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흑막이 칼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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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dos
작품등록일 :
2023.11.29 17:12
최근연재일 :
2024.01.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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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9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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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무림출도(1)

DUMMY

“아버지.”


안유는 고목에 달라붙은 매미처럼 아버지를 꽉 끌어안았다.


“허어.”


아버지는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안유의 등을 토닥거렸다.


안유 또한 자신이 이렇게 행동하리라곤 생각지 못했으니, 아버지는 오죽할까.


안유는 그리 귀염성 있는 아들이 아니었다. 타고난 성정과 재능 때문이었다.


말문이 트인 후 어느 날부터 안유는 자신이 또래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가 보인다고?”

“전부 다요.”


부모님은 물론 다른 누구도 안유의 시야를 이해하지 못했다.


보인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다.


자연스레 보이는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 순간부터, 안유는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다르기에, 표현해야만 하는 거야.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으음.”


이런 내막을 몰랐기에, 아버지는 슬슬 안유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다 큰 녀석이 잠투정은. 떨어져라, 이놈아!”

“아버지!”

“허허, 이래서야 어디 남 부끄러워서 잔치를 벌이겠느냐?”

“아버······ 예?”

“너도 이제 열다섯이니 어른······.”


콰당!


“어이쿠!”


안유가 벌떡 일어선 탓에 아버지가 방바닥을 나뒹굴었다.


“이놈이 왜 이래! 안았다가 밀었다가!”

“잔치라뇨? 누가 애라도 낳았습니까? 아니면 무슨 좋은 일이라도······.”

“······머리라도 다친 거냐? 구일 뒤면 네 생일이잖느냐! 그럼 당연히 네 잔치지 이놈아!”


‘열다섯 번째······ 앞으로 구일······.’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분명히 열다섯.

그리고 생일잔치.


안유는 급히 나갈 채비를 했다. 아버지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다.


***


태평촌(太平村)의 정경은 기억 속 그대로였다. 안유는 대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여긴 방 씨의 국숫집. 그 옆에는 진 아저씨네 집인가. 포목점 간판을 걸어두고 있어도 실은 옷감을 적당히 떼오는 수준이었지······.’


바닥을 쓸고 있던 진 아저씨가 안유를 보고는 아는 체를 했다.


“유아. 곧 생일이구나. 아버지가 옷 한 벌 해주겠다고 하지 않으시던?”


“아직 입을 만합니다. 아버지께서도 그리 생각하시는 것 같고요.”


안유는 언제나처럼, 그러니까 빙글거리며 대답했다.


“쯧. 옷 지어 입히겠다고 그리도 호들갑을 떨더니······. 너, 잠깐 기다려 봐라.”


아저씨는 투덜거리며 집으로 들어가더니 무언가를 가지고 나왔다.


“이건······.”


“남은 천으로 향낭(香囊) 한 번 만들어봤다. 요즘 성도에서 네 또래는 전부 향낭을 차고 다닌다지.”


“······감사합니다. 아저씨.”


“그래그래. 그나저나 네 어머니 생일도 조만간이구나. 그때는, 알지?”


“예. 아버지께 말씀드릴게요.”


안유는 향낭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향낭을 받는 건 두 번째다. 진 아저씨는 전생에서도 투덜거리며 향낭을 건넸다.


‘그대로인 건 마을의 정경뿐만이 아닌 건가.’


“유아!”

“유 형!”


마을의 꼬맹이들이 시시덕거리며 다가왔다. 그중 몇 명이 생글거리며 선물을 건넸다.


“고마워.”


꽃반지와 서툰 솜씨로 깎은 노리개. 그리고 반질거리는 조약돌.


“특이하게 생긴 누름돌이구나. 문진(文鎭)으로 쓰기 좋겠는걸?”

“이거 인형인데?”

“역시 그럴 줄 알았지.”

“난 아직 준비가 덜 돼서······. 생일날에 줄게.”


안유는 변명하듯 주워섬기는 꼬맹이에게 물었다.


“휘야. 혹시 나 주려고······ 목검을 깎고 있니?”

“뭐야, 비밀인데. 어떻게 알았어? 야! 네가 말했지?”

“나 아니야. 그리고 목검이 뭐냐. 유 형은 이제 칼싸움 같은 거 안 한다고.”


안유가 꼬맹이들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싸우지 마. 아무도 말 안 했으니까. 그럼 안 다치게 조심해라.”


아웅다웅하는 꼬맹이들을 뒤로하고 마을을 가로질렀다. 어른들과 인사를 주고받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한창 새싹이 올라오고 있는 널찍한 밭이 나왔다.


“유아!”


쪼그려 앉아 김을 매던 아낙이 손을 흔들며 반겼다.


