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자의 탑 등반법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공모전참가작

별상자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7
최근연재일 :
2024.05.23 17:06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2,609
추천수 :
45
글자수 :
90,428

작성
24.05.15 11:10
조회
158
추천
3
글자
13쪽

2층(2)

DUMMY

얘가 지금 뭐라고 한 거야?

귀환자?

지금 귀환자라고 한 거 맞지?


머리가 띵하다.

부지불식간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다.

내가 잘못, 들었을 리는 없을 테고. 내 신체가 오작동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그럼 진짜 뭐지?

얘는 어떻게 내가 이기환한테도 말하지 않은 사실을 알고 있는 거야?


“너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보려 했으나 실패했다.

순식간에 바닥에서 치솟은 그림자 때문에.


촤아아악!


방심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방심 당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튀어나온 ‘귀환자’라는 단어 때문에.

나도 모르는 새 온 정신이 그쪽에만 쏠려있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살짝 늦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꿀-꺽.


중력을 역행하듯 솟구친 그림자가 암왕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기름 덩어리처럼 미끄덩거리는 감촉이 느껴짐과 동시에 그림자로 변한 암왕이 쏘옥 내 손아귀를 빠져나간다.


허, 이런 능력을 감추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고 참은 인내심에 내심 감탄했다.

분명 전투 중에 쓰고 싶은 욕구가 상당했을 텐데, 단 일 합의 교환만으로 나와 자신의 실력 차이를 간파하고 도주용으로 사용하는데 과감하게 배팅했다는 거잖아.

냉철한 판단력이고 과감한 결단력이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어딜.”


방심했다곤 하지만 나도 이대로 순순히 놓쳐줄 생각은 없다.

반쯤 지면으로 사라진 그림자.

나는 주먹을 쥐고 내 허리 높이에 맞춰 빠르게 내질렀다.


파아아아아아아앙······!


뭔가 부쉈다기보단 물렁물렁한 액체를 때렸다는 느낌이 강하다.

실제로 주먹에 맞은 그림자는 땅바닥에 추락한 물풍선처럼 터지며 무수한 그림자 파편을 흩뿌렸다.

그리고 지면에 닿은 파편들은 내가 뭘 더 해보기도 전에 일제히 자취를 감추었다.


죽은 건······ 아마 아닐 테고.

도주한 거겠지.


“······.”


가만히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암왕의 그림자가 짙던 자리에는 이제 흐릿한 내 그림자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냥 힘을 빼지 말 걸 그랬나.”


주먹을 내지르다 불현듯 주먹 한 방에 죽은 흑기사가 떠올라서 중간에 힘을 살짝 빼긴 했는데.

안 그랬으면 잡았으려나?

아니, 그랬다가 자칫 잘못하면 죽었을 수도 있으니까······.

미련을 털어내고 다른 것에 집중했다.


“귀환자.”


분명 암왕은 나를 보고 귀환자라고 말했었지.

단순히 넘겨짚은 거라기엔, 확신이 담긴 눈빛이었다.


그렇다면 암왕은 내가 귀환자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귀환자라는 단어가 막 튀어나왔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암왕이 내가 있던 이세계에서 넘어온 놈인가, 하는 의심이었다.

자연스레 머릿속에는 비슷한 체격이나 움직임을 보였던 이세계 놈들의 기억이 뒤엉켜서 떠다녔고, 그러다 보니 주의가 산만해져 암왕을 놓치게 되었다.


하지만 여유롭게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고민해보니, 그건 아닌 것 같다.

만약 암왕이 이세계에서 넘어온 놈이라면, 그리고 나를 안다면, 귀환자라고 부르기보단 이름이나 이세계에 널리 알려졌던 이명으로 날 불렀을 테니까.


그러니까 암왕은······ 나를 아는 놈이 아니다.

