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두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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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깃쿠크
작품등록일 :
2023.12.24 22:44
최근연재일 :
2024.08.07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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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4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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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서쪽을 향해 달리는 흰 짐승이야기

DUMMY

“형님!!”


나무꾼이 집채만한 호랑이 앞에서 엎드려 절한다.


“형님이라니 지금 날보고 하는 말이냐?”


나무꾼의 행동을 유심히 보고 있던 호랑이가 입을 열자 신기하게도 사람의 말이 나왔다.


분명 호랑이가 말하였음에도 나무꾼은 놀라지 않고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네, 제가 아직 태어나기 전 저에게는 형님이 한 분 계셨다고 합니다. 부모님께서는 처음 얻은 자식을 애지중지 키우셨는데 귀한 것을 주고 싶다는 마음에 들어가면 안 되는 곳에 아버님께서 들어가셨고 산신의 분노를 사셨다고 합니다. 산신은 자신이 아끼는 것을 가져갔으니 부모님께서 아끼는 것을 가지고 가시겠다며 형님을 데려가 호랑이로 만드셨다 들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산에서 말하는 호랑이를 만나거든 형님이니 깍듯이 대하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했는데 오늘 형님을 보니 바로 산군께서 형님이신 줄 알겠습니다. 형님 절 받으십시오”


나무꾼은 침착하게 호랑이에게 이야기하였고 하는 행동과 말에 공손함이 묻어나왔다.

엎드려 긴 말을 하던 나무꾼은 마치고 살짝 호랑이의 눈치를 살피었다.


무표정하게 입맛을 다시던 호랑이는 흥미롭다는 듯

나무꾼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내 다른 짐승들과 다르게 사람의 말을 할 줄 아는 것이 기이하다 여기고는 하였다. 그저 산신께서 나를 특별히 어여삐 여겨 산의 주인 삼고자 그리 해주신 줄로만 알았는데 네 말을 들어보니 그럴 듯 하구나. 여태 사람을 보면 두근대며 끌리던 통에 내가 병에 걸렸거나 식욕 때문인지 알았는데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구나 싶구나. 정녕 내가 네 형님이라는 말이냐?”


짐짓 떠보는 듯한 물음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조용히 나무꾼의 집이 있는 산 아래를 보던 호랑이가 입을 열었다.


“일어나거라 아우야, 어찌 형에게 엎드려 절하느냐 편하게 대하거라”


살짝 호랑이의 표정을 살펴 본 나무꾼은 너그럽게 풀려있는 호랑이의 표정을 보자 안심하고 일어 섰다.


이후 나무꾼은 호랑이와 오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 아버지는 생사불명이란 말이더냐?”


“네, 먼 곳에서 전쟁이 터져 전쟁터에 끌려가셨는데 사셨는지 죽었는지 깜깜 무소식입니다.”


“어머니는? 어머니는 괜찮으시냐?”


“어머니께서는 아버지를 걱정하시다가 몸져 누우셨습니다. 제가 이리 산에 오르는 것도 산 어딘가에 영험한 약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것을 캐 어머니께 드리고자 오르고 있습니다.”


“어허.... 그렇구나....”


그렇게 나무꾼은 호랑이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산에서 내려온 나무꾼은 어머니에게 호랑이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무꾼의 어머니는 크게 놀라며, 어디 다친 곳은 없냐며 물었고 나무꾼은 괜찮다고 하였다.


호랑이가 멍청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믿는 눈치였다고 어머니를 달래었다.


다음날 나무꾼은 다시 산에 올랐고 호랑이를 다시 마주쳤다.


무서웠지만 호랑이에게 다시 형님이라 부르며 다가갔고 호랑이는 친근하게 동생을 맞아 주었다.


그렇게 몇 일이 흐르고 호랑이가 입에 피칠갑을 하고 나무꾼 옆을 지나갔다.