“뭘 그렇게 싸 들고 오니. 그나저나 아버지는 돌아오셨어? 슬슬 오실 때가 됐는데······.”


쾌활한 미소와 발랄한 목소리.

볕에 그을린 구릿빛 살갗은 또렷한 이목구비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편한 복색만 빼놓고 보면 도저히 시골 아낙으로는 보이지 않는 여인.


안유는 잡동사니들을 쏟아버리고는 와락 여인을 끌어안았다.


‘어머니.’


“얘가 왜 이래. 안 하던 짓을 다 하고.”

“보고······ 싶었습니다.”


어머니는 피식 웃으며 안유의 등허리를 토닥거렸다. 다 안다는 듯, 이제 괜찮다는 듯 달래는 어머니의 손길.


잠시 후 떨어져서 눈을 마주치자 어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분명 우리 아들이 맞는데. 실없이 웃고, 그런데 귀여운 맛은 없고. 나이 차고도 밥만 축내고······.”

“······.”

“근데 묘하게 다르단 말이지. 원래도 애늙은이 같았지만 뭔가, 음, 어른스러워졌다고 해야 하나? 무슨 일 있었니?”


안유는 말없이 어머니의 등짐을 짊어졌다. 앞장서서 걷자, 어머니는 더는 캐묻지 않았다.


‘전부 그대로다. 마을도, 사람도······.’


모든 게 그대로다.

이곳은 26년 전의 태평촌.

저승도 아니고, 내세는 더더욱 아니다.


‘대라신선이 와도 살리지 못할 중상이었다. 난 확실히 한 번 죽었어.’


분명한 끝. 그러나 불가에서 말하는 윤회 같은 건 아니었다. 안유는 여전히 안유였다.


다음 생으로 넘어왔다기보다는 한 생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온 듯한, 또는 크게 한 바퀴를 돌아 원점으로 되돌아온 느낌이었다.


‘과거로······ 돌아왔다. 말도 안 되는 기연, 아니 기적인가.’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다. 갑작스러운 회귀에도 어떤 이유가 있을 터.


그러나 이유는 아무래도 좋았다.


복잡하게 따지고들 만큼 배부르게 살아오진 않았으니.


“······하하하.”


이것은 기회였다.


전생의 과오와 죄업을 비롯해.

엇나간 모든 것을 바로잡을 기회.


‘이번에야말로······ 웃고 살자. 이젠 진정으로 웃을 수 있다. 진정으로 살 수 있다······.’


앞으로 많은 것이 바뀌리라. 무력하게 떨고만 있었던 소년은 없다.


그러나 당장 바뀐 것은 소년뿐이었다.


진 아저씨는 향낭을.

꼬맹이 휘는 목검을.


그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놈들도······.’


안유가 조용히 미소지었다.


열다섯 살의 잔칫날까지 앞으로 구일.


준비해야 할 게 산더미처럼 많았다.


***


안유는 뒷산을 오르는 중이었다.


기억에 따르면 이곳엔 커다란 폭포가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 동네 아이들과 함께 자주 멱을 감던 장소였다.


‘서늘하군.’


초봄이라 산 공기는 차가웠다. 아직 멱을 감기엔 이른 시기. 봄의 신록(新綠)이 막 움트고 있었다.


그러나 감흥을 읊조릴 여유는 없다. 안유는 부지런히 산길을 올라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쏴아아아!


무명 폭포는 엄청난 기세로 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수류(水流)는 부서지며 모여들고, 이내 고이기 시작한다.


가장 안쪽은 장정조차 허우적거릴 정도로 깊다. 그래서 어른들은 마을 아이들에게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고 성화를 부리곤 했다.


‘전생에서는 발만 담그고 돌아가기 일쑤였지.’


안유는 옷가지를 벗어 근처 바윗돌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산바람이 불자 새하얀 나신 위로 소름이 올라왔다.


몸은 끊임없이 도리질 치고 있었지만, 소년은 망설이지 않고 물가로 뛰어들었다.


첨벙!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 아직 겨울의 냉기가 남아 있어 물은 얼음장 같았다.


‘아직 얕다. 더 깊숙이 들어가야 해.’


걷다가, 뜀박질하다가, 이윽고 헤엄치며 안유는 계속해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콰아아아아!


안유는 폭포 근처의 큼직한 바위 위로 올라섰다. 잠깐 숨을 고르면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이만하면 충분하겠어.’


어찌나 깊은지 시퍼렇게 보일 정도로 아득한 수심. 이미 경험해본 바에 의하면 수온 또한 적당했다.


‘잠어행(潛魚行)에 제격이다.’