놈은 오늘 이곳에서 나를 처음 보았으며, 귀환자인 줄 모르고 전투를 걸었고, 전투 중에 내가 귀환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아마도 나의 강함을 보고 귀환자라고 유추한 거겠지.

내가 전투 중에 무슨 특별한 기술을 사용한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이 말인즉슨 암왕이 나 이외의 귀환자, 그것도 압도적인 강자를 만나봤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 강함을 보고 귀환자라는 사실을 유추할 순 없었을 테니까.


“재밌네.”


나 이외의 귀환자라니.

안 그래도 암왕을 다시 잡을 생각이었는데, 이건 도저히 안 잡을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내가 진심을 다하지 않았다고 한들 방심을 유도해 내 뒤통수를 친 놈이고.

다른 귀환자에 대한 정보까지 알고 있는 놈이니까.


다음 만남이 기대되네.

그땐 꼭 가면을 벗겨 봐야지.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며 발을 뗐다.

몇 걸음 걷지 않아 죽은 궁수 시체 앞에 도달했다.

암왕이 버리고 간 검을 작대기처럼 사용해 품속을 뒤졌다.

쓸만한 건 식량 주머니와 물병이 다인가.

추가로 다른 시체 네 구도 뒤적거렸지만, 챙길 만한 건 안 보인다.

작은 가방 안에 식량 주머니와 물병을 넣고 가방끈을 한쪽 어깨에 걸쳤다.

벌써부터 걸리적거리는 느낌이 든다.

불편하다.

이래서 이기환이 있어야 하는 건데.

혀를 차고 끌리는 방향을 선택해서 걸음을 옮겼다.


“아.”


몇 걸음 걷지 않아 멈춰섰다.

가방 말고도 걸리적거리는 게 하나 더 있었다.

암왕이 버리고 간 검.

이기환에게 선물해줬던 1,000포인트 싸구려 검과는 차원이 다른 고급스러운 검이다.

무게중심도 잘 잡혀 있고, 얼마나 손질을 잘 했는지 검날에는 예사롭지 않은 예기가 줄줄 흐른다.

그런데······ 나한텐 쓸모없잖아. 검 들고 다녀봤자 불편하기만 하지. 귀찮고.


휘익.


근처 수풀에 대충 검을 던져 버리고 미련 없이 다시 움직였다.



***



벽과 바닥, 천장 전부가 나뭇결이 서린 목재로 뒤덮인 방.

천장에는 초록색 줄기가 거꾸로 연결되어 있었고, 줄기의 끝에는 싱싱한 꽃이 전등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꿀렁.


어느 순간, 서랍 책상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흔들렸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촤아아악.


검은 가면을 쓴 암왕이 방 안으로 솟구쳐 올라왔다.

암왕은 그림자 속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두 손으로 책상 끝을 붙잡았다.


“쿨럭······!”


복부를 감싼 검은 보호구에 큼지막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훤히 드러난 맨살은 이미 피투성이였다.

떨리는 손이 첫 번째 서랍을 열고 뒤적거렸다.

꺼낸 것은 찰랑거리는 액체가 담긴 작은 병.

가면을 내팽개치듯 벗은 그녀가 내용물 반을 마시고, 반은 복부 상처에 뿌렸다.


치이이이익······.


모양 좋은 입술이 벌어지며 앓는듯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잠시 후, 매끈해진 복부를 매만지며 그녀가 중얼거렸다.

새까만 눈동자는 누군가를 떠올리듯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괴물 같은 놈. 그림자로 변한 나한테 단순 물리력으로 이만한 타격을 입혀?”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켠 그녀가 머리끈을 풀고 땀에 젖은 흑발을 쓸어넘겼다.


“이래서 귀환자란 놈들은······.”


새까맣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서너 번 느리게 열렸다 닫혔다.

곧 그녀가 방을 나섰다.

방과 똑같이 목재로 이루어진 거실에는 한 남자가 중앙의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옅은 붉은색의 머리와 푸르스름한 눈동자. 볼에 난 주근깨.

