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좌님, 돌아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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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샌
작품등록일 :
2024.03.04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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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1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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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7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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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님은 자비로워(1)

DUMMY

"씻고나와."


니콜라스는 소년에게 새 옷을 안겨주곤 곧장 욕실로 보냈다.


물소리가 나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소년은 금세 깨끗해져선 거실로 돌아왔다.


니콜라스는 소년을 의자에 앉힌 뒤 무릎을 치료해주었다. 그는 까진 무릎에 연고를 발라주면서 입을 열었다.


"같이 지내기로 했으니까 자기소개 정도는 하자. 나는 니콜라스 로퍼슨. 꼬맹이 네 이름은 뭐야?"


소년은 커다란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입을 열었다.


"없어."

"이름이 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딨어? 말해주기 싫으면 싫다고 해."

"진짜 없는데...니콜라스가 지어줘."

"됐어. 그럼 계속 꼬맹이(brat)라고 부르지, 뭐."

"좋아. 난 이제부터 꼬맹이야."


소년의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보고, 니콜라스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참나...농담이야. 피터 정도면 만족하지?"

"응."


피터는 자신의 새로운 이름을 몇 번이나 곱씹었다. 정말로 이름을 처음 가져보는 사람마냥.


"그럼 나이는?"

"음."


피터는 손가락을 쫙 펴서 하나하나 꼽아보았다.


"22살? 아니다, 20살이야. 역시 18살인 것 같아."

"쯧, 구라는...네가 무슨 18살이야? 8살밖에 안돼보이는게!"

"그럼 8살인가봐."


니콜라스는 피터와 얘기할 수록 혼란스러워지는 것 같았다.


'이름도, 나이도 안 알려준다고? 얘는 왜 이렇게 비밀이 많아...?'


니콜라스는 앞으로 이 꼬맹이와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꼬르륵!


그때 피터의 배에서 고동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보니 아침도 안주고 보내려고 했네.'


니콜라스는 얼른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주었다.


그가 피터의 앞에 앉아 시리얼을 퍼먹는 동안, 피터는 시리얼 그릇을 가만히 내려다보기만 했다.


"안먹어? 우유 못 먹냐?"

"쌀밥 먹고 싶어. 쌀밥은 안 먹어?"

"우리 집에 그런 거 없어. 먹기 싫으면 내놓던가."

"으응, 안돼. 인간은 안 먹으면 죽어. 난 인간이니까 먹어야해."


피터는 그릇을 꼭 끌어안고 시리얼을 먹기 시작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다른 걸 먹고 싶다고 툴툴거린 사람답지 않게 참 맛있게도 먹었다. 그리고 눈깜짝할 사이에 그릇은 텅 비었다.


니콜라스는 피터의 얼굴을 보고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맛있냐?"

"응!"


소년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진심으로 피터는 싸구려 우유와 그 덤으로 산 싸구려 시리얼을 맛있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었다.


문득 니콜라스는 식은 피자도 저렇게 맛있게 먹었을까 궁금해졌다.


피자를 던져주고 바로 씻으러 가서 알 수는 없었지만, 오늘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피터가 갑자기 식탁 위에 놓여있던 시리얼 박스를 집어 자신의 그릇 위에 와르르 쏟았다.


니콜라스는 시리얼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버럭 소리쳤다.


"야! 너 뭐해!?"

"더 먹으려고."

"돼지냐? 조금만 먹어, 조금만!"


***


소란스럽던 아침 식사가 끝난 후, 니콜라스는 피터를 소파에 앉혀두고 경고했다.


"나 일하러 갈테니까, 쓸데없이 돌아다니지말고 집에 가만히 있어. 점심은 대충 피자나 햄버거 시켜먹고 아니면 찬장에 시리얼있으니까 그거 먹어."

"어디가는데?"


피터는 금방이라도 따라올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놈이 또 이러네."


니콜라스는 두손으로 피터의 어깨를 꾹 눌러서 다시 앉혔다.


"내가 어딜 가는지 알 건 없고. 그냥 집에서 TV나 보고 있으라고."


니콜라스가 TV를 켜주고 만화 애니메이션이 나오는 채널로 돌렸다. 피터는 금방 화면 속 세계에 푹 빠져버렸다.


피터가 소파 쿠션을 꼭 껴안고 멍하니 애니메이션을 시청하는 모습을 끝으로, 니콜라스는 집 밖으로 나왔다.