잠어행(潛魚行)은 살수의 수련법 중 하나다.


잠어행의 수련자는 깊고 아득한 물에 뛰어들어 한계까지 숨을 쥐어 짜낸다. 이때 물은 차가울수록 좋다.


무공이란 평생에 걸쳐 쌓고, 갈고 닦는 것. 결코 일조일석(一朝一夕)에 완성되지 않는다.


특히나 토납(吐納)에는 지름길이 없으니 내공은 아주 정직하게, 들이쉰 만큼 쌓일 뿐이었다.


하지만 살수는 그럴 수 없다. 암검(暗劍)을 자처한 자들에게 정직하게 무언가를 쌓을 여유 따위는 없다.


하여 이러한 고행을 감수해야만 한다. 죽을 각오를 해야만 누군가를 죽일 수 있음은 당연한 이치였다.


후우우!


안유는 크게 숨을 머금은 뒤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몸은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는다.


곧 가슴이 답답해지며 새로운 숨을 갈구했지만 안유는 끈질기게 버텼다.


살고자 하는 본능 따위는 웃어넘기면 그만이었다.


가슴이 뻐근해질수록 미소는 짙어져만 갔다.


‘아직 멀었다. 아직······.’


의식이 흐려지려는 찰나 안유는 수면 위로 부상했다.


“허억, 허억.”


다시 숨을 들이마시고는 물속으로 사라지는 안유.


침잠과 부상. 그리고 다시 침잠. 그러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뜨거운 것이 몸 안에서 꿈틀거렸다.


한 줌의 진기.


안유는 곧장 가부좌를 틀고 미약한 진기를 단전으로 인도했다. 단순한 축기, 진기를 쌓을 뿐이다.


잠은공의 구결은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익힌다면 이 진기를 온전히 담을 수 있을뿐더러 큰 도움이 될 터지만.


안유는 미련 없이 호흡을 끊었다.


기초적인 토납으로는 전부 담아내지 못한다. 채 쌓이지 못한 진기는 맥없이 흩어지며 사라져버렸다.


‘그 심법을 익힐 때까진······ 어떤 심법도 익혀선 안 된다.’


몸의 떨림이 가시자마자 안유는 다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


슥! 슥! 슥!


안유는 숫돌에 연신 무언가를 문지르고 있었다. 그것은 기다란 부지깽이였다.


“부지깽이랑 쇳조각? 뭐에 쓰려고?”

“다들 챙겨주시니 저도 따로 준비나 해볼까 하고······.”

“내 정신 좀 봐. 잔칫날 말이구나. 그럼 반값만 주고 가거라. 선물이라기엔 뭐 하지만······.”


철방(鐵房) 송 노인의 호의 덕분에 안유는 자신의 쌈짓돈만으로 셈을 치를 수 있었다.


슥! 슥! 슥! 슥!


평화로운 시골에 병장기 따위 있을 리가 없다. 날붙이라곤 고기 써는 칼과 농기구뿐.


누군가는 무기를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캐묻는 것도, 빌리는 것도 마뜩하지 않았다.


슥! 슥! 슥!


부지깽이는 점차 예기(銳氣)를 띄기 시작했다. 전부 다듬을 필요는 없다. 끄트머리만 날카롭다면 충분하다.


어느 정도 완성된 부지깽이를 쥐어보니 손에 착 감겼다.


‘훌륭하군.’


꽤 만족스러웠다. 물론 안유의 애병인 협봉검에 비하면 고철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쓰고 버리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다음은 쇳조각의 차례였다. 무언가를 만들다 남은 여분의 철 쪼가리가 됫박에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안유는 철 쪼가리를 하나씩, 마찬가지로 날카롭게 갈기 시작했다.


손가락 한 마디보다 짧거나 긴 철편(鐵片)들. 길이도 길이지만 불순물이 가득 섞여 무른 탓에 못으로 쓰기도 어려웠다.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안유는 조용히 쇳조각을 갈고, 또 갈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토납과 연마(練磨)를 반복한 끝에, 안유는 마침내 마지막 쇳조각까지 날을 세울 수 있었다.


달빛을 받아 쇳조각이 시퍼렇게 빛났다.


“됐다.”


안유는 쇳조각을 보자기에 넣어 허리에 둘러맸다.


잔칫날까지 앞으로 오일.


회귀 후 나흘째 되는 날, 안유는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행장(行障)은 미리 싸두었으니 떠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작별에도 때가 있다.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지. 그러니 이번에는······.’


부모님은 아직 주무시지 않는 듯했다. 침소에는 불이 밝혀져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소자 유아입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들어오거라.”


은은한 노기가 섞인 아버지의 음성. 안유는 웃으며 방문을 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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