남자가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대장 왔······ 어?”


시선이 복부로 향한 남자가 눈을 크게 뜨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장! 배에 그거 뭐예요?! 누가 감히 암왕한테······!”

“조용히 해. 시끄러우니까.”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미간을 찌푸리자 남자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이번엔 텅 빈 검집을 발견한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검은 또 어디 간 거예요? 대장이 애지중지하는 검이라 어딜 가든 항상 차고 다니던 거잖아요. 심지어 잘 때도 애인처럼 옆에 끼고 자더만.”

“······다른 사람한테 잠시 맡겨놨어.”

“맡겨놨다고요? 저희도 손가락 하나 못 대게 하던 걸, 누구한테-”

“그보다 헨리.”


그녀가 말을 자르며 화제를 돌렸다.


“시킨 작업은 문제없이 진행 중인 거지?”

“당연히 문제없죠. 제가 누군데.”


헨리라 불린 남자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테이블 위를 턱짓했다.

테이블 위에는 붉은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화살이 놓여 있었다.


“거의 다 끝났어요. 길어도 이틀? 그쯤이면 마무리돼요.”


화살을 살핀 그녀가 말했다.


“그럼 작업은 계획대로 계속 진행하되 작전 실행은 일단 잠정 보류하는 거로 알고 있어.”

“네? 보류요? 갑자기 왜요?”


되묻던 헨리가 그녀의 복부를 보고 아, 하고 소리를 냈다.


“사도가 내려온 거예요? 그래서-”

“아니. 사도는 아니야.”

“그럼 뭔데요?”

“밑에서 괴물 같은 놈이 올라왔어.”

“밑······ 이요? 위가 아니라?”

“어. 밑.”

“그건 또 뭔 소리-”

“그만. 네가 신경 쓸 일 아니니까, 너는 이 안에서 작업이나 농땡이 피우지 말고 하고 있어. 괜히 답답하다고 밖에 싸돌아다니지 말고.”


할 말을 다 했다는 듯이 그녀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몇 걸음 걷다가 다시 몸을 돌려 헨리를 쳐다봤다.


“창고에 작업해 놓은 화살들 많지?”

“어······ 그렇죠? 근데 전부 용암 거인한테 사용하기엔 애매하다고 결론 내린 것들이잖아요.”

“그것들 오늘 안에 다 점검해놔. 아니, 지금 당장 그것부터 해. 어쩌면 조만간 써야 할지도 모르겠으니까.”



***



귀가 간지럽다.

내 귀가 아무 이유 없이 간지러울 리는 없으니, 필시 누군가 내 얘기를 하는 중이겠지.

이기환인가? 아니면 암왕?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파며, 머릿속으로 그럴듯한 용의자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을 때.


“하필 서쪽 집단을 만났다고? 신참이 용케 살아서 우리랑 만났구만. 운이 좋아.”


옆에서 나와 함께 걷는 중인 갈색 머리 아저씨가 말했다.

10분 전에 조우한 파티의 리더다.

옆집 아저씨처럼 푸근한 인상에 흑기사나 암왕과는 다르게 아주 말이 잘 통하는 사람.


본인을 동쪽 집단의 사냥조 조장이라고 소개한 이 아저씨는, 나에게 자신과 동행할 건지 물어봤고.

아직 2층에 대해 모르는 게 많은 나는 그 제안을 수락했다.


“서쪽 집단?”

“아, 우리 젊은 친구는 모르겠구만. 이제 막 1층에서 올라왔을 테니.”


조장 아저씨가 설명했다.


“서쪽 집단은 우리 동쪽 집단과 반대쪽에 위치한 집단인데, 인간 같지 않은 놈들이 모여있는 곳이야. 멀쩡한 사람을 납치해서 노예로 쓰고, 마음에 안 들면 죽이고, 대충 재활용도 불가능한 강력 범죄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돼.”