피를 머금은채 씨익하고 웃는 호랑이


이 호랑이가 눈치챘구나

나는 꼼짝없이 죽었구나


두려움에 나무꾼의 심장이 미친듯이 요동쳤다.


피를 머금고 있는 호랑이가 무서웠지만 나무꾼은 다시한번 친근하게 호랑이에게 인사하였다


“형님 식사 중이십니까?”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나무꾼을 본 호랑이가 사악하게 웃었다.

호랑이의 입에서 침과 피가 떨어져 내렸다.

맛있는 것을 보고 웃는 듯한 미소


저 포악한 짐승이 나를 보고 입맛을 다시는 구나


나무꾼은 무서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입을 쫙 벌린 호랑의 입에서 말소리가 나왔다.


“아니다, 아우야 잠깐 이리 와보거라”


입가에 피가 잔뜩 묻은 호랑이가 부르자


나무꾼은 심장이 덜컹 내려 앉는 듯 하였다.


나무꾼은 무서웠지만 천천히 호랑이의 곁으로 갔다.

호랑이의 옆에는 큰 멧돼지 한 마리가 쓰러져 있었다.


방금 막 잡은 듯 멧돼지는 아직 발을 움찔움찔하고 있었다.


“어머니 드리라고 한 마리 잡았다.”


“지게에 어여 싣거라”


“몸보신을 잘하셔야 얼른 나으실 거 아니냐”


피와 침을 뚝뚝 흘리고 있는 호랑이

그 옆에 있는 멧돼지


나무꾼은 호랑이가 자신을 시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심장이 요동쳤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다가가 멧돼지를 지게에 싣었다.


“형님 다 실었습니다. 그런데 이놈이 너무커서 다 싣어지지 않으니 남은 것은 형님께서 드시지요”


순간 호랑이가 입을 크게 벌리더니 나무꾼에게 달려들었다.


아 이렇게 죽는구나


나무꾼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눈을 감았다.


쩝쩝쩝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나무꾼 천천히 눈을 떴다.


내가 아직 살아있구나


나무꾼의 옆에서 호랑이가 남은 부위를 먹고 있었다.


“역시 효도는 어렵구나, 네가 남기지 않았으면 배고파서 너를 잡아 먹었을지도 모르겠구나”


호랑이가 호탕하게 웃는다.


호랑이에게는 농담이었겠지만 나무꾼은 식은땀이 흘렀다.


살려고 호랑이를 속였는데 내가 제명에 살지 못하겠구나


호랑이와 멀어지며 나무꾼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몇 일이 흐르고 산에 오르는 나무꾼에게 호랑이는 그때마다 어머니께 드리라며 동물을 잡아 주었다.

호랑이가 잡아 준 고기를 먹은 나무꾼의 어머니는 점점 기운을 되찾아 갔다.

나무꾼은 어머니가 먹고 남은 고기와 가죽을 시장에 내다 팔았고 점점 부를 축적해 갈 수 있었다.


어느날이었다. 호랑이는 나무꾼과 대화하다 갑자기 말을 끊었다.


말없이 산 아래를 보며 회한에 젖어 있던 호랑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옛다, 이것을 어머니께 가져다 드리거라”


호랑이는 나무꾼에게 도라지처럼 생긴 식물을 한 단 주었다


무척이나 초라해보이는 식물이었다. 나무꾼은 호랑이에게 감사하며 산을 내려왔다.


하지만 그동안 호랑이가 준 짐승들의 고기와 가죽에 신이 나있던 나무꾼은 오늘은 고작 도라지라며 속으로는 불평하였다


나무꾼은 호랑이가 준 도라지를 달여서 어머니에게 주었다.


도라지를 달여 먹은 나무꾼의 어머니는 다음날 기운을 되찼았고 나무꾼은 호랑이가 준 것이 평범한 도라지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처음 왜 산에 올랐는지 떠올렸다.