"자...그럼 가볼까."


그는 모자를 푹 눌러쓰곤 중얼거렸다.


오늘 니콜라스는 암살 임무를 할 생각이었다.


서류를 통해 정보는 받았다.


암살 대상은 이안 베릴슈타인, 21세. 거대 자동차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베릴슈타인 가문의 차남이었다.


그는 마약파티, 갑질, 폭행 등 온갖 스캔들을 만들어내는 망나니로 유명했다.


그럼에도 회장의 편애를 받고 있어, 후계자 자격을 잃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니 첫째가 죽이고 싶을만도 하지.'


이안은 E급으로 각성한 이후, 헌터가 되겠답시고 던전을 마구잡이로 공략하고 있었다.


이번에 공략할 던전은 C급 던전인 뱀의 사원. 그곳을 공략할 파티 인원은 이안을 포함한 5명이었다.


본인과 돈을 주고 고용한 헌터 2명, 자신의 경호원, 그리고 물약이나 부산물을 운송할 짐꾼이었다.


니콜라스는 거기서 짐꾼으로 숨어들 예정이었다.


짐꾼의 집 앞에 도착한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평범하고 흐릿한 인상으로 바뀌었다.


바로 니콜라스의 스킬인 [둔갑술(C)] 덕분이었다.


B등급 헌터조차도 그의 둔갑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뭐, A급 이상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니콜라스는 택배 박스를 든 채 문을 두드렸다.


"택배에요!"


잠시 뒤, 밖으로 나온 짐꾼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저 시킨 거 없는데요?"

"왜요? 이거 주문하셨잖아요?"

"아...진짜 시킨 것 없다니까..."


짐꾼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 상자에 붙은 상품명을 확인하려고 했을 때-


푹.


날카로운 바늘이 짐꾼의 목을 찔렀다.


뒤늦게 따끔거리는 고통을 느낀 그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무, 슨...?"


짐꾼은 눈을 까뒤집더니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니콜라스는 능숙하게 허물어지는 몸을 받아들곤 안으로 들어갔다.


바늘에 묻어있던 건 독이었다. 이 독에 찔리면 하루동안은 꼬박 잠들게 되고, 최근의 기억이 희미해졌다.


뒷세계가 무서운 까닭은 돈만 있으면 이런 물건을 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니콜라스는 짐꾼의 옷으로 갈아입고 필요한 물건들을 챙겼다.


어느 새 밖으로 나온 그의 얼굴은 짐꾼과 똑같이 변해있었다.


***


뱀의 사원, 던전 앞에 세 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각각 C급 헌터인 콕스 형제와 F급 각성자인 짐꾼이었다.


형인 로널드 콕스가 시간을 확인하곤 눈살을 찌푸렸다.


"망할 도련님은 언제 오는 거야? 벌써 2시간째라고!"


동생 오웬 콕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참아 형. 한 두번 이러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까 더 화가 나는 거라고! 거기 짐꾼 형씨, 형씨도 짜증나지 않아?"

"하하하...저는 이제 익숙해져서요."

"난 더이상 못 참아. 오늘이야말로 한마디 해야겠어."


그때 고급진 세단이 그들 앞에 멈춰섰다.


차 안에서 나온 건, 이안 베릴슈타인이었다.


"여~ 다들 기다렸지?"


방금 전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알려주듯 와이셔츠에는 립스틱 자국이, 목덜미에는 키스마크가 있었다.


이를 본 로널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거 도련님 요새 너무 늦는 거 아니요?"

"뭐? 별로 늦지도 않았는데 왜 짜증이야?"

"허! 2시간이야! 무려 2시간이나 여기서 당신을 기다렸다고! 이번이 벌써 4번째요. 내가 참다참다 말하는 거라고!"

"그래서 어쩌라고? 너같은 가난뱅이 새끼한테 2시간 기다리는 게 별거야? 네깟 놈이 그 시간동안 뭘 할 수 있길래? 나처럼 회사 굴리면서 돈을 벌 수 있어? 방구석에서 술이나 처마시면서 배나 긁는게 다겠지."


퉤! 이안이 로널드의 얼굴에 침을 뱉곤 비릿하게 웃었다.


"이게 진짜!"


로널드가 달려들려고 하자 오웬이 황급히 그를 말렸다.


