나서야 답을 했다.


“···그 또한 옳은 말씀이십니다.”

“한데, 말이오.”

“예, 방장.”

“나는 얼마 전에 아주 재미있는 소문을 들었다오.”

“···어떤 소문 말씀이십니까?”

“무당에서 이번에 입수했다는 약왕서 말이오.”


현문은 다시 한번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예.”

“그 안에 든 비밀이 그저 백련교에 관련된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삼제진경과 직결되는 정보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것이 사실이오?”


현문은 소매로 감추어둔 주먹을 꽉 틀어쥐었다. 어디서 들었을까? 무당 내에 소림의 세작이 숨어 있다고 해도, 이 정도로 상세한 정보를 훔칠 수는 없을 것이다. 약왕서에 관련된 것은 심지어 장문인인 현현진인에게도 알리지 않은 것이 많다. 극비 중의 극비로 다루었거늘.


“그 일은··· 본 회에 들어가면 말씀드리는 것이 순리일 듯싶습니다.”

“그렇소이까? 하긴, 그 말이 참 맞는 말씀이오. 이거, 참. 아쉽구려.”


입맛을 쩝, 다시는 원종대사의 얼굴을, 현문은 심기일전하여 새로 보았다. 과연, 천하제일의 자리에 올랐던 사내다. 허투루 대했다가는 이쪽이 잡아먹힐 것이다.


“아무렴, 천하지회이지 않습니까. 이보다 더 중한 일이 있겠습니까?”

“후후, 그깟 야인들의 회동에 왜 그리 무거운 이름을 붙였나 싶소만···.”

“그깟 야인들의 회동이라니요, 엄연히 천하를 움직이는 회동이 아닙니까.”

“천하라니···. 허허.”


현문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불문의 좌장이신 소림의 방장께서 천하를 움직이시는 것이 아니라면, 그 누가 천하를 움직인단 말입니까?”

“그야, 천하는 천자께서 다스리시는 것이 아니오?”

“따지고 보면, 천하를 받치는 것은 두 기둥이 아니겠습니까.”

“강호와 관이 서로 불침이긴 하나, 대명제국이란 이름 아래에 하나로 묶여 있으니 어찌 다른 태양을 두어 천하를 어지럽힐 수 있겠소?”


슬슬 다시 조정의 이야기를 꺼내 들 기미가 보이자, 현문은 더 몰아세우는 것을 그만두었다. 어차피 시간은 아직 많다. 녹옥불장을 봉문의 신표로 바친 이후로 그토록 소극적이던 원종대사가 어찌 마음을 바꾸었는지는 나중에라도 차차 알아볼 수 있다.


지금 확인해야 할 것은─ 원종대사의 목적이다.


“방장께서는 고심이 깊으셨나 봅니다.”

“그렇소. 민머리가 아니었더라면 머리가 빠질까 걱정했을 정도였다오.”

“하하, 그렇군요.”


실없는 농담에 가볍게 웃어 보인 현문은 처음부터 감춰두었던 칼을 빼 들었다.


“저희 무당은···. 이번 천하지회야말로 백련교라는 쓴 뿌리를 이 천하에서 완전히 뽑아낼 시금석이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은 우리 소림 또한 그렇소.”

“그런 의미에서, 말입니다.”

“음?”


의미심장한 어조와 표정을 드러내놓고 말하는 현문의 태도에 원종대사는 눈썹을 모로 꺾었다. 과연, 재미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게 이 말이었나? 이 정도로 성급한 사내는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그를 위해 이번에야말로 천하를 종횡하는 하나의 연맹을 구성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역시! 슬며시 치켜 올라간 현문의 입꼬리를 따라 원종의 입꼬리도 올라섰다. 이제부터는 이미 아는 사실의 확인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금 확인하는 사실들은 현실로 재현될 사실의 나열이다. 즉, 이 자리에서 나온 말들이 곧 천하를 움직이리라.


“어째서 그런 것이 필요하오?”

“백련교라는 가공할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느낀 것이 계묘혈사의 일이 아닙니까.”

“하면, 그 목적은 오롯하게 백련교를 상대하기만을 위함이오?”

“물론, 그것만일 수는 없겠지요. 어찌 천하의 그 많은 손을 한곳에 모아놓고서 그저 쓴 뿌리 하나만을 뽑아 달라할 수 있겠습니까? 기왕지사 빼든 칼이라면, 산재한 다른 뿌리들도 모조리 뽑는 것이 옳겠지요.”

“그러면 그 이후의 질서를 세우는 데 도움을 주자는 말씀이시로군?”

“정확하십니다.”

“무엇을 대가로 말이오?”

“그야, 천하의 도리를 바로 세우는 것은 강호인의 의요, 명예가 아니겠습니까?”

“허허, 그것은 흡사, 자원봉사가 아니오? 천하에는 나와 현문진인처럼 각각 부처와 도에 몸을 바쳐 천하를 위해서라면 분골이라도 각오하는 것이 도리인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사익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자들도 있는 것이 아니오?”

“물론 그러하지요.”

“하면, 그런 자들은 어찌 감당하시려는가?”

“그들이 구하는 것이 정의를 바로 세우는 길 끝에 있음을 보여줘야겠지요.”


원종대사의 눈이 번뜩, 빛을 발했다. 그 눈을 마주 보는 현문의 눈 또한 같은 빛을 발했다.


“삼제진경?”

“삼제진경.”


두 사람은 잔뜩 치켜 올라간 입꼬리를 끌어내렸다. 그리고 동시에 찻잔을 집어 들었다.


“본 회가 기다려지는구먼.”

“저 또한 그러합니다, 방장.”


찻물을 들이켠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말없이 차향을 음미했다. 손에 쥔 찻잔에서 더 이상 김이 올라오지 않을 즈음이 되어서야 원종대사가 입을 열었다.


“아 참, 현문진인.”

“예, 방장.”

“좋은 이름, 생각해두신 것이 있소?”

“글쎄요. 무림의 일이니, 무림맹이 어떨까 하고···.”

“허허, 이 사람. 촌스럽기는.”

“후후, 하면 방장께서는 생각해두신 좋은 이름이 있으십니까?”

“나? 허허, 가만있어 보자.”


원종대사는 수염을 길게 쓸어내렸다. 잠시 후 원종대사가 말했다.


“우리의 목적은 세상의 도의를 바로 세우기 위함에 있는 것이 아니겠소?”

“맞습니다.”

“하면, 그런 뜻이 담겨야 하지 않겠소?”

“옳지요.”

“그러면 무엇을 하여야 세상의 도의를 바로 세우고, 천하를 안녕케 하겠소?”


답을 듣기도 전에, 원종대사는 방장실에 준비된 먹을 집어 들었다. 현문은 말없이 먹을 가는 원종대사를 지켜보았다. 한참을 정성들여 먹을 갈아 먹물을 낸 원종대사는 붓에 그것을 충분히 적신 후 일필휘지로 글자를 적어 내렸다.


“본을 바르게 하고 근원을 맑게 함이, 천하를 크게 화평케 한다(正本淸原, 天下太平).”


원종대사는 붓을 내려놓고,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그리고 물었다.


“앞선 두 글자를 각각 따서, 정천맹(正天盟)이라 이르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떻소?”


현문은 크게 미소 짓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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