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자의 탑 등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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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상자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7
최근연재일 :
2024.05.2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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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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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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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층(7)

DUMMY

“이기환? 아는 놈이야?!”


흥분한 주설아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주먹이 쾅, 하고 탁자를 내리친다.

찻잔들이 얼마 남지 않은 찻물을 쏟아내며 엎어졌다.

그녀는 엎질러진 찻잔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내 쪽으로 상체를 쑥 들이밀었다.

강렬한 눈빛이 얼굴 피부를 찔러 들어온다.


“가만히 있지 말고 말 좀 해 봐! 네가 있던 이세계에서 귀환한 놈이야? 설마 너도 그놈과 한패는-”

“워워, 진정해. 그저 비슷한 느낌인 사람이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것뿐이니까. 말실수야, 말실수.”


한국인이라고 의식하고 봐서 그런 것도 있다.

최근에 만난 한국인들은 주설아를 제외하면 탑 1층에서 만난 사람들이 전부니까.

이기환의 외모가 특히나 강렬하기도 했고.


“실수라고?”


주설아가 날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놈과 한패라서 거짓말하는 거 아냐?”

“거짓말은 무슨. 널 속인다고 내게 뭔 이득이 있다고. 그리고 애초에.”


귀환자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종이를 거꾸로 들어 주설아와 크리스, 헨리에게 보여줬다.


“이걸 보고 누군지 알아본다는 게 가능한 일이긴 해?”


사람이라고 말만 하지 않았다면 귀신이나 도깨비, 괴물, 뭐 그런 종류의 생물을 그려놨다고 착각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못 그렸다.

조금 과장 보태서 유치원생이 그린 거 아니냐고 생각할 정도로.


“너는 보자마자 알아봤잖아.”

“아니, 그건 걔가 좀 특이한 케이스여서 그런 거고. 얼굴 하나는 진짜 살벌한 놈이거든. 이 그림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랑 비슷하달까? 물론 이기환이 이놈이란 건 아니고.”


정밀화보단 추상화에 가까운 그림.

솔직히 이 그림으론 귀환자의 생김새를 유추한다는 건 어불성설에 가까웠다.

그나마 알 수 있는 건 사납게 째진 눈을 가졌다는 것과 흉악하고 살벌한 분위기를 두르고 있을 거라는 점 정도랄까.

지가 피카소야, 뭐야.

이럴 거면 아예 그리질 말던가.


“아무튼,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귀환자는 없으니까 내가 이놈을 안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거지.”

“이세계에서 한국인을 만난 적은 없어?”


미련이 남은 것처럼, 주설아가 물었다.


“없어. 내가 아는 한은. 그보다······.”


말을 하면서 그림을 다시 봤다.

사람 같지 않은 얼굴이어서 그런가······ 굉장히 강해 보인다.


“이 녀석 강하냐?”

“강하지.”

“얼마나? 나보다 더 강해?”


내 물음에 주설아는 곧장 대답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팔짱을 꼈다.

그리곤 머릿속으로 어려운 비교를 하는 것처럼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이윽고 입을 뗐다.


“몰라. 애당초 난 네가 얼마나 강한지도 모르겠고. 이놈을 만났을 당시 나는 평범한 일반인에 불과했으니까. 다만.”


다만?


“상대가 누구든, 이놈이 질 거란 생각은 안 들어. 그만큼 압도적이었어. 1층에서 봤던 광경은.”


그게 어떤 광경이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그녀가 곧장 이어 말했다.


“단 한 번의 칼질이었어. 아니, 솔직히 칼질을 한 건지, 안 한 건지도 잘 모르겠어. 어느 순간 정신 차리고 보니까 그놈은 이미 검을 빼든 상태였고······.”


침전된 기억을 끄집어내듯 그녀가 허공을 응시했다.


“눈앞의 숲은 나무, 바위, 수풀, 오크, 오크 전사, 그 어떠한 예외도 없이 모조리 반으로 잘려나간 후였거든.”



*



“싸우고, 살아남고, 강해지고. 다시 싸우고, 또 살아남고, 더 강해지고. 대충 이것의 반복이었다고 보면 돼.”


이세계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기 전까지는 그렇게 살았었다.

그러다 정신 차리고 보니 지구의 나 때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강해져 있었고.


“너처럼 해야지 그 정도로 강해질 수 있는 거야?”


주설아가 내 눈을 바라봤다.

커다란 눈동자에는 강함에 대한 열망이 일렁였다.


“꼭 그런 건 아니고. 세상엔 사람 수만큼이나 무수히 많은 방법이 있으니까. 그래서 더 재밌는 거고. 음, 더 물어볼 거 없으면······.”