"형 왜 그래! 그만해."

"씨발 니가 그러니까 힐러가 도망치지! 돈을 많이 주면 뭐해? 사람을 이렇게 개무시하는데!"


차에서 빠져나온 경호원이 두 사람을 떨어뜨려놓았다.


"도련님 오늘은 던전을 공략하기로 했잖습니까. 팀원들과 싸워봤자 좋을 게 없어요. 그쪽도 이제 그만하세요."


겨우 두 사람을 진정시킨 팀원들은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이안이 로널드의 뒤에서 '병신'이라고 하는 소리를 애써 무시했다.


네 사람은 오랫동안 합을 맞춰왔기 때문에, 던전 공략은 순조로웠다.


로널드가 몬스터들의 주의를 끌면서 버티고 서면 이안과 경호원이 공격을 했고 마법사인 오웬이 뒤에서 그들을 보조해주었다.


물론 완전히 순조롭기만 한 건 아니었다. 좀 전의 일로 로널드에게 앙심을 품은 이안이 발을 걸어 넘어뜨리거나 그가 있는 쪽으로 검을 휘두르는 짓을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다치는 사람은 생기지 않았지만...로널드의 표정은 갈수록 굳어졌다.


이안의 팀은 몬스터를 사냥하는 중간중간 간이 캠프를 만들어서 쉬어갔다.


짐꾼은 가방에서 상처를 회복 물약이나 뱀의 독을 치료할 해독물약, 보온병에 채워놓은 따뜻한 차, 육포 같은 것을 꺼내 팀원들에게 건넸다.


던전 깊숙한 곳에 들어갈 수록 팀원들은 몸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전투의 피로가 쌓인 것뿐이라고 생각하고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중간보스인 반인반사의 몬스터 라미아를 잡던 도중에 큰 사고가 일어났다.


이안이 크게 검을 휘두르다가 몬스터를 놓쳐버린 게 문제였다.


몬스터는 마지막 힘을 다해서 오웬에게 달려가...


"어?"


그의 목을 물어뜯었다.


"아아악!!!"


라미아는 그 공격을 끝으로 절명했고 오웬을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놈의 뾰족한 이가 경동맥을 건드렸는지 오웬의 목에서 피가 미친듯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붉은 혈액이 폭포처럼 쏟아져내려, 온몸을 축축하게 적셨다.


로널드가 이안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이런 씨발...! 그걸 놓치면 어떡해!"

"갑자기 몸이 안 움직였다고...!!"

"무슨 개소리야! 오웬! 오웬-!"


로널드가 급하게 동생의 상처를 천으로 막으며 지혈을 하려고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피는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오웬은 라미아의 독에게 중독되기까지 했다. 상처 부위에서 거품이 일고, 얼굴은 실시간으로 파랗게 물들어가고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로널드가 짐꾼에게 소리쳤다.


"물약! 물약 내놔!"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짐꾼은 허둥지둥 가방을 뒤지다가 멈칫했다. 그가 절망한 얼굴로 말했다.


"무, 물약이 더이상 없어요..."


그의 말대로 가방은 텅 비어있었다.


로널드는 흔들리는 눈으로 가방 안을 바라보다가 이안을 돌아보았다.


뒤늦게 그가 항상 위급할 때를 대비해서 고급 회복 물약을 상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회복 물약 좀 줘...! 당신은 항상 물약을 가지고 다니잖아!"

"싫은데?"

"뭐...?"


이안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니 동생이 죽든 말든 나랑 뭔 상관인데? 그리고 이 물약은 내가 위급할 때 쓰려고 하는 거지, 저놈같은 쓰레기한테 쓰는 용도가 아니거든?"


로널드의 눈에서 불이 튀었다.


"이 개새끼야!"


그는 미친사람처럼 이안에게 달려들었다. 경호원이 분노한 로널드의 앞을 겨우 막아섰다.


"이러지마세요! 진정하십쇼!"

"내놔! 물약 내놓으라고-!!"


두 사람은 똑같은 C급 헌터였지만 똑같은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힘으로는 로널드 쪽이 훨씬 우세했다. 그래서 그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경호원의 얼굴은 무척이나 힘겨워보였다.


그때, 오웬의 목을 지혈하고 있던 짐꾼이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로널드씨...동생 분이...숨을 안쉬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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