호랑이는 자신이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산신의 정원에서 핀다던 희귀한 약초를 호랑이가 준 것이었다.


그리고 불평을 한 스스로가 부끄러워 다시는 산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호랑이를 속인 것이 미안했다.

그리고 불편했다.


어느날 기운을 차린 나무꾼의 어머니가 나무꾼을 불러 말하였다.


“얘야 참으로 고마운 짐승이 아니냐, 네가 그 호랑이를 형님으로 모시고 그 호랑이가 너를 동생으로 여기니 내 그 짐승을 진짜 자식처럼 생각하마 이것을 가지고 가서 호랑이에게 주거라 ”


나무꾼은 호랑이가 불편하였고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한낱 짐승일지라도 효를 하고 우애를 알아, 이리 지극정성이거늘 네놈은 사람이라면서 감사를 모르느냐. 어여 갖고 가거라"


어머니의 호통에 나무꾼은 어쩔 수 없이 산에 올랐다.


“아우야 오랜만이구나, 그동안 통 보이지 않아 무슨 일이 있는가했다”


호랑이는 반갑게 나무꾼을 맞아 주었다.


나무꾼은 호랑이에게 어머니가 주신 도시락을 주었다.


“정말이더냐? 어머니가 내게 이것을 주었단 말이냐?”


호랑이는 그 무서운 얼굴로 상상할 수 없을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웃는 것인지 맛있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호랑이는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을 먹었다.

나무꾼은 게걸스럽게 먹는 호랑이의 눈에 얼핏 눈물이 고인 듯한 환영을 보았다.


환영처럼 얼핏 보였던 호랑이의 눈물에 나무꾼은 생각했다.


이 호랑이가 외로웠구나

홀로 고독하여 나를 살려주었구나

그래 호랑이 덕분에 어머니가 살아나셨으니 내 호랑이의 말동무나 해주자


그렇게 몇 해가 지나갔다.


나무꾼은 호랑이가 준 고기와 가죽으로 더 이상 나무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부를 일구었다.


그동안 나무꾼은 결혼하였고 자식까지 생겼다.

나무꾼과 그 가족들은 어느새 호랑이를 친가족처럼 여겼다.


어느날 한동안 산에 오르지 못할 것 같아 나무꾼은 호랑이에게 인사하고자 호랑이를 찾아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을 주었다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은 참으로 맛있구아 맛있어... 이것이 손맛이라는 것이냐?”


“우리 어머니가 한 솜씨 하지 않습니까? 형님,”


웃고 떠들다 나무꾼이 무언가 결심한 듯 호랑이에게 말하였다.


“형님 그러지 말고 산 아래로 내려와 사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저희 집도 이제 형님 덕분에 형님이 지내실 곳 정도는 마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춥고 불편하게 계시지 말고 내려오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어머니도 형님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호랑이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니다, 내 비록 너와 형제이고 어머니의 아들이나 지금은 짐승이 아니더냐 짐승과 인간은 본디 있어야할 곳이 다른 법이다,

그리고 내 모습을 본 어머니께서 놀라거나 슬퍼하실까 걱정이구나 나는 이곳이 편하고 좋으니 걱정말거라”


호랑이는 한사코 사양하였다.

그러다 갑자기 어딘가 아픈지 입 속 혀를 이리저리 굴렸다.

호랑이의 입에서 피가 흘러 나왔다.


“형님 어디 안 좋으십니까?”


“아침에 먹은 것이 잘못되었는지 입 안에 가시가 걸린 듯 하구나, 말을 할 때마다 아프구나, 맞다 그렇지 네가 체구가 작으니 내 입속의 가시를 빼주겠느냐?”


나무꾼은 속으로 놀라며 호랑이의 눈빛을 보았다.


이 말은 스스로 호랑이의 입 속으로 들어가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호랑이가 크게 입을 벌려 나무꾼에게 보여주었다.