말하면서 인상을 찌푸린다.

그러고 보니 암왕한테 죽었던 파티가 나를 보고 노예로 쓰겠다고 했었지.


“그나저나 나는 우리 친구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가 궁금한데? 눈에 보이는 상처도 없고. 옷도 찢어진 거 하나 없이 멀쩡하고. 그놈들이 순순히 보내줬을 것 같진 않은데.”

“보내주고 할 것도 없이 암왕이라는 얘가 나타나서 모조리 죽여 버리던데?”

“뭐라고? 암왕?”


충격적인 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조장 아저씨가 되물었다.

앞과 뒤에서 대화를 들으며 걷던 나머지 조원들도 움찔거렸다.

반응을 보니 암왕이 꽤 유명한 놈인가 본데?


“검은 가면 쓰고 검은색 갑옷 입은 놈이 암왕 아니야? 서쪽 집단 얘들이 암왕이라고 부르던데?”

“허······ 진짜 암왕이라고? 아직 활동기가 아닌 거로 아는데, 왜······.”


조장 아저씨가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문질렀다.


“왜? 암왕이 누군데? 누가 설명 좀 해줘 봐.”


내 물음에 답한 것은 뒤에 있던 남녀 중 여자 쪽이었다.


“암왕은 2층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은 등반자이자 가장 강한 등반자야. 그래서 왕이라는 칭호가 붙은 거고. 아까 2층에는 안전지대가 세 개 존재한다고 했지? 서쪽에 하나. 우리 동쪽에 하나. 그리고 남쪽에 하나가 있는데, 남쪽이 암왕의 영역이야.”

“정확히는 암왕을 포함한 세 명의 왕, 삼왕의 영역이지.”


조장 아저씨가 덧붙였다.


“각각 암왕, 폭왕, 목왕이라고 불리는데, 검은 가면, 빨간 가면, 갈색 가면을 쓰고 있으니까 어쩌다 마주치게 된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주하도록 해. 신참은 잘 건드리지 않는다고 들었지만, 혹시 또 모르니까.”


뒷말은 흘려들으며 머릿속 만나야 할 리스트에 폭왕과 목왕을 적어넣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해 추가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이렇다 할 소득은 없었다.


이명과 관련된 능력을 사용한다는 것과 다른 2층 등반자들에 비해 유난히 강하다는 것, 그리고 지내는 곳과 가면을 쓴 인상착의가 그들이 삼왕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뭐, 사실 이 정도면 충분하긴 하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남쪽에 있는 안전지대 안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하니까 나중에 찾아가면 되겠지.

다음으로는 임무에 관해 물어봤다.


“임무창을 보니까 오크 광전사를 사냥하라고 하던데.”

“아, 그거? 그건 그냥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속 편할 거야.”


조장 아저씨가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곧바로 말했다.


“클리어가 불가능한 임무거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최강자의 탑 등반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지 공지 24.05.28 16 0 -
16 2층(10) 24.05.23 44 0 12쪽
15 2층(9) 24.05.22 63 1 13쪽
14 2층(8) 24.05.21 73 1 12쪽
13 2층(7) 24.05.20 88 1 13쪽
12 2층(6) 24.05.19 99 1 14쪽
11 2층(5) 24.05.18 101 1 12쪽
10 2층(4) 24.05.17 116 2 12쪽
9 2층(3) 24.05.16 135 3 15쪽
» 2층(2) 24.05.15 159 3 13쪽
7 2층(1) 24.05.14 171 4 12쪽
6 1층(5) 24.05.13 187 4 12쪽
5 1층(4) +1 24.05.12 215 5 12쪽
4 1층(3) +1 24.05.11 233 5 17쪽
3 1층(2) +1 24.05.10 283 5 15쪽
2 1층(1) +1 24.05.09 302 5 13쪽
1 프롤로그 +1 24.05.08 341 4 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