이세계에 대한 주제가 끝난 후의 대화는 대체로 내가 질문하고 주설아가 답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신에 대해서.

탑에 대해서.

사도에 대해서.


많은 것을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조장 아저씨와 그리 다를 게 없었다.

2층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오랫동안 머무른 등반자임에도.


결국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는 위층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거겠지.

그리고 위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임무를 클리어해야 하고.

좀이 쑤시지도 않는지, 대화하는 내내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앉아있는 크리스에게 운을 띄었다.


“듣기론 네가 오크 광전사 사냥을 통제하고 있다던데.”

“아, 네. 맞습니다. 오크 광전사를 잡고 위층으로 올라가시려는 거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마침 제 감각에 잡히는 광전사가 하나 있으니 원하신다면 당장 이동하셔도 무방-”

“아니. 지금 당장은 말고.”

“······그럼 언제쯤 출발하시길 원하십니까? 무작정 시간을 보내다간 누군가에게 사냥당할지도 모르니 가급적 빠르게 결정을 내려주셨으면 하는데.”

“개체 수가 적긴 해도 어차피 사냥당하면 또 리젠되는 거 아냐? 굳이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해?”

“말씀대로 꾸준히 리젠이 되긴 합니다만 일정한 간격으로 리젠되는 건 또 아니라서 말입니다. 운이 안 좋으면 꽤 오랫동안 기다리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


나는 일부러 언제 오크 광전사를 잡을지 말하지 않고 뜸을 들였다.

그에 크리스는 침착하게 기다렸다.

하지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저 혼자 침착을 가장하면 뭐 하나.

네 동료인 빨간 머리 놈이 대놓고 티를 내고 있는데.

뭐가 그리 불안한지 수시로 마른 입술을 핥아대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는 헨리.

그 웃기는 꼴을 보다가 말했다.


“오크 광전사는 용암 거인이 깨어난 후에 잡을게.”


용암 거인이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헨리가 흠칫한다.

그 와중에도 크리스는 침착을 유지했다.


“용암 거인이 깨어난 후라면······ 구경하시고 올라가시려는 겁니까?”

“으음. 구경만 할지, 아니면 다른 것도 할지는······.”


의미심장하게 말을 끌면서 주설아를 바라보자 그녀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탁자 밑으로 헨리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아악!”

“조용히 안 해? 뭘 잘했다고.”


못마땅하게 헨리를 흘겨본 그녀가 내게 시선을 돌렸다.


“이번에 나오는 용암 거인은 우리가 사냥할 예정이야. 정말 오랫동안 준비한 거니까 부디 구경만 해줬으면 하는데.”


역시 사냥하려고 한 거구나.

헨리의 반응에서 확신을 얻긴 했지만, 사실 주설아에게 귀환자라는 아주 강한 원수가 있다고 들었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하던 바였다.

2층에서 왕 노릇 하며 안빈낙도하는 게 아닌 복수가 목적이라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2층에 남아있진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2층에서 가장 특별하다고 느껴지는 건, 누가 뭐래도 층계 균형자, 용암 거인이니까.

아마도 주설아는 용암 거인을 잡고 보상을 받아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지려는 거겠지.

원수에게 복수하기 위해.

주설아의 요청대로 구경만 할까 고민하다가 물었다.


“용암 거인은 리젠이 안 돼? 내가 잡고 그다음에 너희가 잡으면 되잖아.”

“한 번 잡으면 리젠 되는데 굉장히 오래 기다려야 해.”

“누가 잡긴 했나 보네? 그 사실을 아는 거 보니까.”

“······.”

“뭐, 잡은 녀석은······ 당연히 그놈일 테고.”


내 대답을 기다리는 주설아를 보다가 결정을 내렸다.

그래, 원래 싸움 구경은 허접끼리 싸우는 걸 보는 게 가장 재밌는 법이지.


“좋아. 나는 구경만 할게.”

“정말이지?”


주설아의 얼굴빛이 미미하게 밝아진다.


“어. 그러니까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준비나 잘 해.”


어설프게 준비했다가 재미없으면 실망할 것 같으니까.


드르륵.


대충 할 말은 다 한 것 같아서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그때, 여태 조용히 정강이만 문지르던 헨리가 불쑥 주설아에게 물었다.


“대장, 근데 맡긴 검은 언제 찾아오는 거예요? 용암 거인 잡으려면 그거 필요하잖아요.”

“······!”


정말 한순간이었다.

미미하게나마 밝아 보이던 낯빛이 살벌하게 돌변한 건.