호랑이의 입속을 보며 나무꾼은 생각하였다.


그래 이만하면 되었다. 호랑이 덕분에 산 인생이니 호랑이한테 죽으면 또 어떠랴


나무꾼은 호랑이의 입안으로 손과 머리를 넣어 입에 걸리 가시를 빼주었다.


“고맙구나 아우야”


그렇게 그 날은 호랑이와 헤어져 집으로 왔다.


“여보 이것이 무엇입니까?”


나무꾼의 아내가 나무꾼에게 금속 조각을 하나 보여주었다.


“아 그건 호랑이의 입속에서...”


순간 나무꾼이 무언가 깨달았다.


짐승은 본디 금속을 이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호랑이의 입속에서 금속이 나왔다는 것은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 먹었다는 말이었다.


나무꾼의 아내도 나무꾼과 같은 생각인 듯하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으나 형님은 그런 분이 아니오, 아마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으셨을거요”


남편의 단호한 태도에 나무꾼의 아내는 하던 말을 그만두었다.


그날부터였다.


나무꾼의 아내는 나무꾼이 산에 오를때면 항상 나무꾼과 호랑이의 도시락을 싸주었다.


어머니가 이제 노쇠하셨으니 자신이 하겠다는 기특한 마음에 나무꾼의 어머니도 도시락 싸는 일을 며느리에게 맡겼고 나무꾼도 자신과 호랑이 것 두 개를 흔쾌히 받아 가지고 갔다.


그런데 도시락을 갖고 가는 나무꾼에게 아내가 한가지 당부를 하였다.


“어머니가 싸신 것이 아닌 것을 알면 형님께서 실망하실터이니 제가 쌌다는 것은 비밀로 해주시어요”


나무꾼은 아내의 말이 옳다 생각하여 호랑이에게 아내가 도시락을 쌌다는 것을 비밀로 하였다.


“형님 어째, 흰 털이 더 는 것 같소?”


나무꾼이 호랑이의 털을 보며 말했다.


“그럼 아우야 이제 내가 나이가 몇이더냐, 나도 늙어 가는 것이 아니겠느냐?”


호랑이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고 형님같은 영물도 나이를 먹는단 말이오?”


“세상 모든 것은 각기 정해진 수명이 있는 법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겠지”


“그런데 아우야 곶감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서운 것이냐?”


“곶감이요?”


“그래 내 언제 한번 산 아래에 볼일이 있어 내려갔다가 호랑이가 온 다는 말에는 울음을 멈추지 않던 아이가 곶감이야기에는 울음을 멈추는 것을 보았다.

아이가 울음을 바로 멈추는 것을 보면 상당히 강하고 무서운 녀석이 분명할 거야 네 더 나이가 먹기 전에, 그 녀석과 싸워서 누가 제일 강한지 겨뤄보고 싶구나”


“하하하 형님 곶감은...”


나무꾼은 곶감이 무엇인지 알려주려다가 문득 짓궃은 생각이 들어 호랑이를 놀라게 해주어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형님 제가 곶감을 이곳에 데려오겠습니다. 직접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그게 가능하더냐?”


“네 그렇습니다. 제가 곶감이라는 녀석이 사는 곳을 압니다. 또 그 맛이 매우 좋으니 형님께 제가 그 녀석을 잡아 대접하겠습니다.”


“아니다, 아우야 그런 무서운 녀석을 네가 어떻게 잡느냐, 네 몸 상할까 걱정되는구나 이곳에 데려오면 내가 그녀석을 제압하겠다. 내가 이기거든 그 고기를 나눠 먹자구나. 어머니께도 드리고 말이다.”


나무꾼은 곶감과 싸우겠다는 호랑이의 말에 속으로 웃으며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호랑이가 나이 먹어 간다는 사실에 아쉬워하며 산을 내려왔다.


