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견주에게 죽고 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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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준
작품등록일 :
2023.12.24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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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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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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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2 21. 행방

DUMMY

다음 날, 당연하게도 송시현은 학교에 오지 않았다.


‘역시 안 오겠지······.’


김남운 쪽을 힐끔 보았다.


김남운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여느 때처럼 싱긋 웃었다.


나는 그 미소를 보고 어째서인지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못 하겠어.’


김남운을 만나면 송시현에 대해 물어보려고 했다.


송시현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남운의 눈치가 보여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학교에서 김남운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평범하게 행동했기에 송시현의 일을 꺼내면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다 끝난 일을 내가 괜히 들쑤시는 걸까?’


송시현에 대해 물으면 김남운이 화를 낼까 봐 무섭기도 했다.


그래서 줄곧 입을 다물고 있는 나에게 박정후가 말을 걸었다.


“예은아, 예은아.”


박정후는 송시현이 오지 않아 빈 자리에 앉고서 작게 속삭였다.


“송시현, 오늘 왜 학교 안 왔는지 알아?”


박정후는 그 질문을 김남운 쪽을 보며 했다.


마치 김남운이 들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처럼.


‘아.’


그때 알게 되었다.


박정후는 아무것도 몰랐다.


‘이미 다 끝난 일인데, 너는 그걸 모르는구나.’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박정후가 바보 같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그랬다.


‘이걸 말해, 말아?’


말할까, 말까 많이 고민했다.


말을 하면 내가 저지른 짓을 박정후가 알게 되어서 창피할 것 같은데, 말을 하지 않자니 입이 근질거려서 얼마 참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입이 별로 무겁지가 않아서 말하고 싶다고 생각이 드는 건 꼭 말해야 하는 성격이었다.


‘그냥 말하고 편해지자.’


그렇게 하는 게 나에게도, 박정후에게도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마음의 짐을 덜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 실체를 알게 된 박정후가 나에게서 멀어지는 것.


‘실망을 하겠지.’


하지만 멋대로 기대를 한 쪽은 박정후라서 설령 박정후가 나에게 실망을 한다고 해도 내가 딱히 잘못한 것은 없었다.


“사실은 말이야―.”


나는 김남운이 듣지 못하게 작은 목소리로 박정후에게 어제 저녁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송시현에게 전화가 걸려 온 일.

김남운이 갑자기 찾아온 일.

김남운이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죽이는 환각을 보여준 일.

김남운의 협박에 못 이겨 송시현을 부른 일.

마지막으로 내가 송시현을 배신한 일.


박정후는 내 이야기를 말없이 듣다가 이야기가 끝나자 뒤늦게 반응을 보였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박정후가 말을 아꼈다.


나는 박정후의 침묵이 불편해 웃으며 물었다.


“나한테 실망했지, 내가 이런 비겁한 여자라서?”


박정후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그 대답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니까 너 이제 나 그만 좋아해. 난 네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 아니야.”


나와 박정후의 인연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박정후가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실망하지 않았어.”


내가 무안하지 않도록 거짓말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좋게 말 안 해줘도 돼. 나도 내가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잘 알아.”

“아니,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난 네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오히려 지금 이 이야기를 듣고 네가 더 좋아졌어.”

“진심이야?”

“응.”


박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니까.”


박정후는 답지 않게 진지한 말을 했다.


“나는 전부터 너의 이런 솔직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어. 그래서 좋아했던 건데, 더 좋아졌어.”


나는 살짝 당황했다.


이 말을 하면 박정후가 나에게서 떨어져 나갈 거라고만 생각했지, 나를 더 좋아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박정후가 슬쩍 내 손을 잡았다.


내가 손을 빼려고 할 때, 그 아이가 말했다.


“내가 너였어도 그렇게 행동했을 거야.”


박정후는 내 손을 자기 얼굴에 갖다 대었다.


“네가 살아 있어서 난 기뻐.”


그러면서 자기 얼굴에 내 손을 비볐다.


부비부비했다.


‘고양이 같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른 손으로 박정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손길을 느낀 박정후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드디어 나를 봐 주는구나.”


그때 나는 이성을 되찾고, 박정후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치웠다.


내가 손을 떼자 박정후도 알아서 나와 거리를 두었다.


