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두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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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깃쿠크
작품등록일 :
2023.12.24 22:44
최근연재일 :
2024.08.07 21:52
연재수 :
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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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79

작성
23.12.24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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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북풍과 태양

DUMMY

바람은 자유롭게 날아 다녔다.


여타의 다른 '신'들과 마찬가지로 바람은 자유로웠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는 '능력'과 '권리'가 있었다.


항상 새로운 곳을 보고 새로운 것을 듣고 새로운 것을 찾던


바람은 어느날, 자신이 가는 곳에 항상 '해'가 있었음을 깨닫는다.


"햇님아, 너는 왜 항상 그 자리에 있어?"


바람이 물었다.


"이 자리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햇님이 대답했다.


"왜? 봐, 누구도 우리를 막거나 방해할 수 없어"


바람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자 바다에 폭풍이 불기 시작했다.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너도 다른 친구들처럼 자유롭게 살아 봐"


바람은 자신의 능력으로 바다에 파도가 치게 하고

산의 나무를 뽑았다.


바람은 산에 숨을 불어 눈보라가 치게 만들고

잔잔한 비가 내리던 곳에 태풍을 일으켰다.


"그럴 수 없단다,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지도 않지만

설사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래서는 안되고

설령 그렇다 해도 무엇이든 함부로 해서는 안돼"


바람은 햇님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바람은 햇님을 설득하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어디든 새로운 곳에 가도

항상 있는 새롭지 않은 햇님이 보기 싫었다.


그러다 문득 가만히 있는 햇님이

지루할 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은 햇님이 다른 곳으로 가기 원했고

자신이 누리는 것을 햇님도 누리고

함께 즐기기를 원했다.


"하지만 나는 네가 그 자리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는 걸"


바람의 행동을 보던 햇님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그럼, 저기 지나가는 나그네의 외투를 벗길 수 있어?"


햇님이 가리킨 곳에는 한 남성이 얇은 외투를 입은 채 이동하고 있었다.


"그거야 쉽지"


바람이 말했다.


"나그네가 다치지 않게 하면서 외투를 벗길 수 있다면 네 부탁대로 나도 잠시 이 자리에서 벗어나도록 할게"


햇님의 말을 들은 바람은 나그네의 옷을 벗기기 위해 강한 바람을 불었다.

하지만 강한 바람이 불자 나그네는 오히려 옷을 더 단단하게 여몄다.


"안돼 이 이상하면 나그네가 다칠꺼야, 이건 불가능해"


바람은 한참을 바람을 불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것을 포기하고 입을 삐죽내민채 툴툴대기 시작했다.


불평하는 바람을 보며 햇님이 웃으며 말했다.


"봐 우리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햇님의 말을 들은 바람은 분한 마음이 들었고 괜스레 인정하기 싫어 햇님에게 화를 냈다.


"어차피 너도 나그네의 옷을 벗기지 못하잖아 그럼 처음부터 불가능한 걸 말한 거고 이건 인정할 수 없어

그럼 너가 이겼다고 할 수도 없고 나도 지지 않은 거야"


"물론이야 나도 나그네의 옷을 벗길 수는 없어 하지만 벗게 할 수는 있지"


햇님이 힘을 주자 갑자기 주변 온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주변이 더워지자 나그네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 손에 들었다.


"어? 어?? 어??? 이건... 말도 안돼... 인정 할 수 없어"


바람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라 햇님을 바라보았다.

햇님은 따듯한 미소로 바람을 보고 있었다.


"아니야 애초에 이건 불공평한 내기였어, 나는 나그네를 덥게 할 수 없는 걸"


바람은 자신이 진 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햇님은 여전히 바람을 따듯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너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단다."


"나도?"


"힘이 세다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란다. 하지만 너가 힘이 아닌 다른 것을 발견한다면

내가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이 아닌 벗게 만든 것처럼 너도 나그네의 외투를 벗게 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그때가 되면 내가 이 자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바람은 햇님이 하는 말을 여전히 이해 할 수 없었다.


"왜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어?"


"그 이유를 알고 싶으면 한번 나그네에게 가보렴"


바람은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햇님을 그 자리에 둔 채 도대체 왜 나그네가 옷을 벗었는지

알기 위해 조심스럽게 나그네에게 다가갔다.


"바람이 시원한걸"


바람이 온 걸 느낀 나그네가 조용히 말하였고 바람은 나그네의 표정을 보았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을 보았고 살짝 만져보았다.


"서늘한게 참 고마운 바람이야"


나그네의 말에 바람은 깜짝 놀랐다.


바람은 항상 자유로웠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을 해왔다.


그렇기에 바람은 고맙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바람은 자신의 속을 간질이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고 햇님을 바라보았다.


그를 따라가봐


햇님이 멀리서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바람은 그를 따라갔다.


그는 한 여자의 남편이었고

한 아이의 아버지였으며

누군가의 이웃이었고

땅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농부였다.


그는 땀 흘려 일하였고 바람은 가끔씩 그의 땀을 닦아 주었다.

그리고 그의 집에서 아내가 널은 빨래를 말려주었고

그의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바람개비를 돌려주었다.


그의 이웃을, 친구를, 주민들을 도왔다.


어느날 남자의 마을 주민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보니

그들이 바람에게 먹을 것을 바치며 감사를 하고 있었다.


바람은 썩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바람은 햇님의 말을 따라 간 곳에서 '사람'을 도왔다.


바람은 좋아하던 여행을 멈추고 그곳에 머물며 그들을 위해 일했고

점차 바람의 외형은 그들과 비슷해져 갔다.