홱, 하고 주설아가 날 돌아봤다. 두 눈에 쌍심지가 켜져 있다. 도둑놈을 보는 눈빛이다.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훑은 그녀가 세상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딨어?”

“뭐가?”

“내 검! 네가 뺏어갔잖아!”


어우, 아까 이기환의 이름을 꺼냈을 때와 비슷할 정도의 급발진이다.

소중한 검이었나?

근데 그러면 주인이 잘 간수를 했어야지. 그렇게 아무 데나 버리고 가면 쓰나.


“뺏어가다니. 네가 버리고 간 거잖아.”

“그게 무슨, 내가 언제 버리고, 아니······.”


기가 막힌다는 듯 그녀가 연신 헛숨을 토해냈다.

이내 심호흡을 하며 진정한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다 됐고. 내 검이나 내놔.”

“없는데.”

“······뭐? 없다고? 그게 왜 없어?!”

“네가 버리고 갔길래 나도 버렸어. 그게 은근 무겁더라고.”

“무겁······ 겨우 그딴 이유로 내 검을 버렸다고? 그게 얼마짜린 줄······!”


소리치던 그녀가 뒷목을 부여잡았다. 상당히 흥분했는지 숨소리가 거칠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헨리와 크리스가 황급히 달라붙었다.


“대장, 진정해요, 진정!”

“위치만 알면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대장.”


둘의 노력 덕분인지, 겨우 진정한 그녀가 날 돌아봤다.


“어디다.”

“······?”

“어디다 버렸냐고!”


아, 아직 진정된 게 아니구나.



*



“대장.”

“찾았어?”

“아뇨. 누가 주워간 것 같습니다. 최강혁 님이 저희를 속인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


나라를 잃은 듯, 몇 초 동안 멍하니 앉아있던 주설아가 이마를 짚었다.


“하아······ 내가 그걸 마련하느라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몇 차례 탁자가 꺼져라 한숨을 쉰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기력이 쭉 빨린 얼굴이었다.


“물어내라고 한들 들어먹을 놈도 아니고······ 직접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나.”


옆 의자에 앉아있는 크리스가 말했다.


“저도 여유가 되는대로 수색을 해보겠습니다.”

“어. 부탁해.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은데 미안하네.”

“괜찮습니다.”

“대장, 저도 도울-”

“넌 시킨 일이나 제대로 해.”


주설아가 헨리에게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괜히 돌아다니다 사고나 치지 말고. 그냥 여기에 엉덩이 딱 붙이고 화살이나 만들어. 알겠어?”

“네······.”


풀이 죽은 헨리를 힐긋 본 크리스가 말했다.


“그런데, 대장. 만약을 대비해놔야 하지 않을까요?”

“만약?”

“최강혁 님이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대체 그 괴물 놈을 어떻게 대비하는데?”

“······.”

“그놈에 대한 건 그냥 생각을 하지 마. 움직이는 자연재해 같은 놈이니까. 대비한다고 뭘 할 수 있는 놈이-”

“대장, 최강혁 님입니다.”


크리스가 주설아의 말을 끊었다.

십여 초가 지난 후, 집 밖으로 나갔던 최강혁이 돌아왔다.


“조용한 거 보니까 내 뒷담 중이었나 보네.”

“······!”


실내를 슥 훑은 최강혁의 말에 헨리가 흠칫 반응했다.

찌릿, 헨리를 쏘아본 주설아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왜 벌써 왔어? 주변 구경하고 온다며?”

“까먹고 말하지 않은 게 있어서.”

“뭐?”

“내일 날 밝자마자 서쪽 안전지대를 구경하러 갈 생각이거든.”

“그래서?”

“근데 내가 가는 길을 몰라. 안내해줄 사람 한 명만 붙여줘.”

“······나한테 뭐 사람 맡겨놨어?”

“안 맡겨놨는데?”


최강혁이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 올렸다.

주설아는 그 뻔뻔한 낯짝을 노려보다가 한숨과 함께 대꾸했다.


“알겠어.”

“그럼 부탁할게.”


최강혁이 손을 흔들며 다시 나간 후.

주설아의 시선이 헨리에게 닿았다.


“헨리.”

“······저요?”

“어. 너. 네가 갔다 와.”

“어······ 저는 할 일이 있는데. 대장도 방금 저보고 얌전히 화살이나 만들라고-”

“그럼 크리스가 가? 얘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대장이 가는 건······.”

“난 검 찾으러 돌아다녀야 해. 용암 거인 깨어나기 전에 찾아야 할 거 아냐.”

“······.”

“그리고 넌 이동하면서도 작업할 수 있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그냥 조용히 갔다 와. 조용히. 제발 사고 치지 말고.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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