박정후는 금방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박정후가 떠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박정후에 대해 생각했다.


한 가지 알게 된 것이 있었다.


‘난 박정후를 싫어하지 않아.’


단지 불편했을 뿐이다.


박정후와 내가 닮았다는 걸 나는 알고 있기에 박정후를 밀어내는 것으로 그런 나의 모습을 부정하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내가 박정후와 같이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박정후에게 느꼈던 불편함을 더는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냥, 같이 있으면 기분이 묘해. 내가 박정후고 박정후가 나니까. 나를 닮은 사람을 보고 있는 거니까.’


박정후도 그랬을까.


나는 박정후 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박정후는 여느 때처럼 큰 목소리로 친구들과 장난을 치고 있었다.


전에는 박정후가 웃으면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는 밝아서 보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변했구나.’


아니. 아니었다.


‘아무도 변하지 않았어. 이게 내 본모습이고, 나는 오늘 드디어 원래 자리로 돌아온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미안. 송시현.’


어차피 곧 죽을 아이의 목숨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나를 위해서.



***



송시현에 대해 더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어째서인지 교문 앞에 이강현이 와 있었다.


“전예은!”


이강현은 검은색 모자를 쓴 채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이강현을 보고 당황했다.


‘왜 쟤가 여기에 있는 거지?’


당황하여 가만히 서 있는 나를, 이강현이 손으로 잡아 끌었다.


“왜 가만히 있어? 김남운이 보면 어쩌려고?”


이강현은 그 말을 하고 내 손목을 잡고 걸음을 뗐다.


학교에서 멀어졌을 즈음, 이강현이 손을 놓았다.


“송시현 때문에 왔어.”

“송시현이 왜?”


나는 다 아는 걸 애써 모르는 척 연기했다.


“실은 어제 널 만나러 간다고 말한 후부터 연락이 안 되어서.”


맞다.

잊고 있었다.


송시현이 이강현과 같은 집에 산다는 걸!


‘둘은 커플도 아니면서 왜 동거하고 난리야?’


그리고 그 점은 나에게 불리하게 다가왔다.


“뭔가 알고 있는 거 없어? 송시현에 대해서.”


이강현이 나를 보며 물었는데, 나는 이강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부담스럽네.’


내가 시선을 피한다는 걸 이강현이 눈치챘다.


“왜 내 눈을 피해? 너 뭔가 알고 있지?”

“아니야. 알기는 내가 뭘 알아.”

“아니, 넌 알고 있어. 빨리 말해. 뭐야?”


나는 자리를 피하려고 했지만, 이강현이 내 손목을 잡고 놓아 주지 않았다.


“말할 때까지 못 가.”


씨발.

나는 속으로 욕을 했다.


하지만 이강현 앞에서는 고분고분하게 굴었다.


“알았어. 말할 테니까 놔.”


이강현은 그제야 내 손을 놓았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어제 있었던 일을 이강현에게 이야기했다.


물론 내가 송시현을 배신한 부분은 빼고, 김남운이 나를 협박해 내가 어쩔 수 없이 송시현에게 전화를 건 부분을 길게 말하며 강조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끝낸 후에는 이강현의 눈치를 보았다.


“―어쩔 수 없었어.”


그 말을 하고 고개를 들었는데, 그때 내가 본 이강현의 얼굴은 정말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서웠다.


종종 김남운이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낼 때, 내가 느꼈던 살기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 감정은 그래도 한 차례 여과 과정을 걸쳐 나타나는데, 이강현의 지금 감정은 단 한 차례도 여과 과정을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한눈에 봐도 이강현이 분노하고 있구나, 화를 내고 있구나, 알아차릴 수 있었다.


“너······.”


송시현이 말하기를 이강현은 전에 학교폭력 가해자였다고 했다.


그게 어찌저찌해서 피해자로 바뀐 거였는데, 나는 오늘 피해자 이강현이 아닌 가해자 이강현의 눈을 보았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면 정말 실망이다.”

“뭐?”


나는 이강현의 입에서 실망이라는 말이 나오자 이유 없이 짜증이 났다.


내가 잘못한 건 알지만, 상대가 그 부분을 지적했을 때의 수치심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해? 그럼 넌 내가 그때 죽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지금 나보고 왜 죽지 않았냐고 따지는 거야?”