어느날 햇님 때문에 가뭄이 계속 된다는 것을 알게 된 바람은 햇님을 찾아갔다.


너 때문에 사람들이 힘들어 한다고 그 자리에 계속 있지 말라고

바람은 이전과 같은 요구를 했지만 다른 부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햇님은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

햇님은 자리를 이동할 수 없었다.


햇님은 깊은 고민에 빠졌고

낙담하는 햇님을 본 바람은 자신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 햇님과

사람들 모두를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결론을 내렸다.


바람은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땅을 밀었다.


그러자 땅은 천천히 그 자리에서 돌기 시작했다.


바람이 더 크게 땅을 밀자 땅은 스스로 돌면서 햇님의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바람은 자신의 힘이 영구적으로 지속되게 하였고 많은 힘을 잃었다.


바람의 행동을 본 햇님은 크게 기뻐했지만 동시에 슬퍼하였다.


너무 큰 힘을 쓴 바람은 더이상 햇님과 동등한 위치에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땅은 계속 돌아야 했고 바람은 웃으며 햇님과 작별했다.


햇님 또한 다시 한번 따듯한 미소를 보이며 그의 성장을 기뻐하였고 그의 선택을 존중하여 주었다.


그렇게 바람은 지상으로 내려왔다.


바람은 나그네의 곁으로 갔다.


인간의 모습을 한 바람이 나타나자 나그네와 사람들은 크게 기뻐하였고

마을은 몇 일동안 잔치를 벌였다.


그렇게 바람은 사람들 곁에 머물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어느날 바람은 나그네가 더이상 일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이마에는 더이상 땀방울이 맺히지 않았고

그는 다른 이들로부터 음식을 받았으며 다른 이들을 부려 먹고 채찍질 했다.


바람이 그를 나무랐으나 나그네는 반발하였고 오히려 바람을 가두고 만다.

자신이 힘을 쓰면 나그네가 죽을 것을 알았기에 바람은 얌전히 갇혀 그를 보았다.

바람이 갇혔다는 소식이 마을에 퍼지고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바람을 구경하기 위해

누군가는 바람을 차지하기 위해

누군가는 바람을 구하기 위해


누군가는 나그네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

나그네에게 싸움을 걸었다.


각자가 저마다의 이유로 나그네와 싸웠고

나그네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죽였다.


그가 죽인이의 숫자가 많아 질수록 바람은 눈물 흘렸다.

바람은 나그네를 나무랐지만 그를 막을 수 없었다.

바람은 나그네를 막을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막을 수 없었다.


어느날 성장한 나그네의 아이가 바람을 찾아왔다.


청년이 된 아이는 자신이 풀어줄테니 바람에게 도망가라고 했다.

갇혀 있던 바람이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나그네가 병사들을 끌고 왔다.


청년은 나그네에게 저항했지만 붙잡혔고 이후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얼마 후 바깥에서 큰 불이 나고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싸우는 소리가 잦아들었을 때 나그네가 바람을 찾아 왔다.


전쟁에서 승리했으니 함께 축하하자고 나그네는 바람을 감옥에서 꺼내주었다.


오랜만에 바깥으로 나온 바람은 나그네와 함께 높은 곳에서서 바깥을 보았다.


즐비한 시체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목이 매달린 채 죽어 있는 청년


바람은 어린 시절 청년의 바람개비를 돌려주었던 일을 떠올렸다.

순수하게 웃고 있던 아이

달리기를 하고 나무 밑둥에서 잠들어 있을 때면 바람이 아이의 머리카락을 살랑거리게 해주곤 했다.


바람의 머릿속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추억들이 지나가고 다른 죽어 있는 사람들과 기억이 스쳐갔다.

그리고 바람은 나그네를 보았다.


나그네는 웃고 있었다.


바람이 흘러내리는 눈물과 복받치는 감정에 말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을때

나그네는 웃고 있었다.


바람은 나그네의 웃음을 보며 정신을 잃었다.


바람은 그 날 사람을 죽였다.


비틀비틀


바람은 떠돌기 시작했다.


바람이 슬퍼하자 햇님이 가까워진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자리에서 떠날 수 없다던 햇님은 바람이 걱정돼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바람은 그제서야 햇님이 왜 움직일 수 없는지 알았다.

햇님이 가까워지자 물이 마르기 시작했다.


가뭄과 흉작이 계속되었고 사람들은 굶어 죽기 시작했다.

하지만 더위를 식혀줄 바람은 불지 않았다.


정처 없이 떠돌던 바람은 한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가뭄에 말라비틀어졌으며

눈덩이가 퀭하고

살가죽이 없어

갈비뼈마저 보였다.


동냥하는 아이가 불쌍했던 바람이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고

아이는 급하게 어딘가로 뛰어 갔다.


바람이 준 음식을 뒤돌아서서 게걸스럽게 먹고 있다고 생각하며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 갔다.

아이는 자신의 입에 있던 것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이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멈칫하며 삼키려다가도 멈춰서

이내 음식을 잘게 부서서 자신의 밑에 있는 한 생명체에게 그것을 주고 있었다.


아이가 먹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뱉어낸 음식이

한 아기의 입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이는 음식을 한 아기에게 주고 있었다.


아기에게 모든 음식을 주고

아이는 더이상 움직일 힘이 없었는지 그대로 쓰러졌다.


차갑게 식어버린 몸뚱아리


바람은 자신의 눈에서 뜨거운 것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날 바람은 햇님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아이를 보았다.


바람은 그날 '사람'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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