어느새 나무꾼은 자신이 호랑이를 정말로 형님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남은 자신의 도시락을 버리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 고양이는 자신이 버린 도시락을 언제나 주워 먹던 고양이었다.

고양이를 보며 호랑이가 생각난 나무꾼은 남은 음식을 고양이에게 주었었는데

그 고양이가 오늘 죽어 있던 것이었다.


불현듯 안 좋은 생각이 나무꾼의 머리를 스쳤다.


나무꾼은 그 길로 마을에 나가 자신이 먹은 도시락의 재료를 수소문하였다.


“이 재료는 사람이 먹으면 해가 없으나 동물이 먹으면 안되는 것이오”


한 약재상으로부터 자신이 먹은 도시락의 재료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나무꾼은 아내를 나무랐으나

아내는 그 호랑이를 믿을 수 없다하였다.

나무꾼은 자신에게 너무나 고마운 분이니 그 분이 나를 죽이겠다면 죽겠노라고 대답했다.

아내는 그래서 당신을 속였다하였다.

당신이 죽으면 아버지를 잃을 아이가 걱정되지도 않냐고 남편을 타박했다.


나무꾼은 잠든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방 밖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급하게 방밖으로 나가니 그릇이 하나 떨어져 있었다.


이미 노쇠할대로 노쇠한 나무꾼의 어머니가 둘의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으신 듯 하였다.

나무꾼의 어머니는 버선발로 산 속으로 들어간 듯 하였고 호랑이를 마주하였다.


호랑이는 많이 쇠약해져 있었으나 노쇠한 노인이 마주하기에는 충분히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나무꾼의 어머니와 호랑이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모르지만 나무꾼의 어머니는 호랑이가 내뿜는 기운에 그대로 쓰러졌다.


어느날 집 앞에 쿵 소리가 나더니 지난번 보았던 초라한 도라지 한 뿌리가 놓여져 있었다.


나무꾼은 호랑이가 왔다갔구나하는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후 나무꾼의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듣더니 더욱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다.


호랑이의 기운 때문인지 독을 먹였다는 죄책감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무꾼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산 속에서는 큰 호랑이 울음 소리가 몇날 몇일이고 반복되었다고 한다.


상을 마치고 나무꾼이 산에 올랐다.

산 중턱에서 머리까지 하얀 털을 가진 한 짐승을 만날 수 있었다.


나무꾼은 조용히 그 짐승의 옆에 섰다.


“몇 번째 였을 것 같으냐?”


“네?”


생각지 못한 짐승의 물음에 나무꾼이 되물었다.


“나를 형님이라 부른 인간이 몇이었을 것 같으냐?”


나무꾼이 놀라 호랑이를 보았다.


“형님???”


“너가 처음이 아니었다. 나는 나에게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인간들을 그동안 모두 잡아 먹었다.”


놀란 나무꾼이었지만 차분히 호랑이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런데 어찌 저는?”


나무꾼은 처음에는 놀랐으나 이내 의아해 하며 물었다.


“마지막 놈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놈이 가지고 있던 금속 하나가 입에 껴서 여간 불편한 것이었다.

그런데 마침 네놈이 나타났다. 네놈에게 금속을 뽑아달라 부탁하려고 살려두었다. 애초에 내가 아는 산신께서는 인감을 벌하여 짐승으로 만드는 이가 아니시다”


“알고 계셨으면 어찌 저를 죽이시지 않으셨습니까?”


이전에는 호랑이의 말에 놀라고 겁먹던 그였지만 이상하게 차분한 호랑이의 모습에 나무꾼은 겁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호랑이가 자신을 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쩐지 그런 마음이 들었다.

보이는 것은 커다란 짐승이요 머리로는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순간순간 들었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죽음의 공포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오히려 나무꾼에게 다만 슬픈 짐승 한 마리가 그의 옆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 보채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 짐승은 이전처럼 강맹하지도 포악하지도 않았고 어딘가 쓸쓸하고, 어딘가 슬퍼 보였다.