“어. 넌 그때 죽었어야 했어. 네가 죽고 송시현이 살았어야 했다.”


이강현은 잠깐의 고민도, 주저함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나는 화가 나서 반박했다.


“송시현이랑 친하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 네가 나였다면 너도 나와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걸!”

“그래, 그랬겠지. 하지만 난 네가 아니고 너도 내가 아니지. 결국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이강현이 말을 하고 나를 보았다.


나보다 키가 커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이강현은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그 시선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불쾌하고 역겨웠다.


“그렇게 보지 마.”

“안 봐.”


이강현이 등을 돌렸다.


“이제 영원히 볼일 없을 거다.”


그 말을 하고 이강현은 나에게서 점점 멀어졌다.


‘그래, 가! 아주 멀리 가 버리라고!’


나는 나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한 이강현이 미워서 가지 말라고 잡지 않고 미안하다고 사과하지도 않았다.


‘난 잘못한 거 없어.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래?’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갔다.


나 자신을 속이는 짓을 한 것 같았지만, 굳이 그 사실을 인정하려고 들지 않았다.


‘이게 내 방식이야.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방식이 있는 거잖아?’



***



기분이 꿀꿀해 일찍 자려고, 집에 돌아가자마자 침대에 누웠다.


띵!


메시지 도착음이 들렸다.


핸드폰을 확인했다.


이강현이 보낸 문자였다.


-혹시라도 송시현 행방에 대해 알게 되면 나한테 연락 줘. 사례할게.-


하이구?

나는 코웃음을 쳤다.


‘사례? 웃기도 있네. 돈 1억을 준다고 해도 너한테는 연락 안 할 거거든!’


나는 문자에 답장을 하지 않고 핸드폰을 껐다.


그리고 다시 누워서 따뜻한 이불을 덮었다.


‘행방.’


그 단어가 굉장히 자극적이고 슬프게 들리는 건 왜일까.


‘······송시현의 행방.’


솔직히 송시현의 행방에 대해서 궁금한 것은 사실이었다.


‘송시현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김남운에게 고문을 당하고 있겠지.


‘만약에 내가 송시현의 행방을 알게 된다면······.’


김남운이 알면 싫어할 이야기.


그 이야기는 금세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나의 안위뿐이었다.


‘미안하다는 말도 지겨우니, 이제 더는 하지 않을래.’


눈을 감았다.


꿈에서 송시현이 나와, 왜 자기를 죽였냐며 나에게 따졌다.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김남운의 공범이었으니까.


‘아니······.’


살인이라고 할 수 있는 행위를 방관했다.


그 점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미 나는 살인자였다.


송시현을 죽인 살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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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시즌2 22. 결정 24.08.31 25 0 13쪽
» 시즌2 21. 행방 24.08.30 23 0 11쪽
50 시즌2 20. 배신 24.08.29 25 0 15쪽
49 시즌2 19. 납치 24.08.28 24 0 12쪽
48 시즌2 18. 결석 24.08.27 27 0 15쪽
47 시즌2 17. 안재호의 묘 (2) 24.08.26 28 0 13쪽
46 시즌2 16. 안재호의 묘 (1) 24.08.25 27 1 11쪽
45 시즌2 15. 김남운의 실체 24.08.24 35 1 13쪽
44 시즌2 14. 송시현의 병문안을 가다 (2) 24.08.23 28 1 16쪽
43 시즌2 13. 송시현의 병문안을 가다 (1) 24.08.22 32 1 11쪽
42 시즌2 12. 삼자대면 (2) 24.08.21 30 1 13쪽
41 시즌2 11. 삼자대면 (1) 24.08.20 32 1 11쪽
40 시즌2 10. 놀이공원 데이트 24.08.19 33 1 11쪽
39 시즌2 9. 송시현의 수첩 24.08.18 32 0 11쪽
38 시즌2 8. 조별 과제 (2) 24.08.17 34 1 16쪽
37 시즌2 7. 조별 과제 (1) 24.08.16 34 1 11쪽
36 시즌2 6. 박정후를 이용하라 (2) 24.08.15 36 1 11쪽
35 시즌2 5. 박정후를 이용하라 (1) 24.08.14 37 1 13쪽
34 시즌2 4. 의뢰자 이강현 (2) 24.08.13 41 1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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