호랑이는 여전히 먼 곳을 바라보며 이야기하였다.


“그냥, 재밌었다. 네 녀석이 벌벌 떨면서도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는 것을 보는 것이 재밌었고 그렇게 몇 번이고 장난 쳤다. 네 녀석은 몇 번이고 떨면서도 계속 오더구나. 그러다 문득 궁금하였다. 네 녀석이 원하는 것을 얻고도 계속 올지 그래서 내 예전에 산신께 받았던 삼을 주었다.”


호랑이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런데 네 녀석은 원하던 것을 얻었는데도 여전히 나를 형님이라 부르며 산을 오르더구나, 그리고 처음이었다. 나에게 무언가를 준 것은, 고맙다며 무언가를 준 것은, 감사의 인사와 선물을 받는 것은, 썩... 아니... 꽤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너를 살려두었다.”


호랑이의 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다.


“그리고 네 녀석이 내 입속에 들어와 가시를 뽑아 준 날 나는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느꼈다. 짐승인 내가... 내가... 고맙더구나. 고마움이라는 것을 처음 느껴보았다. 그 날 이후 처음으로 유대감, 친밀감 오로지 먹이감을 대할때면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너와 어머니를 통해 느껴보았다. 그동안 내 앞에서 떨던 짐승들에게는 보지 못했던 표정을 네게서 보았고 공포로 일그러진 얼굴이 아닌 나를 반겨주는 얼굴을 보았다. 그것은 참 기쁘면서도 서글푸더구나.”


“형님”


“그래서 어머니가 독을 주셨을 때도 받아들였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미안하다며 산을 오르셨더구나 그 날 모든 진실을 알려주셨다. 얼마 안 남은 목숨이지만 이 늙은이가 산군께 용서를 비니 용서해달라고... 그날... 어머니라고 한번 불러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호랑이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듯했다.


“자식을 무서워하며 용서를 비는 어머니라니 그런 어머니가 어디 있겠느냐. 어머니라고 불러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아니 아무말도 못하였다. 어머니께서는 무언가 느끼셨는지 아무말도 못하는 나를 무서우셨을 텐데도 가엽게 여겨 쓰다듬어 주시더구나”


호랑이가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잠시 말을 멈추었다.


“아내를 너무 미워하지 말거라. 내 그래도 산군인데 미물들에게나 통하는 독에 이리 약해졌겠느냐 그저 산신의 정원에 몰래 들어가 두 번째 삼을 캔 것이 화근이되어 저주를 받았으니라.”


나무꾼은 호랑이의 말이 정말 그러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주고자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호랑이는 그 말을 끝으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래 아버지께서 멀리 전쟁터에 가셨다고 했느냐?”


오랜 침묵을 깨고 호랑이가 입을 열었다.


“네...”


“거기가 방향이 어디냐?”


“서쪽입니다.”


“서쪽이라 비록 내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죽기전에 갈 수는 있을 거다.”


그 말을 끝으로 나무꾼의 옆에 있던 호랑이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얀털만을 남긴채


나무꾼은 너무 놀라 몇 날 몇 일을 산에 올라 호랑이를 찾았으나 더 이상 호랑이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형님 이렇게 말도 없이 가시면 어떡합니까? 아무 인사도 못드렸는데”


나무꾼은 산에서 호랑이가 마지막에 있던 곳에 곶감을 올려두고 절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얼마 후 전쟁이 끝났고 영험한 존재들과 싸웠다던 나무꾼의 아버지는 집에 무사히 돌아왔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한 신기한 경험을 나무꾼과 손자에게 들려주었다.


생전 처음보는 흰 털을 가진 호랑이가 자신과 사람들을 지켜주었다고...


덕분에 그곳을 지킬 수 있었고 더 이상 서쪽에서 적이 넘어오지 않게 되어 전쟁이 끝났다고...


나무꾼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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